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김경택-소원조선족도농합작사 사장
조글로미디어(ZOGLO) 2009년10월21일 14시31분    조회:923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소원조선족도농합작사 김경택사장의 야심찬 꿈

 (흑룡강신문=하얼빈)“조선족농민들의 한국행이나 대도시진출은 우리 민족사회에 거대한 물질적재부를 가져온것은 사실이지만 실존공동체의 해체위기를 자초한 커다란 아픔도 낳고있다. 조선족농민들의 근본적인 출로는 한국행이 아니라 유구한 력사를 가지고있는 조선족도작(稻作)문화전통을 살려 ‘중국조선족입쌀’이란 브랜드를 만들어 효과적으로 시장에 투입하는데 있다.” 이는 흑룡강성 오상시 소원조선족도농합작사 김경택사장이 지난 8월 22일 동북소수민족발전 및 새농촌건설모식연구세미나 참석차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김경택사장의 일가견에는 나름대로의 리론적근거가 있었다. 그는 2002년도에 이미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오상입쌀을 “소원(물의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고 사물의 근원을 따져 밝힌다는 뜻)”상표로 등록하고 오상시 산하 각 조선족촌들을 찾아다니며 통일상표를 쓰기로 동원하여 할빈시소원량곡경영판매회사를 세우고 회사발전계획을 내왔었다. 김경택씨의 소개에 의하면 “소원오상조선족입쌀” 브랜드를 만들어 조선족농민들의 명품의식을 불러일으키고 촌을 단위로 지사를 세워 촌민들이 본촌의 입쌀을 직접 판매하게 함으로써 수입을 높이는 동시에 시장에 범람하는 가짜 오상입쌀을 견제하려 했다. 당시 김경택씨의 이러한 발상은 오상시 조선족농민들의 열렬한 옹호를 받았으나 유감스럽게 오상시 해당부문의 간섭으로 회사운영이 중단되였다.

  3년후 해당부문의 착오적인 사법결정을 시정받아 50만원의 손해배상을 받았지만 그기간 원기를 너무 잃어 지금까지 당초의 계획을 실현하지 못하고있다.

  현재 김경택씨의 새로운 사업구상은 오상입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원”상표를 례로 “소원오상조선족입쌀”뿐만아니라 “소원반금조선족입쌀”, “소원류하조선족입쌀” 등 동북3성 조선족입쌀 명브랜드를 만들어 전국입쌀시장을 점령하는것이다. 오상입쌀을 보면 근년에 장사군들이 외지입쌀을 오상입쌀로 포장해 시장 출하량을 높이고 량식판매그룹에서는 오상입쌀을 사다가 자기네 기업에서 생산한 입쌀로 둔갑시켜 자기상표로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기업명예와 브랜드가치를 수립하고있다. 현재 국내 입쌀시장을 보면 북경에서 오상입쌀이 1킬로그램에 10원, 상해와 광주에서는 1킬로그램에 16원씩 팔리고있는 상황이지만 아쉽게도 오상시 조선족농민들에게는 자신들이 생산한 오상입쌀을 직접적으로 판매할 권한이 없다. 김경택씨는 료녕의 반금조선족입쌀과 신성자조선족입쌀을 잘 알고있다면서 동북3성의 조선족입쌀 잠재력을 최대한 발굴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동북3성 벼농사의 력사는 조선족들이 피와 땀으로 엮은것이다. 당시 한전농사밖에 모르는 기타 민족이 개척할수 없어 묵힌 강변 습지나 황무지를 조선족이 수원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백여년을 개척하다보니 현재 자연수로 관개할수 있는 대부분 우질수전은 조선족들이 차지하고있다. 전국 어디를 가도 벼농사 하면 조선족을 떠올리는 리면에는 우리 민족의 백여년 도작문화가 고스란히 스며있는것이다. 그 어떤 방법을 취해서든지 우리 민족 백여년 도작문화를 상품화하여 '중국조선족입쌀'이란 브랜드를 만드는것이 조선족농민들에게 가장 희망있는 출로”라고 피력하는 김경택씨의 맘속말이 조선족사회에 의의있는 계시를 줄것이라 믿는다.

