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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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 병자호란과 중국조선족이민사
2013년 06월 26일 15시 44분  조회:9110  추천:2  작성자: 정인갑
정묘, 병자호란과 중국조선족이민사

정인갑



  최근 몇 년간 필자에게 중국조선족의 이민사에 관한 자문이 자주 들어오곤 한다. 그러면 필자는 줄곧 아래와 같이 알려주곤 하였다: a, 1860년대~1910년의 생활이민. b, 1911~1918년 파산 이민. c, 1919~1931년 독립이민. d, 1932~1936년 자유이민. e, 1937~1945년 집단이민 등이다.

  얼마 전 필자의 자문을 받고 어느 포럼에 참가하여 이렇게 발언하였다가 중국 측 학자의 반박을 당한 사람이 있다. 중국 측 학자의 발언에 따르면 중국조선족 이민사에 1620~30년대의 ‘이민’을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1620~30년대의 ‘이민’이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의 일을 일컫는 것이다. 이 문제는 중국조선족이민사에 관하여 팽팽하게 대립된 두 가지 관점이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란 무엇인가? 여진족(女眞族)이 지금의 요녕성(遼寧省) 무순시(撫順市) 신빈현(新賓縣)에 후금 정권을 설립한 이래 국력이 급속히 팽창하였으며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여러 차례 승리하였다. 명의 속국이며 임진왜란 때 명의 지원으로 나라를 되찾은 조선은 금-명 전쟁 때 명의 편에 섰으며 출병하여 금과 전쟁도 하였다. 조선의 후환을 없애고 명과의 전쟁을 더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후금은 조선에 대하여 두 차례의 대형 침략전쟁을 발동하였는데 한국 역사상 이를 정묘호란(1627)과 병자호란(1636)이라고 한다.

  이 두 차례의 전쟁에서 금은 조선인을 부지기수로 죽이고, 재물도 부지기수로 약탈하였으며 조선인 60만 명을 노략해 갔다. 노략된 조선인은 모두 노예로 전락되었다. 심양(瀋陽) 노예시장에서 매매된 조선인 노예만 하여도 몇 만 명이나 되었다. 노예시장에서 마주친 자식과 부모, 형제가 서로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소리가 하늘과 땅을 진감할 정도로 비참하였다.

  노략당한 사람 중에는 왕실, 대신의 가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거기에는 세자 이형(李瀅) 가족의 남자 8명, 부인 11명, 가정(家丁) 9명, 태감 7명, 일꾼 22명이 있다. 차자 이구(李湨) 가족이 부인 5명, 가정 3명, 일꾼 16명, 병정 44명도 있었다. 그 외에 상서(尙書) 안일훈(安一訓), 시랑(侍郞) 박로(朴魯), 박황(朴黃), 무관 이집사(李集思), 문관 이명순(李明順), 미응하(米應夏),이택고(李澤高), 견류성(甄類成), 이규(李奎) 등 182명에 말 303필이 붙잡혀 갔다.

  조선왕조 때 200여 년 간 권귀 행세를 한 안동김씨의 집성촌 경북 안동군 소산(素山) 마을에 가면 김상헌(金尙憲)의 시조를 새긴 큰 바위가 세워져 있다: ‘가노라 三角山아/다시보자 漢江水야/故園山川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時節이 하 殊常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김상헌은 예조판서에 있으며 반청(反淸)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되었다.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한 청의 출병동조 요구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심양에 붙잡혀 가 6년간 옥살이를 하고 돌아왔다. 그가 잡혀가는 길에 서울을 지나며 쓴 것이 위의 시조이다.

  후에 청이 ‘은혜’를 베풀어 노략해간 조선인을 되찾아가게 하였으나 너무 많은 돈이나 양식을 받기 때문에 돌아온 자가 백에 한둘 정도뿐이었다. 천신만고를 거쳐 스스로 도망쳐 온 자가 있었으나 청의 압력에 못 이겨 다시 붙잡아 보내진 자도 많았다. 돈을 주고 속회(贖回)되어온 부자집 부녀들은 시집에서 더러운 몸이라며 받아주지 않아 다시 비극의 심연에 빠지기가 일쑤였다.

  1970년 12월 필자가 군복무를 할 때 행군훈련 차 요녕성 개원현(開原縣) 위원보향(威遠堡鄕)의 어느 박가촌이라는 마을에 들린 적이 있었다. 조선족이 아니라고 우기다가 80대 노인을 찾아가 반복 설득하니 “조선족이라고 할 수도 있다. 우리 가문의 두 형제가 몇 백 년 전에 이 마을에 정착하였는데 지금은 18세대쯤 된다. 저의 조부가 한국말을 좀 할 줄 알았는데 부친 세대부터는 한국말을 전혀 모른다.”고 말하였다. 지금 북경 동북쪽으로부터 동북 전역에 이르는 지역에 이런 박가촌이 가끔 보이는데 바로 정묘, 병자호란 때 붙잡혀간 조선인의 흔적일 것이다. 다른 성씨도 많겠지만 민족 특색의 성씨가 아니므로 고증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 부류의 사람을 중국조선족 이민사에 넣어야 하는가이다. 정묘, 병자호란 때 중국으로 간 우리민족은 이민이 아니고 포로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잔혹한 압박을 받았으며 가장 비참한 역사의 한 페이지다. 또한 이들은 완전히 동화되었으므로 지금 우리가 말하는 조선족 구성원에 속하지 않는다. 이를 우리민족의 이민사에 넣는다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중국인이 이를 이민사에 넣자고 하지만 이는 가해자의 주장에 불과하다. 피해자의 견해를 더 존중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60만 명 중 많이 잡아 절반이 돌아왔다고 쳐도 30만의 후손이면 지금 적어도 500만은 될 것이다. 이 또한 우리민족의 적은 숫자가 아니다. 이들을 이민사에 넣으면 적합하지 않지만 어떤 의미에서 어떤 차원으로 취급하여야 마땅한가는 학술계가 연구해 볼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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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9 ]

9   작성자 : 조선족사랑
날자:2013-06-29 14:33:33
너무나도 지당한 말씀입니다.
이민사와 강제로 노예로 팔려간건 엄연히 다릅니다.
8   작성자 : 한국적딴조선족
날자:2013-06-27 22:53:57

4층 아래분 이봅소!

