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국가1급 성악가 방초선 선생님은 지금?
조글로미디어(ZOGLO) 2016년5월5일 22시20분    조회:1092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방초선

국가1급 성악가 방초선 선생님

중국방송예술단 국가 1급 배우, 국제성악콩쿠르 입상자, 국무원 특수유공자 수당 수령자, 전 전국정협위원...등 소프라노 방초선 선생님에게는 늘 화려한 수식어가 붙는다.  

“처녀의 노래”, “사과배 따는 처녀”, “고향산기슭에서” 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연변인민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 방초선 선생님, 고향 연변을 떠난지도 어언 40여년 세월이 흘렀다.   

선생님의 최근 행보가 궁금했었는데 마침 지난해말 중앙텔레비죤방송국에서 주최한 중국 10대 “80세이상 성악가 음악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공연때마다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역시 고운 한복을 떨쳐입고 곽란영(郭兰英),리광희(李光羲),호송화 (胡松华), 류병의(刘秉义) 등 국내 쟁쟁한 성악가들과 한 무대에 선 방초선 선생님, 믿기지 않지만 올해로 84세이다. 그야말로 세월이 빗겨간듯한 아름다움과 기품을 자랑했다.

조국 방방곡곡에 울려퍼지며 한시대를 풍미했던 “붉은 태양 변강 비추네” 가 선생님의 고운 목성을 타고 관객들의 가슴에 녹아내렸다. 선생님의 노래와 함께 그 시절 수많은 추억의 편린들을 떠올리며 관객들은 잠시나마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갔다. 젊은 시절의 박력과 호매함은 덜하겠지만 대신 삶의 년륜이 그대로 묻어나는 선생님의 열창에 모두가 감격했다. 

특히 남편 왕개평 선생님이 무대에 올라 방선생님과 함께 한 55년 인생 경력을 이야기하며 우리말로 관중들과 인사를 나누는 장면은 감동 그 자체였다.  

이렇게 두분은 인생 동반자로서, 사업 파트너로서 반백년을 나란히 무대에 섰다. 그동안 두분은 해내외에서 80차례 음악회를 열며 수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은퇴후에도 두분은 크고 작은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방선생님의 말대로라면 노래 실력을 떠나 팔순고령에 무대에 설수 있다는 자체가 더없는 축복이 아닐수 없다. 동년배 예술인들가운데 장기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 일찍 저세상으로 떠나버린 사람들도 수두룩한데 말이다. 선생님은 오늘이 있기까지 철저한 자기관리가 뒷받침했기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선생님은 매일 발성연습을 하고 엄격한 식단관리, 운동으로 건강을 챙기고 있다.   

무대우의 화려한 모습 뒤에 숨겨진 선생님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가,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선생님의 저택을 찾았다.

정갈하고 품위있게 꾸며진 거실 곳곳에는 선생님의 공연사진과 생활사진, 가족사진들이 보기좋게 걸려있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세상 부모 마음은 똑같은가보다. 선생님은 가족사진을 가리키며 “자식자랑”을 한다. 큰 아들은 카나다에, 둘째 아들은 영화인으로, 딸은 일본에...장성한 아들딸들이 각자 제자리를 찾아 열심히 사는 모습이 퍽 대견스러운 모양이다. 부모에게 있어 자식의 성공만큼 더 기쁜 일이 어디 있으랴. 

벽에 걸려 있는 사진들을 통해 선생님의 일대기를 한눈에 읽을수 있었다.  

1957년 모스크바 제6차 세계청년축제 성악콩쿠르 참가 당시 앳된 처녀의 모습에서 얼마전 중국 10대 80세이상 성악가음악회 공연 당시 대성악가의 품위 있고 노련한 모습에 이르기까지, 선생님은 예술가로 장장 70년간 외길 인생을 살아왔다.   

1957년 모스크바 공연당시 사진  

최근 중국 10대 “80세이상 성악가 음악회” 공연 사진  

70년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은것이 있다면 늘 웃음을 담은 밝은 얼굴 표정과 예술에 대한 무한 사랑이다. 

