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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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죽도 없는데 터럭이 어디 붙을소냐
2009년 03월 06일 13시 14분  조회:5676  추천:55  작성자: 정인갑

가죽도 없는데 터럭이 어디 붙을소냐
            
--조선족문학인들에게 조언한다

 

시장경제의 심입에 따라 우리민족의 문학사업은 점점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있다. 그의 해결책으로 국가의 예산, 한국인의 찬조, 독지가의 도움 등에 신경을 쓰기 일쑤다. 그러나 필자는 별개의 문제-조선족문학인의 사명감문제를 운운해 보련다.

1995년 여름, 필자가 심양회의에 참석할 때 당시 <연변문학> 사장 L이 필자를 찾았다. <연변문학>은 해마다 문학상금을 발급하며 소설, 시가, 수필 상 각각 천원씩 도합 3천원이 수요되는데 필자더러 그 후원을 맡으라는 부탁을 하였다.

필자 왈: “연변작가협회 회원중 돈 많고 능력있으며 안면 넓은 사람이 많은데 그들에게 책임지우면 더 좋을듯 하다. 나는 돈도 없고 작가도, 회원도 아니니 이를 책임지기 어려우며 좀 싱겁게 보이지 않나.”

L 답: “연변작가협회 회원들에게 부탁해 보았는데 다 거절당하였다. 당신이 책임지는데 왜 싱겁게 보이겠나! 당신더러 돈 내라는것이 아니라 이 일을 책임져 달라는 것이다.”

필자 왈: “보통 이런 일을 돈 많은 한국사람에게 맡기던데.”

L답: “한국사람에게 맡겨보았다. <연변문학>상이 존재하는 한 줄곧 책임지겠노라 계약까지 체결하고 한번쯤(인민폐 3천원) 낸후, 한국 언론에 미화 3천 달러를 냈다 자랑하고는 사라져버린다. 한국사람을 찾고싶지 않다.”

필자는 L과 친한 사이이며 <연변문학>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L의 책임감에 감동되여 맡겠노라 하였다. 약 10분 지나자 L은 원고지 몇장을 들고와 당장 계약서를 체결하자는것이였다. 아마 필자가 번복할가봐 소뿔을 단번에 빼려는 모양이였다. 필자는 계약을 체결하고 고향(무순) 농촌에서 어렵게 사는 형님에게 드리려고 가져간 3천원을 당장 내놓았다. 그때 필자의 월봉이 600원 가량이니 5개월 월봉에 해당되는 돈이였다. 꽤나 아까운 돈이며 이 때문에게 부인에게서 호되게 욕까지 먹었지만 민족문학사업에 보태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만은 뿌듯하였다. 또한 돈 비락질하기 싫어 필자의 돈으로 3년간 부담하였다.

1998년 필자의 아들이 한국 고려대학에 입학하였다. 년당 8만원이 들며 집을 팔았지만 2년 비용도 모자라니 잠이 오지 않았다. 하여 한국해외한민족연구소에 의뢰하였다. 연구소 L소장은 당장 연변작가협회 모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필자의 말을 확인한후 욕설을 퍼부었다:

“한심한 놈들, 연변작가협회에 능자가 그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북경 젊은 봉급쟁이의 돈을 받아써? 금년부터 내가 내마!” 그로부터 지금까지 해외한민족연구소 에서 10년간 부담하였으며 “윤동주문학상”으로 개명하고 종목도 늘이고 상금도 올리는 등 잘 하고있다. 역시 필자의 후원책임안에서 진행된다고 볼수 있겠다.

2004년 어느날 필자는 북경에서 영문 모르게 “연사모”라는 회의에 참석한적이 있다. “<연변문학>을 사랑하는 모임”의 준말이라고 하며 북경시 조선족 작가들을 주축으로 약 30명이 모였고 잡지사측에서는 전 K사장 등 세 사람이 참석하였다. 사전편찬이 업인 필자는 눈을 지긋이 감고 “연사모”라는 단어를 음미하며, 우리말 어휘의 구성원리와는 좀 어긋나는듯 하지만 이런 묘한 방법으로 말을 만들수도 있겠구나 하며 도취되여있다가 K 사장의 난데없는 발언에 정신을 바짝 차렸다.

“지금 주재정국에서 <연변문학>의 경비를 취소하려 하므로 곧 폐간의 위험에 봉착하였다. 광범위한 조선족군중의 도움을 바라며 특히 북경조선족의 도움을 받으려 이렇게 찾아왔다…. 1년에 30만원 가량이면 운영이 가능하다….”

