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국가1급배우 김해란의 고백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4월15일 09시20분    조회:649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연기생활은 내 생명의 전부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2008년 음력설야회에서 청춘파인기배우 채용과 더불어 소품 《장모님의 소원》에 출연하여 시청자들의 각광을 받고 《채용의 가시어머니》로 소문놓은 김해란 ?지금까지의 30여년 연기생애에 100여부의 장막연극,단막극, 소품에 출연하면서 성격이 판이한 여러가지 인물형상들을 진실하게 부각한 그는 해당전문가들로부터 《정극분야의 상승연기자》,《정극,희극,비극에 능란한 연기자》라는 평판을 받고있다.
                
 승벽심 많았던 소녀시절

김해란은 무엇이든 남한테 뒤떨어지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성미여서 어려서부터 《악바리》와 《기습쟁이》라는 별명을 달고살았다.

알고보면 4남매중의 맏딸로 태여난 김해란은 이팔청춘에 참군하여 적진을 넘나들며 싸운적있는 부모님들이 결혼 5년만에 힘들게 얻은 귀염둥이였다. 장기간 전쟁터에서 고생하면서 몸을 차게 군탓인지 어머니는 결혼한지 2~3년이 되도록 태기가 없었다.하루라도 빨리 손군을 보고싶었던 외할머니는 그때로부터 익모초를 단으로 베다가 부지런히 환약을 만들어 딸한테 공급했다.이렇게 남비가 굽이 나가도록 익모초를 달이면서 약을 떨구지 않은 보람인지 어머니는 5년만에  해란이를 낳았고 그 아래로 딸 둘에 아들 하나를 더 보았다.         

해란이의 출생은 김씨가문에 전례없는 활력과 생기를 갖다주었다.자식을 자전거앞에 앉히고 다니는 친구들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던 아버지는 해란이가100일이 차지 않았을 때부터 포대기에 꽁꽁 싸서 자전거앞에 앉히고 거리에 나서기도 했고 외할머니와 어머니는 더구나 쥐면 부서질가 불면 날아갈가 애지중지 키웠다.

온집안의 보배둥이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란 해란이는 유치원시절부터 춤을 잘 추는데다 다른 사람의 흉내를 신통하게 내여 가는 곳마다 사랑을 독차지했다.승벽심은 또 어찌나 강한지 무엇을 하든 꼭 다른 사람을 초과해야 시름을 놓군 했다.

연길시신흥소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선전대에서 활약한 해란이는 농촌으로 하방하게 된 아버지를 따라 당시의 연길현 의란공사 구룡대대에 이사를 가서도 줄곧 학교선전대의 골간이였는데 중학교에 올라간후에는 대대선전대가 공사나 현의 문예콩클에 참가하게 될 때면 무용창작을 전담하고 제법 언니,오빠들의 무용지도가 되여주었다.랑독을 잘하는 그녀는 또 공사방송소의 의무방송원이 되여 아침과 방虛컥?시간에도 생방송으로 분주히 보냈다.

당시 해란이의 꿈은 무용가로 되는것이였다.그런데 17살때 연변예술학교 무용학부에 응시했더니 키가 더는 자라지 못할것이라는 리유로 퇴박을 맞을줄이야?! 학교에서  맨발의사강습을 받으면서도 꼭 예술쪽으로 발전하고싶었던 그는 다음해에 목표를 바꾸어 연극학부에 응시,무난히 시험에 통과되여 소원을 성취하고야말았다.

《악바리》기질이 갖다준 행운

김해란은 연변예술학교 연극학부에서 정인덕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으며 연극예술을 전공한후 1976년에 연변연극단에 배치받았다.그런데 혁명적본보기극을 보급하던 그 년대에 키가 작은편인 해란이에겐 주요한 배역이 차례지지 않았다.고작해야 대사 몇마디밖에 없는 간단한 배역을 맡거나 《만수천산》에서처럼 대사 한마디 없는 군중배역으로 무대에 등장했으며 결혼후 어린애를 키우는 몇년간은 극단의 의료일군,출납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러나 《악바리》기질의 소유자인 김해란은 장장 10년의 무명세월을 지내면서도 연기로 성공해보겠다는 희망만은 포기하지 않았다.아마 자그마한 배역이라도 맡고 닥치는대로 연기실력을 풍부히 하면서 도약의 기회를 노렸다고 하는것이 더 적절할것이다.

