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최룡수-조선인혁명가들을 세상에 알린 학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07년11월19일 08시24분    조회:938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최룡수교수는 잊혀진 조선인혁명가들의 사적을 찾아 중국조선족사회 더 나아가 해외에 이들의 사적을 널리 알린 분이다.

최룡수교수는 미국기자 님.웨일즈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던 조선인혁명가 김산(장지락)의 정체를 밝혀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화가이면서 혁명가였던 한락연, 기동항일유격대를 이끌었던 주문빈(周文彬), 지하투쟁의 지도자였던 리철부(李屆夫), 혁명리론가 김규광(金奎光)…이런 쟁쟁한 인물들의 진실을 밝혀냈다.

최교수가 지난  8월 19일 밤 71세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내가 처음 최교수를 만난것은 2002년, 그후  2005년 항일전쟁승리 60주년을 맞아 방송다큐 《불멸의 발자취》를 만들기 위해 최교수를 다시 찾았는데 그때는 2003년 가을이였다. 그는 불편한 몸이지만 직접 태항산답사와 상해, 남경지역 답사를 함께 다녀왔다.

어떻게 되여 조선인혁명가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였는가는 물음에 최교수는 이런 말을 했다. 《1981년, 당시 중앙당학교에 조남기장군이 왔었는데 조선족교원이 있다는것을 알고 나를 만나 주었다. 그때 조남기장군은 관내 조선민족의 투쟁을 이끌어왔던 많은 항일투사들의 사적이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했다고 하면서 안타까와했다. 그러면서 북경에 있으면서 이 일을 할것을 제기했다.》

《〈력사전문가도 아닌 제가 어떻게 그 일을 하겠습니까?〉고 주저하자 조남기장군은 〈당신은 전문가이기보다는 먼저 조선족학자요. 조선족이기에 이 일을 해야 하지 않겠소?〉라고 했다.》

그때로부터 최교수는 관련 자료를 찾고 현지답사를 시작했다. 어려운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자료에 있는 주소와 지금의 주소가 다르고 많은 현장이 세월속에 파손되고 변화되여 확인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최교수의 로고에 북경에 있는 반일투사들의 유가족은 지금도 최교수를 잊지 못하고있다.  김산의 아들 고영광, 김규광의 아들들, 류자명의 딸 류득로, 주문빈의 녀동생 김신정, 한락연의 자녀…

최교수의 저택에는 카드로 작성해놓은 조선인혁명가들의 략력이 수백개나 정리되여있고 소중한 사진자료와 신문자료들이 있으며 혁명자들의 친필략력, 남겨놓은 시작, 력작들도 있었다.

조선지사들의 독립운동을 연구하면서 최교수는 민족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8차에 걸쳐 연안에 다녀오면서 조선혁명군정학교 옛터에 아무런 기념물도 없는것에 몹시 안타까웠다.

그는 관련 자료들을 모아가지고 연안시박물관 관장에게 서한을 보내 기념비를 세워야 할 중요성과 의의를 강조,  드디여 연안시 리가평(李家坪)에 조선혁명군정학교 옛터라고 밝힌 돌비석이 서게 되였다. 그후 그의 노력으로 료녕성 신빈현에다 리홍광의 조각상을 세우게 되였고 그는 또 길림성 반석시의 홍광중학교에 리홍광 관련 자료들을 제공하기도 했다.

최교수의 다년간의 노력을 거쳐 관내지역에서 투쟁했던 많은 조선인혁명가들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였다.

2005년 중국에서는 항일전쟁 승리 60주년과 세계 반파쑈전쟁 승리 60주년을 성대히 기념하였다. 기념행사의 하나로 우리가 제작한 방송다큐 《불멸의 발자취》― 관내지역 조선민족 반일투쟁사적이 중앙인민방송과 연변텔레비죤방송을 통해 중국의 광범한 조선족과 대면하게 되였고 또 민족출판사에 의해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우리 력사가 실사구시적으로 우리 조선족에게 알려졌다니 그만큼 더 기쁜 일이 없다》며 최교수는 《이것만으로도 족하다》고 흐믓해했다.

그는 한평생 맑스주의를 신앙하면서 실사구시적으로 진실한 삶을 추구해왔다.

문화대혁명시기 최교수는 억울한 루명을 쓰고 감금생활을 하게 되였고 고된 로동을 하게 되였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전국적으로 진리표준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데 최교수의 글 《유심주의 세계관의 대폭로》가 길림성 리론지인 《신길림》 에 발표되였다. 이 글은 길림성에서 그릇된 일을 바로잡는 리론적근거로 되였다.

