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풍진 속 사나이'의 전설을 다시 말하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5월30일 09시33분    조회:7592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인물이름 : 석산린

       흑토벌의 진달래-2

  우리민족 기업의 멘토—석산린과 창녕그룹

  (흑룡강신문=하얼빈) 우리는 건국 70주년을 맞아 80년대 ‘조선족 공업대학’으로 불리웠던 창녕그룹과 창년그룹 창시자 석산린을 떠올려 본다.

  오늘의 조선족기업이 있기까지 그 기반에는 우리민족 기업인들에게 멘토 역할을 했던, 혹은 우리민족 기업의 산실 역할을 했던 석산린과 창녕그룹이 있다. 과거 그가 직,간접으로 육성한 기업가들이 전국 급수설비 공급 령역의 90%이상을 차지해 창녕그룹은 ‘조선족 공업대학’으로 불리웠다.

 

 

업무협약식에서 사인을 하고 있는 선산린총재(우).

  석산린과 창녕의 전신후세(前身后世)

  석산린은 1945년 길림성 동풍현에서 출생, 할빈공업대학 핵물리학과를 졸업했다. 1967년 ‘문화대혁명’에서 취중 진담이 화근이 되여 현행반혁명으로 사형판결을 받았으나 재심리를 거쳐 징역 15년 판결을 받았다. ‘문화대혁명’ 결속 후인 1979년 감형으로 석방되였으며, 출옥 후 흑룡강상업학원에서 강사로 근무했다. 1984년 자동급수설비를 발명하고 1985년 ‘할빈창녕급수설비공장’을 설립했다.

  ‘할빈창녕급수설비공장’은 1990년대 중반 총부를 북경으로 이전, 급수설비 공급상으로부터 기계, 전자, 식품, 경공업과 건축 등 5대 업종을 포섭하는 대형 그룹으로 발돋음했다.

  ‘창녕그룹’은 1995년 국가공상행정관리총국으로부터 전국 제3대 민영기업 칭호를 획득했고 석산린은 11억원의 자산으로 2001년 ‘포부스 중국 대륙 100대 부호’ 51위에, 2002년에는 ‘호윤 중국 대륙 100대 부호’ 68위에, 2003년에는 ‘호윤 중국 대륙 100대 부호’ 76위에 오르는 등 휘황한 업적을 이뤘다.

  급수설비 령역의 ‘대혁명’을 일으켰던 ‘창녕그룹’과 석산린은 조선족 기업 발전사에 획기적인 한획을 그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민영기업 발전사에도 중대한 기여를 했다.

 

직원들과 함께 있는 선산린총재(가운데).

  ‘창녕’의 탄생

  ‘문화대혁명’ 후 석산린은 흑룡강성상학원(할빈상업대학 전신)에서4년간 대학강사로 일했다. 동료들은 그를 훌륭한 교수감이라 했지만 그는 좀체로 만족되지 않았고 조만간 강단을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매일과 같이 층집들이 일떠서고 있는데 물공급은 여전히 50년대의 낡은 방법을 쓰고 있다. 면적을 적게 차지하고 전기 소모량이 적으며 자금이 적게 드는 새 급수설비를 만들어 낼 수는 없을가?’

  자신의 기발한 생각에 격동된 그는 종이장을 펼쳐놓고 ‘급수혁명이 바야흐로 시작될 것이다!’고 썼다.

  그로부터 100여일이 지났다. 그는 끝내 자동으로 공기의 힘을 증가해주는 자동기압급수설비를 연구, 설계해 냈다.

  완성된 자동기압급수설비의 설계를 깐깐히 검토한 석산린은 시험제작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학교에 사직서를 냈다.

  1985년4월 4일, ZQS-1형 자동기압급수설비가 시험 운행에 성공했다. 4월 29일, ZQS-1형 자동기압급수설비는 성급 기술감정에 통과되여 ‘흑룡강성과학기술성과’ 증서를 받았으며 7월 1일에는 흑룡강성과학기술위원회로부터 ‘흑룡강성 새 제품 발명’증서를 받았다.

