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독서운동가 김재권선생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5월30일 10시05분    조회:573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산다
독서운동가 김재권선생을 찾아서

[연변일보 2011-05-30 리련화 기자]

김재권선생이 무려 25년이란 세월을 들여 수집, 정리해낸 《황구연전집》(전 10권)은 조선족의 아라비안나이트로 불리며 우리 민족 문화유산의 보존과 더불어 구비문학의 발전에 큰 획을 그은 대작으로 손꼽히고있다. 수집정리자 김재권선생은 민간문예가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의 손꼽히는 독서운동가로도 유명하다.

꿈을 품다

김재권선생의 책에 대한 남다른 애착은 소학교시절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사랑에서 보여진다. 그때 어린 김재권선생은 남에게 편지를 대필해주던데로부터 대담하게도 야학교를 꾸려 글을 배워주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원인으로 아쉽게도 소학교밖에 못마쳤지만 우리 말과 글속에 민족의 얼이 스며있다는것을 명기하고 그는 낮에는 유치원교원으로, 밤에는 중학반을 꾸리면서 앞장서서 청소년들을 배움에로 이끌었다.
김재권선생은 시간이 나면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다. 집의 책을 다 읽으면 마을의 책을 빌려다 봤으며 마을의 책을 다 본후엔 공소합작사에 있는 작은 서점의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서점문이 닫힐 때까지 책을 읽었다. 그런 그에게 서점 영업원이 지금까지도 잊지 못할 한마디를 해준다.
“서점의 책은 어지럽혀놓으면 팔기 힘들어, 책을 읽으려면 도회지의 도서관에 가 마음대로 읽어.”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는 어린 김재권의 마음속에 꿈의 씨앗으로 되였다.
“이제 꼭 큰 도서관을 꾸려 나처럼 가난한 아이들이 공짜로 책을 볼수 있게 하련다.”
그후로 김재권선생은 돈만 생기면 책을 샀다. 굶주리고 헐벗으면서도 돈이 될만한것은 다 팔고 모아 책만 샀다. 미구에 그에게는 자그마한 서재가 생겼고 그는 이 서재의 책들을 눈동자보다도 아끼고 사랑했다.

꽃피운 념원

김재권선생은 자신의 꿈을 향한 마라손을 한시도 멈춘적이 없었다. 6,70년대에 그는 우리 말과 글을 보급하기 위해 매일 책을 자전거에 싣고 발행에 나섰으며 도서실 260여개를 꾸리느라고 병마가 몸을 갉아먹는것도 모를 지경이였다.
드디여 1994년, 내부퇴직과 함께 김재권선생은 자신이 소장해온 책들로 룡정에 한글독서사를 꾸림으로써 오랜 꿈을 이루었다. 경제시대에 누가 책을 보냐는 비웃음에도, 돈벌이가 안되는 다른 책방의 중상에도 꿋꿋이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는 10만권의 도서를 사회에 기증해 13개의 도서관과 도서실을 꾸렸는데 그중 룡정한글독서사는 세번이나 주민간단체 선진단위로 표창받았고 고향마을인 팔도구 쌍봉촌에 세번이나 다시 꾸린 도서실은 성우수문화실로 표창받았다. 그리고 2000년에 꾸린 연변조선문독서사는 다양한 독서활동으로 독서풍토구축의 새 길을 개척하여 여러차례나 주선진단위로 표창받았다.

