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일편단심 과학연구에 심혈 몰붓는 "농인"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4월7일 09시10분    조회:419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장기건


옥수수교잡종연구에서 공백을 메운 장기건교수

연변농학원 졸업생중 첫 류학생, 길림성 농학전업의 첫 외국박사, 연변농학원에서 교수직함을 취득한 첫사람, 농학원졸업생가운데서 농학원 원장을 담임한 첫사람···
80고개를 바라는 훤칠한 키골의 장기건교수, 안경너머로 비쳐오는 침착하고 사색적인 부드러운 눈길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친근함과 자상함과 더불어 한눈에도 전형적인 인테리라는 느낌이 안겨왔다. 또 젊은이 못지 않은 정열과 열정으로 반세기 넘는 과학연구, 교학생애를 하나의 흐트러짐없이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서 "첫 사람"이라는 당연함과 "첫 사람"이 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엿볼수 있었다.

고난의 유년시절…자연을 품에 안고
장기건교수는 1932년, 왕청 대흥구진의 한 빈한한 가정에서 세형제의 막내로 태여났다. 4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8살 때 어머니까지 여의였으며 형님, 누나들마저도 몸쓸 병으로 떠내보낸 그는 어린 나이에도 누구하나 따뜻한 손길도 눈길도 주지 않았던 외톨이였다. 이런 그를 감싸주고 안아준건 오직 대자연이였다. 한없이 높고 푸른 하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벌판에 누워 자연이 선물한 매 하나의 생명체를 호기심 가득해 바라보노라면 그속에 푹 빠져 그 순간만은 친인들을 잃은 아픔도 자신의 외로운 신세도 모두 잊군 하였다. 그때부터 장기건교수는 생물이라는 개념도 모른채 자연을 연구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열심히 공부했다.

1947년 왕청련합중학교를 졸업한 장기건교수는 당시 그곳에 고중이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외지에 가 고중을 다닐 상황이 아니여서 잠시 학업에 대한 꿈을 접고 만 16살 되는 해에 왕청현 쌍하진의 한 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학교에서는 워낙 머리가 총명한데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교학을 깐지게 하는 그를 대흥구중학교에 추천했다.

그한테도 드디여 자연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싶다는 꿈을 향해 첫 걸음을 내딛을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장기건교수는 대흥구중학교에서 추천하고 통일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해 1953년, 연변농학원에 입학했다.

류학…닦지 않은 길로 향해
기회는 늘 준비된자에게만 찾아온다. 학교에서 교편을 잡은지 3년 되는 해, 그에게 쏘련류학의 기회가 찾아왔다. 외국류학이 하늘에 별따기인 시기인지라 정치심사, 신체검사, 성 및 전국통일시험을 거치는 겹겹의 관문이 장기건앞에 놓여졌다. 당시 전국 각지 대학교와 과학연구단위에서 모두 자신들이 내노라하는 "선수"들을 추천했고 우리 성에서도 장기건교수를 포함한 50명을 추천했다.

그후로부터 기회를 잡기 위한 공부와의 사투가 벌어졌다. 반년 동안 집에 오가는 시간도 아까와 교원실을 집으로 정하고 낮에는 교학을 하고 밤이면 안해과 함께 밤을 패가면서 공부를 했다. 안해는 그의 든든한 뒤심이자 "조수"였다. 같은 전업을 선택한 안해는 갓 돌을 넘긴 아들을 시집에 맡겨두고 자료를 찾아주고 서류를 작성해주며 그와 함께 시험공부에 매진했다. 반년간의 고생끝에 장기건교수는 길림성 5명의 합격자중 유일한 한명으로 되였다.

그러나 중국과 쏘련의 관계가 파렬되면서 그는 국가의 배치에 따라 루마니아에 류학가게 되였다. 로어는 그나마 류학통지서를 받은후 반년 동안의 학습을 통해 조금은 대화를 할수 있었지만 루마니아어는 전혀 들어보지 못한 언어였다. 한주일간의 돌격식학습으로 가장 기본적인 생활용어만 기억한채 1960년 9월 13일, 그는 루마니아로 류학을 떠났다.

5년남짓한 류학기간 장기건교수는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농학원에서 밤낮없이 공부에만 몰두했다. 대사관에서 주말마다 조직하는 정칙학습외에는 강의를 듣고 시험을 보고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면서 모든 여가생활을 보냈다. 루마니아 류학에서 그는 옥수수잡교종과 자교계친본의 생물학연구에 종사했다. 당시 옥수수잡교종과 생물학 연구가 세계적으로도 갓 흥기한 학문인지라 어려움도 많았다. 5년간의 노력끝에 그는 루마니아 농학박사학위를 취득, 33살라는 젊은 나이에 연변대학 농학원 졸업생중 첫 류학생으로, 길림성의 첫 농학전업 외국박사로 되였다.

중국에 돌아오자 중국농업과학원에서 러브콜이 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중국농업과학원은 예전부터 과학자들을 키워내는 용광로이고 요람이며 과학자로 되려고 꿈꾸는 수많은 지식인들을 흡인하는 희망봉이고 전당이다. 그러나 학생때 입당을 했었고 학교에서 추천해 류학까지 가게 된것을 늘 고맙게 생각했던 장기건교수는 유혹을 물리치고 연변농학원에 돌아왔다.

일편단심 "농인" …빛나는 과학성과
하루를 이틀맞잡이로 쪼개여 쓰면서 피땀으로 조각한 "박사"학위를 한가슴 벅차게 안고 조국에 돌아온 장기건교수, 자신이 배운 모든것을 활화산처럼 폭발시켜 크게 해보려는 마음만 갖고 교편을 잡은지 반년밖에 안됐는데 "문화대혁명"이 터졌다. 5년 동안 그는 그렇게도 하고싶던 옥수수의 자교와 잡교실험을 할수 없었고 일부 반대파로부터 무능한 "양박사"로 몰리우기까지 했다.

