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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버린 세월을 다시 줏는 녀인
조글로미디어(ZOGLO) 2006년4월7일 08시36분    조회:18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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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고고학자 김태순 연구원

"고고학자" 하면 영화에서 나오는 거대한 피라미트와 그 속에서 미이라와 싸우며 보물을 캐내는 사람들을 련상하게 된다. 어쩌면 당신도 고고학자가 되여 시공을 헤가르는 랑만적인 꿈을 꾸어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변의 고고학자가 말하는 잃어버린 세계속의 생활은 그냥 영화만이 아니다. 유물은 스스로 고고학자 앞에 현신하지 않는다. 가로 세로 10센티미터를 단위로 하는 자그마한 공간을 기초로 엄마가 촘촘히 바느질 하듯 참대바늘로 한뜸한뜸 긁어내야 하는 간고한 작업이다.잃어버린 력사를 찾아 헤매이는 이런 사람들속에 바로 우리의 주인공 김태순(55세)연구원이 있다.

평범한 가정주부?

그녀는 내 머리속에 조각된 고고학자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 구리빛 피부에 차양이 넓은 모자를 쓰고 사처로 뛰여다니는것이 고고학자의 이미지였다. 그러나 할빈시 남강구 신발(新发)아파트의 자택에서 나를 맞아준 그녀는 어딘가 조용해 보이는 평범한 가정의 주부와 같은 인상이였다.

하지만 안해는 앉아있는데 남편인 박기만(57세)씨가 차를 내온다, 커피를 내온다 하며 바삐 돌아치는것을 보니 남자는 밖의 일, 녀자는 집안일 위주로의 조선족 전통 가정과는 전혀 다른 가정- 안해가 장기적으로 밖에 나가 일하는 고고학자가정의 남녀 역할의 전도를 읽을수 있었다.더구나 집의 벽에 걸린 남다른 장식품들이 바로 ‘여기가 고고학자가 사는 집이구나’하는 느낌을 더해주었다.

“이건 포페(布币)라는건데 상대의 화페입니다. 물론 실물 크기가 아니고 장식용으로 크게 만들었습니다. 재료는 판재입니다.”객실에는 포페와 월(钺-전투에 쓰이는 무기인 도끼), 주방에는 쌍어동경(双鱼铜镜-금나라때 사용되던 길상스러운 뜻의 거울 )이 걸려있었는데 이색적인 느낌을 흠뻑 돋우어주었다.

로농병대학출신- 손전등으로 한 이불속 공부가 오늘의 고고학자 탄생시켜

“지식청년은 빈하중농의 재교육을 받으라!”는 모주석의 호소를 받들어 초중졸업생인 김태순씨는 17세의 어린 나이에 안도현 산하의 모 농촌에 내려가 2년 1개월간 ‘재교육’을 받다가 안도시내에 올라와 강철공장에 배치받았었다. 그 시대 모든 청년들과 조금도 다를게 없는 인생길이였다. 강철공장에서는 힘든 중체력로동을 하였고 그후에는 또 다시 단련 받으러 농촌 공작대로 내려가기도 했던 그녀였으며 21세의 어린 나이에 입당하는 선진인물이기도 했다.

그녀가 26세 나는 해인 1976년 당시, 상급부문에서는 이미 그녀를 제발시키기로 결정, 그와 동시에 제일 마지막 한기의 로농병대학 추천이 있었다. “너 이 나이인데 대학 가서는 뭘 하겠느냐, 제발되는게 훨씬 낫지!” 주위의 사람들은 그녀가 겁도 없이 대학을 선택했다고 친절하게 권고했다. “그래도 공부를 해야 한다.” 오빠의 지지는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대학생활은 결코 애들 놀음이 아니였다. 더구나 실력없이 몸에 도금칠하는것도 아니였다. 연변출신이였던 그녀에게 있어서 언어부터 하나의 넘기 어려운 산이였다.

“난 꼭 해낼수 있어!” 그후로부터 사전은 항상 그녀의 신변을 지키고 나서는 ‘무기’였다. 매번 책을 읽다가는 생소한 한자들이 튕겨나오면 사전을 펼친다. 그리고는 그런것들을 정리해두고 날마다 복습한다. 1년이 지나자 그의 한어수준은 눈에 확 띄이게 늘어났다.

