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전쟁터에 피여난 한송이 진달래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8월2일 08시42분    조회:752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 로전사 최경애할머니의 참군일기에서 

산골마을에서 참군한 처녀

1946년 4월초 연변의 봄은 일찍도 찾아왔다. 마을 앞산에는 진붉은 진달래가 떨기떨기 피여났다. 로투구 마을밖에는 전선으로 떠나는 청년들을 전송하는 마을사람들로 분비였다. 두 오빠와 같이 전선으로 떠나는 경애는 꼭 공을 세우고 돌아오리라고 속으로 다짐했다. 그때 경애의 나이는 19세였다. 미혼부인 신만규씨는 반년전에 입대하여 마을을 떠난 뒤였다.

고향을 떠나 조양천교도대에 가입한 경애는 1년간 정치학습과 간호원학습 그리고 군사훈련을 마치고 군인으로 되였다. 군인이 된 경애는 라자고전투를 비롯한 많은 전투에 참가하면서 한 평범한 농촌처녀로부터 직업군인으로 되였다.  1948년 여름 당의 호소에 따라 조선전선으로 나간 경애는 평양에서 조선인민군 후군대대 위생부의 간호원으로 되였고 일년후에는 강호장으로 되였다. 

모안영을 만나다

1950년도 경애는 인민군 후근부 간호대대 소대장으로 승진했고 우연하게 모안영을 만나게 되였다. 소련류학을 마치고 조선전선으로 나온 모안영은 비록 모택동의 아들이였지만 생활이 소박하고 언제나 병사들과 어울려 허물없이 지냈다. 가렬처절한 전쟁마당이였지만 때때로 안녕이 찾아와 저녁이면 경애는 몇몇 친구들과 같이 모안영의 숙소로 찾아가 이야기도 듣고 소련노래도 배웠으며 오락회도 열군했다.

1950년 11월 24일 지방에 내려가 부상병을 구급하고 주숙지로 돌아오던 경애는 미군의 폭격에 휘말려들었다. 고개를 넘어 주숙지를 내려다 보던 경애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주숙지가 미군의 폭격에 풍지박산이 났던것이다. 경애와 전우들은 쏟아지는 탄우를 헤치면서 천방지축주숙지에 도착하여 무너진 벽채를 들어내고 희생자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모두 6구의 시체를 파낸 경애네는 이미 화염에 그을러 모습을 분간하기 어려운 시체를 놓고 눈물만 흘리다가 한 남자 시체의 손목에 채워져 있는 소련제 손목시계를 보고 깜짝 놀랐다. 희생된 사람은 분명 모안영이였던것이다. 거인으로 안겨오던 모안영의 죽음은 경애에게 받아안기 어려운 충격이였다. 전우를 잃은 고통에 모대기던 경애에게 또 하나의 불행이 닥쳐들었다. 미혼부인 신만균씨가 중상을 입고 국내에로 이송되였다는 소식이였다. 당금이라도 미혼부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경애는 군인의 직책을 저버릴수 없었다. 경애는 중국에서 보내 온 미혼부의 자기목까지 싸워달라는 절절한 부탁이 담긴 편지를 받고 목숨을 받쳐서라도 조선인민과 조국을 위하여 영예를 떨치리라고 다짐했다. 

불구름 자욱한 조선의 싸움터에서 경애는 한 병사로서의 직책을 다 하기 위하여 자기 청춘의 불타는 정열을 몰부었다. 부대에서는 경애에게 중국으로 돌아가 미혼부를 돌보라고 휴가를 주었지만 경애는 전우들이 매일같이 전장에서 피를 흘리는데 자기가 개인 사정으로 중국으로 갈수 없다며 다시 전선으로 달려나갔다. 조선에 있는동안 경애는 군공메달 2매, 국기훈장 1매,  8.15군공메달 1매 수여받았고 김일성장군의 접견까지 받았다.

미혼부의 한쪽다리가 되여

조선전쟁이 끝나자 경애는 미혼부가 있는 심양시군인병원으로 달려갔다. 경애를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너무나도 참혹했다. 침대에 누워있는 미혼부의 한쪽다리가 보이지 않았던것이다. 경애가 더욱 받아들이기 힘든것은 미혼부의 돌변해버린 태도였다. 신만균씨는 자기는 이미 경애를 사랑하지 않는다는것이였다. 자기를 너무 사랑하기에 불구자가 된 몸으로 경애에게 평생 불구자로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사랑을 거부하는 신만균씨 앞에서 경애는 자기가 미혼부의 한쪽다리가 되여 인생길을 걸어가라리라고 작심했다. 경애는 가정과 친구들의 반대에도 마다하고 그해 가을로 신만규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경애는 결혼하던 날부터 불구자가 되여 성질이 괴벽하고 까다로운 남편앞에서 인자한 웃음으로 대했고 남편의 손발이 되여 오손도손한 가정을 꾸려나갔다. 아들이 태여나고 몇년후에 딸까지 있게 되였다. 무럭무럭 커가는 자식들과 경애의 사랑에 감동된 남편은 성질도 점차 온화해지고 불편한 몸으로도 경애의 일손을 도와나섰다. 경애네 부부간은 조용할 때마다 지나간 세월 전쟁의 나날을 회억했고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전우들을 그리면서 회포를 나누군 했다. 1997년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나던 날 남편은 경애의 손을 꼭잡고 '내평생 당신에게 고생만 시키고 가는구만' 하면서 손을 놓을줄 몰랐다. .

