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고희를 넘어 사진작가로 된 리해숙할머니
조글로미디어(ZOGLO) 2015년12월17일 09시15분    조회:638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리해숙
사진기를  메고  산과 들을  넘나들며


    리해숙할머니.

“인생에 너무 늦은 시작이란 없다.” 이는 76세부터 회화에 전념하여 80세에 개인전을 열면서 세상에 이름을 떨친 미국 녀류화가 모지스 할머니가 사람들에게 일깨워준 도리이다. 대기만성한 모지스 할머니의 “인생역전 드라마”는 수많은 세계청년들을 격려하였다.
길림성 연길시 공원가두 원휘주택단지에서 생활하고 있는 리해숙 할머니는 고희를 넘어 사진작가로 명성을 떨쳤다. 일찍 1979년에 철도부문 렬차장까지 담당했던 리해숙 할머니는 퇴직한후 주민구역의 당지부서기와 치보주임을 력임하면서 여력을 발휘하다가 칠순을 넘긴 인생의 황혼 무렵에 사진촬영에 새롭게 뛰여들었다고 한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절대 늦은 나이는 없습니다. 무언가를 하고 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지금 바로 시작하면 좋겠어요.” 리해숙 할머니가 기자에게 건넨 좌우명이다. 이와 같은 인생신조를 갖고 꾸준히 노력해온 리해숙 할머니는 그야말로 조선족 “모지스 할머니”라 부르기에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선행으로 시작된 사진촬영
 
“저희 촬영가협회 뿐만 아니라 연길시 공원가두에서 ‘철도아매’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리해숙 할머니는 유명하지요.” 곁에 앉은 연길시 로촬영가협회 최연문 회장은 엄지손을 들었다. 최회장은 리해숙 할머니는 고령임에도 같은 년세의 어르신들보다 훨씬 건강하며 항상 자신감이 넘쳐 주변사람들에게 늘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해주는 활력소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리해숙 할머니는 평소부터 누군가를 도와주기를 좋아했다. 리해숙 할머니는 퇴직후 연길시 공원가두 원휘주택단지에서 주민들을 위해 복무하다가 당지부서기 겸 치보주임을 도맡았을 뿐만 아니라 뢰봉반의 일원이였다. 근 20년간 주택단지의 업무를 해오면서 리해숙 할머니는 불우이웃들을 많이 도왔다. 자식이 곁에 없는 로인들의 수발로부터 부모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된 처지에 이른 어린 학생들까지, 그는 따뜻한 손길을 보내줘 그들로 하여금 삶의 의지를 되찾게 하였다.

주택단지의 주민들을 위해 무료로 사진을 찍어주는것 역시 리해숙 할머니가 평소부터 해오던 선행이였다. 사진기와 전혀 인연이 없다싶이 살아온 리해숙 할머니는 그 시기로부터 사진촬영에 흥취를 가졌다고 한다. 2006년 일흔을 넘긴 나이에 그는 연길시로촬영가협회에 회원가입 신청을 제출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년로한 할머니가 무슨 힘으로 육중한 촬영설비들을 어깨에 메고 산을 오르내리며 사진을 찍겠는가 하고 걱정을 해왔다. 더군다나 사진기의 사용방법을 제대로 익힌다는것도 쉬운 일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당시 최연문 회장은 셔터를 한번도 눌러보지 못한 리해숙 할머니의 사정을 알고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고 한다.

“아니, 나이가 많다고 해서 안된다는 법이 없잖아요. 꼭 배울테니 이 늙은이를 학생으로 받아주세요.” 결국 리해숙 할머니의 간절한 청구에 못이겨 로촬영가협회는 그를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그는 협회의 최고령 회원이였다.
 
“여보, 사진 많이 찍소.”
 