그 변함없는 밝은 표정이 평생 긍정적인 생활 마인드를 갖게 했고 예술에 대한 무한 사랑이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무대에서 활동하며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게 한것 같다. 

매주 토요일, 선생님의 저택은 시끌벅적하다. 

바로 지역사회 합창대 성원들이 어김없이 선생님의 집을 방문하기때문이다. 1년전 우연한 기회에 지역사회 합창대와 인연을 맺게 된 선생님, 지금까지 무보수로 합창대 지휘봉을 잡고 있다. 

방선생님은 피아노를 치면서 합창대 성원들의 발성 연습을 지도하고, 발성 연습이 끝나고나서는 왕개평선생님이 직접 편곡한 음악을 틀어놓고 노래 연습을 한다. 

합창대 성원들은 대부분 5,60세 되는 주부들로 대부분 성악 기초가 없다.  그러나 선생님이 이끌면서 합창대는 망경지역 합창 공연에서 수상까지 하는 비전을 가져왔다. 지금 합창대 성원들과 선생님은 사생간이 아니라 친구 같이 허물없이 지내고 있다. 선생님이 워낙 이름난 성악가이고 무대에서나 봐온 명인인지라 근접도 어려울것이라고 생각했던 합창대 성원들, 선생님과 1년간 접촉하면서 하나같이 선생님은 “틀없는 스타”, “큰 언니” 같은 분이라고 말한다. 

 

고향이 연길이라는 합창대 가철국(贾铁菊)씨는 “이렇게 유명한 분과 이웃이 된것만으로도 행운인데, 선생님 밑에서 노래를 배우고 선생님과 가족같은 정을 나눌수 있다는것이 꿈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합창대 주려평(朱丽萍)씨는 “선생님의 집에 오면 그 어떤 신성한 기운이 돌고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사랑의 자기장까지 느껴진다”고 했다. 

선생님 저택을 처음 방문해 선생님과 두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느꼈던 바로 그 기운이 사랑의 자기장이였고 모든걸 품을수 있는 넓은 흉금,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겪고나서 속세를 달관한듯한 그 느긋함이 인생의 석양을 맞이한 선생님의 진정한 원숙의 미라는것을 합창대 성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재확인하게 되였다.  

팔순 고개도 반쯤 가까이 온 선생님은 “모든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모든것을 포용할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다.  “젊은 시절에도 이 같은 생각을 했다면 좀 더 수월히 살았겠는데...” 진담 반, 농담 반 섞인 선생님의 그 말이 오래도록 가슴속에 남는다. 

평생 정상을 달려온 선생님으로 많은 사람들의 시기와 눈총을 받기는 당연한 일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런것들에 기죽지 않고 오히려 더 높이 비상할수 있는 힘으로 키워 지금까지 달려왔다.

남편 왕개평 선생님은 한마디로 방선생님은 “정해진 목표가 있으면 만사 불문하고 앞만 내다보며 달리는 강한 녀성”이였다고 개괄했다. 

사업에서 그랬던것 같이 생활에서도 선생님은 자기관리를 철같이 하고 있다. 로년에 오는 각종 질환과 비만을 막기 위해 하루 두끼 식사를 고집하고 식사를 할때도 성급함은 금물, 꼭 수십차 씹어서 오래 드신다고 한다. 또 치아관리도 철저하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선생님은 오복중의 하나라는 건강한 치아를 자랑하고 있다. 선생님은 팔순 고령에 컴퓨터를 익히고 위챗도 하며 인터넷 쇼핑까지 즐기는 등 신생사물에도 밝다.  

건강 장수의 비결을 묻는 질문에 선생님은 뭐니뭐니 해도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늘 좋은 일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흠집을 보더라도 그럴만한 리유가 있어서 그러려니 생각하며 편하게 받으들이면서 마음의 수용력을 키워야 한다고 한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가, 선생님의 그 깊고 맑은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선생님한테서는 오랜 포도주의 진한 향이 느껴진다. 

부디 그 향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아름다운 석양을 수놓아가길 바란다.   

