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희로애락을 두줄 현에 담아
□리은희
단 두가닥의 현으로 기쁨, 슬픔 등 내면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해금은 우리 민족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무엇보다 적합한 악기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 전통악기중 사부(丝部)에 속하는 해금은 두줄 사이로 발현되는 미묘한 소리와 가슴을 파헤치는 절절한 음색으로 현재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2020년, 조선족해금이 국가급 무형문화유산 목록에 오르면서 국가차원의 보호와 중시를 받게 된 데는 길림성 무형문화유산 해금예술 대표전승인 김철의 역할이 매우 컸다.
해금과의 운명적인 만남
예술가 가문에서 태여난 김철은 어릴 때부터 음악에 남다른 자질을 보였다. 11살에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여 김철은 초중 2학년 때부터는 왕청림업국문공단 공연에 가끔씩 바이올린 연주자로 나서게 되였다. 그런 그가 해금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79년, 연변구연단에 출근하여 조선족 해금예술 제4대 전승인 리일남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러다 1981년 11월, 연변구연단과 연길시문공단이 합병하여 연길시조선족예술단이 설립되고 연변 최초로 조선족민족악단이 세워지면서 김철과 해금은 끊을 수 없는 인연이 되였다.
서양악기가 대세를 이루던 당시, 두줄의 떨림이 빚어내는 선률에 매료되다 못해 김철은 이 멋진 악기의 매력을 좀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데 정열을 쏟았다. 해금을 널리 알리려면 우선 자신의 소질과 기교부터 높여야 한다는 판단에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해금련습에 빠져들어갔다. 해금은 현을 미세하게 누르면서 음을 잡아야 하는 악기라 조금만 잘못 눌러도 음이 변하였다. 매일 현을 누르다보니 손가락에서는 살갗도 벗겨지는가 하면 피까지 새여나왔다. 그래도 그에게 휴식이란 하나의 사치에 불과하였다. 모두가 환락의 도가니에 빠져있는 설날에도 해금은 그의 손을 떠나지 않았다. 공연이 없는 날에는 하루 12시간씩 련습을 강행했다는 김철, 그의 노력의 대가는 리유 없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1992년 제14회 아시아예술절에서, 1999년 조선 평양에서 개최된 ‘4월의 봄’ 국제예술절에서 〈다시 핀 도라지꽃〉을 연주하여 금상의 영예를 안게 되였다.
1996년, 중국 조선족 제1회 민족기악음악회가 연길에서 펼쳐졌다. 우리 민족악기를 살리기 위해 안국민, 최삼명, 최창규, 허원식, 리일남 등 로일대예술가들을 모시고 펼쳐진 이 음악회는 당시 상당한 호평을 받았고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애절한 소리를 담은 해금의 존재도 그 때 사람들에게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연변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원 연길시조선족예술단)에서는 우리 민족 전통악기를 계승하고 보급하는 일에 앞장 서왔습니다. 해마다 민족기악음악회를 열고 민족악기로 연주되는 아름다운 멜로디를 대중들에게 선물하지요. 이는 내가 민족악기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깊이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되였습니다.”
연변조선족무형문화유산보호중심에서는 독특한 음색의 해금을 무용곡이나 기타 창작곡에 자주 등장시켰고 음악회를 펼칠 때마다 해금독주를 필수 종목으로 올리였다. 이처럼 해금은 연변의 각종 무대에 자주 등장하면서 점차 사람들에게 더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2018년 9월, ‘김철(해금, 작품)음악회’가 연길국제회의전시예술쎈터 연예극장에서 열렸다. 전파와 전승은 반드시 동시에 진행되여야 한다는 취지로 기획되고 연변에서 열린 첫 민족기악독주음악회였다. 김철의 제자들인 연길시 공원소학교 해금양성반 학생들의 민족관현악 〈아리랑〉 연주로 시작된 이날 음악회에서 김철의 해금독주와 해금, 소금, 중금, 바이올린 등 관현악기가 한데 어우러진 민족관현악 등은 음악회를 찾은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연변 특색을 띤 개량해금
한국의 해금과 조선의 해금을 연주하던 리일남선생은 명주선을 사용한 전통해금은 민족성이 돋보이고 깊은 우리 멋은 낼 수 있지만 반응이 느려 현대적이고 기교적인 곡을 연주할 수 없음을 보아내고 20세기 60년대에 전통해금에 기초하여 개량된 철선을 사용한 2선 해금을 제작해냈다. 리일남선생한테서 개량해금을 배우던 김철은 련습과정에서 개량해금에 여러가지 아쉬움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개량해금의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보완할 대책이 없을가?’ 매일 방도를 모색하던 김철은 해금에 연변의 색갈을 입혀 개량해금을 더 다듬고 풍성하게 하는 작업에 앞장 서리라는 의욕을 다지게 되였다.