몇년전까지만 해도 병상에 누워 있던 남편이 리해숙 할머니가 야외촬영을 나갈 때마다 하는 당부였다. 남편은 고된 질환으로 장기간 병상에 누워있다보니 바깥세상을 구경하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 되였다. 그럴 때마다 안해가 찍어온 사진작품들을 감상하며 바깥세상을 보고 싶어 하는 허기를 달랬다고 한다. 바깥출입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구경시켜주는것 역시 리해숙 할머니가 사진촬영에 더욱더 집념하게 된 커다란 동력이 되였다.

리해숙 할머니는 촬영가협회에 가입한후 촬영강습반에 다니면서 사진기의 사용방법을 꾸준히 익혀갔고 촬영기술을 련마하기 위해 부지런히 뛰여다녔다. 룡정의 진달래꽃축제, 사과배축제, 훈춘의 사과축제 등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면 사람들은 사진기를 목에 걸고 바삐 돌아치는 리해숙 할머니의 모습을 볼수 있었다.

리해숙 할머니는 그뿐만 아니라 협회에서 조직하는 야외촬영활동에도 한번도 빠짐없이 참가하였다. 산을 오르거나 할 때면 사진기, 전용렌즈, 삼각받침대 등 촬영설비에 도시락과 물통까지 합해서 도합 20근이나 되는 짐을 감수해야 함에도 힘든줄을 몰랐다.
“산을 오르면서 머리속에는 항상 어떤 구도를 잡을것인가를 생각하지요. 내가 바라는 화면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오르다보니 등에 짊어진 짐이 전혀 무게감을 못느끼지요.”
이처럼 끈질긴 노력과 인내심으로 뒤늦게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벌써 12년이라는 경력을 쌓았다. 가장 아름다운 화면, 가장 리상적인 구도를 찍기 위해 리해숙 할머니는 항상 사고하였다. 공원에서 옥수수를 발가먹는 다람쥐의 모습을 렌즈에 담으려고 4시간동안 다람쥐를 쫓아다녔던 이야기, 산간을 질주하는 고속렬차를 포착하려고 산등성이에 엎드려 몇시간동안 기다리면서 셔터를 누를 가장 적절한 순간을 기다린 이야기, 이런것들은 로촬영가협회에서 누구나 잘 아는 일화가 되였다.

리해숙 할머니의 집바람벽은 온통 사진작품들로 자그마한 전시관을 방불케 했다. 지금까지 창작한 사진작품은 무려 2000여폭이나 되였고 그중 수상작만 300폭이 넘는다. 당연히 이 모든 작품은 그의 충실한 팬인 남편을 위해 정성들여 창작한것들이다.

리해숙 할머니의 “진달래”, “폭포수”, “백년부락”, “민족단결” 등 여러 촬영작품은 아름다운 고향산천의 인문정서를 독특한 예술적 시각으로 반영하였다는 리유로 여러 차례나 크고 작은 상을 따냈다.

어느 누가 “석양은 한없이 좋은데 다만 황혼에 가까울 뿐”이라고 했던가. 일흔에 사진촬영을 시작하여 여든에 진정한 사진작가로 변신한 리해숙 할머니는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라,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삶의 철리를 깨우쳐준다.▣