  /김창영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58년, 봄, 김 철은 귀향한다. 그가 맨 배낭에는 전쟁의 초연 속에서 쓴 '전선 시초'1백 여 편이 들어 있었다. 해란 강변엔느 새움이 돋고 있었다. 연변 땅을 밟으며 가슴이 벅찼다. 즉흥시가 떠올랐다. "이른 봄 해란 강에 아지랑이 피는 데/귀환병과 처녀는 고향 길을 거닐었네/담벽 같은 앞가슴에 주렁진 훈장은/결결한...
  • 2005-10-25
  • 북경 킹스카이정보기술휴한회사 김호동사장 중국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북경의 중관촌, 중국 IT시장을 선도하는 북경시장에서 민족기업가인 김호동사장도 중한 상무교류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개발, 사이트 개설 등으로 선두역할을 하고있다. 길림성 도문시 출신인 김호씨는 1988년 7월 중앙민족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
  • 2005-10-24
  • 1700여개 한국기업 입주 상주 한국인 8000여명 대련은 중국 동북3성의 대외개방 및 경제개발의 창구로서 가장 큰 해안무역도시이다. “대대련건설”(大大連建設) 가속화와 중한량국간 경제관계의 진일보 발전으로 한국굴지기업들의 대대련투자가 발빠른 행보를 거듭하고있다. 특히 올해 한국 조선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 2005-10-24
  • [원제: 일반인도 “항천꿈”실현 가능] 할빈공대 김영덕교수 신주시리즈 우주선 청사진 그려 최근 기자의 취재를 받은 할빈공업대학 항천학원 김영덕교수는 “몇천년후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실험을 하고 일반인들도 우주려행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향후 중국항천사업발전의 미래를 전망하고 우주선이 우주를 비...
  • 2005-10-24
  • 김상기 일가는 길림시 교외의 가반가에 눌러 앉았다. 길림시에서 서북쪽으로 공장구역-하다만을 지난 송화강 나루터를 지나면 불과 십리도 못 되는 시골이었다. 일명 북길림이라 했다. "길림시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를 가면 신길림이 있었죠. 일본인 마을이었지요. 만주석유회사도 있고, 잘사는 동네였습니다. 신길림에 사는...
  • 2005-10-24
  • 전남-곡성군 입면 삼오리, 넓지 않은 벌판, 옥답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김상기는 유년기, 엿 궤짝을 둘러메고 정처 없이 흘렀다. 그러다 거지가 됐다. 울산에서 또래 거지를 만나 친구가 됐다. 부둣가로 놀려 갔다가 일본의 화물선과 인연이 된다. 화부다 됐다. 화물선은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큰 화물선 회사 소속이었다...
  • 2005-10-21
  • [원제: 어려움속에서 성공한 행운아] 2005-10-20 10:21:37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마음씨 고운 뭇사람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학습에 노력하여 중국의 명문대학인 절강대학에 입학한 정춘매학생은 참으로 행운아였다. 집이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에 있는 정춘매학생의 가정은 본래 생활형편이 괜찮았다. 그런데 자녀의 공부뒤바...
  • 2005-10-20
  • 중국은 요즘 101세를 일기로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원로 문학가 바진(巴金) 중국작가협회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득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고 숨을 거둔 상하이를 비롯해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현대문학관이 있는 베이징, 1904년 그가 태어난 쓰촨성 청두 등에서 추도 행사가 한창이다. 중국 신문들은 엄청난 지면을...
  • 2005-10-20
  • 유년 시절의 대가족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에 외할머니가 파금을 안고 있고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파금의 모친이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17일 세상을 등진 파금(巴金)은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04년 11월24일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서 태어났다. 본...
  • 2005-10-20
  • 항미원조시기 파금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작가였다. 1952년 3월 31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4월이후로는 개성 제1선으로 나갔다. 그는 친히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영웅들속에서 생활》하였고 10월에야 귀국하였다. 그후 1965년까지 그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 대해 노래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이 시...
  • 2005-10-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