우리는 종종 별 것도 아닌 일에 발끈하며 반응하는 경우가 있다.
년말총화를 위해 동료들과 회식을 하는 자리였었다. 평소에 무거운 박스를 씨엉씨엉 나르고 원자재를 등에 둘쳐업고 다니던 자재과 남자 직원들이 한상 둘러앉았다.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을 하는 만큼 술에 대한 애착도 묵직했다.
술이 여러 고패 돌자 경직된 어깨들이 느슨히 풀어졌다. 무뚝뚝하던 사람들답지 않게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입가에 웃음이 출렁거렸다. 권커니작커니 목소리도 쌓여가는 맥주병 처럼 점점 높아져갔다.
한창 술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누군가 술상을 박차고 일어섰다. 씩씩거리며 식당을 씽하니 빠져나가버렸다. 어안이 벙벙해진 것은 옆좌석에서 웃음꽃을 피우던 다른 부서 직원들뿐만 아니다. 같이 술을 마시던 남자동료들 자체도 화면이 정지된 티비처럼 웅긋쭝긋 일어서서 멍하니 문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이야?”
“무슨 일인데?”
용수철처럼 튕겨나간 동료에게 술을 권하려고 두손으로 맥주잔을 받치고 있는 옆자리 친구에게 주위 사람들의 질문이 비발처럼 쏟아졌다.
영문을 모른채 열성스레 술을 권하던 동료는 어안이 벙벙하기만 한 눈치다.
“아니. 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 ”
모처럼 모인 회식자리 분위기를 자기가 망친 것 같아 여간 억울해하지 않았다. 재미있게 마시자고 술을 권했을 뿐인데 이런 무안을 당하다니 본인도 억이 막힐 일이였다.
사후에 안 일이지만 원샷을 권했는데 술잔 절반을 비우자 자연스레 한마디를 했단다.
“에잇, 남자면 한번에 다 비워.”
술을 받은 직원이 원샷은 안된다고 이리저리 피하자 주위에서 입을 모아 또 여러마디 했단다.
“너 정말 남자 맞아 안 맞아?”
그런데 이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그 동료가 얼굴을 벌겋게 달구면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으니 회식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랐던 것이다.
여러해 동안 같은 울안에서 동고동락을 해온 동료로서 술 한잔에 친분이 깨질 사이는 절대 아니였다. 부서 지간에 협조도 잘하고 서로 돕고 힘과 어깨를 빌려주는 동료애도 다분한 소박한 친구들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가.
그건 다름이 아니라 상을 박차고 일어난 남자동료는 부리부리한 눈매에 커쿨진 체구를 가졌지만 안해한테서 꽤 오랜 시간 소량의 용돈만을 얻어쓸 수 있는 강요받은 착한 남자였던 것이다.
이러한 주머니 사정을 잘 아는 같은 부서 친구들은 평소에도 롱담을 잘 건넸다고 한다.
“넌 체구만 컸지 마누라 한테 꽉 쥐여 사는구나.”
“남자가 웬 마누라를 그리 무서워해?”
평소에 롱담은 그럭저럭 잘 받아 넘겼다고 한다. 사실은 거의 대부분의 남자동료들의 처지는 비슷해서 백보가 오십보를 웃는 신세였지만 술상을 뛰쳐나간 이는 동료들의 용돈 평균선에서도 훨씬 적은 용돈만을 지배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스스로 남자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껴안고 있는 사람이였다. 이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고 있던 중이였다.
자신에 대한 가혹한 절제로 가족에 대한 충성을 실현했다.하지만 억눌린 소비의 본능과 동료들 앞에서 구겨진 체면은 커쿨진 체구만큼이나 야금야금 커가고 있었다. 겉으로는 괜찮은척 하면서도 가끔 공장 귀퉁이에 숨어서 매운 담배연기로 갑갑하고 창피한 마음을 훨훨 뿜어내고 싶었을 것이다.
“너 남자 맞냐?”
