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세계 명선수를 키워낸 김장복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6월19일 08시06분    조회:1055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발은 들고 허리는 굽히고…》, 장춘남호공원 서쪽문에 들어서면 인라인 스케트를 배우는 20명가량 되는 꼬마들을 볼수 있다. 생기발랄한 꼬마들속에서 60여세 돼 보이는 한 로인이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표준동작을 배워주느라 여념이 없다.

취미로 스케트타기를 배워 선수가 되고 감독이 되여 나라를 위해 우수한 스피드스케트선수를 양성해낸 이 로인은 길림성체육운동학교에서 고급감독으로 있었던 김장복이다.

요즘은 비록 퇴직한 몸이지만 여전히 스케트를 즐겼고 여가를 타 꼬마들에게 인라인을 가르치느라 바쁜 몸이다.

길림시조선족중학교를 졸업한 김장복(65세)은 16세때 스케트에 흥미를 붙였다. 모험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운동이라는데서였다.

1959년부터 1970년까지 길림성스피드스케트팀의 우수선수로 활약한 그는 선후로 여러 차례 전국 1등, 2등의 보좌에 앉았다.

김장복의 소개에 따르면 20세기 50, 60년대 정부에서는 빙상운동을 군중성체육운동으로 보급, 도시로부터 향촌에 이르기까지 빙상운동이 보급되여 한겨울의 한적함을 깨뜨렸다. 학교마다 스케트장이 있었고 돈이 없어 스케트를 사지 못하면 자기 절로 만들어 탔다. 그중에서 많은 우수한 조선족선수들이 자라나 전국에 이름을 날렸다.

《먹을것이 충족하지 못했던 그 시절 누가 길림성팀에 뽑혀갔다면 큰 벼슬을 한것이나 다름없다. 집에서 먹어본적 없는 음식을 마음대로 먹는것만도 흐뭇하구.  비록 고독하고 힘겹고 험난한 길이였지만 단 하나의 목표―우승을 따겠다는 목표를 위해 모든 힘을 바쳤다. 1964년인가 내가 강훈련을 한 탓에 몸이 허약해져 페결핵에 걸리는 바람에 쏘련에 갈 기회를 잃었지…》, 김장복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그려있었다.

김장복은 2002년 퇴직할 때까지 32년간 스피드스케트감독으로 있으면서 신정숙, 전명애, 함영숙, 김홍빙 등 조선족선수들을 포함한 많은 훌륭한 선수들을 양성해냈다. 이중 장염매와 장지빈은 세계 1등의 자리를 굳혔다. 장염매는 1991년 제1회세계녀자쇼트트랙선수권대회 500메터 경기에서 금메달을 탄 동시에 세계기록을 돌파했으며 1994년에 또 노르웨이에서 있은 제 17회동계올림픽경기대회 녀자 500메터쇼트트랙경기에서 은메달을 앗아왔다. 이는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종목에서 메달이 없던 중국의 력사에 종지부를 찍은것이다.

《경제가 발전하지 못한 지난 세기 60, 70년대 훈련경비가 모자라 로동자를 배치못하는 상황에서 스케트장을 수리하고 청소하고 물을 주는 일이 감독들에게 차례졌다. 땀방울이 얼어붙는 한겨울, 아침 5시가 좀 지나 일어나서는 어둠속에서 손전지를 들고 스케트장에 물을 줘야 했다.  2시간 정도 물을 주고나면 훈련시간이 다 된다》.  힘겨웠던 그 시절을 회억하는 김장복, 그는 이런 말을 한다. 《그때의 감독은 <의사>이기도 하다. 선수들의 생활은 물론 신체검사까지도 감독들이 맡아했다. 하루 종일 바삐 보내구 나서 쉬지도 못하고 또 다음의 훈련방안을 짜야 한다. 고달픈 일이지만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따낼 때마다 더없이 자랑스럽고 기뻤다》.

수십년을 선수, 감독으로 있으면서 많은 경험을 쌓은 김장복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외국의 선진적인 훈련 사상과 방식을 거울로 삼고 중국선수들의 특점에 맞는 훈련방법을 연구해 냈다.

한편 그는 《장염매에 대한 기초훈련》, 《쇼트트랙 소질훈련에서 얻은 경험》 등을 총화하여 길림성 더 나아가 우리 나라 스피드스케트발전에 기여했다.

김장복은 선후로 1989년에 중화인민공화국 체육운동 2급 상을, 1998년에는 길림성정부로부터 1등 공을 받았으며 세번이나 길림성 선진사업자로 평선되였다. 1992년에는 국가체육위원회로부터 전국과외체육학교 체육훈련 선진사업자란 영예도 안아왔다.

