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춘시에서 쇼핑하고있는 로씨야인(자료사진)
올해 60세 나는 로씨야인인 위크드는 훈춘통상구 검사를 마치고 택시를 잡고 중국 훈춘에 있는 집에 들어섰다.
근년래 로씨야의 《동방으로 향하다》의 전략과 중국 두만강지역개발개방정책의 추진하에 중국과 로씨야 극동지역의 무역과 려객왕래가 빈번해 졌다. 점점 많은 로씨야사람 특히 로씨야로인들이 훈춘에 와 휴가를 보내거나 정착하고있다. 이로써 흥기된 《양로경제》는 훈춘의 독특한 풍경선을 이루고있다.
위크드의 집은 훈춘시내의 새로 지은 아빠트단지에 위치해 있는데 보안과 이웃들은 그를 잘 알고있었다. 44평방메터 되는 자그마한 집이지만 중국식과 서양식을 융합하여 꾸며놓았다.
위크드의 고향은 로씨야 아무르주 꼼쏘몰스크나아무레이며 퇴직전에는 건축공정사로 있었다. 2008년 위크드가 처음 훈춘에 유람왔을 때 훈춘의 기온과 환경 그리고 소비등이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위크드는 훈춘을 《제 2 고향》으로 여기고 몇년간 저금한 돈으로 집을 샀던것이다.
그는 《달마다 인민페로 3000원가량 되는 퇴직금을 타는데 이 돈으로 훈춘에서 살기는 넉넉하다》고 만족해 했다.
고르바쵸브 이완노위치는 위크드보다 일찍 훈춘에다 집을 잡았은데 로씨야인으로 첫번째로 집을 샀다. 2008년 72세 나는 이완노위치는 침실이 두개 달린 집을 사놓고 안해와 함께 훈춘에서 양로하려 한다.
이완노위치는 《1만 6000딸라를 주고 훈춘의 집을 샀는데 울라지보스또크에서 같은 면적의 집을 사려면 18만딸라좌우가 든다. 훈춘의 모든 상품도 울라지보스또크보다 싸다》며《울라지보스또크에서는 배불리 먹을수 있는 정도에 그치지만 이만한 돈으로 훈춘에서는 더 잘 살수 있다》고 했다.
알아본데 의하면 현재까지 200여명 로씨야인들이 훈춘에 정착하였다. 훈춘시부동산관리국의 통계에 따르면 올해 8월말까지 훈춘에서 가옥재산권등록을 한 로씨야인이 76가구 된다.
훈춘시부동산관리국 조용국장은 《훈춘에서 장기 거주 만 1년,사업터증명제시 가능,가옥구매 성명서 체결, 이 세가지중에 한가지만 부합돼도 집을 살수 있다 》고 소개했다.
더 좋은 진료를 받기 위해 훈춘을 찾는 로씨야로인들도 있다. 반평생을 선원으로 있은 쎄르그는 허리통과 경추병으로 앓고있다. 로씨야에서 많은 돈을 써가며 치료했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해 훈춘에서 중의치료를 받았는데 현저한 효과를 봤다고 한다.
훈춘시중의원 려요 부원장은 《로씨야의 날씨가 추워서 풍습, 골병 발생률이 보다 높은편이고 당뇨병, 고혈압 등 만성병을 앓는 로씨야인들도 적지 않다》며 《합리적으로 진료비를 받고 봉사도 좋고 해서 로씨야인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특히 안마, 침구, 뜸, 찜질 등이 로씨야인들에게 인기이다고 덧붙였다.
훈춘시 고옥룡서기는 《몇년래 훈춘시에서는 륙속 적지 않은 정책을 발표해 훈춘을 로씨야극동지역 주민들의 레저 <화원>으로 만드는데 진력하고있다》고 밝혔다.
알아본데 의하면 2011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루블자동태환기가 훈춘에 입적했고 2011년 8월부터 훈춘시공안국에서는 외국인을 사회구역관리 범위에 넣고 시점관리하고있으며 지난해 12월 25일에는 훈춘시 로씨야인협회가 정식으로 설립됐다.
2012년 훈춘을 찾은 로씨야 유람객들이 연인수 15만명이며 무역액은 5억딸라로서 같은 시기에 비해 25% 장성했다.
현재 훈춘시에서 로씨야인들을 흔히 볼수 있고 도로 량측의 한문과 로씨야어 표지를 보노라면 마치 이국타향에 들어선듯한 기분이다.
신화사/길림신문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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