학교에서는 저녁 10시면 무조건 전등을 끄고 취침해야 하는데 남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그녀에게 있어서 저녁 10시는 아직 초저녁이였다. “10시후에도 전등을 켜는 복도에서, 세면실에서 추위에 떨면서 책을 보던게 잊혀지지 않아요. 추워서 견딜수 없으면 하는수없이 이불속에 들어가 손전등을 켜고 책을 읽었어요.”

기초가 없고, 한어수준이 낮은 그녀였지만 이같은 의력으로 해마다 최우등을 할수 있었고 1980년 제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 흑룡강고고학연구소에 배치받게 되였다.이로부터 그녀의 고고학 생애가 시작되였다.

고고학계에 첫 발을 들여놓고- “녀자라고 없신여기지 말라!”

김태순씨가 흑룡강고고학연구소에 배치되여 오니 연구소에서는 그녀를 자료실에 배치했다. 이에 그녀는 견결히 불복, ‘배운걸 써먹겠다, 녀자라고 없신여기지 말라!” 사실 그녀는 현재 흑룡강성의 유일한 녀성 고고학자이다. 그만큼 이 부문의 일은 녀자들이 하기 힘든것이다.

그녀는 문물 일반조사부터 시작했다. 문물 발굴이란 김치굴 파는것처럼 아무곳이나 파면 되는것이 아니다. 먼저 조사부터 해야 한다. 이는 그야말로 발로 하는 일이였다. 한걸음 한걸음 걸어다니며 어디에 유물이 나올수 있겠는가를 조사해야 했다. 지금은 차라도 있지만 그때의 조건하에서야 언제 그런 ‘고급향수’를 누릴수 있으랴, 전 흑룡강적으로 목단강지역, 대경지역 안다닌 곳이 없었다.

식사도 개인집에 가서 10전씩 내고 먹었는데 위생조건 같은것은 근본 운운할 여지가 없었다. 이로부터 연구소에서도 그녀를 ‘억센녀자’라고 다시 보게 되였다.1989년 김태순씨는 또 흑룡강성에서 제일 첫사람으로 고고학발굴 팀장증(领队证)을 따내기도 하였다.

팀장증을 따내려면 1년간의 전문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첫 반년은 발굴에 참가하고 그 다음 반년은 론문을 써서 론문발표에 통과돼야 한다. 이는 함금량이 매우 높은 증서인바 공부하기가 대학공부보다 결코 쉽지 않다. 당시 김태순씨와 함께 훈련을 받는 사람들중에는 압력을 이겨내지 못해 정신병에 걸린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런 시련은 그녀를 차돌처럼 더욱 단단하게 굳혀주었을뿐이다.

국가급 고고학 발견은 이렇게 탄생

1992년 발해 상경성 송어양어장발굴 첫해의 일이다. 당시 언녕부터 이곳에 무덤군이 있다는것은 알고있었지만 발굴조건이 하도 악렬한지라 누구도 발굴을 견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런 불모지에 김태순씨가 서슴없이 발을 들여놓았다.

그때 발굴지 부근에는 촌락이 없고 다만 물고기를 기르는 사람들이 거주하는 가옥이 몇채 있었을뿐이였다. 양어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지에서 굴러들어온 망류들이였는데 생활조건이라는것은 근본 운운할 나위도 없었다. 김태순씨는 바로 이런 사람들과 한집에서 생활, 매일 아침 날이 희붐히 밝으면 공지에 나갔다가 저녁에 새카맣게 어두워져서야 돌아와 휴식할수 있었다. 먹는것이라면 그곳 사람들이 먹는 물고기사료만두, 한입 물어떼면 모래가 와작와작 씹히였고 마시는 물이라면 흙도랑물, 그것도 언제 끓여먹을 겨를이 있었으랴.

이른 봄에 찾아와 땅이 땅땅 얼어드는 11월말까지 일하는 그녀를 두고 주위사람들은 여러가지 추측을 다 했다. 그중에서 가장 성행하는 내용이 두가지, ‘이렇게 일하는것을 보면 돈을 엄청 많이 벌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에 문제가 있을것이다.’는것이였다.

