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무전통태극권 김태익 사부를 만나다
제자들과 함께 수련하고있다
지난 6일 한국 광명시 시민체육장에서 한창 태극권을 수련하고있는 조선족 김태익 사부를 만났다. 2008년 제8차 국제태극권경기에서 태권, 태검 두 종목의 1등 수상자로 현재 한국에서 수십명의 수련자를 가르치고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서 기자는 태극권과 그의 인생에 대해 상세히 알아볼수 있었다.
그는 원래 연길시제2중학교 체육교원이였다. 직업적 특성으로 항상 온몸에 어혈과 멍이 들어있었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의외의 교통사고로 신체가 거의 반신불수에 가까운 상태에 이르렀다.
하여 앓는 몸으로 더는 학교에 출근할수 없게 되였는데 병원에서는 더는 치료할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젊은 나이에 이러한 진단을 받고 집에 누워있자니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던중 친구들로부터 태극권을 한번 배워보는게 어떻게냐는 하는 제의를 받게 되였다.
운신도 할수 없는 상태에서 무슨 운동을 하겠는가? 하는 우려심 없지 않았지만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낼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태극권의 고향인 하북성 석가장에 가 마호스승 아래서 배우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작한 태극권이 1년, 2년, 3년이 지나면서 몸이 점점 가벼워지고 체질도 점차 돌아서기 시작하였다.
300년의 력사를 가지고있는 태극권은 원래 중국 하남성의 진가구 마을에서 자체로 마을을 지키기 위한 호신용 무술로 시작되였다고 한다.
태극권은 《중용》사상에 기초를 두고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운동이다. 도덕적 본성이 항상 자기 자신의 주체가 되도록 하고 인간적 욕심이 매번 도덕적 본성의 명을 듣게 하는것이 중용의 도를 실천하는 길이다.
1년에 2차씩 꼭 하북성의 사부를 찾아뵙고 수련을 하는 과정에 기술도 향상되고 신체도 좋아지고 하니 연길에서 대중들에게 태극권 보급을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가족들이 한국에 이주하면서 할수 없이 함께 서울로 오게 되였다.
그가 태극권을 보급시키려고 여러 도장을 다니며 취직을 부탁해보았으나 그의 재능은 탐나지만 모두가 어려운 상황이라 월급을 줄수 없다며 받아주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 아주머니가 컴퓨터 한대를 사주면서 인터넷으로 동아리를 만들거나 다른 사람들의 카페에 가입하여 적극 홍보하라고 알려주었다.
그의 도움으로 서울에서 어느 정도의 제자들을 확보할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행복이 찾아온것은 아니였다. 비자 문제로 2년간 연길에서 한국으로 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였다.
그러다가 2008년 중국 하북성 석가장에서 수련을 하던중 우연히 그해 10월 하북성 한단시에서 제8차 국제태극권경기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도전해보기로 하고 참가신청을 냈다.
그는 석가장에서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하였으며 결승에서 태권, 태검의 두 종목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태극권 수련을 시작하여 10년, 불구의 몸이 되여 마지막 희망으로 삼고 수련했던 태극권으로 미국, 일본, 중국 향항, 한국, 대만, 이딸리아 등 나라의 수천명 선수가 참가한 국제경기에서 우승을 했다니, 이것은 인간 김태익의 승리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였다.
그후 한국에 들어와 다시 태극권보급을 시작하였다. 지금은 매주 화·목·토 광명시체육관에서 제자들과 함께 수련하고있다.
기자는 취재시 6년 정도 수련을 한다는 《동양한의원》안준철원장에게 태극권의 효과를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는《태극권은 인간이 만든 운동중에 최고의 리성적인 운동이다. 그 효과는 이 운동을 통하여 신체에서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조화를 이루어 혈당과 혈압을 낮추어준다. 소변에서 거품이 하나도 없이 맑아진다.》고 하면서 기자도 참가해보라고 권하는것이였다.
김태익사부의 꿈은 자기의 아호 《연무》단 수련원을 꾸려 인생 말년까지 우수한 제자들을 키워내는것이라고 하였다.
길림신문 김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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