장내의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연변문학>을 살려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아마 필자가 다른 사람보다 목소리도 크고 정서도 격양되였던지 필자를 <연변문학>후원회장으로 선출하였으며 북경에서 1년에 15만원씩 후원하기로 약속하였다. 필자는 쾌히 받아들였다. 필자가 주먹국으로 대충 짐작해본 바로는, 북경시에 조선족이 약 7만명 되며 그중 지성인만 해도 현직자, 은퇴자를 합치면 민족대학사생 약 500명, 민족출판사, 번역국, 두 방송국, 민족가무단 등에 약 200명 되니 고까지것 500부정도는 쉽게 나간다. 그러면 5만원이다. 게다가 찬조금을 만원짜리 1인, 5천원짜리 10인, 2천원짜리 20인만 해도 15만원은 되니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가 운영하는 학교학부모와 필자가 이끄는 중장년협회에서 <연변문학>을 주문하라고 호소하니 “한족학교에 다녔기에 조선글을 모른다” “문학지를 전혀 보지 않는다” “<연변문학>은 재미 없으므로 싫다” 등으로 거절당하였다. 이에 필자는 “조선족 사회상을 몰라도 조선족이냐, <연변문학>을 보면 알수 있다” “한 달에 짜장면 한그릇 먹은셈 치고 주문하라” “조선글을 모르면 조선글을 아는 친지에게 선물하면 될거 아니냐” “조선족 문학잔치에 부조 좀 하라는데 왜 말썽이 많느냐”라는 식으로 설득시켜 200부를 주문받았다.

문제는 조선족작가와 지성인들이다. 상기 각 조선족단위는 단위명의로 둬 부씩만 주문하고 개개인은 거의 주문하지 않았다. 필자는 연사모에서 조선족단위 개개인의 주문일을 맡은 S에게 문책하였다. S답: “나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 필자 문: “그런데 왜 연사모에서 하겠다 했나?” S 답: “그때는 낯이 간지러워 동의했다.” 필자 문: “<연변문학>을 돕지 않겠다는 말인가?” S 답: “<연변문학>에 글을 쓰는것으로 돕겠다.”

아하, 하느님 맙시사! 이것도 말이라고 하나! <연변문학>의 폐간을 막기 위해 하는 일인데 <연변문학>에 글을 쓰다니! 가죽도 없는데 터럭이 어디 붙을소냐 (皮之不存, 毛將焉附)! 아마 연사모에 참석한 30명이 한사함도 주문하지 않은듯 하다. 필자는 어이없어 한심만 났다.

찬조금을 받어려고 사람들을 불러봤다. 그중 사업가 K녀사가 이미 찬조금을 낸 사람이 있느냐, 그 명단을 좀 보자라는 요구를 하였다. 그건 왜 묻느냐고 하니, 자기의 경험에 따르면(그는 경제력이 있기에 이런 일을 많이 겪은듯) 이런 일에 마땅히 열성적으로 나서야 할 조선족문학인, 지성인들은 발뺌하더라, 만약 그들이 나서지 않으면 나는 절대 찬조하지 않을것이다 라고 하지 않겠는가!

필자는 할수 없이 사실대로 알렸다-이 일에 찬조한 조선족문학인이나 지성인이 아직 없다고. K녀사 왈: “그것 봐라. 내 말이 맞지 않나! 한푼도 내기 싫지만 정교수의 안면을 봐서 한번만은 내겠다. 2천원만 내겠다. 그러나 경고하노니 이 일로 다시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거두지 말라. 목마른놈(문학인)이 우물팔 궁리도 안하는데 우리가 왜 싱겁게 물을 퍼다 그들에게 먹이겠나!”

필자는 200부 주문비 2만원에 찬조금 만원(그중 필자의 돈이 5천원), 도합 3만원을 <연변문학>사에 바치고 사표를 냈다. 이 일에 조선족문학인과 지성인들이 소극적이므로 힘들었으며 실망감밖에 안 남았다라며. 필자는 조선족문화이벤트에서 조선족지성인들이 일반 군중보다 오히려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것을 많이 경험하였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문학관계만 운운하려하므로 할애한다.

혹자 왈: “우리 문학가들이 창작활동을 하는데 당연 국가에서 돈을 내거나 조선족 군중들이 받들어야 하지 않나. 왜 우리 문학가들이 돈을 내야 하나?”

맞는 말이다. 나라나 민족의 문학사업의 발전은 당연 국가 예산으로 해야 할것이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심입에 따라 경제수익성이 없거나 심지어 엄청난 적자를 빚어내는 일이라고 할 때 국가에서 책임지지 않을수도 있다. 지금 중국 전역의 모든 출판물이 젖줄이 끊기고 시장화로 변하고 있다. 그래도 유지하려면 물론 민간의 힘으로 해야 하며 우선 문학인들이 솔선적으로 나서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료녕성내에 성과가 있어 작가로 인정받을만한 사람이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60년간에 얼마나 되는가라는 질문을 하였더니 약 80명쯤 된다고 한다. 료녕성의 인구가 4천만이니까 이 비례대로면 우리 조선족은 4명밖에 안된다는 말이다. 우리가 “선진민족”, “문학에 앞장선 민족”이므로 료녕성의 10배로 불구어도 40명꼴이다. 작가로 자칭하는 조선족의 대부분은 시 둬수, 수필 둬편밖에 못쓴, 아직 아마추어 단계의 문학애호자, 문학도 내지 문학인이지 작가가 아니다. <연변문학>에 문장을 발표하는 대부분이 필자를 포함해서 이런 부류의 “작가”가 아닌가. 그런 처지에 “우리는 작가이다, 당신네 돈을 내여 우리를 도와야 한다”라고 할수 있단 말인가.