1978년 6월에 중앙당학교로 전근한 최교수는 맑스주의리론과 철학을 강의, 가치 있는 론문들을 많이 써냈다. 그의 《조선유학사의 특성과 역할》이란 론문은 중국에서 처음으로 조선유학의 핵심인 퇴계 리률곡을 언급했던것이다.

《철학은 언제나 실사구시해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환경조건이 허락하지 않으면 침묵을 지킬지언정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최룡수교수의 인생관이라 할수 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58년, 봄, 김 철은 귀향한다. 그가 맨 배낭에는 전쟁의 초연 속에서 쓴 '전선 시초'1백 여 편이 들어 있었다. 해란 강변엔느 새움이 돋고 있었다. 연변 땅을 밟으며 가슴이 벅찼다. 즉흥시가 떠올랐다. "이른 봄 해란 강에 아지랑이 피는 데/귀환병과 처녀는 고향 길을 거닐었네/담벽 같은 앞가슴에 주렁진 훈장은/결결한...
  • 2005-10-25
  • 북경 킹스카이정보기술휴한회사 김호동사장 중국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북경의 중관촌, 중국 IT시장을 선도하는 북경시장에서 민족기업가인 김호동사장도 중한 상무교류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개발, 사이트 개설 등으로 선두역할을 하고있다. 길림성 도문시 출신인 김호씨는 1988년 7월 중앙민족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
  • 2005-10-24
  • 1700여개 한국기업 입주 상주 한국인 8000여명 대련은 중국 동북3성의 대외개방 및 경제개발의 창구로서 가장 큰 해안무역도시이다. “대대련건설”(大大連建設) 가속화와 중한량국간 경제관계의 진일보 발전으로 한국굴지기업들의 대대련투자가 발빠른 행보를 거듭하고있다. 특히 올해 한국 조선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 2005-10-24
  • [원제: 일반인도 “항천꿈”실현 가능] 할빈공대 김영덕교수 신주시리즈 우주선 청사진 그려 최근 기자의 취재를 받은 할빈공업대학 항천학원 김영덕교수는 “몇천년후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실험을 하고 일반인들도 우주려행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향후 중국항천사업발전의 미래를 전망하고 우주선이 우주를 비...
  • 2005-10-24
  • 김상기 일가는 길림시 교외의 가반가에 눌러 앉았다. 길림시에서 서북쪽으로 공장구역-하다만을 지난 송화강 나루터를 지나면 불과 십리도 못 되는 시골이었다. 일명 북길림이라 했다. "길림시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를 가면 신길림이 있었죠. 일본인 마을이었지요. 만주석유회사도 있고, 잘사는 동네였습니다. 신길림에 사는...
  • 2005-10-24
  • 전남-곡성군 입면 삼오리, 넓지 않은 벌판, 옥답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김상기는 유년기, 엿 궤짝을 둘러메고 정처 없이 흘렀다. 그러다 거지가 됐다. 울산에서 또래 거지를 만나 친구가 됐다. 부둣가로 놀려 갔다가 일본의 화물선과 인연이 된다. 화부다 됐다. 화물선은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큰 화물선 회사 소속이었다...
  • 2005-10-21
  • [원제: 어려움속에서 성공한 행운아] 2005-10-20 10:21:37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마음씨 고운 뭇사람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학습에 노력하여 중국의 명문대학인 절강대학에 입학한 정춘매학생은 참으로 행운아였다. 집이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에 있는 정춘매학생의 가정은 본래 생활형편이 괜찮았다. 그런데 자녀의 공부뒤바...
  • 2005-10-20
  • 중국은 요즘 101세를 일기로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원로 문학가 바진(巴金) 중국작가협회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득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고 숨을 거둔 상하이를 비롯해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현대문학관이 있는 베이징, 1904년 그가 태어난 쓰촨성 청두 등에서 추도 행사가 한창이다. 중국 신문들은 엄청난 지면을...
  • 2005-10-20
  • 유년 시절의 대가족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에 외할머니가 파금을 안고 있고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파금의 모친이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17일 세상을 등진 파금(巴金)은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04년 11월24일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서 태어났다. 본...
  • 2005-10-20
  • 항미원조시기 파금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작가였다. 1952년 3월 31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4월이후로는 개성 제1선으로 나갔다. 그는 친히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영웅들속에서 생활》하였고 10월에야 귀국하였다. 그후 1965년까지 그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 대해 노래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이 시...
  • 2005-10-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