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선렬들을 찾아 천만리
조글로미디어(ZOGLO) 2006년2월24일 08시03분    조회:985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민족력사에 혼 앗긴 리광인씨 《잠적》 10년동안에도 수백만자 력사서 써내 력사학자 리광인씨한테서 도합 4권으로 된 《인물조선족항일투쟁사》(한국학술정보[주])를 받아든 기자는 책의 무게를 결코 가볍게 느낄수 없었다. 《남성편》(1, 2권), 《녀성편》, 《소년아동편》으로 묶어진 책은 총 125만자, 140편의 전기가 수록되여있는데 군체(群體)까지 164명의 렬사가 소개되여있는 두터운 책이였기때문이다. 지금까지 조선족사회에서 단편이상으로 정리된 항일렬사가 도합 180명좌우, 이번에 출판된 이 책에 오른것까지 합하면 260명좌우 되는데 그중 160명 렬사의 전기를 리광인씨가 혼자 힘으로 발굴과 정리를 마무리했다고 한다. 《렬사전ㅡ<인물조선족항일투쟁사>를 정리, 출판하는것은 저의 오랜 념원이였습니다. 2003년 10월 15일, 전 4권으로 된 이 책의 타자와 교정을 마쳤을 때 저는 그 감회가 참으로 깊었습니다. 이날을 위해 로심초사한지가 몇해였던가요. 이번에 쌍둥이 딸 설이와 향이가 이 많은 자료를 다 타자해줬고 아내의 도움도 퍽 컸습니다. 잊을수 없군요. 그리고 사실 <선렬들 찾아 천만리>의 발자국을 뗀지는 30년전부터라 해야 옳을겁니다.》 1973년 고중을 졸업한 리광인씨는 두만강상류에 위치한 화룡현광평농장에 자리잡았다. 20살 한창 나이인 리광인씨는《광평농장사》편찬과업을 맡고 답사하는 가운데서 농장일대가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 제2방면군이 활동하던 유서깊은 고장이라는것을 알게 되면서 항일투쟁사에 흥취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후 독물(讀物)을 통해 양정우, 진한장, 주보중, 리조린도 알게 되였다. 《1978년 대학시험에 합격되여 연변대학 조문학부에 입학하게 되였는데 공부를 잘해서 조선족항일력사소설을 쓰려는것이 저의 리상이였습니다. 때마침 중공당사를 배워주던 최후택교수님의 도움으로 난생 처음 수많은 력사자료와 접하게 되였고 할빈에 가 동북렬사기념관까지 견학하게 되였습니다. 거기서 조선족항일투사 김순희렬사를 알게 된 저는 돌아온후 화룡현 약수동에 가 김순희의 투쟁사실을 취재하게 되였습니다. 이것이 저의 첫 력사답사였습니다.》 그런데 력사공부에 너무 깊숙이 빠지는통에 차츰 허구에 의한 소설보다도 진실한 력사를 쓰는데로 돛을 올리게 되였다. 하여 대학 재학시절에 벌써 항일전적지를 답사하고 항일렬사가족을 방문하면서 정리한 항일인물과 이야기를 신문잡지에 척척 발표하기 시작했고 졸업후에는 연변일보사 기자로 뛰다가 아예 연변력사연구소로 전근되여가 조선족투쟁사연구에 몸을 담그기도 했다. 리광인씨는 선렬들의 발자취를 추적하여 북경, 천진, 산해관, 청도, 상해, 남경, 항주, 소주, 남창, 구강, 서안, 연안 등지와 하북성, 동북 각지 취재길에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렸는지 모른다. 연변의 산과 들은 물론 두만강, 압록강을 답사하고 여러 독립운동전적지와 항일근거지, 전적지를 메주밟듯했다. 항일련군 제2군의 발자취를 따라 지난날의 동만과 남만의 항일 싸움터들을 주름잡기도 했다. 이러는 가운데서 보관서류관, 기념관, 박물관 등을 통한 력사자료수집작업을 제외하고도 100여명 항일투사와 력사의 견증자들을 찾아볼수가 있었다. 그후 다시 연변일보사 기자로 복귀했다가 어쩌구려 하해(下海)하여 무술학교를 경영한다는 소문이여서 력사고 뭐고 아예 손털고 나앉은줄 알았더니 이렇게 두툼한 책을 척 출간할줄이야. 《하해한 10년간 저는 한번도 력사를 잊은적 없었습니다. 짬만 있으면 새롭게 답사하고 방문하기도 했으며 그동안 모아진 자료들을 정리하군 했지요. 지금 정리를 미룬다면 허다한 렬사들을 영원히 해빛을 보지 못하게 할것이며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게 할것이라는 사명감, 긴박감에 늘 모대기기도 했지요.》 