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 늘 해란강에 나가서 노래연습을 했지요.”
우리민족의 유서 깊은 고장 룡정의 해란강기슭에서 태여나 가수의 꿈을 키운 리성주에게 해란강 여울소리는 고향이 불러준 성공의 축가였다.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하고 또 민족창법, 통속창법, 벨칸토창법 등 세가지 부동한 창법으로 노래를 불러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가수로 명성을 떨친 리성주는 선후로 북경과 천진, 상해 그리고 한국과 이딸리아, 미국 등지에서 독창회를 가졌다. 말 그대로 해란강 여울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퍼진것이다.
그렇지만 리성주는 무대에 설때마다 관객들의 박수소리를 타고 고향의 산과 물이 별무리처럼 떠오른다고 말한다..

“온돌무대”에서 가수의 꿈을 키우다
지금처럼 집집마다 텔레비전이 없었던 지난 세기 6,70년대, 라디오마저 사치품이었다. 저녁에 밥술을 놓고 밥상에서 물러나면 별로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리성주의 식구는 별로 적적하지 않았다. 날마다 “가정 공연”이 벌어졌던 것이다.

“큰 누님이 먼저 선창을 뗐어요.” 리성주는 그때 그 일을 다시 눈앞에 떠올리려는 듯 잠깐 뜸을 둔다.
“이어서 우리 여섯 남매는 차례대로 노래를 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짝짜꿍을 치면서 우리 모두를 응원했지요.”
리성주의 인생의 첫 무대는 그렇게 온돌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언제인가부터 소년에게는 하늘에 걸린 무지개처럼 오색 꿈이 하나 생겼다.

(언제면 온돌이 아닌 라디오에 나의 노래소리가 실릴까…)

그 무렵 노래를 좋아하는 소년은 종일 입에 노래를 달고 다녔다. 그는 늘 해란강 기슭에 나가서 목청을 틔웠다. 출렁출렁 흐르는 해란강에는 그의 청아한 노래소리가 실리고 있었다. 뛰어난 음악천부를 보이고 있었던 리성주는 그의 이름자처럼 학교 선전대에서 단연 기둥으로 되고 있었다.
“실은 성주(成柱)가 우리 남매가운데서 사내자식으로 유일하다고 해서 기둥으로 되라는 의미로 지은 이름인데요.”
그러나 궁벽한 시골이라 음악소년은 피아노도 만져볼 수 없었다. 악기 소리는 천상의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있었다.



중학교를 다닐 때 에피소드가 하나 생겼다. 방과 후 귀가 길에 골목을 지나는데 손풍금 소리가 들렸다. 리성주는 저도 몰래 손풍금 소리를 따라 웬 집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뜬금없이 문을 떼고 들어서는 소년에게 사연을 들은 손풍금수는 오랜만에 꼬마지인을 만났다고 반색을 했다.

“얘야, 그럼 노래 한곡 불러보지 않을래?”
소년은 오랜만에 손풍금 소리를 반주로 즐겁게 노래를 했다. 가지에 잎이 달리고 꽃이 피듯 노래는 반주소리를 타고 한결 구성지게 울리는듯 했다. 그날부터 어린 리성주는 방과 후이면 손풍금을 반주음악으로 삼아 노래를 불렀다.



“손풍금을 켜던 아저씨의 이름을 묻지 않은 게 정말 유감입니다.”
이름 모를 그 아저씨는 룡정시 제1중학교 부근의 골목에서 살고 있었다. 지금 생존하고 있다면 60대나 70대의 로인이라고 한다.
“언제 한번 만날 기회가 있으면 손풍금 아저씨에게 꼭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17세 나던 그해 군 부대에서 룡정시에 연예병사 모집을 나왔다. “하룻 강아지가 범 무서운줄 모른다”고 리성주는 혼자 군부대 모집장소로 갔다. 그가 시창을 하자 현장에 있던 군관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한곡 더 주문했다.
뒤미처 합격판정을 받은 리성주는 꿈인지 현실인지 도통 믿어지지 않아서 한동안 얼떨떨해 있었다.

무대에서 울린 “나의 고향”
아쉽게도 부대의 사정 때문에 리성주의 연예병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다. 부득이하게 자동차 기사로 되었지만. 그래도 노래는 그의 입에서 떠날 줄 몰랐다. 가끔 흥얼리다가 떠오르는 선율이 있으면 노트에 적어놓았고, 작사, 작곡도 하였다. 이 기간 그가 지은 노래 “자동차 병사의 노래”는 전사들에게 널리 불려 부대의 포상까지 받았다.
1983년 리성주는 제대한 후 현 문예공연단에 배치되어 독창 등으로 무대에 올랐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첫 전문가수 콩쿠르에서 그는 오랜 가수들과 함께 수상자의 반렬에 올라섰다. 이어 리성주는 장백산예술단에 배치되어 “삼림가수”로 되었다. 해란강의 물소리는 망망한 수림의 바다에서 호방하게 울리고 있었다. 이 기간 그가 부른 노래 “장백산, 고향의 산”, “삼림의 노래”, “백하기슭을 거니네”는 각급 방송의 전파를 탔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바라던 꿈의 무대는 아직도 멀고 또 멀었다.
1991년, 리성주는 상해음악대학 성악학부에 입학하여 유명한 교육가 석림을 스승으로 모신다. 해란강기슭에서 그리고 장백산에서 닦은 기량은 대학가에서 날개를 달게 된다. 이듬해 상해 제1차 “세기컵” 민족가무콩쿠르에서 리성주는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때 장려금을 받아서 어머님에게 금가락지를 사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이때 인생에서 처음으로 금을 구경했다고 한다. 리성주는 자기의 노래재간으로 처음으로 부모에게 효도를 하게 되었다.