사실 이처럼 발굴지에 나오면 그녀의 하루 보조비는 1원 50전, 그중에서 1원은 식비로 내야 한다. 그 나머지는 1전이라도 절약해서 발굴비용에 쓴다. 그러니 돈을 번다는것은 천방야담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결코 가정이 불행해서도 아니였다. 귀여운 아들애가 있었고 사랑하는 남편이 있었다.

그래도 발굴에서 뭔가가 나올 때의 희열은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해낼수 없는것이였다. “이때까지의 어려움이랑, 곤난이랑 언제 있던 일이냐싶게 기쁘기만 했어요.” “귀중품이 나오면 한시라도 시선을 옮길세라 하고 지켜요. 잠간 한눈 파는 사이에 도적맞히면 큰일이니깐요.”

지금은 조건이 많이 좋아졌지만 이전에는 발굴작업을 한다 하여 발굴자들이 여럿이 나가는것이 아니였다. 언제나 김태순씨 혼자 아니면 간혹 한두사람 더 있을뿐, 주로는 민공들을 고용해 썼다. 그러니 귀중품은 홀로 지킬수밖에 없었다. “그러다보면 점심이고, 저녁이고 굶으면서 그것을 지키고 있을수밖에 없었어요.”

“인골이 나오면 그것은 정리해서 내 침대밑에 두었어요. 일반 민가에 둘수 없거든요. 누가 그런걸 집에 두기 좋아하겠어요..”보통 녀자로서는 상상할수도 없는 일, 하지만 그녀는 이것이 마치 “의사가 앓는 사람도 다루고 시체도 다루는것과 별 다름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스쳐버리는것이였다.

“저는 민공들과 관계도 좋아요.”

발굴에서의 많은 작업들은 민공들의 손을 빌려야 했다. 그런만큼 민공들과의 관계처리는 조련찮은 일이다. 김태순씨는 그들과 옴니암니 따지는것이 아니라 한푼이라도 더 주면서 그만큼 일을 잘 해주기를 기대했다. 또 소주잔도 함께 나누며 감정교류를 했다. 하여 그녀의 소주실력도 짱! 모두 이로부터 습득해낸건지라 어지간한 남자들도 두손 드는 판이다.

“이 일을 하려면 힘도 세야 해요.”

겨울 일을 마치고 목단강에서 할빈행 기차를 차야 하는 김태순씨에게는 한가지 난제가 생겼다. 혼자몸으로 그 많은 짐을 어떻게 옮기냐는것이였다. 발굴해낸 인골 한자루, 자료와 사진기, 옷같은 생활용품들을 정리해 큰 배낭 하나와 커다란 마대 두개에 넣었는데 100근도 훨씬 넘는것이였다. 이 많은 짐들을 녀자 홀몸으로 한걸음 한걸음씩 끌고 역에까지 나갔고 또 그걸 끌고 또 기차에 올랐다. 기차에서 그녀는 렬차원에게 해당 증건을 내보이고 침대석을 샀다. 근데 그 붐비는 차안에서 그 많은 물건들을 끌고 침대석차칸까지 도저히 끌고 갈수 있어야지…

차에서 내려 다시 그 물건들을 끌고 택시를 타려고 하니 기사가 그를 세상 물정에 어두운 농촌 아줌마로 착각, 택시비를 무조건 50원을 내라고 억지를 부리는 일도 있었다. 하긴 해볕과 바람에 그을려 가무잡잡한데다가 촌티가 줄줄 흐르는 옷을 입고 마대를 메고 갓 기차역에서 나온 그녀의 모습이 학자의 모습일리가 없었다.

그의 이런 애탄 노력으로 발굴 첫해 그녀는 100여기의 무덤을 발굴, 온 연구소 사람들이 이로 하여 깜짝 놀랐다. 이 양어장무덤군에서 4년간의 발굴을 거쳐 모두 325기의 무덤이 발굴되였고 1995년에는 중국 10대 고고학발견의 하나에 들기도 했다.

그외 그녀가2002년-2003년사이에 진행한 치치할 눌하시 공농촌 명청무덤 발굴은 당년 중국 고고학계의 30곳의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기도 하였으며 ‘녕안송어양어장발해무덤군’, ‘발해무덤군 연구중의 몇가지 문제’, ‘발해2차장을 론함’, ‘발해고도’, ‘발해평민거주지’, ‘동녕소지영 발해거주지’ 등 론문과 저작은 사회과학전선의 연구성과 1, 2, 3등상을 받았으며 또 여러차례 문박학원 과학연구성과 1등상을 받았다.

