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중국조선민족의 정초자- 주덕해 (2)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5월25일 09시22분    조회:803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중국조선민족의 정초자- 주덕해 (2)

 

김 혁 (소설가, 위인전기 “주덕해의 이야기”의 저자)


 

 

야학선생을 따라 혁명에 투신하다 


  승지촌에서
기섭은 야학 스승 김광진의 인도하에 궁극의 적인 일제와 맞서는 활동에 떨쳐일어나게 되였다.

  주덕해의 고향마을 수동촌은 룡정에서 윤동주의 고향인 명동촌으로 가는 대목에 위치한 곳에 있었는데 독립운동가들이 출몰하던 고장이였다. 야학에 다니면서부터 기섭은 점차 시골청년의 몽매한 의식에서 깨여나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근심하는 마음으로 여러문제들을 깊이 사색하게 되었다. 그후 민족독립운동이 공산당의 항일혁명운동으로 변화되면서 그는 독립운동가로부터 공산주의자로 전변하게 되였다.

주덕해의 계몽스승- 김광진

 

주덕해의 야학선생 김근(金根,1903-1937) 1903 1 조선 함경북도 경홍군 웅기읍에서 태여났다. 본명은 김광진이였는데1908년초에 중국 길림성 화룡현 상천평에 이주하여 왔다.  화룡시 광제욕소학교에 입학하였고 길림공업학교졸업하였다. 1922 5월에 남경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다가 1923년에 가정이 곤난하여 공부를 그만두고 개산툰 상천평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그는 맑스-레닌주의를 접수하고 청년동맹 혁명단체에 가입하여 점차 공산주의자로 육성되였다.

  1926년에 그는 승지 부채골 공립 화룡현제14소학교로 전근하여 교장으로 사업하면서 야학을 꾸리고 순회강연대회를 조직하는 방법으로 광범한 청년들에게 역시 맑스-레닌주의를 선전하고 혁명대오를 묶어세웠다. 그의 이와 같은 활동에 의하여 주덕해등혁명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승지에서 소학교학생들을 중심으로 동자단 조직하였고 그해 겨울에는 룡정에서 7명으로 이루어진 철혈단 조직하였다. 철혈단은 첫째, 자금을 모으고 항일무장을 조직하여 둘째, 간첩과 주구를 청산하는것 등을 자신의 과업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는 직접 선전삐라를 인쇄하는 사업을 책임지고 하였다.

그리고 돈을 꾸어다 무기를 구입하무장투쟁을 준비했.

  1930 중공 길동국의 지시에 좇아 9월에 왕청 라자구에 가서 리춘근 동지들과 함께 군사위원회를 세웠다. 그리고 놈들의 무장을 탈취하여 10월에는 왕청유격대를 창건하였다.

“9.18”사변후에는 30명의 조선족청년들로 구성된 북만로농의용대를 조직하여 자신이 직접 대장직을 맡고 그들을 이끌어 악질적인 반동지주를 청산하는 항일구국사업을 하였다.

 

 

인물전기 "주덕해의 이야기"의 삽화 (그림: 신순칠) 

  1933 일제는 화룡, 연길, 왕청, 훈춘 현의 일본군과 위만군 1 4백여명을 동원하여 토벌을 감행하였다. 김근은 부대를 거느리고 이번 반포위토벌전에 참가, 탁월한 군사지휘능력을 발휘하여 그번 전투에서 200여명을 살상.

1934년까지 김근은 밀산항일유격대를 창건하였고 일본군과 위만군과의 여러차례 전투를 거쳐 많은 전과를 올렸다.

1934 10월에 동북항일동맹군 4군이 창건, 김근은 참모처처장 2 대리퇀장으로 임명되였다.

   적들은 항일무장부대에 대한 봉쇄와 포위토벌에 혈안이 되였고 이리하여 김근의 머리에는 현상금 천원이 붙어 있었다.

1937 10 12 아침, 김근은 일제의 사촉을 받은 반역자의 배반으로 화천현 7리라자산에서 살해되였다. 그때 나이 34세였다.

