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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딛고 호텔체인화를 꿈꾼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4년9월10일 13시51분    조회:8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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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름 : 강하연

 ○북경천지가든호텔 강하연사장의 창업사를 들어보다

《못난 오리》, 호텔사장으로 탈바꿈

30대초반의 한 조선족녀성이 측은한 표정으로 북경시 어느 후미진 골목의 만두집에 나타났다. 만두집에 들어선 그녀의 손엔 구겨진 10전짜리 지페 5장이 쥐여져있다.

때는 2003년, 전국을 뒤흔든 《사스》의 신속한 확산과 더불어 24시간내에 지하실에서 철거하라는 상급 부문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 50전은 겨우 얻어 입주한 지하실의 두번째달 임대료를 지불한지 며칠만에 《쫓겨난》 그들 일가의 전부 재산이였다.

그의 속사정을 꿰뚫어보기라도 한듯 만두집 주인은 일전한푼 받지 않고 만두 3개를 그녀에게 쥐여주었다. 덕분에 그날, 그녀 일가족 3명은 만두와 짠지로 허기를 달랠수 있었다.

그후 그녀는 련며칠 만두집을 찾아갔고 만두집주인은 그녀가 번마다 내미는 50전을 돌려주며 공짜로 만두를 건네기만 하였다. 우연하게 그녀가 가정교사를 하고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만두집주인은 아들애의 공부를 그녀에게 부탁했고 그때로부터 학비대신 만두를 얻어오기를 반복, 그녀의 집에는 만두가 쌓이게 되였다.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만두집주인 일가.

지난 2012년 6월 22일, 북경시 코리아타운 망경 유러파크 A좌 18층에 북경천지가든호텔(4008010857, 010-8476-6579)이 개업했다. 호텔은 1300평방메터의 면적에 싱글룸, 표준룸, 특실 등 26개 객실이 타원형으로 배치되여있어 모든 객실에서 왕징과 북경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최상의 위치에 있다.

호텔의 체인화를 고민하며 더욱 큰 도약을 꿈꾸고있는 이 호텔의 사장이 바로 9년전, 생면부지의 만두집주인에게서 만두를 얻어먹던 조선족녀성 강하연(43세)이다.

호텔내의 모든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깐깐한 강하연사장.

《작은 선행》으로 이어진 호텔업과의 인연

강하연이 고향인 길림성 화룡시에서 3년간 하던 교원생활을 접고 남편과 함께 두살난 아들을 업고 북경에 진출한건 2001년 4월, 호주머니에 달랑 남은 130원으로 북경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1년간 《코리안》잡지사 편집 겸 《청춘광장》담당자로 근무하다가 2002년부터 잡지사 사장의 지지로 조선족혼인소개소를 운영하게 된다. 여러 쌍의 조선족청년들에게 오작교를 놓아주다가 결국은 자금문제로 혼인소개소를 접었다.

올림픽 개최권을 획득한 북경시가 도시확장공사를 대대적으로 벌이며 시구역에 있던 단층집들이 줄줄이 허물어져나갔고 그들 일가는 3환에서 4환으로, 4환에서 5환으로 3년동안 13곳이나 이사를 해야만 했다.

강하연은 시장에서 채소장사들이 버린 채소를 주어다 먹기도 하며 힘든 고비들을 하나씩 넘겨왔다.

그러던 2003년 4월, 생면부지의 만주집 주인의 만두신세를 지기에 이르렀던것이다. 그후로 강하연은 가정교사, 학원교사 등을 해오다가 북경조선족기업협회의 일을 거들어주기도 했다.

북경 진출초기, 시어머니와 두살난 큰아들과 함께.

그러다가 2004년 한 리발사와의 우연한 조우가 강하연이 호텔업에 정식 입문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해, 강하연은 아들을 데리고 북경 망경의 한 리발관을 찾았다. 두 모자가 우리 말로 도란도란 주고받는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한 젊은 리발사가 《혹시 한국인이냐?》, 《한국어를 줄곧 배우고싶었는데 가르쳐줄수 있냐?》며 다가왔다.

당돌한 리발사의 청구에 의해 우리 말을 한달 넘게 무료로 배워주고있던 어느날, 리발사의 부모가 찾아왔다. 한국어를 배우고있다는, 그것도 생면부지의 조선족녀성한테서 무료로 배우고있다는 아들의 말에 너무도 고마워서 찾아왔단다. 그때로부터 두집은 끈끈한 정을 맺었다.

2005년부터 강하연은 한고향 사람으로부터 운영중에 있던 민박집을 넘겨받고 경영하였다. 2년이 지난 2007년, 그 리발사 부모의 알선으로 그들이 근무하는 사업단위 건물인 영업면적이 1500평방메터, 객실이 33개인 호텔과 임대계약을 맺었다.

강하연은 임대료와 장식비용까지 30여만원을 투자하여 호텔방을 깔끔하게 꾸며놓고 3명의 민박집 손님을 3개의 호텔방으로 입주시키면서 호텔업을 본격 시작하였고 민박집 주인에서 호텔사장으로 정식 탈바꿈했다.

여러 해동안 고락을 함께 해온 가족같은 직원과 함께.

2009년 성탄절을 쇠고있는 호텔 직원들.