퇴직한 후에도 김장복은 주변 사람들의 요청에 단기 학습반을 조직하여 꼬마들에게 스케트를 배워주고있는데 올해로 4년째 되는 해이다.

그는 《여름에는 인라인스케트를, 겨울에는 스피드스케트를 배워준다》며 《즐기니까 한 일이지만 훌륭한 스피드스케트 새싹을  발견할겸 시작한것이다》고 내심을 밝히면서 《스케트는 신체단련이 되고 흥미롭고 담량도 키울수 있는 운동이다. 우리 조선족어린이들도 공부에만 매달리지 말고 재미있고 의지력도 키울수 있는 빙상운동을 선택할것》을 권장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58년, 봄, 김 철은 귀향한다. 그가 맨 배낭에는 전쟁의 초연 속에서 쓴 '전선 시초'1백 여 편이 들어 있었다. 해란 강변엔느 새움이 돋고 있었다. 연변 땅을 밟으며 가슴이 벅찼다. 즉흥시가 떠올랐다. "이른 봄 해란 강에 아지랑이 피는 데/귀환병과 처녀는 고향 길을 거닐었네/담벽 같은 앞가슴에 주렁진 훈장은/결결한...
  • 2005-10-25
  • 북경 킹스카이정보기술휴한회사 김호동사장 중국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북경의 중관촌, 중국 IT시장을 선도하는 북경시장에서 민족기업가인 김호동사장도 중한 상무교류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개발, 사이트 개설 등으로 선두역할을 하고있다. 길림성 도문시 출신인 김호씨는 1988년 7월 중앙민족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
  • 2005-10-24
  • 1700여개 한국기업 입주 상주 한국인 8000여명 대련은 중국 동북3성의 대외개방 및 경제개발의 창구로서 가장 큰 해안무역도시이다. “대대련건설”(大大連建設) 가속화와 중한량국간 경제관계의 진일보 발전으로 한국굴지기업들의 대대련투자가 발빠른 행보를 거듭하고있다. 특히 올해 한국 조선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 2005-10-24
  • [원제: 일반인도 “항천꿈”실현 가능] 할빈공대 김영덕교수 신주시리즈 우주선 청사진 그려 최근 기자의 취재를 받은 할빈공업대학 항천학원 김영덕교수는 “몇천년후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실험을 하고 일반인들도 우주려행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향후 중국항천사업발전의 미래를 전망하고 우주선이 우주를 비...
  • 2005-10-24
  • 김상기 일가는 길림시 교외의 가반가에 눌러 앉았다. 길림시에서 서북쪽으로 공장구역-하다만을 지난 송화강 나루터를 지나면 불과 십리도 못 되는 시골이었다. 일명 북길림이라 했다. "길림시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를 가면 신길림이 있었죠. 일본인 마을이었지요. 만주석유회사도 있고, 잘사는 동네였습니다. 신길림에 사는...
  • 2005-10-24
  • 전남-곡성군 입면 삼오리, 넓지 않은 벌판, 옥답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김상기는 유년기, 엿 궤짝을 둘러메고 정처 없이 흘렀다. 그러다 거지가 됐다. 울산에서 또래 거지를 만나 친구가 됐다. 부둣가로 놀려 갔다가 일본의 화물선과 인연이 된다. 화부다 됐다. 화물선은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큰 화물선 회사 소속이었다...
  • 2005-10-21
  • [원제: 어려움속에서 성공한 행운아] 2005-10-20 10:21:37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마음씨 고운 뭇사람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학습에 노력하여 중국의 명문대학인 절강대학에 입학한 정춘매학생은 참으로 행운아였다. 집이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에 있는 정춘매학생의 가정은 본래 생활형편이 괜찮았다. 그런데 자녀의 공부뒤바...
  • 2005-10-20
  • 중국은 요즘 101세를 일기로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원로 문학가 바진(巴金) 중국작가협회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득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고 숨을 거둔 상하이를 비롯해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현대문학관이 있는 베이징, 1904년 그가 태어난 쓰촨성 청두 등에서 추도 행사가 한창이다. 중국 신문들은 엄청난 지면을...
  • 2005-10-20
  • 유년 시절의 대가족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에 외할머니가 파금을 안고 있고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파금의 모친이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17일 세상을 등진 파금(巴金)은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04년 11월24일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서 태어났다. 본...
  • 2005-10-20
  • 항미원조시기 파금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작가였다. 1952년 3월 31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4월이후로는 개성 제1선으로 나갔다. 그는 친히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영웅들속에서 생활》하였고 10월에야 귀국하였다. 그후 1965년까지 그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 대해 노래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이 시...
  • 2005-10-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