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내몽골초원의 조선족 젖소사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11월15일 09시38분    조회:911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요즘과 같이 좋은 세월에 농촌에서 도시에 올라와 돈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허다할뿐만 아니라 시내에서 농촌에 내려가 창업과 치부의 꿈을 키우는것 또한 아주 자연스런 일로 되였다. 내몽골 울란호트시 울란하다진 고성촌에서 젖소농장을 경영하고있는 현덕일사장이 바로 그들중의 한사람이다.

1993년 현덕일씨는 호르친우익 전기도로관리단에 출근하면서 식당을 두개나 경영하였다. 일찍 도로관리단에서 부단장으로까지 있은 그는 경영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5년동안 고생하면서 자금과 경험을 어지간히 쌓은 그는 초원의 우세를 리용하여 젖소를 사양해보면 어떨가 하고 생각했다. 1998년의 어느 하루 그는 시목축관리쎈터에 가서 젖소를 구매하는 경로와 사양기술 등에 대해 상세히 료해하고 젖소사육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해 그는 일차성적으로 젖소 10마리 사들였다.

현덕일씨는 울란호트시 울란하다진 고성촌에 4만평방메터되는 산을 사고 2백만원을 투자하여 젖소농장을 짓기 시작하였다. 한편 그는 울란호트젖소공장과 납품계약을 맺고 상해에 가서 젖짜는 기계와 분쇄기, 사료기 등을 사들이고 본격적인  창업을 시작했다. 일손이 모자라서 이웃촌에서 일군 7명을 청하였지만 일은 계속 딸렸다. 《그때는 너무나 바빠서 밤낮으로 젖소우리에서 지냈습니다. 우유질을 보장하기 위하여 책을 뒤져보고 컴퓨터에서 자료를 찾고 친구들한테 물어도 보고...》 현덕일씨는 힘겨웠던 초창기의 기억을 되살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현덕일사장의 젖소농장에서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우량종 젖소를 기르고있는데  그가 사육한 송아지는 다른 집에서 2년 키운 젖소만큼 크다. 그만큼 갑절의 노력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올해 그는 젖소 80여마리를 사육했는데 30마리는 이미 팔고 아직 50여마리가 남았다. 농장의 고정재산도 크게 늘어나 뜨락또르4대,자동차2대 그리고 발전기, 젖짜는 기계, 랭각기, 분쇄기, 등  젖소사육에 필요한 기구가 구전하다.

무슨 일에서나 현덕일사장은 신용을 첫번째로 강조한다. 장사를 하려면 신용이 밑바탕이 돼야 한다는것이다. 그는 젖소공장과 장기간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성수기나 비수기나 값이 내려갔든 올라갔든 꼭 제때에 그리고 정한 가격에  우유를 공급하고 량을 적게 한적이 한번도 없었다.