고향과 부모의 사랑은 그가 지은 노래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1994년 리성주는 북경 중앙민족가무단에 입사하며 2년후 첫 독창음악회를 열게 된다. 이때 그가 선택한 노래는 그가 직접 작사, 작곡한 “나의 고향”, “엄마의 손”, “나의 동생”… 등이였다. 순 그 자신의 개인작품 독창음악회였다.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음악가라면 혹자는 작사, 혹자는 작곡, 혹자는 노래로 이름을 날리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러나 작사와 작곡, 노래를 혼자서 도맡은 사례는 아직까지 흔치 않다. 그래서 이번 독창음악회는 중앙민족가무단, 중국음악가협회 창작위원회와 “가곡” 편집부, 중국소수민족성악학회 등 거물급 부문에서 공동주최하는 보기 드문 정경을 연출하게 된다.

그때는 추위가 휘몰아치는 11월이었다. 북경의 조선족 아줌마들은 매서운 바람에도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관중석을 채웠다. 관중석에서 무시로 물결을 이루는 치마, 저고리의 춤사위는 독창회 전체를 흥겨운 무대로 만들었다.

“정말 성씨도 모르는 사람들이 저를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리성주는 인터뷰 도중에 고향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그의 꿈의 무대에는 언제나 고향과 고향사람들이 수호신처럼 지키고 서있었다.

리성주는 지금도 음력설 조선족모임이나 조선족 환갑, 잔치 때면 늘 자진하여 노래를 부르고 무료봉사를 한다. 2008년 상해, 북경, 서울에 가서 학생들을 데리고 자선음악회를 열었으며 음악회의 수입을 전부 자선사업에 기부하기도 했다.



음악의 전당으로 향한 날개 짓은 그칠 줄 모른다. 리성주는 2001년 이탈리아 국립로마음악원에 가서 1년동안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성악 금상을 받는다. 그 연장선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고 한국 서울대학에 입학하며 나중에 성악 석사학위를 획득하는 등 인생의 화려한 그라프를 긋는다.
“결국 가수 생애는 제한된 게 아니겠어요?” 리성주는 유한된 가수의 생애를 무한대로 연장하고 싶었다.

2005년, 리성주는 중앙민족대학에서 음악학부에 교원으로 입적하였다.
“가수로서의 저의 경험과 재간을 후학들에게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이로써 리성주는 무대에 올라섰던 민족가무단의 1급 배우로부터 강단에 올라선 전임 교수로 변신을 한 것이다.

강단에서 들리는 노래소리
대학 강단에 올라섰지만 오로지 최고의 경지에 오르기 위한 추구는 멈춰 서지 않았다. 2006년 리성주는 한국 동국대학에서 “응용 불교학”을 공부하며 불교박사과정을 수료한다. 그의 말을 따른다면 철학적인 범주에서 인간에 대한 사색을 하고 그걸 음악공부에 접목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관용과 포용, 헌신은 음악에도 유효합니다. 성악가의 호흡이나 사고방식에 큰 도움이 되지요.”
진짜 스님처럼 면벽을 하고 음악공부에 정진을 한 것이다. 2010년 미국에서 독창회를 여는 등 리성주는 그동안 북경과 천진, 상해 그리고 일본, 서울, 프랑스 등 지역과 나라에서 독창회를 열었다. 그는 독창회 때마다 한결 승화된 기량과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여 절찬을 받았다.
현재 그는 영국과 미국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강의와 연구, 음악회를 병진하고 있다. 그는 남을 가르치려면 자기가 먼저 공부해야 한다고 재삼 말한다.



“세계적인 수준을 갖춰야 학생들의 발전에 좋은 디딤돌로 될 수 있지요.”
그는 교수 답게 성악과 오페 예술과 관련한 저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4부짜리 개인작품 음반도 인제 곧 출품되게 된단다.
그가 18번 노래라고 자랑하는 “초원의 지지 않은 해”가 새삼스레 떠올랐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 헤엄치고
흰 구름 아래 말들이 뛰노네…”

리성주의 음악무대도 그가 즐기는 노래처럼 해란강기슭에서 수도 북경을 넘어 세계로활짝 나래를 펼치고 있다. 해란강 여울소리는 노래에 실려 드넓은 세상으로 울려퍼지고 있다.*    김호림

예술세계 제4호 (2013.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