광의적인 조선족 <조선민족(한민족)에 포함되는것을 모르오
그리고 단군부터 고구려 신라가 고려
우에서 내려와
조선,한국이 되었는가 모르는가?
신화서점만 가봐도 알겠소
이건 머 인터넷이라구 걸고들구 난시니~~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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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 한국사(조선사)는 고구려,백제,신라 등을 모두 한국사(조선사)에 귀속시킨다. 그렇다고 당신말대로 고구려나 신라시기에 조선이나 한국이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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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작성자 : 개념의 혼돈
날자:2013-06-27 16:05:39
언제든지 개념을 혼돈하자말아라.중국조선족은 바로 중국조선족이다.그의 조상의 나라는 바로 조선반도 혹은 한반도이다.정인갑 씨의 이민사는 학계에서 고증할 일이지만 다만 분명한 것은 광복전의 중국의 우리민족은 바로 한인 혹은 조선이이라는 것은 분명하다.왜 이런 가장 원초적인 문제에도 얼떠름한 이른바 조선족들이 헛 소리를 하는가?
모르면 조용히 책을 보고 터득하던지 혹은 학자들에게 문의하든지 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이 면에서 2번의 댓글은 의미가 있다/
6   작성자 : 중국조선족
날자:2013-06-27 11:52:57
저 2번 한국국적 땄다는 머저리는 제 무엇을 알아서 정선생님의 글에까지 비치면서 시벌이느가? 에잇, 한국국적을 땄다는말이 메스겁다.
5   작성자 : 연변위기
날자:2013-06-27 09:55:52
저도 정선생님의 주장에 동의합니다.동화된 사람은 이미 한족으로 전락되였으니 우리 민족이라 칭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현재 조선족은 사실 나무잎입니다.가을바람 락엽을 쓸어가면 미래에 조선족이란 말은 의미가 없어질것입니다.연변의 인구도 점점 줄어들고 정부는 사실 대책마련이 없는데다 민족단결이란 이름으로 조선족 힘은 분산되고만 있어요.우선 우리민족단결을 이룬후에 타민족과 단결하는것이 옳지 않겠어요?오늘날 조선족 이 지경에 이른 원인은 연변주 민족간부를 지낸 어르신님들한테 밀어버릴수 없는 책임이 있습니다.조글로 포럼 인젠 다른 말 더 하시지 말고 어떻게 하면 쓰러져가는 연변조선족 자치주를 구할것인가를 토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우리 조선족은 현재 정선생님의 밝힌 정묘,별자호란과 같은 사변으로 생긴 이민들의 신세로 전락되고 있어요!!!조선족 유지인사들 정신차리세요!!!그리고 연변주 간부들 당신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 하시는지요?부끄럽지 않는지?
4   작성자 : 광호
날자:2013-06-26 23:54:18
2층님,
광의적인 조선족은 조선민족을 칭할수도 있다.

한국사(조선사)는 고구려,백제,신라 등을 모두 한국사(조선사)에 귀속시킨다. 그렇다고 당신말대로 고구려나 신라시기에 조선이나 한국이 있었는가?
3   작성자 : 내 생각
날자:2013-06-26 23:48:41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자기 력사를 버려서야 되겠는가? 버린다고 자기 력사가 아니란 말인가?

똑 마치 문혁때 투쟁받는 아버지와 계선을 갈랐다고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 아니란 말인가?

이것은 인간의 좋고 나쁨 등 자유의지로 결정되는 일이 아니다.있는 사실대로가 력사이다.
2   작성자 : 한국적딴 조선족
날자:2013-06-26 23:08:40
양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따위의 너절한 글 그만좀 발표합세!!!
중국조선족이민사는 중공건국으로 보아내야하는거짐.
그전엔 다조선사람인데 중공건국전에 무슨 조선족이있다고
맨날 중국조선족이민사,,, 중국조선족 이민사하는건지 얼빤한 소릴 웨치는지 휴~
중국건국전에는 그냥 조선사람의 이민사인것이다
중국조선족이민사는 조선족이라는 명칭이 생겨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중공건국전의 사람들은 조선족이 아니란말이.
중공건국도 안되였는데 조선족이 어디있단말인가?!?
건국전의 동북의 [조선사람](아직은 조선족이 아니다)들은 분명 반도와 운명을 함께하면서 살아온 조선민족의 한갈래다. 그러므로 그 부분을 원천으로 조선사람으로 조선이민사로 기록하여야 하는것은 당연한것이다.

1   작성자 : 근데
날자:2013-06-26 20:47:43
이민사가 아니라 이주라고 하던데..
강제든 자유든 이주는 이주인게지
20세기 80년대 전국 인구조사때 하북성 어느 박씨촌의 사람들이 본인들의 민족성분을 조선족으로 변경해줄것을 간절히 요구해서 조선족으로 등록시켰다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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