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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화안도공안국장-효심 애심 량심이 낳은 휘황
조글로미디어(ZOGLO) 2005년9월18일 10시30분    조회:14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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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효심 애심 량심이 낳은 휘황-전국우수인민경찰 임장하식 공안국장 김동화를 보다] 안도현공안국, 1995년부터 1999년사이 집체3등공과집체2등공을 세우면서 전국우수공안국과 길림성로동모범집단이라는 휘황을 안아온 전투집단이다. 허나 2001년부터 이 공안국은 점점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고 주적으로나 성적으로 뒤자리를 차지했다. 이전의 휘황과 너무나 엄연한 차이를 보이는 현상이였다. 2003년, 주공안국 처장으로 있던 김동화가 계속 미끄럼을 타고있는 안도현공안국 국장으로 부임되여왔다. 이때로부터 안도현공안국은 새로운 력사를 쓰기 시작하였다. 가정에서 효자인 사나이, 그는 이 효자를 자기 사업에 옮겨왔고 범죄분자를 타격하고 백성을 지키는것을백성들에 대한 효성으로 생각했다. 그는 민경들을 이끌고 인명사건들을 해명해나가면서 《평안한 안도》를 만들어나갔다. 1969년에 공안사업에 발을 들여놓은 김동화는 26년동안 선후하여 화룡시공안국 민경, 소장, 부국장으로 공안국의 제일 기층부문으로부터 하나하나 밟아올라왔다. 1997년 그는 연변주공안국 부처장으로 임명되였고 후에는 처장으로 승진하였다. 그가 다녀간 사업터와 그와 함께 사업했던 민경들은 김동화에게서 받은 큰 감동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효성이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김동화는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남보다 각별했다. 생활상에서 효성이 지극한것도 있겠지만 어머니를 만나고 헤여질 때마다 허리굽혀 인사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정말로 효성이 지극한 구척의 사나이라고 주위에서는 평판이 나있다. 《백성들에게는 평안이 복이고 민경들은 평안을 지키는것이 효성을 하는것이다.》 김동화가 늘 민경들에게 하는 말이다. 그는 어머니에게 지극히 효성 했을뿐만아니라 백성들에게도 똑같은 효성을 다 했다. 평안을 지키는 효성, 그는 이를 위해 투혼을 불태웠다. 김동화는 안도공안국 일인자로 부임되자 대형정의 틀을 구축할것을 제출, 인명안 수사를 주선으로 형사범죄를 엄타하면서 전반 사업을 정체적으로 밀고나가기 시작하였다. 인명사건 수사와 전체적 사건수사, 도주범 나포, 기타 타격처리 사업을 모든 부문과 일군들에게 구체적임무로 하달하여 사람마다 임무가 있고 지Ⅰ?있게 하면서 모든 경찰들이 함께뛰는 국면이 형성되게 하였다. 현행 인명건을 해명하거나 인명도주범을 나포하게 되면 일일이 포상했다. 각 부문의 임무실행정황을 달마다 공시하고 선진을 고무하고 후진을 격려했다. 2003년 10월 29일 밤, 이도진 내두촌 촌민 리하연이 집에서 피살되였다. 10여일동안 련속되는 사업을 벌였지만 가치있는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담당민경들에게 정서파동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김동화는 점심식사도 하지 않은채 200여리 길을 달려 사건현장으로 갔다. 그의 지휘하에 사건수사경찰들은 촌민들과 밀접한 감정교류를 하면서 군중들의 신임과 지지를 얻었다. 하여 사건해명에 새로운 국면이 나타났다. 11월 10일, 끝내 범죄혐의자 김광철을 나포했다. 2003년 12월 28일 새벽, 송강진 주민 왕모가 자기의 상점안에서 피살, 살인자는 왕모의 시체에 불을 달았는데 린접한 6개의 점포도재더미로 되여버렸다. 너무나 놀랍고 끔찍하며 피해범위가 큰 사건이였다. 김동화는 2004년 양력설전에 사건을 매듭짓겠다고 결심했다. 나흘후면 새해가 밝아오는데 백성들이 공포속에서 설을 쇠게 할수 없다면서 그는 50여명 민경들을 조직해 송강으로 달려갔다. 4일간의 밤낮을 이은 노력끝에 새해 종소리를 40분 앞두고 그들은 끝내 범죄혐의자 김성주를 나포했다. 2004년 음력설이 갓 지났는데 명월진의 임란, 임매 자매가 김동화를 찾아왔다. 7년전에 어머니가 피살되였는데 아직까지 흉수를 붙잡지 못했다는것이였다. 