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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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질, 질량
2011년 10월 21일 10시 29분  조회:6337  추천:3  작성자: 정인갑

횡설수설

20여 년 전, 필자가 한국 탁구선수 안재형(安宰亨)과 중국 탁구선수 초지민(焦志敏) 간의 혼인 중매를 설 때의 일이다.

한 번은 한국의 기자 등 20여명의 인터뷰를 받는 자리에서 초지민을 소개하게 되었다. 먼저 초지민의 가정 형편, 탁구 선수의 생애를 소개하고 다음은 그는 지금 세계 여자 탁구 선수 랭킹 1위를 몇 회 유지하고 있으며 중국 국가 급 내지 세계 급의 금메달을 20개 정도 보유하고 있다는 소개를 상세히 하였다.

나중에 초지민의 인물과 도덕성을 소개하였다. “초지민은 키가 고대 로마 여신 미인 비나스의 키와 같은 168cm이고, 제10회 아시아올림픽(1986년, 서울) 미스아시아 1인자일 정도로 인물이 출중하다. 그렇지만 인물 잘났다고 빼거나 까다롭게 굴지 않으며 마음씨가 아주 착하고 품질(品質)이 좋다.”라고.

“하!하!하!…호!호!호!…” 필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청중들은 일대 폭소를 일으켰다. 필자가 어리둥절하여 왜 웃는가라는 의문의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이내 이야기하지 않고 “정교수님은 품질이 어떠합니까?”라며 저마다 필자의 몸을 만져보자며 접어들었다. 물론 농담 섞인 말과 행동임을 감지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또 “정교수는 초지민의 몸을 몇 번 만져봤나?”, “자주 만져보나?”, “정교수의 도덕성에 의문이 간다”라는 농담을 하고는 또 한 번 폭소를 터뜨렸다. 한국 한자어에 ‘품질’은 물체에만 쓴다. 물체의 성질과 바탕을 일컫는다. 이를테면 ‘이 나일론 천의 품질은 매끌매끌하다’, ‘저 이태리 피혁제품은 품질이 보들보들하다’ 식으로 말이다.

사람의 도덕성을 운운할 때 한국어로 ‘품행(品行)’ 등으로 표현한다. 중국어에도 ‘품행’이라는 말을 쓰지만 ‘품질’이라는 말을 오히려 더 많이 쓴다. ‘그 사람은 품행이 좋다’를 중국어로 ‘那個人品質好’라고 하면 아무런 어폐도 없다. ‘品質’은 중국어에서 사람과 물체에 다 쓸 수 있다.

한국어의 ‘품질’을 중국어에서는 ‘질량(質量)’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어의 ‘질량’은 중국어의 ‘질량’과 또 다르다. ‘중량’과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물리학 개념으로서 ‘힘이 물체를 움직이려고 할 때 물체의 저항의 정도를 나타내는 양’을 일컫는다. 이 개념을 중국어에서도 ‘質量’이라고 한다.

한국어의 품질을 ‘질’이라고도 한며 이 ‘질’을 품행의 듯으로도 쓴다. 그러나 현대 중국어에서 일반적으로 ‘質’이라는 단음절 단어를 쓰지 않는다.

이상 한국 한자어와 같은 한자인 중국어가 복잡하게 엇갈린다는 것을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어느 남자가 한국인에게 어느 여자의 ‘품질이 좋다’—상기의 필자처럼—고 말했다가는 큰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말한 자의 도덕성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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