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 강경산 등 조선족 원사들의 뒤를 이어 새로운 젊은 조선족 원사들이 배출되고 있다. 얼마전 북경대학 부교장으로 발탁된 박세룡 과학원 원사와 40대 열혈청년인 김호림 유럽과학원 원사이며 현재 안휘대학 대수치통계학학원 김호림 집행원장이 또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일전에77년생인 김호림 원사가 다니던 길림성 룡정시 개산툰화학섬유자녀학교와 룡정고급중학교를 찾아 당시 김호림의 담임선생님들과 동창들을 만나보았다.
호림이는 학창시절 '수수'한 학생
현재 아동문학 동시인으로 활약하고 있는 강려, 한설매와 연길시 6.1유치원 교원인 최연화 등은 호림이와 소학교, 초중 동창들이다. 그들의 회억에 따르면 김호림은 소학교시절과 초중시절에 아주 평범하였고 '수수'한 학생이였다고 한다. 말수가 적었다는 그의 엄마는 평범한 로동자였고 아버지 김문세 작가는 중학교 물리교원이였다.
어릴 때 두만강기슭의 화학섬유자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다른 애들의 눈에 크게 띄우지 못했던 학생이였다. 초중, 고중 시절에는 한때 전자유희가 류행되여 거기에 빠져들어 학습성적이 너무 우수한 축이 아니였다고 김문세 작가는 회억했다.
고중은 룡정고급중학교에 다녔지만 대학입시에서 락방하여1년 다시 공부하게 되였다. 변방의 작은 학교에서 공부하다나니 기초지식이 약했다. 그러나 호림이는 갖은 곤난을 극복하고 꼭 좋은 대학에 가려고 결심하였다. 대학입시에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지 못하여 다시 공부하게 되였지만 호림이는 숙소, 학급 동창생 집에서 공부하면서 피타는 노력을 경주하였다.
고중학적을 뒤져보니 호림이는 수학과 대표였고 시3호학생의 영예를 지닌 적이 있었다. 고중시절 담임이였고 현재는 연길시제2중학교 부교장인 강창록 선생님과 연변제1고급중학교 교원인 송성호 선생님의 회억에 의하면 호림이는 수학과를 잘했다고 한다. 비록 한해 더 공부하면서도 호림이는 끈질기게 공부하여 끝내 청화대학에 붙었다.
유럽학원 원사로
청화대학을 졸업하고 김호림은 한국세종대학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거쳐 상해에 돌아와 계속 공부하는 한편 회사도 꾸렸다고 한다. 그는 현재 국가급 AI전문가이고 2급교수이며 박사생도사로 되였고 선후로 상해시 10대 걸출청년, 박사후사업소 평심위원, '국가를 위해 이름을 떨친 과학가' 칭호를 수여받았다. 그는 또 청화대학 MBA도 공부했다고 한다.
유럽과학원은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다.
김호림은 후에 유럽과학원 원사로 당선되였는데 중국에서도 승인하고 중국과학원 원사와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9월에 안휘대학 대수치통계학원 집행원장으로 된 김호림은 현재 안휘대학에서 박사생도사로 활약하면서도 미국 등 세계 각지 대학, 연구기관을 돌면서 과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대수치'는 현재 새 기술, 새 자원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과학연구 종목으로서 경제의 고질량 발전의 중요한 엔진으로 되고 있다. '대수치'는 우리 나라의 '대수치'개발과 응용의 국가전략으로 부상하여 컴퓨터정보기술 등 령역의 자원과 개발 등 면에서 막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조국의 편벽한 변방의 이름없는 소학교, 초중을 다니면서 청화대학의 꿈을 실현한 김호림 원사는 앞으로 조국과 세계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과 장대를 위하여 청춘의 힘을 이바지하고 있으며 자라나는 후대들의 훌륭한 본보기로 되고 있다.
/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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