김동화는 재빨리 전문수사소조를 세우고 경비와 장비를 충분하게 보장해주었다. 그의 구체적인 지휘하에 2월 21일 새벽, 범죄혐의자 리명상이 흑룡강성 이춘시에서 법망에 걸렸다. 너무나 기쁘고 뜻밖의 소식에 임매는 술 두병을 들고 공안국에 찾아와 김동화에게 고마운 눈물을 흘렸다. 김동화가 국장으로 임명되여 불과 4개월만에 안도현공안국은 전 8개월보다 수사률이 250%, 도주자 나포수가 월평균 567%, 타격처리수는 월평균 70% 상승되면서 전 주와 전 성의 앞자리에 성큼 올라섰다. 2004년도의 사건수사, 도주자 나포, 타격처리는 전해보다 104%, 211%, 86% 상승하였다. 본 지방 인명도주 혐의자 26명을 나포하였는데 이는 전 10년간의 총수보다 2배나 높았다. 인명도주자 나포는 전 주의 제1. 전 성의 5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2003년 9월부터 2005년 3월까지 23건의 현행인명사건을 수사했는데 수사률은 92%에 달했다. 안도현공안국의 전반집법은 이전의 전 주 마지막 두번째나 세번째로부터 일약 전 주의 두번째로 되였으며 전 성의 선진행렬에 들어섰다. 김동화는 민경들과 관련된 일들은 반드시 열정적으로 잘 처리하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소하러 온 군중을 열정적으로 접대하지 않고 신소된 문제를 참답게 처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민에 죄를 지는것이다.》 김동화가 늘 하는 말이다. 원 장흥향 농민 손문파의 어머니와 누나가 김동화를 찾아왔다. 손문파가 8년전에 향 110에 출근할 때 체불한 로임 5400원을 받지 못하고있다는것이였다. 김동화는 그들 모녀에게 식사를 배치했을 뿐만아니라 돌아가는 차표까지 마련해주었다. 사실의 허실을 잘 조사한후 김동화는 인츰 자금을 조직하여 정위 서선화가 직접 손문파의 어머니를 찾아가 돈을 건네주게 하였다. 《군중들에게 진 감정빚은 진심으로 갚아야 하고 군중들에게 진 경제빚은 꼭 배상해야 하며 군중에게 진 법제빚은 공정하게 갚아야 한다.》 김동화의 말이다. 그가 부임한후 민경들과 관련된 35건의 사건을 해결했는데 100%의 해결을 가져왔으며 29차례나 밀렸던 군중들의 자금 25만원을 해결해주었다. 민경에 대한 사랑은 김동화가 늘 버릇처럼 하는 말이였고 시종여일하게 행동에 옮기는 말이였다. 그는 엄하게 다스리고 대우를 높이고 법으로 보호하면서 안도현공안국의 조화로운 경찰진지를 구축해나갔다. 엄하면 사랑이고 눈을 감으면 해가 된다. 경찰에 대한 김동화의 사랑은 엄하게 경찰대오를 다스리는데서 나타났다. 2004년 국에서는 한차례의 대형체육활동을 조직했다. 오후에 팀을 이끌고 경기에 참가해야 할 농촌파출소 축구팀의 코치인 한 파출소 소장이 향의 지도자가 전근하는 연회석에 참가해 술을 마시다나니 경기에 불참해 축구시합을 진행할 방법이 없게 되였다. 사건발생후 김동화는 국당위에 제의해 견결히 그 파출소 소장을 철직시켰다. 김동화가 부임한 이래 안도현공안국에서는 위법위기현상 3건과 3명을 사출해냈고 철직시킬것은 철직시키고 처분을 줄것은 처분을 주었다. 번마다 대회를 열고 공개처리하여 처리의 시효성을 크게 강화시켰다. 김동화는 경찰대오를 엄하게 다스리자면 그들에 대한 대우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갓 부임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경찰대오에 대해 《대수술》을 하라고 건의했다. 맹목적인 조절은 사업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것이고 더우기 경찰들의 정치생명을 책임지지 않는것이라고 하면서 김동화는 무거운 짐은 자기가 두어깨에 짊어지고 경찰들의 근심걱정을 적극적으로 덜어주었다. 그는 사처로 뛰여다니면서 40여명 경찰가족들의 일자리를 해결해주었다. 그는 경찰호조금에 대한 관리와 사용에 대해서도 효과적인 조치를 강구했다. 병이 나고 가정형편이 곤난하거나 희사가 생긴 경찰들을 일일이 하나하나 챙겨주었다. 그가 부임한후 20여명 청년경찰들이 결혼하였는데 국장의 전문승용차가 신부를 맞는 차로 고정되다싶이 했다. 경찰들이 일이 바빠 생일을 쇨 시간이 크게 없다는것을 알게 된 그는 그 누구의 생일이든 국의 책임자가 축하신과 하례금 100원을 보내준다고 규정하였다. 