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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번역에서 떠오른 단상과 그 제의
○ 주 봉
본 문장은 2008년 9월 6일 흑룡강신문에 발표됨.
중국경제의 비약적인 발전과 그 호황,그리고 종합적 국력이 세계적인 우선 순위는 줄곧 많은 외국의 선진기술,기업과 자금이 진입한 것과 큰 관계를 갖는다.예서 언어란 이 매개의 융통은 어디까지나 생소한 두 나라사이에서 그 교류과정을 다 잘 밟도록 함에 결정적 역할을 놀았다.다시 말해서 각 분야에서 사업하는 통、번역인들의 노력에 타국의 통하지 않던 말과 글을 중국말과 글로 전환한 그 성공에서 일 것이다.이 통、번역인 대오엔 우리 조선족들도 많이 있는데 그들은 주로 중、한번역 일선에서 사업하고 있다.
참말,우리 조선족들은 중국 실정을 잘 알고 또 중국말까지 잘하는 그런 “중국통”이다.게다가 한국과 한민족,같은 언어의 유대관계까지 있어서 아주 쉽게 중、한번역에 나설수 있었다.한편 세계적으로 번져가는 한류(韩流)의 비전이 중국에로도 다달아 필시 많은 중、한번역 일군이 수요되어 곧 우리 조선족들이 등극하고 중용되어 우리말까지 그 지위와 부가적 가치가 인상되였던 것이다.이로써 중국인들까지 우리말을 배우는 그 붐을 일으켰는데 단 31개 대학에서나 한국어과를 설치한 그것이다.
참,궁하면 통한다고,사실 1992년 중、한수교는 우리 조선족들이 새롭게 궐기하고 또 중국인들이 우리 민족을 다시 알아보게 하는 계기로 되였다.중국의 부드러운 정책과 한국의 혜택으로 조선족들은 한국에서 친척을 찾고 벌이하여 생활을 향상시켰다.더욱힌 발군된 그 실력과 막강한 영향력으로 기업과 그룹을 꾸렸고 또 많은 중、한무역,여행,번역회사와 학교들을 세웠다.특히 한국에서 직접 많은 기업과 자금을 중국에 인입해 그 공헌과 자랑은 참 대단하여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한교류가 잦아짐에 따라 우리 조선족들은 날따라 한국인들과의 차이점을 발견했는데 주로 문화와 그 의식의 차이에서였다.특히 문화의 표상으로 되는 말과 글의 차이와 그 규범의 다름은 줄곧 전반 조선족사회와 번역인들께 막대한 애로를 갖다 주었다.
예하면,두음법칙에 따라 우리의 뉴대,로동을 한국은 유대,노동이란다.어휘사용은 우리가 쓰는 변소를 한국에서는 화장실로; 우리가 중국식 조선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비해 한국은 미국식 영어를 많이 사용한다.또 겹쳐 나는 소리에서 우리가 눙눅하다,민밋하다를 한국은 눅눅하다,밋밋하다라 한다.다시 띄여쓰기를 보면 우리는 문장의 매 단락 서두를 두 글자 비워 쓰지만 한국에서는 한글자 비우거나 직접 쓴다.또 불완전 명사를 우린 다 붙혀 쓰지만 한국은 반대다.지어 문장부호도 우리는 17개、한국은 23개나 쓰며,이 외 표준어 규정 발음법과 서사법도 그 차이가 다 많은 것이다.
바로 이런 차이는 수십년간 우리 3천리 강산이 3.8선에서 남북으로 분단된 가슴 아픈 역사가 우리말에까지 3.8선을 그어 곧 한국어와 조선어로 갈라놓은데서 온 것이다.그러나 지금 우리말은 분단의 고착화에 비해 아직 이질화 정도로 되지 않은 것이 참,다행이다.