땅뙈기보다 책

“인간의 재부를 창조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일처럼 보람찬 일은 없다.” 김재권선생은 나무는 뿌리가 깊어야 산다고 늘 얘기한다. 그래서 우리 미래의 꿈나무들이 튼실하고 대바르게 자랄수 있도록 그토록 애면글면하는것이다.
그는 우리 민족의 후대들에게 귀중한 문화유산을 남겨주기 위해 룡드레우물, 일송정, 윤동주생가, 팔도구항일근거지, 만인갱, 김창걸문학비 등 20여개의 력사유적지를 애국주의교양기지로 복원하는데 참가했고 “땅 한뙈기보다 책 한권”의 마음으로 1958년 《구수하》문학지 창간으로부터 시작해 50년 동안 《려명》을 포함한 20여종의 총서, 40여권의 책을 출판했다. 특히 짚고넘어가야 할것이 서두에서 언급했던 《황구연전집》이다. 365만자의 무려 1074편의 이야기를 수록한 이 책은 “장편이야기”, “중국이야기”, “력사이야기”, “명인이야기”, “지혜이야기”, “사랑이야기”, “향토이야기”, “어린이이야기”, “동식물이야기”, “우스운 이야기” 등으로 세분해 도합 10권으로 구성됐으며 중국조선족 민간문학, 력사학, 민속학, 종교학, 언어학 등 분야에 귀중한 자료를 집대성해 그 사료적가치를 인정받고있다.
“책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선인들의 지혜로 더욱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할수 있는 열쇠다.”
고래희를 훌쩍 넘긴 김재권선생은 지금도 매일 두시간의 독서를 즐긴다. 그리고 책상다리 부러지도록 쌓여있는,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자료들이 행복한 부담으로 지워지지만 늘 그래왔듯이 오늘도 한치 흐트러짐 없이 노을 비낀 언덕에서 독서운동가로서의 사명을 다하고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무순시제3병원흉외과, 보통외과주임 리석현의 사적 [길림신문 2011-11-08 글 / 사진 김경덕 특약기자]  리석현(43세, 조선족)씨는 1991년에 중국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료사업에 대한 만강의 열정을 품고 고향에 돌아와 무순시제3병원에 뿌리를 박았다. 그는 외과에서 급진급구(急诊急救)방면에 아주 능란했다. 환자의...
  • 2011-11-08
  • 남양공예품회사 신현호씨 그린월드 중국대표로 탈변 남양악세사리회사의 신현호(1974년생)씨가 상승가도를 달리던 악세사리업에서 서서히 손을 접고 대한영락물업관리서비스유한회사 청도그린월드의 대표로 탈변해 화제다. 신현호는 흑룡강성 해림시 구가향 태생으로1998년 청도에 진출 한 그는 한국회사에서 생산과장, 부...
  • 2011-11-08
  • —우리 민족 축구사에 간과할수 없는 족적 남겨 소시적부터 남다른 축구재질 뽐내 박만복원로는 1935년 11월 4일(음력) 왕청 하마탕(북하마탕) 일툰(해방후 녕안툰으로 개명)이라는 마을에서 4남2녀중 넷째아들로 태여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축구일가로 불리우는 아버지, 삼촌, 형님들의 영향으로 헝겊뽈(당시 고무뽈...
  • 2011-11-07
  • 단돈 천원으로 일궈 낸 성공 신화   선박제조의 꿈을 키워가는 박광석리사장   청도무학선박기계유한회사의 박광석리사장은 단돈 천원을 들고 청도에 진출해 8천여만원의 고정자산을 가진 성공을 한 기업인이다. 길림과학기술학원일본어전업을 졸업하고 고향인 돈화에서 4년간 교원생활을 하며 길림성우수교원을...
  • 2011-11-07
  • 원 매하구시제지공장 당위서기 서춘원로인 [길림신문 2011-11-05 리창근 기자] 매하구시에 거주하는 올해 81세나는 서춘원로인은 지난세기 60년대 연변 국영석현제지공장의 기관당총서기 겸 조직부 부부장으로 사업하였다. 1966년2월 중앙경공업부의 지방공업을 지원할데 관한 명령을 받고 매하구에 전근되여 와서 매...
  • 2011-11-07
  • 당신의 안전 내가 책임집니다  감시카메라시장이 당지인들의 개입으로 백열화되고있는 상황에서도 불패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젊은이가 있어 화제다. 바로 손영준(73년생)이다. 1997년도에 고향 화룡을 떠나 청도에 진출한 손영준은 2004년도부터 시작해 감시카메라를 경영하였다. 손영준의 청도우주통신기재유한회사...
  • 2011-11-04
  • 가격과 질량으로 승부한다  리가네둘째 자동차정비업체 리영파사장 청도에서 가장 싼 자동차정비업체를 만들터 청도시성양구흑룡강로와 중경북로를 잇는 조홍로(赵红路)에 위치한 리가네 자동차정비업소는 리영파씨(72년생)가 차린 자동차정비업소이다. 1998년도에 청도에 진출한 리영파씨는 자동차부품을 공급하는 회...
  • 2011-11-04
  • [연변인터넷방송 2011-11-03] 연변주내 유일의 기계화순대생산업체인 시골외할머니순대가공부를 찾아서   “순대는 가공이 번거롭고 까다로운 음식입니다. 연변에 김치나 떡을 만드는 공장은 수십개인데 비해 정규적인 순대공장이 없는 리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1일, 기자가 연길시 조양천진에 자리...
  • 2011-11-03
  •  [인터넷료녕신문 2011-11-01 김창영 기자]  심양시 화평구 태원남가 88호는 새륭(賽隆)안경광장이다. 이 광장 1, 2층에는 크고작은 안경가게가 600여개나 되는데 그중 유일하게 조선족이 경영하는 점포가 있으니 바로 2층 29번 “시야안경”점이다. 사장은 올해 34세인 리정일씨.   고향이...
  • 2011-11-02
  • 흑룡강성밀산시련주산 태생인 정광모(64년생)는 목단강대학을 졸업후 흑태조중에서 교편을 잡다가 가난이 지겨워 청도에 진출해 성공한 기업인이다. 1994년에 청도에 진출한 그는 한국회사에서 출근하면서 변함없는 자세로 꾸준히 기술을 익혔고  1999년에 20만원을 투자해 독립의 길을 걸었다. 6명의 로동자와 함께 ...
  • 2011-11-01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