  그때로부터 3년이 지났다. 석산린의 예언대로 황페하던 들판에 800명 종업원을 가진 기업이 일떠섰다. 1987년에 5000평방미터에 달하는 6층짜리 건물을 지은데 이어 1988년에 또 다른 6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그외 3500평방미터에 달하는 과학기술 연구청사와 4500평방미터에 달하는 용접직장… 황페하던 들에 건축군이 나타나게 되였다.

  석산린이 연구, 제작한 급수설비는 ‘할빈창녕급수설비공장’을 세운지 13일만인 1985년 7월 1일 할빈채소농장 건물에 설치되여 정상 운행을 한 뒤로 전국 각지에 널리 퍼졌고 심지어 중국남극장성과학탐험기지, 중국위성관측소 등 중요한 부분의 건물에서도 빛을 내였다. 또한 미국, 모잠비크, 탄자니아, 조선 등 나라에까지 수출되였다.

 

창녕급수설비공장 건물 벽에 새겨진 흑룡강성 전임 성장 고 진뢰동지의 제사.

  전설의 ‘창녕’

  '할빈창녕급수설비공장'이 설립되여서부터 3년 사이 공장의 생산액과 리윤액은 해마다 수배의 속도로 껑충껑충 뛰여올랐다. 1985년에는 하반년 반년 동안 220만원의 생산액과 74만원의 리윤을 올렸고, 1986년에는 1260만원의 생산액과 306만원의 리윤을 올렸으며, 1987년에는 3500만원의 생산액과 860만원의 리윤을 올렸다. 그리고 1988년에는 8590만원의 생산액에 1215만원의 리윤을 올렸다. 3년 남짓한 동안에 나라에 납부한 세금은 도합 1600만원에 달했다.

  당시 창녕에 들어가는 로동자들은 모두 시험을 치르고 두달 동안 가장 간고한 일터에서 로동단련을 거치는 한편 계통적인 훈련을 받아야 했다. 또한 공장의 모든 규장제도를 학습해야 했다. 그동안의 검증을 거쳐 합격된 사람만이 정식 로동자로 채용되였다. 기업관리에서는 엄격한 로동인사관리와 칼로 베는 듯한 과단한 일처리가 주요한 비결이였다. 당시 ‘창녕’은 빠른 절주와 높은 효률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또한 ZQS-1형 자동기압급수설비가 고고성을 울린지 3년도 안되여 석산린의 주최하에 연구제작한 ZQS-2형 자동기압급수설비가 성급 과학기술감정에 통과되고 할빈시 과학기술성과 1등상을 탔다.

 

창녕그룹에서 생산한 급수설비.

  성과 부급 우질제품인 이 두 제품이 전국 각지에 널리 판매됨과 함께 ‘창녕’은 할빈 공장을 제외하고도 치치할, 조동, 만주리에 분공장을 세웠으며 보이라제조공장, 보이라안장회사, 포장운수회사, 펌프제조공장, 건축공정회사, 창녕무역회사 등 분공장과 분회사들을 설립하면서 그룹을 이루었다.

  1887년 11월 석산린은 흑룡강성 우수향진기업가의 칭호를 획득했고, 1988년에는 중국 ‘경제개혁인재상’을 수상했으며, 1989년에는 전국우수소수민족기업가로 당선되였다. 그외 제7기, 제8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 중화전국공상업련합회 상무위원직을 력임했다.

  석산린과 ‘창녕’은 ‘인민일보’, ‘국제방송’ 등 매체에 뜨게 되였으며, 1988년10월에는 CCTV(중앙텔레비전방송)에서 석산린의 원명을 그대로 쓰고 ‘창녕급수설비공장’의 이름을 그대로 단 전기드라마 ‘풍진 속 사나이(风尘硬汉)’가 방영되였는가 하면 1990년에는 중문 동명 인물전기가 출판되여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그외 조선어로는 ‘역경을 딛고선 사나이 석산린’이 출판되기도 했다.