지난세기 80년대에 방문했던 100여명 항일투사를 지금엔 거의 찾을수 없게 되였다고 한다. 그러니 그번 방문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면서 리광인씨는 안도의 한숨을 톺기도 한다. 리광인씨의 력사에 대한 추적은 단순히 사건이거나 수자를 고증하는것이 아니였다. 한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그 사람이 겪은 모든 일을 깡그리 알아내는것이였다. 이것은 아마 문학을 배워서 그런것 같다고 한다. 반일투사 김숙경녀사의 딸 황정일을 취재할 때였다. 꼬박 이틀간이나 항일투사였던 어머니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대부분의 이야기가 생소한것이여서 력사자료에만 의거했던 빈약점을 메울수 있었다. 《나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묻고 또 묻군 했습니다. <깡치>를 냈지요. 항일투사 려영준아바이를 모시고 연변의 전적지들을 답사할 때였는데 장마에 갇혀 어떤 마을에 묵게 되였지요. 말문을 조만해서는 열지 않는 려영준아바이도 권한는 술을 몇잔 받아 마신후 끈질게 달라붙는 나의 성화에 끝내 말문을 여는데 밤낮 사흘동안아나 구수한 전투이야기를 엮더군요.》 고요한 산촌의 깊은 밤, 주룩주룩 내리는 비소리를 들으면서 리광인씨는 취재수첩을 퍼그나 축내야 했다. 그가 이렇게 방문하여 말문을 열게 한 로인들은 200여명 되는데 많이는 당시 부득이한 상황과 핍박에 못이겨 기순한 사람들이였다고 한다. 그들은 정치운동때마다 두들겨 맞아 최하층의 따라지생활을 하고있었지만 한때는 목숨을 내걸고 혁명에 참가했던 사람들이며 력사의 견증자였다. 력사의 뒤안길에 《더럽게》 쓰러진 이들을 취재한 자료도 잘 정리해 이제 한책 꾸미겠다는것이 리광인씨의 소망이기도 했다. 《력사는 어디까지나 진실하게 서술해야 한다는것이 나의 신조입니다. 공개된 항일녀투사 최희숙의 사적가운데 많은 부분이 나의 조사와 다르더군요. 나는 수차 본 남편인 박원춘로인을 찾아가 당시의 정황을 조사했댔습니다. 이번에 이 책에 올린 최희숙투사의 사적은 진실한것입니다.》 력사에 대한 외곡을 절대 용납할수 없었던 리광인씨는 지난해 년초에 한국서 저명한 녀류작가 강경애를 김좌진장군암살동거범으로 몰아붙일 때에도 많은 자료속에서 력사의 진실을 찾아낸후 인터넷을 통하여 시비를 벌린후 한국을 상대로 력사의 진실을 돌려놓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리광인씨가 지금까지 인터넷을 통하여 론문, 력사전기, 기행문 등을 100여만자 발표했고 40여편의 력사, 문학 론문을 지상을 통해 발표하기도 했으며 300만자의 원고를 작성해놓고있는 상황이였다. 이 원고로 이제 《력사속의 1910년—1920년대》, 《력사문화기행》, 《꼬마항일영웅들》,《리광인론문집 <조서족력사문학연구>(1, 2집)》, 《나의 문학예술세계》, 《윤동주연구문집》, 《강경애연구문집》 등 수두룩한 책들을 펴내게 된다고 한다. 10년 하해에 돈은 벌지 못했지만 이런것을 벌었다고 스스로 흐뭇해하는 리광인씨다.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학술교류부 부장, 연변동북아문화연구원 부원장, 중국조선민족사학회 부비서장, 연변중년문제연구소 소장 등 직을 맡고있는 리광인씨는 앞으로도 계속하여 조선족력사연구란 주선률을 틀어쥐고 부지런히 뛸 참이였다. 김철호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민선 지방자치 도입 11년만에 40대 서울시장이 탄생했다. 오세훈(吳世勳.45.한나라당) 서울시장 당선자는 법조인 출신으로 지난 2000년 16대 총선에서 여야 모두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결국 한나라당 공천으로 강남을에 출마, 금배지를 달며 정계에 입문했다. 의정활동 과정에서 이른바 `오세훈 선거법'으로 불리는 정치관...