1996년 8월, 그는 개인 자금으로 북경에서 각종 재료를 구입하고 동료인 리동식, 진경수, 최석권과 함께 집에서 해금 10대를 만들었다. 하지만 노력이 무색하게 당시 이들은 원하는 음색을 찾지 못하였고 해금 제작에 실패하고 말았다. 1999년, 연길에 민족악기연구소 생산기지가 설립되였다. 민족악기연구소의 설립은 거듭되는 실패로 한동안 악기제작에 동력을 잃었던 김철에게 재차 희망의 불씨를 심어주었다. 그는 장인들과의 충분한 소통과 교류를 통해 반드시 최고의 해금을 만들어보리라 다짐하고 연길시 민족악기연구소 작업현장으로 발품을 팔았다. 개량해금의 특유의 음색을 찾기 위한 도전은 만만치 않았다. 그는 실패하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직접 조률을 진행하면서 끊임없이 연구에 파묻혔다. 2003년, 꾸준한 노력 끝에 드디여 조선해금과 한국해금과 구별되는 연변 특유의 음을 소유한 개량해금을 성공적으로 제작해냈다. 스승님이 시도하고 만들었던 개량해금을 김철이 더 다듬고 꾸준히 연구하여 최종 완성시켰던 것이다.
“해금을 만드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힘들었습니다. 중국 조선족 개량해금의 현은 명주선이 아닌 철선으로 대체되였고 몸통부분은 대나무, 고로쇠나무, 백송으로 만들었습니다. 또한 선이 두줄이다보니 제작면에서도 상당한 내공을 필요로 합니다.”
해금을 직접 만들고 연주까지 하다보니 김철의 두 손은 성할 날이 없었다. 그의 희생과 노력으로 제작된 중국 조선족 개량해금은 음역도 넓고 음색도 풍부하여 우리 민족의 깊은 정서를 담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속도가 빠른 곡과 현대적인 곡도 연주할 수 있었다.
2006년, 김철은 한국 일파가야금합주단 10주년 공연에 초청 받아 연변의 해금곡 〈설화아리랑〉(황창주 작곡)을 연주하여 빠른 속도의 곡도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중국 조선족 개량해금을 세상에 알렸으며 2018년 11월,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 민족음악의 밤’에 초청 받아 해금독주 〈다시 핀 도라지꽃〉을 연주하여 큰 사랑을 받았다.
롱음의 변신
롱음은 줄을 흔들어서 떠는 소리이다. 해금은 떨림의 폭에 따라 슬픔, 기쁨 등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다년간 김철은 조선족전통음악예술 및 무형문화유산의 발전과 전승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는 악기가 발전하려면 새로운 연주법도 개발되여야 한다는 리념을 갖고 있었다. 하여 음악작품의 다원화 수요와 해금의 음악표현력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연주법을 연구하고 탐구하였다. 2015년, 그는 반복적인 실천을 거쳐 해금의 전통연주기법을 기초로 바이올린 연주법을 결합한 연변롱음을 만들어내게 되였다. 연변롱음은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듯 뱅뱅 돌리면서 현을 누르는 기법으로서 현을 눌러서 떨림음을 만드는 기존의 롱음기법과 큰 차이를 보이였다. 나사가 탈리면서 들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연주하는 연변롱음은 음악에 감칠맛을 더해주고 선률에 담긴 깊은 정서를 더 끌어낼 수 있었다.
2020 연변라지오텔레비죤방송국음력설문예야회 ‘봄이 오는 소리’에 해금,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손풍금 5중주 〈왕벌의 비행〉이 공연되여 큰 화제로 떠올랐다. 로씨야의 작곡가 림스끼-꼬르싸꼬브가 창작한 이 곡은 벌떼의 습격을 받는 백조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었다. 굉장히 빠른 곡으로도 유명하여 그 때까지만 해도 조선민족악기로 연주하기는 처음이였다.
“민족악기로는 불가능하다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뜨리고 싶었습니다. 우리 민족악기로 어떠한 곡이든 연주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어 더욱 이를 악물고 련습했던 것 같습니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하루라도 빠질세라 해금련습을 이어가고 있는 김철, 무뎌져갈가봐 자신을 다잡으려고 지금도 련습을 통해 기량을 끊임없이 갈고 닦는다. 그는 전승인으로서 후대양성사업도 소홀히 할 수 없다며 후반생의 정열을 후대양성에 쏟고 싶다고 고백한다. 두줄 현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은 그의 연주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예술세계》 2021년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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