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20대 100만 장자…게으른 부자는 없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1월26일 11시00분    조회:982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리학철

 
  
2009년, 연변공업학교 자동차전업을 졸업한후 리학철씨(25세)는 고향에 돌아와 전문농장을 경영하면서 자신의 인생가치를 실현하고있다.

“외국에 일하러 가든 외지로 일하러 가든 모두 돈을 벌기 위한것입니다. 사실 외지에 나가서도 돈을 벌수 있겠지만 돈을 버는 길은 꼭 한갈래 길만 있는것이 아닙니다. 무슨 업종에 종사하든간에 사업에 대한 애착을 갖고 부지런히 일하면 꼭 성공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화룡시 팔가자진 룡산촌에서 룡두산 학복농작물 재배전문농장을 경영하고있는 리학철씨의 얘기이다.

“연변공업학교를 졸업한후 많은 동학들이 외지에 돈벌러 나갔지만 저는 직접 고향에 돌아와 전문농장을 꾸리게 되였습니다. 사실 아르바이트하면서 돈을 벌수도 있겠지만 다른 사람밑에서 눈치밥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부의 농업혜택정책에 힘을 얻고 전문농장의 길을 걷게 되였는데 독립적으로 사업을 전개하니 마음이 더욱 편합니다. 또 전문농장수입도 외지에서 일하는 사람 못지 않게 창출할수 있어 무척 긍지감을 느낍니다”고 리학철씨는 털어놓았다.

원래 전문농장을 경영하기전에 리학철이네는 10헥타르 정도의 밭을 부치는데 불과했고 자그마한 가공공장 한개를 운영했다. 하지만 2010년에 자연재해를 입으면서 촌에는 밭을 버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한국출국바람이 불면서 많은 촌민들이 한국에 나가는바람에 가공공장은 더 이상 운영할수 없게 되였다. 하지만 이는 전문농장을 건설하는 기회로 되였다.

연변공업학교를 졸업한후 농업국에서 주최하는 각종 양성반에 수차례 참가했고 국가의 해당 혜농정책에 대해 깊이 료해했던 리학철씨는 전문농장을 경영하기로 결심하고 2010년부터 다른 사람의 경작지를 도급맡고 본격적으로 전문농장을 꾸려나갔다.

전문농장을 경영하며 부단히 짭짤한 수입을 창출함에 따라 그는 전문농장규모를 점점 확대해나갔다. 목전 그의 전문농장 수한전재배면적은 96헥타르에 달하고 일간 10톤을 가공할수 있는 쌀가공공장도 갖춘 상황이다. 이외 크고작은 농기계도 구전히 갖추고있다.

리학철씨는 “올해 농사가 지난해보다 매우 잘되여 순수입 70만원을 창출할 전망입니다. 금후 농장규모가 커짐에 따라 기계투입과 기초시설투입을 더욱 늘이고 기타 산업도 시작하여 다각화경영도 할 타산입니다”고 밝혔다. 목전 연변소산업을 시작하려 준비중인 그는 이미 15만원을 투자하여 400평방메터되는 소우리를 건설한 상황이다.

4년간 전문농장을 설립해 20대 100만 부자로 성장한 리학철씨는 “당시 전문농장을 금방 시작할 때에는 사실 저의 학업에 모든 심혈을 기울이고 힘겹게 농사일을 하며 고생하는 부모님을 도우려고 시작한것이였지만 현재 전문농장규모가 이렇게 커질줄은 전혀 생각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친구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있습니다. 또 예전에는 농사일에 대해 모르는것이 많았지만 전문농장을 꾸리면서 농사일에도 더욱 익숙해졌고 농장규모가 커짐에 따라 성취감도 더욱 큽니다.”고 소감을 털어놓았다.