필자는 흑룡강성 수화시 북성촌 조선족 청년농민들이 자기 지갑을 털어 문학창작 서클활동을 한 상황을 소개한 문장을 감명깊게 읽은 적이 있다. 듣는바로는 옛날 흑룡강 농촌에 이런 서클이 여러개 있었다고 한다. 필자는 또 한국에서 자기 지갑을 털어 꾸리는 한시(漢詩) 동호회를 많이 보았다. 우리보다 더 가난하던 1950년대부터 꾸려왔으며 한시시집도 많이 내였다. 중국조선족 문학인들에게 바로 이런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혹자 재왈: “우리가 무슨 돈이 있어서 내겠는가?”

연변작가협회는 회원이 650명가량 된다고 한다. 최근 몇달간 <연변문학>의 발행부수가 200부라는 설이 있다. 회원이 아닌 사람도 주문한자가 많다고 감안하면 대부분의 회원이 <연변문학>을 주문하지도 않았다는 말이다. 정가를 보니 16원이니 냉면 둬그릇 값에 불과하며 술추렴 한번 또는 군일집에 부조 한번 하는 돈이면 1년 주문값이 나온다. 그래 이만한 돈도 없단 말인가? 너무나 한심하다.

가죽과 터럭은 상부상조의 변증관계이다. 가죽이 있어야 터럭이 생존할수 있고 터럭이 나야 가죽이 단단해질것이다. 문학인, 문학지, 문학, 언어, 민족 및 국가 등은 같지 않은 급에서 서로 가죽과 터럭의 관계이다. 문학인이 터럭이면 문학지가 가죽이고, 문학지가 터럭이면 문학이 가죽이고, 문학이 터럭이면 언어가 가죽이고, 언어가 터럭이면 민족이 가죽이고, 민족이 터럭이면 국가가 가죽이고….

사실 언어와 민족의 관계를 바꾸어 민족이 터럭이고 언어가 가죽이라고 하여야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언어는 민족생존의 최고 표징이겠다. 언어가 없어지면 그 민족은 망한다. 우리민족 언어보존의 가장 기초적인 활동은 소학교부터 시작되는 조선어교육이고 최고의 경계(境界)는 조선어로 구사한 문학이다. 이렇게 볼 때 조선어 교사와 조선어 문학인들은 우리민족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전초병들이다. 그들은 우리민족을 위해 많은 일 많은 수고를 하였다. 마땅히 전민족이 그들을 존경하고 관심하며 도와야 한다. 민족문학을 살리는사업은 범민족적인 일이다.

그러나 실제 진행과정은 정반대이다. 이는 인간 활동의 기본이 생존투쟁(먹고 사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족문학을 지키는 일은 민족문학 내지 민족문화의 일을 밥통으로 하는 사람(생존의 제1수요자), 또 이를 대단히 즐기는 사람(생존의 제2수요자)들의 임무로 된다. 그들이야말로 민족문학의 직접적인 주인들이다. 200만 우리동포의 대부분에게 민족문학은 먹고사는 일과 별 관계가 없으므로 생존의 제1, 제2 수요도 아니며 제3, 제4수요도 아니다. 그러므로 그들더러 우리민족의 문학사업에 일조하라고 하면 당연 소극[1]적일수밖에 없다.

우리민족의 문학인들은 마땅히 자기를 터럭으로 보고 가죽-문학지를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관념과 사명감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 금전을 포함해 자기를 희생하며 솔선적으로 앞장서야 한다: 작가협회의 주석, 주석단, 리사 및 회원들의 회비도 대폭 올리고 회원들은 의무적으로 <연변문학>을 2부정도 주문하여야 하고(한부는 친지에게 선물), 또 강력한 여론조성을 하여 모든 조선어 교사가 의무적으로 <연변문학>을 주문하게끔 하고…등.

이렇게 하면 우리민족의 문학지는 생존의 공간이 넓어지며 민족의 문학은 발전할수 있다. 또한 지성이 감천이라고 문학인들의 이런 노력이 보이면 우리민족의 독지가 및 광범위한 군중들이 감동되여 도와나서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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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문장은 2년전에 쓴것이지만 자기자랑을 한것 같기도 하고 광범위한 조선족 문학인과 지성인들의 반발을 초래할것 같기도 하여 지금까지 주저하며 내놓지 못하였다. 횡설수설한다는 지탄을 받을 각오를 하면서도 우리민족문학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것인가를 재삼 심사숙고하다가 다시 수정하여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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