그러나 그 상이한 사회제도,관념과 문화에서 파생된 차이점이나 답답함과 오해 소지는 참말,우리말 번역으로 하여금 대립과 갈등에 치달리게 한다.글쎄,조선반도와 한반도、북한과 북조선、남한과 남조선、조선민족과 한민족에 거쳐 어느 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말이다.이로써 그 번역은 줄곧 2차 언어 전환을 거쳐야만 완수될 수 있다.즉 우선 한국어(혹은 한어)를 조선어로 통찰하고 감안하여 그 낱말의 이미지까지 다 파악한 기초에서 비로써 다시 한어(혹은 한국어)로 전환시킬 수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지금 번역의 실력과 그 성공여부를 가늠하는 척도는 오직 어떻게 조선어와 한국어를 잘 아우른 것에 주로 준거되고 또 대방도 보아야 하는 상황이다.
당전 우리말 번역은 이렇듯 준엄한 역사시기、특이한 언어 환경속에서 진행되다 보니,잘 되어 가면서도 혹 병집이나 웃음거리,지어 오류、오역까지 나타나고 있다.예서 필자는 한、중번역을 위주로 떠오른 단상을 여러 동인들 앞에서 먼저 발언하여 상의하는 즉 또 많은 조언도 바란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성명은 그 민족의 문화와 풍속,그리고 가문의 전통,부모님의 신앙과 희망 등을 고스란히 체현시켜 그 사람을 상징하는 일종의 표현형식 일 것이다.그 내함과 외연은 어디까지나 남다른 뜻 매김으로 형제들을 이어주고 또 다른 사람들과 서로 구별되게 하고 있다.그런데 한국드라마 “罗曼史”(로맨스)에 나오는 迟何英(지하영)은 너무 중국식 성명 번역으로 느낀다.필자의 이해는 못지(池),연하(荷),꽃영(英)에 池荷英으로 인정하게 된다. 또 “正在恋爱中”(지금은 연애중)의 尹好真(윤호진)이란 성명은 그 남동생이 尹好杰(윤호걸)이니,같은 바엔 尹豪真과 尹豪杰로 번역되였더라면 좀 더 의미적이고 겉맞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문뜩 TV화면에 나타난 기똥찬 생신잔치와 그 축하편액을 보면 글쎄 채림이 맡은 이 역의 성명은 윤호진이 아니라 윤호정이였다.그렇다면 그 번역은 마땅히 尹好贞 혹은 尹豪贞으로 되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사실 말과 글은 뜻을 담은 그릇으로 또 아주 운명적인데서 다의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때문에 만약 내가 속한 국가나 문화권,처해있는 입장이나 이해에 따라 같은 말과 글 일 지라도 다른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비근한 예로 냉정이란 말에서 일본인은 차분함을 우리는 차거움을 먼저 느낄지 모른다.또 애인이라면 한국과 서방국가에서는 연인으로、중국과 조선에서는 부인으로 인정 할 것이다.다시 시장을 번역한다면 그 이해와 공감력은 인츰 사구려소리 높은 장터나 자유와 번역이 넘쳐 상품유통을 이루는 그 전체 경제영력에 이룰 수도, 혹은 그 속의 자유경쟁이나 약육강식도 느낄 수 있다.또 배고프다든가,시험장소(试场)와 시의 행정장관(市长)에도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이로써 언어는 또 삶의 표출과 이것을 완수하는 원동력으로 기인된다.허나,언어는 어디까지나 실체가 아니고 상징을 표시하며 또 실체와 상징사이에서 다의성이 발생하므로 번역의 관건은 바로 제뜻에 합당한 언어전환에 규결되는 것이다.여기서 응당 뜻이 부족하다든가 넘치는 언어는 잘 헤아리고 갈라 써야 하며 또 그 언어를 옮길 땐 꼭 대중의 접수 상황과 잘못 될 개연성도 염려해 그 불화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때문에 번역인들은 반드시 세상물정 그대로 또 자구(字句) 본연의 순수성과 그 범주까지 다 발굴하여 다시 일관성있게 체계화하고 또 정확하게 뜻 매김해야 그 효험을 볼 것이다.