그러던 1988년,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훈춘시 경신향양로원의 박경숙을 모델로 TV극을 제작하면서 연출을 맡은 허동활선생님이 김해란을 주역으로 점찍었다.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장애자녀성의 처녀시절부터 50여살까지의 인생살이를 재현해야 하는 이 배역은 나름대로 어려움이 많았다.우선 한쪽 다리에 베니야판을 처매고 쩔뚝걸음을 하는것부터가 30대의 문턱을 넘어선지 얼마 안되는 해란에게는 고역이나 다름없었다.그럼에도 그는 가지가지 난관을 용케도 이겨내면서 감동적인 연기를 펼치여 시청자들과 해당전문가들의 긍정을 받았다.

김해란이 연극배우로서의 실력을 인정받게 된것은 1990년에 소품 《노랑각시》에 출연하면서부터였다.당시 연변연극단에서 배우들의 자질을 점검해볼 목적으로 작품 몇개를 내놓았는데 소품 《노랑각시》의 연출을 맡은 리영근선생님이 주역의 한사람으로 김해란을 선택했다.이것은 도약을 꿈꾸는 김해란으로 놓고말하면 희망의 징검다리였다.이 기회에 자기의 숨은 재질을 남김없이 자랑하고싶었던 그는 혼신의 정열을 다 쏟아부으며 련습에 몰두했다.

요구가 남달리 높은 리영근선생님의 마음에 들게끔 연기를 한다는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였다.무대등장자세부터 련속 10여차씩 반복시키면서 닦아세우는데 때로는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그러나 이것이 성공하는데서 꼭 넘어야 할 아리랑고개라고 생각하니 사소한 동작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고 련습을 견지해나갈수 있었다.

그번에 김해란이 창조한 농촌새각시의 형상은 어찌나 생동한지 극단의 책임자들은 물론 동료들까지도 탄복을 했다.후에 그 작품이 《심각한 검토서》로 제목이 바뀌여 연변텔레비죤방송국의 음력설야회에 등장하고 성급콩클에 참가하여 특등상을 타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김해란은 뒤늦게나마 여러가지 연극,소품들에서 중요한 배역을 맡고 재질을 뽐낼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였다.

도약의 실현

1990년대부터가 김해란의 연극인생에서 제일 화려했던 전성기였다. 그 시기 그녀는 《음식타발》,《가짜로임봉투》,《취한 밤의 가라오케》,《털없는 개》,《사랑의 품》,《사랑의 샘》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면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인기배우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김해란이 주역을 맡고 인기상승을 안아온 작품으로는 리광수 극본,방미선 연출로 된 장막연극 《사랑의 품》을 손꼽을수 있다.외팔남편과 함께 자그마한 식당을 경영하면서 세식구의 살림을 힘들게 영위해나가는 처지에서도 아빠엄마의 품을 떠난 불쌍한 백설이를 친자식처럼 키워주는 란이의 형상은 연변 각지와 동북3성 나아가 북경무대에서도 관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공연이 끝나도 돌아갈념을 하지 않고 오래도록 박수갈채를 보내주는 관중들,무대우에까지 올라와 포옹해주며 축하의 인사를 보내주는 관중들을 대하면서 그녀는 연극배우의 자호감을 진정으로 체감하였다.

