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가수 박혜자 '탄탄한 가수가 될거에요!'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2월19일 22시47분    조회:689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박혜자

[청춘은 예쁘다]박혜자 “중국농민가요대회” 내 꿈에 대해 확신 열어준 곳, 탄탄한 가수가 될거에요!”


오디션에 참가했던 기억을 이야기하고 있는 혜자양

설명절 연휴기간이였던 정월 초닷새날, 길림성 연길시공안국신고쎈터 골목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혜자양을 만났다. 설명절 기간에도 혜자양은 변함없이 무대에 올라 “TOP ENTERTAINMENT”를 찾아온 손님들에게 멋진 노래를 선물하느라 바삐 보냈다. “중국농민가요대회”에 참가해 얼굴을 널리 알린 혜자양이였지만 전과 다를바없는 평범한 무대생활에 충실하고 있었다.
1년전 이맘때도 그랬다. 밤무대에서 노래를 하고있는 혜자양에게 생각지도 않게 기회가 찾아들었다.

설명절기간 “TOP ENTERTAINMENT”에서 손님들에게 멋진 노래를 선물하고 있는 혜자양

[박혜자] “같이 일하는 선배분께서 저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안휘 위성텔레비죤방송국 프로듀서가 농민가요대회 참가자를 찾으러 연길에 왔다는 것이였습니다. 어느날 그 프로듀서님께서 정말로 저를 찾아와서 출전할 의향이 없냐고 물으시더군요. 처음엔 거절했죠, 그러다가 그분의 권고대로 록음을 하고 동영상도 찍고 하다보니 점차 마음이 동하더라고요. 그렇게 영상물과 록음자료들을 제작해서 보냈어요, 그쪽 총감독님이 마음에 들어한다는 소식에 참가하기로 결정했어요” #

제5차 중국농민가요대회 대기실에서 출연진과 함께

혹여 시간랑비가 아닐가, 위험하진 않을가 많이 망설였지만 이런 큰 대회에 한번쯤 참가해서 경험을 쌓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에 혜자양은 과감히 안휘행을 택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 안휘 위성텔레비죤 공개방송홀에는 혜자양의 상상속 그 화려한 무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주로 조선족 청중들을 대상으로 노래를 불러왔던 혜자양이 한어말 노래를 단시일내에 소화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워낙에 아는 노래가 몇곡 없었던터라 출전을 위해서는 담당 지도원의 추천곡을 그때그때 받아서 짧은 연습시간동안 바로바로 흡수해야 했기 때문이였다.

[박혜자]

아는 한어말 노래가 없다보니 담당 지도원에게서 추천받은 노래를 해야 했습니다. 그때그때 받아서 배우다보니 가사를 외우기가 가장 어려웠습니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까지도 저의 지도원은 손에 땀을 쥐였었죠. 저도 자신이 없어하고 그 분도 연습 무대에서 자꾸 실수하는 저를 보면서 확신을 갖지 못한 상황이였습니다. 리허설이 시작되기 전이였습니다. 현장 감독님들이 저에게 ‘모두 너의 편이다’라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얼마나 힘이되던지…” #

리허설 무대가 아닌 정식 무대에 올라 전주곡이 흐르던 그때 혜자양은 어떤 생각을 했을가?

1라운드 대결에서 “꿈처럼 자유롭게”를 열창하고 있는 혜자양

[박혜자] “일단 가사를 틀리게 부르지 말아야지 생각했습니다, 가사가 틀려서 주위사람들에게 실망을 주는 일은 원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눈을 감고 지도원이 가르쳐준 사항들을 념두에 두고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꿈처럼 자유롭게’라는 노래였는데 가운데 우리말로 번역해서 부르게 되였어요, 그 부분에 이르니 시름이 확 놓이더군요. 그래서 눈을 떴는데 관중들의 큰 환호성을 받았어요, 심사위원들의 밝은 표정도 눈에 들어왔고요. 긴장이 완전히 풀렸습니다. 2차 대결 때는 400명 가까이되는 관중들이 저의 이름을 불러주더군요, 탈락했지만 참 감동적인 순간이였습니다. 눈물이 절로 나더라구요. (웃음)” #

꽃파는 혜자양 ^^

오디션기간에 대결과 연습에 치이다 보니 고향의 분위기도 잘 몰랐다는 혜자양, 자신을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았다고 했다. 혜자양은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운적이 없었다. 주위 선배님이나 동료들의 노래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거기에 자기만의 색갈을 넣어 따라부르는 게 전부였다.