닥쳐온 시련, 가족같은 직원들과 함께 이겨내

2009년 8월까지 투자금을 전부 회수하고 사업이 파죽지세로 상승일로를 걷고있다가 2011년에 또 다른 시련이 강하연을 강타한다.

호텔 소유측과의 두번째 2년계약이 만료된 시점에 호텔측의 책임자가 바뀌면서 재계약에 실패하였는데 이는 호텔경영에 사활을 걸었던 강하연에게는 너무나도 큰 시련이였다.

하지만 평소 한가족처럼 지내온 직원들이 가장 험난한 시기에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굳건히 지켜주어 큰 힘이 되여주었다.

평시 직원들의 생일을 잊지 않고 쇠여주고 설이나 명절이면 련환모임을 조직해 가족의 따뜻한 정을 나누어준 보람을 직원들의 충심에서 느낄수 있었다.

4년간 동고동락해온 직원 3명은 1년동안이나 그의 일가족과 한집에서 먹고 자며 낮이면 호텔자리를 알아보고 밤이면 그들 부부와 머리를 맞대고 재도약을 꿈꾸어왔다.

그후 여러모로 되는 노력끝에 강하연은 《실업》일년만에 천지가든호텔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되였으며 전보다 더욱 성숙되고 세련된 자세로 세인들에게 새 모습을 드러냈다.

호텔의 구석구석을 일일이 확인하는 강하연사장.

기업의 사회적책임 시종 잊지 않고

강하연의 호텔에서는 여름방학마다 동북으로부터 온 수십명의 학생들을 무료로 접대한다. 이들은 북경애심녀성네트워크(회장: 리란)가 조직하는 《희망의 꿈나무 심어주기》견학단 성원들인 조선족 중소학생들이다.

《애심녀성네트워크에 회원으로 있으면서 진정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였다》는 강하연, 7월은 호텔의 투숙 성수기이지만 그는 민족교육에 대한 자그마한 성원이라며 계속 견지하겠다고 말한다.

고향을 떠난지 어언 십여년, 고향의 취재일선에서 뛰고있는 기자들을 지지하고 싶은 소박한 마음과 고향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싶은 강하연은 북경에 취재오는 국내외 우리말 매체의 기자들에게 호텔방 한칸을 매달 이틀씩 무료로 내주기를 몇년째 견지하고있다.

성공을 위한 노력이 현재진행중인 그는 지금도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불쑥불쑥 내밀고있다.

《만두집주인이 건넨 따뜻한 만두가 오갈데 없는 나의 얼었던 마음을 녹여주었고 만두집주인을 비롯한 하나하나의 소중한 인연들이 나를 호텔사장으로 만들어주었다.》며 그는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인연의 소중함을 재삼 강조했다.

재충전을 계속해가는 강하연사장.

끊임없는 재충전으로 미래 향해 질주

교원사업을 해온 그였기에 호텔을 맡으면서 경영을 모르다보니 많은 일들을 혼자서 도맡아해야만 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전화상담에서 카운터 입주등록, 수금, 청소, 야근, 아침조식까지 호텔의 어느 부문이나 그녀의 손이 안닿는데가 없다보니 가정과 자녀교양에 신경 쓸새가 없었다.

《창업을 하면서 얻은것에 비해 잃은것이 많고 특히 자녀와 함께 해야 하는 시간은 다시 찾을수 없다.》고 강하연은 말한다. 이는《관리와 경영을 몰라서 초래한 후과》임을 터득한 강하연은 호텔을 경영하면서 짬짬히 경영관리지식을 습득했다.

관련서적을 훑고, 호텔업 선배를 찾아다니고, 전문 교육기관을 찾아다니며…

몇년간 각고의 창업을 거쳐 그는 현재 북경시 조양구녀성기업가협회 회원, 북경시길상협회회원, 북경조선족기업가협회 4분회 비서장 등 사회적직무도 맡게 되였다.

강하연: 나의 창업사나 조언이 젊은이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이라도 된다면 만족한다.

젊은이들과 나누고싶은 직장, 창업 메시지

《민족의 젊은이들을 위해 기성세대로서 할수 있는 일은 우리들이 쌓아놓은 자그마한 경험과 그동안 쌓아온 인맥까지도 아낌없이 젊은 세대들과 나누어 윈윈하는것이 아닐가?》라고 말하는 강하연, 그는 창업을 꿈꾸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싶다고 말했다. 《홀로서기창업은 너무나 큰 대가를 요구하기에 직장에 대한 리해를 더욱 강조하고싶다. 직장은 자기성장의 가장 좋은 무대이다. 직장에서 능력을 마음껏 펼쳐라. 직장을 자신의 창업무대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라. 결혼전에 많은 일을 배우고 결혼후에는 자녀와 함께 하는 시간을 철같이 지켜라.》

강하연은 그의 가감없는 창업사나 조언이 시골에서 창업의 꿈을 익혀가는 젊은이든 대도시의 지하실에서 성공을 꿈꾸는 젊은들에게 얼마만큼의 긍정에너지로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한다.

오늘도 이곳-북경천지가든호텔에서는 자그마한 인연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인간 강하연과 그가 만난 많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무르익어가고있다.

널찍하고 깔끔한 북경천지가든호텔의 싱글룸.
 

길림신문/유경봉기자(yujf@jlcxw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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