그때로부터 김해란은 모든 빛과 열을 관중을 위한 사업에 몰무으면서 불철주야 뛰여다녔는데 어느 한해인가는 1년 365일중 228일간 외지에 있으면서 순회공연에 참가하여 특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김해란이 창조한 예술형상으로는 연극 《송순녀》에서의 주인공처럼 대중들의 존경을 받는 긍정인물들로부터 연극 《하얀 눈》에서의 《대포쑤시개》 농촌아낙네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인물이 다 있다.이런 인물들은 모두 진실하고 분장 역시 각기 특색이 있어서 겉모양만 보고서는 연기자가 누구인지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그래서 한번씩 새로운 작품에 출연하고나면 《가두배추(다두배채)》,《말괄량이》 등 별명을 달아주는 관중들이 있는가 하면 돈까지 걸며 내기를 하는 관중들도 있었다.

지금까지 장막연극, 단막극, 소품, TV극, 방송극 등 100여부의 작품에 출연,부동한 년령단계의 판이한 인물형상들을 출중하게 부각해내여 여러 급별의 콩클에서 수차 영예를 따낼수 있은 비결을 김해란은 허동활, 리영근, 방미선 등 선배님들의 가르침과 풍부한 생활실천에 귀결시킨다.선배님들의 엄격한 요구와 옳바른 지도가 있고 몇년간의 농촌생활을 포함해서 장기간의 생활실천에서 보고들은  많은것들이 밑거름이 되여주었기에 연기생활의 전성기를 맞아올수 있었다는것이다.

모든것은 연기를 위해

최근년에 들어와 《시대련애》,《장모님의 소원》 등 소품들에 출연하면서 공연에도 수없이 참가하고 텔레비죤화면에도 자주 등장하는 김해란은 《꿩대신 닭》이라고 무용을 전공하지 못해 할수없이 선택한 연극인생이 이렇게 의의있을줄은 천만뜻밖이라고 속심을 터놓는다.

여러해동안 가지가지 풍파를 다 겪으면서도 버텨낼수 있은것은 무대에서의 성과로 생활의 빈구석들을 메울수 있었기때문이라는 말이 되겠다.김해란은 현실생활에서 부딪치는 모든것들을 생활축적의 세절로 간주하면서 시장에 나가거나 텔레비죤을 시청해도 연기활동에 도움을 줄수 있는 영양분을 발굴하고 연기실천에 광범위하게 응용하기에 최선을 다한다.그 보람으로 연기실천에서 보다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여러차나 주직속문화계통의 선진사업일군,우수공산당원으로 평의되고 2006년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제9차당대표대회에 참가하는 영예를 안아오게 된것이 아닐가?!
혈액형이 A형이여서인지 김해란은 정이 많아 후배들을 비롯한 주위사람들을 배려함에 있어서 린색할 때가 거의 없다.누구든 곤난이 있으면 선뜻이 도와주고 자신이 장악하고있는 지식들을 아낌없이 전수해주면서…

몇년간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온 아들 준일이를 외지로 떠나보낸 최근에는 직장에서의 련습과 공연,퇴근후의 제2직업에 묻혀있고보면 한밤중에 집에 들어와도 외롭고 적적한 감이 크지 않다고 한다.하물며 24시간 친구로,선생님으로 되여줄수 있는 텔레비죤프로가 있음에야!