그런데 번역중의 오역은 참,뭍사람들의 신경을 마비하고 기로에 이끌며 또 원국가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게 함이 일수다.예하면 위의 윤호정을 尹好真으로 오역된 것에 반하여 이 드라마에선 또 한국의 지명도 오역된 형편이다.즉 마포(서울시 중서부의 구)인데 응당 麻浦로 번역되어야 했지만 글쎄 马普로 되였으니 사실 이는 마보가 아니였겠는가? 그리고 이 극에선 우리 조선족들이 즐겨 부르는 “소양강 처녀” 노래도 나오는데 글쎄 이 소양강을 “苏样江” 이라고 번역하였다.사실 강원도 경내에서 흘러오는 이 소양강은 한강의 제2지류며 북한강의 제1지류로서 줄곧 몇백년을 “昭阳江”이라 써 내려 왔는데 왜 이렇게 “苏样江”이라 번역했는지 참,불가사의만 하였다.
국어사전에선 “무릇 한겨레의 언어는 그 겨레가 전 역사를 통하여 이룩해 낸 온갖 사고의 집약이라 할 수 있다”고 지적하였다.이런 차원에서 번역인들은 응당 그 나라,그 민족의 역사,지리,정치,경제와 문화 등 각 분야에 거쳐 모두 투철한 요해와 파악을 가진 그런 소질이 구비되어야 한다.하지만 그 “罗曼史”(로맨스)엔 또 기원 6세기、어릴 때 잘 울고,16세 때 파격적으로 바보 온달과 결혼하여 다시 그 온달을 나라 영웅으로 출세시킨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란 별칭도 나오는데 글쎄,이 극에선 “平港公主”(평항공주)로 번역되지 않았겠는가? 필자가 조선역사와 “삼국사기”의 “온달설화”를 보니 생애에 그 호연을 선보여 후세들이 숭상하고 사랑하는 “평강공주”를 “平冈公主”로 씌여 있었다.당시 필자가 격앙된 감정이 가슴을 울렁이던 것도 인젠 다 무마 되였지만 그래도 이는 너무 험한 오역임을 다시 꼭 지적해야 될 것으로 본다.
이같이 2000년이나 중국문화의 영향으로 한자 문화권에 있는 한국이 기왕 한자로 뜻 매김한 지명,인명,별칭,문물,명승고적 그리고 강,산,바다와 역사사건 등을 망라해 그 번역은 꼭 본의에 입각해 그대로 써야 한다.
이로부터 번역은 어디까지나 그 말과 어휘를 아집에 따라 우격다짐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또 그런 태세도 아니다.그렇다고 너무 단순한 자구해설 차원의 번역으로 현실과 조화되지 않거나 혹은 앵무식 어음이전에 이탁 될 것도 못된다.예하면,한국드라마 “吾爱是谁”(내 사랑은 누굴까)의 “送幼稚院吧”(유치원 보내세)란 말에 한국 유치원이 그대로 번역됐는데 중국에선 그래도 “幼儿园”(유아원)이라 해야 좀 쉽게 들릴 수 있다.또 지금 우리말 일부 간행물은 외래어와 한어 어음을 이전하거나 직접 써 똑 마치 외국어나 한어문을 읽는 듯하다.한편 맞갖잖아도 외래어는 사전 힘 업고,한어는 그 표기된 한자를 보고 알지만,글쎄 사전에나 한자표기도 없는 것은 참,신경을 곧세우게 한다. 원래 우린 연변,원(元)이면 그만이던 언어신호가 불씨에 옌벤,위안으로 변해 반드시 2차사유전환을 거쳐야 하니 한참 뜯어볼 때도 있다.더구나 한어정자를 쓴 폐단까지 있어 얼마나 석연치 못한지 모른다.사실 우리 간행물의 대상은 광대한 조선족 독자란 방향을 명기한다면 많은 자구는 직접 뜻 매김으로 번역해 그 뒤에 한자를 괄호쳐 표기하면 쉽게 알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로써 한자를 아는 한국인들도 알아 볼 수 있으니, 어음이전 번역은 좀 적중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그런데 원작을 떠난 번역은 하지 말아야 한다.예하면 지금 잘 발매되는 한국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곡 “오나라”의 한어음판은 줄곧 후렴의 “에야 디야”가 번역되지 않았다.