글 김향덕/<중국민족>잡지 2015년 6호

파일 [ 3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일전 길림성 영길현 구전수리전업1국에서 근무하다 정년퇴직하였다는 김기영씨(71)가 불편한 몸으로 기자를 찾아왔다. 두툼한 자료봉투를 꺼내놓으며 털어놓는 사연인즉 독립군의감(醫監)출신인 부친 김환(金煥)의 독립투쟁경력이 해빛을 보게 해달라는것이였다. 본인의 조사자료와 한국, 연변대학 등지에서 수집한 문헌자료...
  • 2005-12-15
  • [원제: 동심에 살던 그 시절이 그리워] 일찍 중국선진생산자의 일원으로 중국군영회(群英會)에 참가하고 소수민족대표로 주은래 등 중앙지도자들의 접견을 받았던 최윤복로인(76세)은 근 반세기가 지난 오늘이지만 그때의 그 영광이 새삼스럽기만 하단다. 최윤복은 1948년에 화룡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의 어린 나이에 화룡...
  • 2005-12-14
  • 중국 일류 대학생들의 선두인물 권정 김호림ㅣ중국국제방송국 기자 jinhulin@hanmail.net 권정(權靜), 그 이름에 사람들은 거개 생소함을 느낀다. 그러나 북경 대학입시 수석합격자라고 하면 대뜸 “아, 그 애 말이예요”하고 저마다 엄지손가락을 내밀군 한다. 북경에서는 2000년에 아주 드물게 2000년에 대학입시성적 성적...
  • 2005-12-14
  • [한겨레] 말총머리 휘날리며 날카롭게 상대를 쏘아보던 자오즈민. 2.5g짜리 탁구공 하나의 마술로 세계를 제패하며 중국 마녀군단의 선봉에 섰던 그는 1989년 한국 남자탁구 국가대표 안재형(41)과 결혼해 큰 화제를 뿌렸다. 한국과 중국이 적대국이었던 시절, 이 둘은 탁구를 통한 ‘이념과 국경을 초월한 사랑’으로 모두...
  • 2005-12-10
  • 장백조선족자치현 십이도구진 십이도구촌의 리병권농민은 북오미자재배로 치부의 길을 개척하고있다. 올해 49세인 리병권농민은 2003년에 과전현 등지에 가 자비로 북오미자재배기술을 배운후 퇴경환림으로 지난해 촌의 42무에 달하는 다락밭을 도급맡았다. 그는 선후로 9만여원의 자금을 들여 외지로부터 당지 기후에 적합...
  • 2005-12-08
  • [원제:김부인모피복장회사 신장 개업] 조선족 기업가 최명철씨가 총경리를 맡고있는 김부인모피복장회사가 지난 2일 할빈 도외구에서 성대한 의식을 가지고 신장개업에 들어갔다. 40여년이란 오랜 력사를 가지고 있는 김부인모피복장회사는 최근 년간 미국, 한국, 일본 등 나라들을 비롯한 국내외 수십여개 모피복장유명회사...
  • 2005-12-08
  • 한 평범한 가정주부가 연구 발명해낸 “일종 대퇴골괴사치료약물 및 그 제법”이 국가발명특허를 따내여 린근의 주의를 끌고 있다. 훈춘시에 거주하고있는 김영자(50세)는 다년간의 투병중 꾸준히 병마와 싸워가며 자기 몸을 제1실험실로 삼아 마침내 국가특허약물을 연구발명하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18살 꽃나이시절에 그...
  • 2005-12-08
  • 가렬처절한 조국해방전쟁에서 두손을 잃었으나 《이 생명 다할때까지 혁명하겠다》는 호언을 남겼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퇴역해 한생을 묵묵히 농업생산에 종사한 이가 있다. 그가 바로 전국군인모범으로 주덕, 주은래의 접견을 받았던 리수봉(78세)로인. 유소년시절부터 심양, 할빈 등 지를 류리걸식하던 리수봉씨는 1945년...
  • 2005-12-07
  • 우리 민족이 북방지역 벼재배력사를 개척한지 120여년이 되는데 그동안 북방입쌀 생산, 발전에 불후의 기여를 하고 많은 시대적과학기술일군을 배태시켰다. 20세기말 특히는 시장경제가 활성화하여 입쌀미질경쟁이 치렬할 때 국가특수대우향수자이며 길림성농업과학원 김윤주(지금 김심인이라 부름)연구원은 세계에서 처음으...
  • 2005-12-06
  • 12월 4일 제5차 《전국법제선전일》을 맞으며 2005년 《년도10대법제인물》 평선결과가 발표되였다. 이들로는 허문유: 료녕성공안청 형사정찰총대 대장 형사경찰의 본보기. 동려화: 공익변호사 약자의 권익 수호자. 진건교: 호남성인대 대표 마음은 언제나 민중과 함께. 중국법률원조기금회: 약세군체를 위해 소송을 걸고 자...
  • 2005-12-06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