연변일보 글·사진 현진국 기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연변농악무》와 나의 아버지 하태일 50년대 흥겨운 농악무의 한장면, 앞줄 꽹과리를 손에 들고 앉은 자세로 춤추는 사람이 하태일선생 《연변농악무》는 그 화려하고 다채로운 예술형태로 공연에서 마지막 종목으로 무대에 등장하여 관중들의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림으로써 력대로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있다. 우...
  • 2012-08-05
  • 금융위기 실패 딛고 선 조선족사나이 편집/기자: [ 김웅견습기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2-08-03 09:56:38 ] 클릭: [ ] -연변가신경제무역유한회사 최중철사장을 찾아 최중철(35살)이 연길시 애단로 흠전빌딩에서 한국KCC금강화학공업 장판무역을 시작한것은 2010년 3월이다. KCC 장판은 친환경재료로 제...
  • 2012-08-03
  • -중국프로축구 최년소감독 북경팔희팀 최은랑씨를 만나   19세기 50년대로부터 “축구의 고향”으로 불린 연변은 수많은 축구인재들이 용솟음쳐나왔지만 대다수가 선수로서만 꽃을 피운 축구인들이였다.   특히 1992년 중국축구 프로리그가 개시되면서부터 연변팀 이외의 타팀에서 고삐를 잡은 조선족...
  • 2012-08-02
  • 건군절을 며칠 앞두고 필자는 중국인민해방군 공군대좌 리광남을 만나 함께 식사하고 주숙하는 기회를 만났다. 리광남은 중국인민해방군 공군장비부 고급공정사, 전문기술대좌다  리광남(1950년출생)은 1970년에 참군, 1995년 대좌계급을 수여받았다. 그는 선후로 과학연구항목 수십건을 완수하여 1, 2, 3등 공을 각각...
  • 2012-07-30
  • 김숙자 재한동포총연합회 회장   (흑룡강신문=하얼빈) "조선족 동포들은 한국 사람들이 기피하는 일을 20년 동안 묵묵히 했어요. 한중 수교 후 지금까지 한국사회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는데, 앞으론 눈치 덜 보고 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내 최대의 조선족 동포단체 재한동포총연합회가 재한다문화총연합회로...
  • 2012-07-27
  • 연변일보   암을 선고받고도 자기의 일터를 꿋꿋이 지켜온 녀성이 있다. 딸로서 엄마로서 또한 수감인원들의 “큰언니”로서 병마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씩씩하고 충실하게 보내는 그가 바로 돈화시간수소의 유일한 녀경찰 김해옥(46세)씨이다. 수감인원 관리사업에 몸 잠가온 9년간 그녀는 녀성 특유의 섬세...
  • 2012-07-27
  • 성공가도 달리는 조선족 3세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한국 증권업계 전산(컴퓨터 관련)인력가운데 유일한 중국인으로 조선족 김성희(33)씨가 현재 대우증권에서 근무하고있다.   최근 몇년 한국증시에 상장하는 중국기업들이 늘어나면서 한국금융의 중심지 서울 여의도에 중국인 전문인력도 증가하는 추세다.   ...
  • 2012-07-26
  •   -서예학박사 조선족 서영근교수의 잊지못할 “통신학습”   지난 20세기 90년대초 한글서예로는 불모지대와 다름없는 연변에 서예에 심취해서 침식을 잊은 20대의 청년이 있었다. 굶주린 사람이 빵을 먹듯 서예에 대한 집착과 여러 대회에 출품한 작품이 입선되는 등 천부적인 소질로 주위의 이목을...
  • 2012-07-26
  • http://hljxinwen.dbw.cn   2012-07-25 10:16:43             흑룡강성 할빈적 권기민 미국 하버드대 연구원으로 임용   (흑룡강신문=하얼빈) 정봉길 기자 김세영 견습기자 = 흑룡강성 할빈적 권기민(조선족,28세)씨가 올해 미국 하버드대학 물리학부 광학전공 박사과정을 마치고 하버드대...
  • 2012-07-25
  •   공식석상에서 늘 빛갈고운 한복차림이였던것과는 대조적으로 인터뷰시 검은색 블라우스를 입은 함순녀(48세)한테서는 차분한 카리스마가 풍겼다. 현재 연변가무단 부단장이자 연변무용가협회 주석인 함순녀는 오로...
  • 2012-07-25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