[박혜자] “정말 노래를 잘 하고 싶은 데 목이 자꾸 쉬고 아프고 하니까 심할 때는 혼자서 운적도 있습니다. 그런 저를 보면서 주위 선배님들께서 조언해주셨고 저도 자주 그분들께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한때는 근처 선배님을 찾아서 록음을 해보기도 했죠.” #

저의 유년기는요~

중학교시절부터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우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갈등끝에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교육학과에 진하기로 최종 합의를 보았지만 혜자양은 음악교육 역시 자신의 진로가 아님을 깨달았다.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담량이 나왔을가. 대학시절 혜자양은 학업을 접고 무작정 중국음악학원을 찾아갔다. 단순히 자신의 노래 기질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제1차 중국농민가요대회 전국 순회탤런트쇼에서 유명 기타리스트랑

[박혜자] “아무 사람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중국음악학원에 도착해서 보안일군의 안내를 받아 교무처로 갔습니다. 목소리를 검증받고 싶어서 왔다고 저의 의사를 이야기했죠. 그랬더니 저를 음성 정밀검사실로 데리고 가는거에요. 저처럼 저음을 내는 사람은 리론상 키가 아주 크거나 목이 길어야 하는데 저는 정반대였거든요. 검사결과 다행히 이상은 없었습니다. 일단 목소리는 인정받았으니 다시 연변대학 예술학원으로 돌아와서 음악표현 학과에 재입학하려는 희망을 안고 말이죠.”

그렇게 다시 연변대학 예술학원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현실은 또 그게 아니였다. 음악교육학과에서 음악표현학과로 바꾸기엔 여러가지 제한 사항들이 많았고, 그래서 혜자양은 다시 음악교육학과에 재입학해 어머니의 당부대로 음악교육 학위를 수여받았다.

예쁘게 봐주세요!

얼핏 보기에는 달라진 게 없는듯 보였지만 오디션에 참가한 6개월간 혜자양은 많이 참 성장했고 28년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간들을 보냈다. 하지만 “득” 뒤에는 늘 “실”이 따르기 마련이라고 혜자양은 말한다. “몰라도 되는데 알아지는 것”이 많았다면서 혜자양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박혜자] “대회에 참가하기 전과 비교했을 때 제가 많이 소심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분들이 저를 알아봐 주시고 관심을 가져주는 건 너무 고마운데 또 한편으로는 이런 이야기도 돌더라구요. ‘대회에 한번 출전하더니 이러쿵 저러쿵 …’ 너무 평범한 삶을 살아온 저에겐 너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그렇게 크게 뜬 것도 아니고 ㅋㅋㅋ 시간이 지나면 점차 나아지겠죠, 그래도 저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분들이 더 많다는 게 고마울 따름입니다.” #

저의 아빠에요!

힘겹게 지켜온 꿈에 날개를 달아준 “중국 농민가요대회”의 잊지못할 추억들을 회상하며 혜자양은 꿈너머에 자리한 아름다운 날들을 이야기했다.