20대 꽃나이에 전선으로 나갔던 한녀인이 지금은 80고령의 로인으로 되였다. 세월은 그동안 반세기가 흘러갔다. 지금도 청명이나 추석이 오면 집에서 간단한 음식을 장만하여 가지고 교외로 나가 인적이 드문 강가에서 남편과 전우들을 위하여 술을 붓고 애절한 추억속에 살아가는 할머니, 남편과 전우들의 생각이 날때마다 오늘까지 간직하고 있는 군복을 입고 밤을 보낸다는 최경애할머니이다. 

/김동규 기자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동북해방전쟁시기 대공을 세운 폭파영웅 박영준장춘 제1자동차그룹에서 근무하다 리직한 박영준(조선족)이 세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영웅이라는 말을 듣고 기자가 그를 찾아간것은 지난 9월 21일. 80세 고령이지만 말머리가 흐트러지지 않고 잽싼 일거일동에서 그가 칼날같은 성격의 소유자임을 직감할수 있었다. 그는 ...
  • 2009-09-28
  • 30여년 올곧은 약학인생—연변대학 의학부 약학원 박혜선교수가을을 맞아 연변대학 캠퍼스 곳곳은 갈수록 건교 60돐 경축 분위기가 농익어간다. 환락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연변대학 의학부 캠퍼스에서 약학원 부원장으로 사업하는 전국정협위원이며 주정협 부주석인 박혜선교수를 만났다.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
  • 2009-09-25
  • 중국 3대 무용예술가 한사람, 조선족무용예술의 황후 최옥주 저명한 무용예술가 최옥주 만나본다 대형무극 《춘향전》 《20세기 중화경전저작》에 선정《인민일보》: "최옥주는 조선족이 낳은 문화재다" 150만원 사재를 털어 북경에 조선족무용학교 창설최옥주 프로필1951-1958년 연변가무단 입단, 골간 무용배우...
  • 2009-09-25
  • ㅡ단동중삼복장유한회사 김용찬사장    고생이라고는 해보지 않았을것같은 깔끔한 외모와 기질. 이것이 김용찬사장에 대한 첫 인상이다. 그러나 그는 “천만의 말씀”이라며 자신의 창업의 길은 그야말로 우여곡절의 길이였다고 하였다.   길림성 교하시 라법향 신흥촌의 조선족농민가정...
  • 2009-09-23
  • 신용과 인권존중- 기업운영의 비결—농민공 600여명을 취업시키고 어머니사랑을 베푸는 설순희리사장 며칠전,필자는 휴가차로 고향 연길에 돌아온 청도시광성향보유한회사 리사장 설순희(69세)녀사를 취재할 기회를 가지였다.설녀사는 산동성 청도시 교주에서 4명의 “특수촌민”중의 한사람이다.고향이 연길...
  • 2009-09-23
  • 저는 중공당원입니다  편집자의 말: 《저는 중공당원입니다》 몇글자 안되는 말이지만 이 말을 하기란 쉽지 않고 이 말을 할 자격을 가지기란 더구나 쉽지를 않다. 한 당원간부가 10여년간 대도시 사업과 생활을 버리고 자기의 재능과 지식을 수요하는 고향에 내려가 새농촌을 건설하고 일심전력으로 빈곤호들을 ...
  • 2009-09-22
  • 백성 생명재산 지켜선 수호천사 —5.1로력메달수상자 연길시공안국 김호철부국장“인민경찰이라면 항상 사회의 약소군체와 백성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념두에 두고있어야 한다.” 이는 연길시공안국에서 형사사건 사출, 마약금지 등 사업을 주관하고있는 김호철부국장의 좌우명이다. 살인, 강탈, 마...
  • 2009-09-22
  • 흑룡강성 건설그룹 청도 분공사 김수남 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 박영만 기자 = 청도시에서 번화가로 부상하고 있는 노산구 하이얼로 남쪽에 새로 오픈한 천보국제빌딩, 이 오피스텔의 15층에 버젓하게 자리한 흑룡강성 건설그룹 소주 분공사, 대련 분공사, 청도 분공사의 합동영업본부, 이것이 5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김...
  • 2009-09-21
  • 두발로 뛰는 《실천하는 학자》중앙민족대학 황유복교수 만나본다황유복 프로필:1943년 길림성 영길현 쌍하진 출생1961-1966년 중앙민족대학 력사학부에서 민족사 전공1966년 7월-현재 중앙민족대학 교수, 박사생도사1972년 중앙민족대학 한조번역학과 (조선어문학과 전신) 창설1987-1989년 미국 하버드대학 교환교수1993년...
  • 2009-09-21
  • 국가과학기술성과 일등상 수상한 조선족 민영기업 심양금원플라스틱도관 김규원사장의 창업이야기심양금원플라스틱도관회사는 광케이블보호관(COD관)분야에서 국내특허를 따내면서 이 업계의  최선두를 달리고있는 회사로 유명하다. 광케이블 전용 보호관인 COD관은 최근년에 새로 개발되여 국제적으로 성숙된 시...
  • 2009-09-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