녀고고학자의 가정- 울고웃던 과거, 행복한 현재생활

김태순씨의 남편 박기만씨는 그녀와 한고향사람인데 일자리 전근 문제로 하여 결혼후 옹군 10년간의 견우직녀 생활을 해왔었다. 결혼초에는 두 사람 다 일이 바쁘다 보니 애를 가질 엄두도 못냈고 애가 있은후에도 김태순씨가 애를 업고 발굴 현지에 나가다보니 많고 많은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화들을 남기기도 했다.

1983년의 일이다. 김태순씨가 공지에 나가야 할 때가 되였는데 애가 데설궂게도 감기에 걸렸다. 갓 돌이 된 애였지만 그녀는 밤 도와 애에게 해열주사를 놓아주고 이튿날 아침 앓는 애를 그대로 업고 기차에 올랐다. 그랬더니 애가 기차안에서 얼마나 칭얼거렸던지 주위 사람 보기에 민망하여 몇대 두드렸다. 그것이 결국 철도경찰의 의심을 사게 되였다.

“이 애가 당신 애가 맞습니까?”

훔친 애가 아닌가고 몇번이고 애를 쳐다보고는 애 엄마를 쳐다보는 경찰의 의심스러워 하는 눈초리에 몸둘바를 몰랐다는 그녀이다.

또 한번은 발굴현지의 농촌에서 보모를 찾아 애를 맡겼는데 보모가 이 열여덟달짜리 애를 그보다 한살 이상인 자기집 애에게 맡기고 기음을 매러 나갔다. 집에 다른 사람이 없는 사이에 두 꼬맹이는 꼬챙이로 갓난 병아리를 몽땅 찔러죽였다. 보모가 돌아와 ‘참상’을 목격하고 속상해마지 않았다. 당시 농촌에서 닭을 키우는것도 괜찮은 부업거리인지라 그녀는 두 말 안하고 배상을 했다.

애가 세살 나던 해에는 한 농촌 할머니를 보모로 삼았는데 할머니는 애가 앓기만 하면 약을 먹이는것이 아니라 점을 치고 부적을 태웠다. 그런가 하면 영양을 보충한다 하면서 그 싯누런 이로 강낭죽을 흐물흐물 씹어서는 애 입에 넣어주었는데 애가 그걸 넙적넙적 받아먹었다. 그녀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완곡하게 이야기했더니 할머니는 잘한다고 칭찬해주는걸로 착각, 더 기승스레 그렇게 해주더라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몇날 며칠을 해도 끝이 없다고 한다. 이렇게 자란 아이가 지금 어엿한 대학생이 되였다.

“1994년 송어양어장무덤 발굴시 애와 남편이 발굴 현지에 찾아와 며칠 놀고 갔어요.. 나는 뱀고기를 안먹지만 11살 나는 아들애는 뱀고기튀김을 정말 실컷 먹었어요. 그리고는 후에 그걸 소재로 작문까지 썼대요.”

발굴현장에서는 하루에도 독사를 20~30마리씩 잡기는 례사로운 일이다. 지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면서 독사를 깔아죽인 일도 있다고 한다. 당지의 민공들은 잡은 뱀을 껍질을 벗겨서는 토막내여 기름에 튀긴다. 그녀는 입에 대보지도 않았지만 아들애는 별미라고 했다. 또 발굴현지에서 겁도 없이 사람들 앞에 튀여 나온 오소리를 잡느라고 숱한 사람들이 뛰여다닌 재밋는 일화도 있다.

“제가 1년중 반년 넘게 집에 안있으니 집안일은 몽땅 남편에게 떨어져요..” 그래도 불평 없이 묵묵히 안해의 ‘푸른 잎’이 되여준다는 남편, 지금은 컴퓨터를 리용해 ‘우리 가정 신문’도 꾸린다. 여느 가정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희한한’ 일이다. 그네들의 가정신문을 통해 사랑과 우애로 엮어진 화목한 가정을 엿볼수 있었다.

2006/04/06 흑룡강신문 /채복숙 기자, 리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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