대신 여기엔 무려 한자 열개나 우격다짐으로 배사해 아주 짜깁기한 리듬으로 불리고 있지 않았겠는가? 이로써 원곡의 리듬과 “쿵덕쿵” 장단의 파괴는 물론,더욱힌 우리 민족음악의 풍격과 형상이 다 빛을 잃게 했으니 이는 참,받아 들이기 힘들다.예서 좀 더 언급한다면,설녕 이 곡에 새 가사를 붙혀쓴다 해도 가곡의 주제는 하나기 때문에 “에야 디야”같은 특징적 음악형상의 가사는 꼭 번역하여 보류되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번역은 꼭 원작에 충성하여 진정으로 그 의미 생각과 느낌 등 속성을 천착하고 또 원래 풍격이나 특징을 보류한 기초에서 다시 창의력에 입체화하여 분명히 잘 다듬어야 비로써 유려하게 써낼 수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출중한 번역의 실력은 절대 일조일석에서 이룩된 것이 아니다.사실 번역의 고심참담을 돌이켜 보면 그것은 모두 면밀하고 철저하며 아주 간거한 재창작이라,꼭 산고도 겪어야 한다.다시 사계 선배들의 번역담을 들어보면 그들은 경상적으로 급변하는 현대사회 초점을 맞추어 생활에 대한 밀접과 탐닉,아울러 그 집적에 일심했다.또한 작가나 작품에 대한 몰입을 필수로 직접 작가를 만나거나 작품현장까지 돌아본다.이로써 아주 기발된 생각과 면모로 작가의 정신세계와 만나 그 기존사상과 숨은 뜻까지 다 생생히 살려 번역해 낸 그런 성공사례와 귀중한 선구자적 업적을 갖고 있는 것이다.사실상 이 속엔 아주 독특하고 창발적인 상상력,직관력,통찰력과 판단력이 깊이 매료되였고 또 불꽃튀는 창조에 지대한 수고,번복과 피땀이 슴배겨 있는 것이 특색이다.
예서 조선영화 “꽃 파는 처녀”의 번역은 본보기다.당시 장춘영화촬영소에선 이 영화가 김일성 주석의 작품이고 주은래 총리의 지시까지 있어 아주 큰 중시를 주었다.그 중 “꽃분이”이란 이름의 번역만 보아도 조만치 않았다.문제는 “꽃”에 상응한 한자가 없어 연구 끝에 꽃화(花)를 채택했다.허나, “분이”는 그저 “花粉伊”, “花妹子”라 의논 될 뿐이였다.그 후 그들은 다시 영화에 나오는 간도인 연변에서 수십명 조선족 노인을 채방하고 비로서 “꽃과 그 화분”,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뜻을 체현해 “花妮”(꽃같은 그녀)라 불러 관중들의 호평과 언론의 각광을 받았던 것이다.
이처럼 번역은 소통에 대통까지 안아오는 거룩한 사업이다.한편 번역인은 또 나라와 나라 사이,그리고 각 분야와 민간에 거친 사업에 관한 일종 외교적 교섭과 수완을 시행하는 준일한 인물이며 또 그 한분 한분은 다 외교사자인 것이다.이런 사명과 직책은 통역이나 동시번역(同声传译)이 좀 더 특징적인데,이런 실례가 있다.바로 1982년 8월 22일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이 아프리카 중서부의 가봉공화국을 공식방문을 하였을 때 글쎄 환영의식장에선 느닷없이 돌연히 조선국가가 울렸지 않았겠는가? 이에 전 대통령과 대표단 성원들의 속이 발칵 뒤집힌 것은 불보듯 하였다.그러나 이 나라 봉고 대통령의 절실한 사과는 바로 그 난감하던 장면에 전기를 주어 그 후 방문과 두 나라 친선에도 지장 없었다고 한다.사실 이는 전적으로 통역인의 역할에서 왔다고 한다.즉 당시 봉고 대통령은 “매우 유감스럽게 되였습니다”란 일반 외교적 예의수사를 썼지만 총명한 통역인은 그 프랑스어(가봉의 관변측 언어)에도 없는 “참,백배로 사죄하고 용서를 빕니다.”라고 더 충실하게 수식해 통역한데서 비로써 전 대통령과 강경파 성원들의 기분을 가셔 주었다고 한다.참말,그 통역의 말은 더없이 절묘하게 마음을 이어주고 응집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과 좋은 소통의 도구로 곧 후날까지 미담으로 전해졌던 것이다.