[박혜자] “ ‘중국농민가요대회’ 같은 큰 무대에 기회가 된다면 또 한번 참가하고 싶습니다. 요즘따라 왠지 자꾸 그때의 그 감동과 짜릿함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습니다. 엄마, 아빠가 한국에 계세요, 음악으로 어떻게든 성공을 해서 하루 빨리 부모님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2015년 저의 노래를 많이 사랑해주시고

또 저를 많이 응원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테니까요 기대해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글/구서림 사진/ 리향화 
중앙인민방송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중국공산당 창건 100돐 경축 '7.1 훈장' 수여식이 29일 오전 10시 인민대회당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였다. 중공중앙 총서기이며 국가주석이며 중앙군위 주석인 습근평이 ‘7.1훈장’을 수여하고 중요연설을 발표했다. 그중 중국 수석 총탄흔적감정전문가인 최도식(崔道植)이 유일한 조선족으로 &ls...
  • 2021-06-30
  • 중국 공산당 당원, 중국공정원 원사, 우리나라 원격기술의 주요 창도자 중 한사람, 마이크로파 원격탐지기술의 개척자, 중국과학원 국가공간과학센터 연구원, 박사과정 지도교수인 강경산 동지가, 2021년 6월 27일 14시, 질병으로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하고 북경에서 서거했다. 향년 85세이다.   1936년 2월 8일, 길림...
  • 2021-06-29
  • 본보기의 힘은 큰 것이다. 당창건 100주년을 맞이하여 본지는 료녕성조선족련의회와 함께 '조선족당원풍채' 시리즈보도를 펼쳐낸다. 전형 당원가정, 로당원, 중청년당원의 초심을 잊지 않고 당과 민족 사업을 위해 분투해온 스토리를 통해 시대적 정신을 구현하고 당원들의 고상한 정신세계를 펼쳐보려고 한다. &m...
  • 2021-06-29
  • “혁신을 넘어 하루빨리 상용화됐으면 합니다.”   신형 무단변속기 특허기술 이뤄낸 리철남씨 인류는 그동안 끊임없이 운전이 편한 자동차 만들기에 주력해왔다. 수동변속기가 불편하다고 해서 자동변속기가 등장했고 이 또한 변속에 한계가 있어 무단변속기가 발명되였다. 자동변속기의 일종으로 교...
  • 2021-06-23
  • 미술은 내 생의 동력이다   장철주 화백   중국미술가협회 회원이며 길림성 조선족 미술인협회 사무 부총장인 장철주 화백(1962년생)은 2006년에 작품 “춘하추동”과 “량산의 자매”로 중국미술가협회 19차 신인신작전시에 입선되였으며 그의 작품 “기억을 잠그다”는 2010년 ...
  • 2021-06-21
  • —연길 옥시국시음식점 정진 사장, 목구멍에 얼음 걸린 아이 구급한 영상 인터넷에서 화제   6.1 아동절에 즈음해 연길 옥시국시음식점(玉稀国玺苞米面条馆)의 정진(郑真, 조선족, 50세) 사장의 선행이 담긴 영상이 여러 인터넷 플래트홈을 후끈 달구면서 정진은 본의 아니게, 하루 사이에 인터넷 ‘왕훙&r...
  • 2021-06-03
  • 제4차 국가급 무형문화재 대표적 전승인 기록사업이 가동된 가운데 5월 25일부터 27일까지 조선족농악무(철령) 리영호 전승인에 대한 1단계 기록사업 - 구술편 인터뷰가 진행됐다     3일간 이어진 인터뷰는 리영호(1948년생) 전승인의 기본정황, 제자와 농악무팀, 탈춤, 농악무의 사회인지도와 영향력 등 전승인...
  • 2021-06-02
  • 〈털 없는 개〉(리종훈, 김웅걸 작, 1991년), 〈헤톨부대〉(리광수 작, 1996년), 〈금개구리〉(김영, 최인호 합작, 1999년) 등 좋은 연극을 만들어 중국 조선족 연극 무대를 다채롭게 장식했던 연출가 최인호(1946년―2007년), 그는 ‘괴재(怪才)’, ‘기재(奇才)’로 불릴 만큼 인간사회의 힘들고 지...
  • 2021-05-27
‹처음  이전 4 5 6 7 8 9 10 11 12 13 1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