글/사진 조향란 중앙인민방송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58년, 봄, 김 철은 귀향한다. 그가 맨 배낭에는 전쟁의 초연 속에서 쓴 '전선 시초'1백 여 편이 들어 있었다. 해란 강변엔느 새움이 돋고 있었다. 연변 땅을 밟으며 가슴이 벅찼다. 즉흥시가 떠올랐다. "이른 봄 해란 강에 아지랑이 피는 데/귀환병과 처녀는 고향 길을 거닐었네/담벽 같은 앞가슴에 주렁진 훈장은/결결한...
  • 2005-10-25
  • 북경 킹스카이정보기술휴한회사 김호동사장 중국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북경의 중관촌, 중국 IT시장을 선도하는 북경시장에서 민족기업가인 김호동사장도 중한 상무교류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개발, 사이트 개설 등으로 선두역할을 하고있다. 길림성 도문시 출신인 김호씨는 1988년 7월 중앙민족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
  • 2005-10-24
  • 1700여개 한국기업 입주 상주 한국인 8000여명 대련은 중국 동북3성의 대외개방 및 경제개발의 창구로서 가장 큰 해안무역도시이다. “대대련건설”(大大連建設) 가속화와 중한량국간 경제관계의 진일보 발전으로 한국굴지기업들의 대대련투자가 발빠른 행보를 거듭하고있다. 특히 올해 한국 조선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 2005-10-24
  • [원제: 일반인도 “항천꿈”실현 가능] 할빈공대 김영덕교수 신주시리즈 우주선 청사진 그려 최근 기자의 취재를 받은 할빈공업대학 항천학원 김영덕교수는 “몇천년후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실험을 하고 일반인들도 우주려행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향후 중국항천사업발전의 미래를 전망하고 우주선이 우주를 비...
  • 2005-10-24
  • 김상기 일가는 길림시 교외의 가반가에 눌러 앉았다. 길림시에서 서북쪽으로 공장구역-하다만을 지난 송화강 나루터를 지나면 불과 십리도 못 되는 시골이었다. 일명 북길림이라 했다. "길림시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를 가면 신길림이 있었죠. 일본인 마을이었지요. 만주석유회사도 있고, 잘사는 동네였습니다. 신길림에 사는...
  • 2005-10-24
  • 전남-곡성군 입면 삼오리, 넓지 않은 벌판, 옥답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김상기는 유년기, 엿 궤짝을 둘러메고 정처 없이 흘렀다. 그러다 거지가 됐다. 울산에서 또래 거지를 만나 친구가 됐다. 부둣가로 놀려 갔다가 일본의 화물선과 인연이 된다. 화부다 됐다. 화물선은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큰 화물선 회사 소속이었다...
  • 2005-10-21
  • [원제: 어려움속에서 성공한 행운아] 2005-10-20 10:21:37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마음씨 고운 뭇사람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학습에 노력하여 중국의 명문대학인 절강대학에 입학한 정춘매학생은 참으로 행운아였다. 집이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에 있는 정춘매학생의 가정은 본래 생활형편이 괜찮았다. 그런데 자녀의 공부뒤바...
  • 2005-10-20
  • 중국은 요즘 101세를 일기로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원로 문학가 바진(巴金) 중국작가협회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득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고 숨을 거둔 상하이를 비롯해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현대문학관이 있는 베이징, 1904년 그가 태어난 쓰촨성 청두 등에서 추도 행사가 한창이다. 중국 신문들은 엄청난 지면을...
  • 2005-10-20
  • 유년 시절의 대가족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에 외할머니가 파금을 안고 있고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파금의 모친이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17일 세상을 등진 파금(巴金)은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04년 11월24일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서 태어났다. 본...
  • 2005-10-20
  • 항미원조시기 파금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작가였다. 1952년 3월 31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4월이후로는 개성 제1선으로 나갔다. 그는 친히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영웅들속에서 생활》하였고 10월에야 귀국하였다. 그후 1965년까지 그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 대해 노래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이 시...
  • 2005-10-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