특히 예서 반영된 통역인이 나라의 이익,또 타국과의 우의를 념두에 두고 발휘 된 그 기발한 임기응변과 재능소질은 얼마나 후세의 번역사업을 편달하랴! 때문에 번역인은 마땅히 풍만하고 앙양된 정치사상 수양에 그 나라 국정,국책과 국시를 망라해 다시 내 나라와의 상관적 연대,이익과 정책성에까지 모두 투철한 인식과 파악을 가지는 그런 소질도 또 구비되여야 한다.
이상 여러면에서 언급한 우리말 번역에 제한 술회는 절대 독립적인 것 아닌、그것은 언제나 연대를 갖고 종합적으로 실천에 옮겨야 될 것이다.이와 관련해 필자는 또 응당 주의 할 네가지를 더 첨가해 시사 하련다.
하나는 번역에서 자칫 범하는 편향성이다.그것은 왕왕 실제를 떠난다던가 사실의 일단만 밝히며 또 너무 한쪽 나라 뜻만 체현시킨데서 기인된다.예하면 한국드라마 “吾爱是谁”(내 사랑은 누굴까)엔 “我家虽不富裕也算是小康了”(우리 집은 그닥 부유치는 않아도 그래도 잘 사는 표준일세)라며 운위하는 말이 있다.예서 “小康”은 한국의 잘사는 표준이 아닌 것으로 번역시 응당 삼가해야 할 것으로 본다.또 “上大陆出差去”(대륙으로 출장 가려네)란 말은 한국인들보다 대만인들의 말이라면 더 부드럽게 들릴 것으로 본다.당전 한、중번역에서 발로 되는 이런 문제점은 사실상 우리 일부 번역인들의 수준차이와 자기 성찰의 결핍에서 올 것이다.이에 따라 지금 일부 번역회사에서 한、중번역 원고는 최후로 한족들이 수정하고 체크하여 혹 원작의 뜻과 내용이 좀 기울려진 경우로도 필자는 적이 알고 있다.
다음 번역에서 제일 꺼리는 오류다.예하면,지금 일부 음식점、광고와 당안 자료엔 우리 조선족을 “鲜族”(선족)란 간칭으로 번역해 쓰며,지어 일부 재중한인들도 따라 신선족(新鲜族)이라 자칭하고 있는데 사실 이는 잘못이다.한방면 소수민족간칭은 그 민족 명칭의 첫 글자를 쓰는 중국정부의 규정에 따라 조선족은 응당 “朝族”(조족)라면 맞는 것이다.또 선족은 역사적인 오작과 치욕이기 때문이다.즉,1910년 일본제국주의는 우리 3천리 강산을 강점하고 급급히 우리 민족을 말살해 일본인과 동화하려고 “내선 융합”등 식민화한 정책을 감행했는데 예서 “내”는 일본, “선”은 당시 조선을 가르킨다.일제는 또 우리 민족 본신들의 이름과 말 대신 일본 이름에 일본말을 쓰는 법을 억압했는데 이때로부터 3천리 강산은 일본의 한개 성으로 또 우리 부형들은 선족으로 된 것이다.역사는 비추는 거울이다.우리는 일제의 이 만행을 알고 어찌 계속 선족이라 번역해 쓸 수 있으랴! 절대 근절해야 한다.