 

(계속)

 

 

"문화시대" 2011 2월호 

 김혁 문학블로그: http://khk6699.blog.me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중한투자무역 법률봉사의 《1번지》북경시금평변호사 사무소 김련숙대표변호사 만나본다 ●  중국의 첫 중한투자무역법률봉사 사무소 설립● 《전국 우수변호사 사무소》를 창설● 《북경시 10대 변호사》 칭호, 전국녀성변호사협회 부회장● 한국대기업과 주중 한국기관과 기구의 법률봉사 전담 북경시금평변호사 사무...
  • 2009-11-26
  • 료리연구가 리숙씨의 음식탐구 스토리연길시중의 수백개소에 이르는 료식업체가운데 휴머니즘경영을 선언하고 유기농,무공해 식재만을 쓰며 고객들에게 알뜰서비스를 제공하는 식당주인이 있다. 그가 바로 연길시 수상시장 청향관의 리숙 경리( 48세)이다.“식당이라 하지만 영리성만 따진다면 그런대로 넘어갈수 있죠...
  • 2009-11-26
  • 국경 ‘보따리장수’서 조선족 제1의 거부로… 태양광발전소 협상차 방한 김춘학 中 금약그룹 회장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무단장(牧丹江)시 김춘학(46) 금약그룹 회장. 그는 한국 기업과의 협력 모색을 위해 한국을 자주 찾는다. 헤이룽장성 조선족 제1의 부자로 알려져 있는 그도 처음에는 중·...
  • 2009-11-25
  •  발해만의 “선장”으로 거듭난 사나이 ㅡ대련우련선무대리유한회사 김광일대표 창업기국경 60주년 및 “중조친선의 해”를 맞아 대련우련선무대리유한회사 대표 김광일(41)씨의 야심은 발발하다. 발해만을 근거지로 조선의 광물자원해운사업에 10여년을 매진해온 그는 요즘들어 조선의 항만...
  • 2009-11-24
  • 칼럼을 통해 조선족사회 제반에 대해 바른 말, 쓴 말을 많이 하여 직통배기교수로 유명한 정인갑교수(62)를 만난것은 지난 11월 8일 저녁무렵, 북경 망경부근의 조선족음식점에서였다. 마침 일요일이여서 협회친구들과 함께 등산을 다녀왔다는 등산복차림의 정인갑교수는 재작년에 정년퇴직한 분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 2009-11-24
  • 중국조선족 제반 사업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 원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 고 주덕해선생 회고■ 호요방: 주덕해동지의 서거소식을 들은 모택동주석과 주은래총리는 《그는 훌륭한 동지였다》고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1952년 9월 3일  연변조선족자치구 인민정부(연변조선족자치주의 전신)가 성립,  주덕해가...
  • 2009-11-24
  • 내몽골초원에 핀 아름다운 진달래 내몽고자치구 아영기 신발조선족향 향장 윤창길을 만나본다윤창길 프로필: 1964년 출생, 내몽고자치구 아영기 나지툰 제2중학교 졸업; 1982년-1985년 중국인민행방군 51312부대 복역 , 입당 1986년-2001년 아영기인민법원에서 사업, ; 2001년부터 지금까지 아영기 신발조선족향 대리향...
  • 2009-11-23
  • 박성국-마약사범을 벌벌 떨게 한 조선족경찰관천안문광장에서 서로 만나 반갑게 인사하는 조선족경찰을 본 관객이 깜짝 놀라 《천안문광장에 연변의 경찰까지 동원되였나?》하고 말해 주위를 웃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재 북경시에 조선족경찰이 20여명 있는데 지난해에 이들중 13명이 뜻깊은 만남의 장을 가졌다고 ...
  • 2009-11-20
  •  산림개혁의 선두주자 박희춘 우리 성 산림개혁의 모델 제공신빈만족자치현 현임 환경보호국국장 박희춘씨가 신빈현 북사평향 당위서기 재임기간 실시한 “집체림 개인관리소유제”를 골자로 한 산림개혁이 전 무순시에 보급되고 우리 성은 물론 길림성의 부분 시에서도 실시돼 명실공히 산림개혁의 모...
  • 2009-11-20
  • 중국에서 의대 교수가 된 조선족 교포, 신종성 교수님20년 전 연변에서 열린 고려의학회. 우연히 참석한 이 학회에서 한국의 비뇨기과 높은 수준을 보고 무작정 한국 유학길을 택한 조선족 교포 출신의 중국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8년간의 힘든 유학 생활 후 북경의과대학의 비뇨기과 교수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 2009-11-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