장교수는 그래도 속으로는 언젠가는 내가 배운 소중한것들을 끄집어낼수 있는 날이 올것이라는 확신으로 옥수수에 대한 연구만은 놓지 않았다.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1970년부터 나라에서 농업에 대한 중시와 함께 룡정시 조양향 삼성대대에서 옥수수교잡종과학연구를 했다. 실험을 할수 있게 하는것만으로도 무한한 행복과 고마움을 안고있었던 그는 삼성대대에서 살면서 매일 10여리 산을 넘어 실험기지를 오갔다. "고생끝에 락이 온다"고 몇년후 섬성대대는 연변지역의 옥수수잡교종기지 선진으로 되였다.

1970년 겨울, 과학연구주기를 단축하기 위해 그는 또 해남도에서 "남하번식,대수증가(南繁加代)"사업을 하게 되였다.그후로부터 4년 동안 그는 겨울이면 해남도에서 연구를 하면서 연변농학원의 남하번식기지를 건립했다. 이렇게 몇년간의 연구끝에 장기건교수는 1973년에 "옥수수교잡종성상유전규률"이란 연구론문을 "유전통신"

파일 [ 3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편집자 주: 흑룡강신문한국지사를 통하여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한 조선족 동포 이 강씨의 취업 성공기이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습득하고, 연마하면서 적지 않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으나 결국은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열정이 회사 임원들의 감동을 이끌어 냈고,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 2013-05-09
  • 청도주꾸지수산물유한회사 김대룡리사장 민족력사대형가무극 기획 10만원으로 교육기금회 설립  조선족문화원을 세워 민족문화를 고양할터 청도주꾸지수산물유한회사 김대룡리사장의 일가견이다. 연변대학졸업후 돈화시 공상은행의 책임자로, 길림시교통국의 간부로 몸담갔던 김대룡씨가 하해한건 1996년,  섬서...
  • 2013-05-08
  •  편집자 주: 흑룡강신문한국지사를 통하여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한 조선족 유정초 씨의 취업 성공기이다. 회사가 필요로 하는 기술을 습득하고, 연마하면서 적지 않은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으나 결국은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열정이 회사 임원들의 감동을 이끌어 냈고,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
  • 2013-05-07
  • 20여년간의 복장경험으로 도전에 나선 녀성 리영실 브랜드평민화로 시장을 개척 복장가계와 복장업체가 군림한 청도에 자기가 직접 디자인한 복장으로 대기업의 틈새를 파고드는 녀성이 있어 화제다. 연길태생인 리영실(1967년생)은 복장재단에 소문 높은 어머니를 따라 어려서부터 재봉기술을 배웠고 21세 때에는 연길시 번...
  • 2013-05-06
  • 대형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13)   각 책들에 다르게 실린 리홍광의 초상사진. 《우리의 하늘에 높이 걸려서 승리의 군기(軍旗)를 비춰주는 홍광 돌격하라! 우리의 제1로군! (高悬在我们的天空中 普照着胜利军旗的红光 冲锋呀我们的第一路军)》 항일전쟁시기 동북인민혁명군의 총지휘였던 양정우장군(19...
  • 2013-05-06
  • 연길 박리문화용품상사 리성룡사장 창업스토리     리성룡 – 그가 벌인 사업은 규모가 작지 않다. 그렇다고 구멍가게처럼 작은것도 아니다. 연길 서시장의 한 모퉁이 300여평방메터가 되는 면적에 박리문화용품상사(溥利文化用品商社)를 차려놓았다.   “제가 젊었을 때 엄청 어렵게 살았어요. ...
  • 2013-05-06
  • 연길 서시장부근 ‘소리나라’음반가게의 허봉남사장   20년간 줄곧 음반산업이란 한 우물만 판 사나이-허봉남사장에 대해 주위에서는 연변조선족음반역사의 산증인이라 칭한다. 화룡에서 태어난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어떻게 하면 가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고민하던 중 결국 학업을 포기하고, 장사...
  • 2013-05-03
  • 엄광철 월드옥타 제10통상위원장 인터뷰 지난 4월 16일부터 19일까지 부안에서 열린 월드 옥타 세계대표자대회 둘째 날 저녁, 만찬과 함께 ‘회원 친교의 밤’이 시작됐다. 각 지회별로 춤과 노래로 저마다의 장기를 뽐냈다. 대련지회 차례가 됐을 때 전 지회장인 엄광철 제10통상위원장이 무대에 올라와 신나게...
  • 2013-05-03
  • 남만 중국공산당조직 최초의 조직자 리동광 대형계렬기획보도 《중국조선족 백년백인》(12) 리동광동지는 남만 중국공산당조직의 최초의 조직자이고 지도자이며 항일련군 제1군과 남만항일근거지 창설자의 한사람이다. 리동광(李東光)은 양정우, 리홍광과 함께 남만유격대를 창건하였으며 남만의 《5.7》봉기를 조직하고 지...
  • 2013-05-02
  • 청도야미화장품유한회사 총경리 최림 저자세관리모식으로 -수출형기업에서 내수형기업전환에 성공 청도위방에 있는 는 불경기로 부도직전까지 갔던 회사로서 종업원들을 한가족처럼 뭉쳐놓았기에 재생한 경험을 갖고 있다. 연변재무학교를 졸업하고 무역회사 등 다양한 업종에서 몸을 담았던 최림(1962년생)씨는 1999년도에...
  • 2013-04-27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