경찰에 대한 사랑은 법으로 경찰을 보호하는데서 나타났다. 모 단위의 사업일군이 음주후 교통경찰대대에 와서 사람을 찾아 일을 처리하려 했으나 통하지 않자 교통과의 경찰을 때려 상하게 했다. 김동화는 법대로 그를 구류시키고 순서에 따라 엄하게 처리하게 했다. 재빨리 사정을 봐달라는 전화가 쏟아져왔고 문턱이 다슬 정도로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가운데는 고위층 간부들도 있었지만 김동화는 견결히 막아냈다. 《공안국장이 자기 경찰도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백성들에게 평안을 줄수 있겠는가》고 김동화는 말했다. 그는 국의 지도부를 이끌고 각종 압력을 이겨내면서 선후하여 9건의 경찰피습사건을 처리했다. 그 대상이 누구든 그가 얼마나 큰 뒤심이 있든 구류시킬것은 구류시키고 벌금시킬것은 벌금을 시키고 배상시킬것은 배상을 시켰다. 경찰들에 대한 김동화의진실한 사랑은 안도현공안국 경찰들이 한마음한뜻으로 사업에 투신할수 있는 밑거름이 되였다. 김동화는 당과 인민이 만족하는것을 최고의 천직과 영예로 생각했다. 그는 자기의 량심과 진심 그리고 봉사와 자률로 인민의 공복으로 거듭나면서 자신의 천직을 지켜왔다. 김동화가 부임한후 일부 지도간부들이 경찰들이 지도간부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했다. 김동화는 《주는것만큼 얻는것이 인심이다. 경찰들이 지도자를 존중하지 않는것은 가능하게 지도자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수 있다. 자기 자신을 잘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화는 좋은 일은 많이 하고 틀린 일은 적게 하며 량심에 꺼리끼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자신에게 요구했다. 이는 그의 삶의 지조라 할수도 있었다. 사업가운데서 김동화는 민주, 자률, 봉사의 정신을 잘 표현했다. 국당위에서 문제를 연구할 때 그는 한번도 독단적인 결론을 내린적 없었다. 그는 인식상의 일치를 가져오지 않으면 결책을 내리지 않았으며 필요시에는 퇴직한 로간부들의 의견도 널리 듣군 했다. 견해가 거의 일치를 가져올 때에야 그는 결책을 내리군 했다. 국의 일인자인 그는 한번도 특수화를 부리지 않았으며 작고 사소한 일에서부터 자신에게 높은 요구를 제기했다. 무슨 일이 있으나 그는 국의 지휘장에게 청시를 받는것을 습관처럼 여겼다. 먹고 입고 체면을 따지는 등 일은 그한테서 외면당했다. 사건수사 경비가 부족하자그는 자신의 전용차까지 처리하며 수사의 진행을 담보해주었다. 계획내의 사업경비를 해결하기 위하여 김동화는 현, 주,성을 오가며 자금을 쟁취했는데 계획외의 자금 200여만원을 유치했다. 김동화는 영예는 남에게, 과오는 자신이 끌어안았다. 그는 부하들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자신에게 과실의 주요책임을 돌리면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압력을 당사자인 부하에게만 돌리지 않았다. 반면에 그는 성적과 공로는 모두 부하들에게 돌려주었다. 그가 부임한 이래 국에는 1개 집단, 4명의 경찰이 2등공, 15개의 집단, 36명의 경찰이 3등공이나 기준병으로 평정되였고 4명의 경찰이 연변주 《임장하, 김광진식 훌륭한 경관》으로 평정되였다. 전 현 62개 계통의 단위중 안도현공안국은 유일하게 전 주의 《인민이 만족하는 공무원집단》으로 평정되였다. 국에서 번마다 김동화에게도 공을 청하려 하면 김동화는 항시 《부결권》을 행사했다. 그는 공로를 젊은 경찰들에게 돌리군 했다. 백성들이 만족하게 하고 각급 지도자들이 시름놓게 하고 경찰들이 좋아하게 해야 하는것이 기층 공안국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김동화는 밝혔다. 효심, 애심, 량심, 여기에 김동화의 인생이 씌여지는 핵이 있었다. 김동화는 이 세가지로 인민경찰의 경혼을 지켜왔고 경찰사업의 휘황을 쌓아왔으며 공산당원으로서의 우수한 품질과 숭고한 정신을 빛내여왔다. 그는 전국우수인민경찰, 임장하식공안국장이 되기에 손색없고 이시대 공안국장들의 본보기로 되기에 손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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