남자들 사이에서는 별 것 아닌 지극히 평범한 한마디였지만 그에게는 간들거리는 빨래줄에 한 칼을 그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튼튼한 신체에 두툼한 지갑을 가지고 거기에 배짱까지 두둑한 남자를 속으로 오래동안 부러워했을 그에게 이 한마디는 아픈 손가락을 다쳐 비명을 지르게 하였다. 총알을 가득 머금은 권총의 방아쇠를 무심결에 당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방아쇠는 총에서 총알을 발사하게 하는 장치다. 총탄을 밀어넣고 굽은 쇠모양의 금속장치를 집게손가락으로 잡아 당기면 탕하는 소리와 함께 발사하게 된다. 딱딱한 금속 칸막이 속에서 비좁게 움크려 있던 총알이 불꽃을 일구며 눈 깜짝할 사이에 튕겨나간다.혹은 허공을 향해 혹은 누군가를 향해 걷잡을 수 없이 날아간다.
가벼운 롱담 한마디로 자칫 하면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일을 그르치게 할 수 있는 방아쇠는 누구에게나 다 있을 수 있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채워지지 않은 욕구가 있기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콤플렉스 선이 있다. 콤플렉스 중에서의 한계선이라 해도 되겠다.
례를 들면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는데 부모를 들먹이면서 장난을 하는 경우, 몸매에 신경을 많이 쓰는 친구한테 좀 뚱뚱하게 생겼다고 롱담을 건넬 때, 돈 벌이가 펑크 난 친구한테 너 요즘 쪽박찼다며 하면서 문안을 할 때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발끈한다. 정곡을 찌르면 전기에 덴 듯 꿈틀한다.
본인이 제일 집중해서 아파하고 있는 곳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당사자는 물을 오래 먹은 솜처럼 이미 많이 처져 있었기 때문에 아주 작은 물 한방울을 떨구어도 홍수를 만난 것 처럼 거칠게 파도를 치며 여기저기 덮친다.
뒤돌아보면 나도 별 거 아닌 일에 발끈 한 적이 많았다.
남편이 너 술 좀 하는 걸 보니 장인을 많이 닮았구나 하면 발끈했다. 어려서 술을 많이 마시는 아버지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영문을 모르는 남편은 시퍼래진 나의 얼굴을 보면서 리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였다.
어른이지만 계산에 서투른 나를 보고 참 아둔하다고 하면 발끈했다. 나는 중학교 때 수학을 너무 못해 스스로 둔하다는 생각을 깊이 새기고 있었다. 아둔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중학교 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아주 불쾌했다.학교 다닐 때는 순둥이였던지라 참고 있었지만 어른이 되여 화를 낼 능력이 구비되자 바로 맞받아쳤던 것이다.
헌데 느슨하게 흐르는 세월의 가르침 덕분인지 지금은 많이 평온해졌다. 누군가 나의 아팠던 곳을 건드려도 웃으며 받아넘긴다.
“네. 맞아요. 내가 원래 그래요.”
순순히 인정하고 나면 홀가분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발끈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불만이 많아서 생기는 강한 부정에서 온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원초적인 모습을 사랑하고 받아들인다면 누가 무엇이라 말해도 방아쇠를 당길 일이 없다.
불만이 있지만 또한 이 상황을 반전시킬 능력이 되지 않으면 발끈한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서둘러 개선을 하고 능력을 키우는데 힘을 써야 한다.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 사물을 보는 관점을 바꾸고 천지만물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면 불만스러운 일이 적다.
평소에 다른 사람의 아픈 곳을 건드리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면 남의 헛 총질에 상할 일도 적어진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아픈 새끼 손가락을 잘 보듬어 강하게 보완하다 보면 아픔이 진주가 되여 빛날 것이고 배포유하게 나 또한 누군가를 향해 방아쇠를 어망결에 당기는 일도 적어질 것이다.
더 나아가서 방아쇠를 꼭 당겨야 한다면 옳은 시간에 좋은 일에 명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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