연기하는 한편 연출기량도 련마해내여 선후로 《부부》,《타향의 가을》 등  TV소품에서 연출을 맡은적 있는 김해란은 요즘에 와서 한국 제26회전국연극제에 참가하고저 련습에 분망하다.이번에 인기배우 한석봉과 함께 연극 《도시농민》에서 주역을 맡고 《늘그막사랑》을 펼쳐가는 그녀가 실생활에서도 변모를 가져올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연변라지오TV신문   채선애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동북해방전쟁시기 대공을 세운 폭파영웅 박영준장춘 제1자동차그룹에서 근무하다 리직한 박영준(조선족)이 세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영웅이라는 말을 듣고 기자가 그를 찾아간것은 지난 9월 21일. 80세 고령이지만 말머리가 흐트러지지 않고 잽싼 일거일동에서 그가 칼날같은 성격의 소유자임을 직감할수 있었다. 그는 ...
  • 2009-09-28
  • 30여년 올곧은 약학인생—연변대학 의학부 약학원 박혜선교수가을을 맞아 연변대학 캠퍼스 곳곳은 갈수록 건교 60돐 경축 분위기가 농익어간다. 환락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연변대학 의학부 캠퍼스에서 약학원 부원장으로 사업하는 전국정협위원이며 주정협 부주석인 박혜선교수를 만났다.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
  • 2009-09-25
  • 중국 3대 무용예술가 한사람, 조선족무용예술의 황후 최옥주 저명한 무용예술가 최옥주 만나본다 대형무극 《춘향전》 《20세기 중화경전저작》에 선정《인민일보》: "최옥주는 조선족이 낳은 문화재다" 150만원 사재를 털어 북경에 조선족무용학교 창설최옥주 프로필1951-1958년 연변가무단 입단, 골간 무용배우...
  • 2009-09-25
  • ㅡ단동중삼복장유한회사 김용찬사장    고생이라고는 해보지 않았을것같은 깔끔한 외모와 기질. 이것이 김용찬사장에 대한 첫 인상이다. 그러나 그는 “천만의 말씀”이라며 자신의 창업의 길은 그야말로 우여곡절의 길이였다고 하였다.   길림성 교하시 라법향 신흥촌의 조선족농민가정...
  • 2009-09-23
  • 신용과 인권존중- 기업운영의 비결—농민공 600여명을 취업시키고 어머니사랑을 베푸는 설순희리사장 며칠전,필자는 휴가차로 고향 연길에 돌아온 청도시광성향보유한회사 리사장 설순희(69세)녀사를 취재할 기회를 가지였다.설녀사는 산동성 청도시 교주에서 4명의 “특수촌민”중의 한사람이다.고향이 연길...
  • 2009-09-23
  • 저는 중공당원입니다  편집자의 말: 《저는 중공당원입니다》 몇글자 안되는 말이지만 이 말을 하기란 쉽지 않고 이 말을 할 자격을 가지기란 더구나 쉽지를 않다. 한 당원간부가 10여년간 대도시 사업과 생활을 버리고 자기의 재능과 지식을 수요하는 고향에 내려가 새농촌을 건설하고 일심전력으로 빈곤호들을 ...
  • 2009-09-22
  • 백성 생명재산 지켜선 수호천사 —5.1로력메달수상자 연길시공안국 김호철부국장“인민경찰이라면 항상 사회의 약소군체와 백성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념두에 두고있어야 한다.” 이는 연길시공안국에서 형사사건 사출, 마약금지 등 사업을 주관하고있는 김호철부국장의 좌우명이다. 살인, 강탈, 마...
  • 2009-09-22
  • 흑룡강성 건설그룹 청도 분공사 김수남 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 박영만 기자 = 청도시에서 번화가로 부상하고 있는 노산구 하이얼로 남쪽에 새로 오픈한 천보국제빌딩, 이 오피스텔의 15층에 버젓하게 자리한 흑룡강성 건설그룹 소주 분공사, 대련 분공사, 청도 분공사의 합동영업본부, 이것이 5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김...
  • 2009-09-21
  • 두발로 뛰는 《실천하는 학자》중앙민족대학 황유복교수 만나본다황유복 프로필:1943년 길림성 영길현 쌍하진 출생1961-1966년 중앙민족대학 력사학부에서 민족사 전공1966년 7월-현재 중앙민족대학 교수, 박사생도사1972년 중앙민족대학 한조번역학과 (조선어문학과 전신) 창설1987-1989년 미국 하버드대학 교환교수1993년...
  • 2009-09-21
  • 국가과학기술성과 일등상 수상한 조선족 민영기업 심양금원플라스틱도관 김규원사장의 창업이야기심양금원플라스틱도관회사는 광케이블보호관(COD관)분야에서 국내특허를 따내면서 이 업계의  최선두를 달리고있는 회사로 유명하다. 광케이블 전용 보호관인 COD관은 최근년에 새로 개발되여 국제적으로 성숙된 시...
  • 2009-09-2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