현덕일사장의 젖소농장에는 일군이 7명 있다. 그는 아무리 바빠도 일군들의 월급을 제시간에 한푼도 차나지 않게 꼭꼭 계산해주었으며 명절이면  새옷을 사준다,  맛있는 음식을 차려준다 하면서 일군들과 정을 돈독히 나눈다. 농장에서 8년동안 일해온 뢰아주머니는 "현사장이 마음씨가 얼마나 좋은지 우리를 형제처럼 대한다. 일을 해도 힘든 감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덕일사장은 래년에 농장규모를 더 확대하여 규범화한 젖소농장으로 꾸려나가려 계획하고있다. 멀지 않은 앞날에 젖소농장을 조선족 제일의 젖소농장으로 키우는것이 현덕일사장의 야심찬 꿈이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미시간 대학을 졸업한 강유진 군은 2005년 재학시 앤아버 시의원직에 출마했다가 낙선했지만 3년만에 의원보다 더 나은 대통령 특별보좌관이라는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강 군은 지난해 11월 10일 비행기에 오르면서 오바마 후보가 강유진 군의 등을 치며 격려하는 사진과 12월 21일 하와이에서 대통령 당선자와 골프...
  • 2009-05-26
  • 1흔히 기자들을 일컬어서 발로 뛰는 사람들이라 칭한다. 견문이 많아야 현장감이 있는 신문기사를 많이 써낼수 있다느 말로 풀이된다.  하지만 음악가가 발로 뛴다면 보편적인 통념을 거부할수도 있다. 그런데 이 통념을 깨친 음악가가 있는데 그가 바로 《중국조선족민 간음악집》(이하 음악집으로 략함)을 펴낸...
  • 2009-05-22
  • “성공자의 과거가 비참할수록 행복하다.” 한국련속극에 나오는 이 대사를 좌우명처럼 여기는 예술인이 있다. 가요 “모두다 갔다”, “인생살이”, “금이야”, “마음부자 제일부자” 등 노래를 불러 대중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아안은 대중가수 최승화, 신물나는 가난...
  • 2009-05-22
  • “동포연구 ‘한우물 파기’ 올해로 20년 맞았다” 해외한민족연구소 이윤기 소장, 다음달 1일 연구소 창립 20주년 기념식 개최 동포문제가 주목받지 못하던 1989년부터 중국과 CIS지역 동포들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펼쳐온 해외한민족연구소(소장 이윤기·사진)가 다음달 1일로 창립 20주년을 맞...
  • 2009-05-21
  • 지난 12일, 금융위기와 조선족기업경제발전 포럼에 참석한 장춘(长春)의 대화호텔 이규광 동사장이 포럼을 통해 '건전한 기업과 충실한 경영가가 되는 길'이라는 주제로 연설을 했다. 이규광 동사장은 "창춘은 정치와 문화가 함께 발달한 도시로써 창춘의 기업인들이 그 영향을 받고 있다. 경제활동에서 치밀한 ...
  • 2009-05-18
  • "평범속의 휘황" -조선예술품소장애호가 위배평 취재기 중조수교 60주년을 맞으며 가동된 "중조친선의 해"를 계기로 조선예술품 소장가 위배평씨를 취재하기위해 그의 사업터를 찾은 것은 해빛도 따사로운 5월의 하루였다. 위배평씨의 사업터인 베이징시 공상행정관리국 해전분국 자죽원 공상소를...
  • 2009-05-16
  • 연변에서 코리아복장 유한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손향 동사장이 지난 13일, 금융위기와 중국조선족기업발전 포럼에 참석했다. "기업인들이 한대 모여 정보를 교환하고 문제점을 상호 보완해주는 자리라 생각돼 바쁜 일정에도 참석하게 됐다"고 포럼참석 계기를 밝혔다.손향 동사장은 "작년보다 참석 인원이 많...
  • 2009-05-15
  • 색스폰으로 엮는 연주와 전수의 인생—음악학원 군악학교 등에 18명의 제자 수송우리 연변은 해방전에 이미 규모를 갖춘 관악대가 여럿 있었고 해방후엔 학교를 위주로 각 현, 시마다 관악대가 활약했다. 또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관악연주가들을 양성해 국내 큰 악단은 물론 해방군 각 군악대에도 대량 수송했다. 오...
  • 2009-05-14
  • 20여년간 한 일터에서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 현재 연변대학부속병원 영상1과 주임으로 활약하고있는 조지매는 대학입시를 회복한뒤의 첫 패 대학생으로 1982년에 우수한 성적으로 연변의학원 의료전업을 졸업하고 학교에 남아 근무했다. 20여년간 그는 라사마냥 연변대학부속병원이라는 이 기계에서 착실하게 사업하면서 그...
  • 2009-05-14
  • 20여수의 히트곡을 만들어낸 대중들에게 너무나 익숙한 작곡가 고창모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모든것이 운명적이였다. 음악의 길을 선택하게 된것도, 사랑하는 안해를 만나게 된것도, 연변에서 작곡생활을 하게 된것도… 청춘을 문화대혁명이란 특별한 시대에 보내게 되여 조금은 힘들었지만 그는 결코 불행...
  • 2009-05-12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