  2008년, 석산린은 개혁개방 30년을 맞아 ‘중국경제주간’에서 평의한 ‘중국 개혁개방 30년 100대 경제인’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흑룡강신문/특별취재팀 채복숙 기자

  사진: 리대무 제공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재일조선족연구학회 회장 정형규교수와의 인터뷰 재일조선족연구학회 회장 정형규교수 “민족 : 조선족” 이라고 쓰는것이 일상이였던 시절에 그 단어의 의미와 무게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하나의 절차이고 구분이라고 여겼을뿐. 요즘 여기저기 네티즌들 사이에서 자주...
  • 2016-08-02
  • "중국에서 평상복으로 즐겨 입는 한복 만들고 싶다"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재외동포재단이 7월 27일부터 8월 4일까지 시행하고 있는 '재중동포 청소년 한국 방문' 프로그램에 참가 중인 조선족 중에는 장래 꿈이 한복디자이너인 학생이 있다. 7월 31일 KBS가 재중동포 청소년을 대상으로 녹화한 '도전...
  • 2016-08-02
  • 조선족 최초 프로야구 데뷔, 무사사구 완봉으로 첫승… KBO 사상 처음 "꿈을 이루려면 실천 중요…힘든 시기 와도 차근차근 하던 일 해야" (수원=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이렇게 재밌는 운동이 있었다니!" 중국에서 온 11살 소년은 한국에서 난생처음 야구라는 운동을 해보고는 깜짝 놀랐다. 학교 운동장에서...
  • 2016-08-01
  • 중국현대무용의 창시자 김성.   (흑룡강신문=하얼빈) 류대식 기자= "자신의 꿈을 가볍게 보지 마세요…"   그녀가 속삭이듯 말한다. 평범한 담소지만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에너지가 꽉 차있는 듯하다.   그녀의 지나온 인생은 금빛광환으로 장식된 한편의 전기소설이다.   중국현대무용의 개척자 창시자, 중...
  • 2016-08-01
  • 안정금아줌마 “애령막걸리”를 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해볼 타산 가져   막걸리항아리를 여는 순간의 짜릿함에 승부를 거는 안씨아줌마. 며칠전, 모아산기슭에 자리잡은 중국조선족민속원에 전시매장을 차린 50대의 안씨아줌마는 손수 빚은 막걸리를 차려놓고 고객들에게 맛부터 보라며 팔고있었다. 이때&n...
  • 2016-08-01
  •    (흑룡강신문=하얼빈) 나춘봉 기자 =한국에 시집 온 여성들 중에는남다른 성취로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편견의 벽을 뛰어넘으며 내조와 외조를 훌륭히 수행하는 조선족여성들이 많다. 한 가정의 며느리, 아내, 엄마로서 또한 사회인으로서 독립과 자존과 성공을 상징하는 당당한 조선족 여성상을 만들어가는 한국...
  • 2016-07-28
  • 운동선수 출신으로 미용실·식당·옷가게 거쳐 보험업계 투신 연간 100억원 판매, 고객 3천여명 …8년째 '名人' 타이틀 보유 연봉 수십억원, 30% 고객관리에 재투자…"첫째도 둘째도 성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생명보험협회에 가입된 국내 생명보험회사는 25개다. 이들 회사에...
  • 2016-07-25
  • [연해지역 조선족탐방]대련행 제8부 평소에 기반을 많이 닦아야   “제품생산, 회사운영 나아가 인생도 설계하고 실천해야 한다” 대련조선족기업가협회 리경원 집행 부회장의 말이다. 현재 기계공정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리경원 부회장과 대련시의 연분은 대학시절부터 시작된다. 1994년 대련리공대학 졸업...
  • 2016-07-23
  • 13년 만에 이룬 '한국 가수'의 꿈…밑천은 의지·성실함 암투병 2년 공백 딛고 컴백 "간절한 꿈 있다면 도전하라" (서울=연합뉴스) 신유리 기자 = 중국 연변에서 태어난 9살 소년은 단 하나의 꿈이 있었다. 한국에 가서 가수가 되는 것. 노래를 부를 때 가장 행복했기에 연변의 야간 업소를 돌며 밤무...
  • 2016-07-11
  • 칭다오 정양학교…"실생활 도움주려 연변말 대신 한국어로 수업" (서울=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중국 산둥(山東)성 칭다오시에는 조선족 학교인 정양학교가 있다. 동북 3성 이외의 지역에 있는 유일한 조선족 정규학교다. 이 학교의 조선족 아이들은 '조선어'가 아닌 '한국어'를 배운다. 특히 유치...
  • 2016-07-08
‹처음  이전 61 62 63 64 65 66 67 68 69 70 7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