셋째로 번역에서 우리말 단어와 상응한 한자가 없는 경우다.예하면 1950년 항미원조 때,중국인민지원군의 군용지도엔 “花田谷” 、“岩石谷”같은 지명이 있어 통역은 조선백성들과 “여기 화전곡과 암석곡이 어디 있습니까?” 라 물어 모두 알길 없었던 사연이 지금도 가끔 화제로 되고 있다.이런 상황을 헤아려 당시 중국국방부는 조선족학자들을 모셔다 연구하고 타결한 끝에 이런 유의 지명은 마치“花田谷”(꽃밭골) 、“岩石谷”(바위골)처럼 일률로 원 조선어지명을 괄호쳐 밝히기로 하였다.
넷째로 번역에서 쉽게 홀시되는 기술적 문제다.이에 앞서 번역인은 응당 말의 맥락,의미와 감정,그리고 그 말의 미묘한 어감까지 다 감촉하는 그런 소질이 구비되어야 한다.그런데 지금 한국드라마에선 종종 번역 된 중국말의 길고 짜름이 무상이라면 또 원래 한국말 구형(口型)과도 맞지 않는다.그리고 말의 억양이나 성조(声调)가 그 행동거지와 표정과도 이탈되고 더구나 한어정자까지 번역해 자막을 채우는 폐단으로 참,재미 슬하다.
필자는 “노력하는 것만큼 나온다”란 말을 믿는다.그러므로 번역인은 마땅히 민족의 자긍심에 더욱 긴 안목과 자아세계에 갇히지 않는 고투로 부단히 당대 세계를 알기 위한 공부를 게을리지 말아야 한다.특히 오늘같이 언어가 폭팔하여 유동성이 격심한 이때,응당 수시로 신문、잡지、방송과 TV 등 매체에 쓰인 어휘들을 설렵하여 자기 두뇌를 무장하여야 한다.이로써 항상 참신한 아이디어를 배동한 소통의 즐거움과 자아발산으로 미래와 약속하며 부단히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는 그런 알찬 번역작품을 내놓게 되여야 하는 것이다.사실 그것은 더없이 정비롭고 세련 된 언어의 향연이 활활 펴나, 또 이를 탐독하는 모든 사람들께 절로 탄성을 자아내고 더욱 기쁨과 희망을 부여하게 끔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아래 두개 방면의 제의만은 꼭 국가민족사무위원회에 제의하고 싶다.
하나는 번역인 대오의 건설과 그 수준의 질적인 제고이다.예서 중요한 것은 대학에서의 인재배양 일 것이다.다음으로,정기적인 통、번역인의 학습반、학술회、세미나와 경험교류회 등을 조직할 것도,또 번역작품의 심열이나 번역인과 그 회사의 자격심사、등급 등을 망라해 금후 번역사업의 정규화、규범화를 위해 꼭 해당부문의 출면이 진작 수요된다.
다음으로 우리말의 “통일”이다.이는 당전 우리말 규범이 정립자세에 처한 상황을 헤아려 하루속히 중、조、한 세 나라 학자들이 모여 연구와 타결이 수요된다.사실 사람의 힘은 한이 있어도 규범의 힘은 막강하고 무한하다.때문에 근본적인 것은 숙원으로 우리말 대법인 문법과 그 규범부터 집필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글쎄 이것은 시간이 좀 걸려야 하므로 목전엔 응당 표준화、국제화에 입각한 과도성적 규범도 작성될 것이 또 얼마나 박절한지 모른다.
번역은 각 국과의 우호、단결과 발전을 도모하고 또 내 나라를 우상하는 중요하고 빛발치는 사업이다.더욱히 여러 분야에서 생산력을 촉진하고 경쟁력에 응집력까지 형성시키는 아주 가치있고 성스러운 사업이다.지금은 번역인들의 그 기량을 마음껏 자랑할 때다.그러나 우리말 번역은 아직 초창기라, 모든 번역인들의 다함없는 노력에 훈신의 힘을 다 할 것을 바란다.특히 우리 민족의 성공적 삶을 영위하고 더욱 당당하고 저력있는 민족으로 부상하기 위해 분투할 것이 또 얼마나 수요되는지 모른다.그리고 저 줄기차게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말 번역사업이 보다 사회적이나 민족적인데서 계속 변함없는 관심과 지지,그리고 그 기반이 마련되기를 필자는 충심으로 바라 마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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