  • 2006-06-01
  • "지난 2002년에 한국인들이 보여줬던 열정과 하나 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1일(한국시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노르웨이 축구대표팀과 평가전 준비를 위해 노르웨이 오슬로 울레볼 경기장에서 몸을 풀고 있는 동안 관중석에선 벽안의 중년부부와 동양인 꼬마 2명이 초롱...
  • 2006-06-01
  • 펀드매니저(资金管理者)가 미국에서는 이미 100여년의 력사를 가지고있는 업종이지만 중국에서는 아직도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령역이다. 청도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선족 펀드매니저 김성운씨(34세)의 포부는 당차다. 중국의 조지 소로스(20세기 세계 최고 펀드매니저였음)가 되는것이 꿈이다. 그는 증권사인 '신시대...
  • 2006-05-31
  • [원제:상지조중 서금매학생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아요"] 초여름의 록음이 짙어가는 좋은 아침 상지시조선족중학교에 다니는 서금매(19세)는 친구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활기차게 교정으로 들어섰다. 언제보나 정다운 교정, 친근한 동학들, 소아마비로 어쩌면 학창이 하나의 꿈의 루각으로 될번했던 곳이였지만 금매는 매...
  • 2006-05-30
  • 일본 리쓰메이칸(立命館)대학 시라카와 시즈카기념 동양문자문화연구소가 제정한 제1회 리쓰메이칸 시라카와 시즈카 기념 동양문자문화상 개인 부문 수상자로 심경호(51)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가 선정됐다. 심 교수는 시라카와 시즈카(白川 靜ㆍ96) 전 리쓰메이칸대 문학부 교수가 지은 '한자백화(漢字百話)'를 번역해 '한자...
  • 2006-05-29
  • 일제 강점기 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와 해방 직후 '부용산'에 곡을 붙인 월북 음악가 안성현(1920-2006)씨가 지난달 25일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27일 입수된 북한의 문학신문 최근호(5.13)는 "민족음악 전문가인 공훈예술가 안성현 선생이 노환으로 4월25일 오후 3시 86살을 일기로 애석하게 서거했다"고 보도했다. 신...
  • 2006-05-29
  • [원제:사상 첫 美프로풋볼 한국계 형제 선수 탄생] 한인 이민 역사와 미식축구 사상 처음으로 한국계 美프로풋볼(NFL) 형제 선수가 탄생했다. 사진은 올 시즌부터 뉴욕 자이언츠에서 뛰는 친형 윌 뎀프스(왼쪽)와 디트로이트 라이언스와 1년간 계약한 동생 마커스 뎀프스. 형은 모델로도 활약..동생 데뷔 눈앞 한인 이민 역...
  • 2006-05-29
  • ——— 연변대학예술학원 무용학부 박설화안무를 찾아서 먼저 박설화의 춤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안무가를 만나러 가는 사람이 그 사람의 무용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는 사실은... 비로소 메신저와 사진을 통해 익히 보아온 박설화의 얼굴이 나타났다. 요즘은 잘 안 쓰지만 안무가 박설화...
  • 2006-05-29
  • 네살짜리 재미 동포소녀가 바이올린 연주에 천재성을 보여 화제에 올랐다. 화제의 주인공은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사는 최우희(42세, 미해군연구소 연구원)씨와 피아노연주가 정영은(40세)씨의 딸 유경양이다. 3살때인 지난해 7월 바이올린 연주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유경양은 1년도 안돼 벌써 8차례의 연주회에 참가했...
  • 2006-05-29
  • 필자와 함께 기념사진을 남긴 러시아동포 5세 미하일 박(오른 쪽) 최근 필자는 프랑스 물랭호텔에서 그림작품전시회를 열고있는 러시아동포 5세 미하일 박을 만났다. 미하일 박은 환갑에 가까운 분이었다. 보통 키에 좀 마른 편이였는데 첫눈에 과묵하고 믿음성 있어 보였다. 그의 조상은 1860년에 러시아로 이주해 갔는데...
  • 2006-05-29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