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독서운동가 김재권선생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5월30일 10시05분    조회:572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산다
독서운동가 김재권선생을 찾아서

[연변일보 2011-05-30 리련화 기자]

김재권선생이 무려 25년이란 세월을 들여 수집, 정리해낸 《황구연전집》(전 10권)은 조선족의 아라비안나이트로 불리며 우리 민족 문화유산의 보존과 더불어 구비문학의 발전에 큰 획을 그은 대작으로 손꼽히고있다. 수집정리자 김재권선생은 민간문예가이기도 하지만 우리 민족의 손꼽히는 독서운동가로도 유명하다.

꿈을 품다

김재권선생의 책에 대한 남다른 애착은 소학교시절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사랑에서 보여진다. 그때 어린 김재권선생은 남에게 편지를 대필해주던데로부터 대담하게도 야학교를 꾸려 글을 배워주기 시작했다. 여러가지 원인으로 아쉽게도 소학교밖에 못마쳤지만 우리 말과 글속에 민족의 얼이 스며있다는것을 명기하고 그는 낮에는 유치원교원으로, 밤에는 중학반을 꾸리면서 앞장서서 청소년들을 배움에로 이끌었다.
김재권선생은 시간이 나면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다. 집의 책을 다 읽으면 마을의 책을 빌려다 봤으며 마을의 책을 다 본후엔 공소합작사에 있는 작은 서점의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서점문이 닫힐 때까지 책을 읽었다. 그런 그에게 서점 영업원이 지금까지도 잊지 못할 한마디를 해준다.
“서점의 책은 어지럽혀놓으면 팔기 힘들어, 책을 읽으려면 도회지의 도서관에 가 마음대로 읽어.”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는 어린 김재권의 마음속에 꿈의 씨앗으로 되였다.
“이제 꼭 큰 도서관을 꾸려 나처럼 가난한 아이들이 공짜로 책을 볼수 있게 하련다.”
그후로 김재권선생은 돈만 생기면 책을 샀다. 굶주리고 헐벗으면서도 돈이 될만한것은 다 팔고 모아 책만 샀다. 미구에 그에게는 자그마한 서재가 생겼고 그는 이 서재의 책들을 눈동자보다도 아끼고 사랑했다.

꽃피운 념원

김재권선생은 자신의 꿈을 향한 마라손을 한시도 멈춘적이 없었다. 6,70년대에 그는 우리 말과 글을 보급하기 위해 매일 책을 자전거에 싣고 발행에 나섰으며 도서실 260여개를 꾸리느라고 병마가 몸을 갉아먹는것도 모를 지경이였다.
드디여 1994년, 내부퇴직과 함께 김재권선생은 자신이 소장해온 책들로 룡정에 한글독서사를 꾸림으로써 오랜 꿈을 이루었다. 경제시대에 누가 책을 보냐는 비웃음에도, 돈벌이가 안되는 다른 책방의 중상에도 꿋꿋이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는 10만권의 도서를 사회에 기증해 13개의 도서관과 도서실을 꾸렸는데 그중 룡정한글독서사는 세번이나 주민간단체 선진단위로 표창받았고 고향마을인 팔도구 쌍봉촌에 세번이나 다시 꾸린 도서실은 성우수문화실로 표창받았다. 그리고 2000년에 꾸린 연변조선문독서사는 다양한 독서활동으로 독서풍토구축의 새 길을 개척하여 여러차례나 주선진단위로 표창받았다.

땅뙈기보다 책

“인간의 재부를 창조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일처럼 보람찬 일은 없다.” 김재권선생은 나무는 뿌리가 깊어야 산다고 늘 얘기한다. 그래서 우리 미래의 꿈나무들이 튼실하고 대바르게 자랄수 있도록 그토록 애면글면하는것이다.
그는 우리 민족의 후대들에게 귀중한 문화유산을 남겨주기 위해 룡드레우물, 일송정, 윤동주생가, 팔도구항일근거지, 만인갱, 김창걸문학비 등 20여개의 력사유적지를 애국주의교양기지로 복원하는데 참가했고 “땅 한뙈기보다 책 한권”의 마음으로 1958년 《구수하》문학지 창간으로부터 시작해 50년 동안 《려명》을 포함한 20여종의 총서, 40여권의 책을 출판했다. 특히 짚고넘어가야 할것이 서두에서 언급했던 《황구연전집》이다. 365만자의 무려 1074편의 이야기를 수록한 이 책은 “장편이야기”, “중국이야기”, “력사이야기”, “명인이야기”, “지혜이야기”, “사랑이야기”, “향토이야기”, “어린이이야기”, “동식물이야기”, “우스운 이야기” 등으로 세분해 도합 10권으로 구성됐으며 중국조선족 민간문학, 력사학, 민속학, 종교학, 언어학 등 분야에 귀중한 자료를 집대성해 그 사료적가치를 인정받고있다.
“책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선인들의 지혜로 더욱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할수 있는 열쇠다.”
고래희를 훌쩍 넘긴 김재권선생은 지금도 매일 두시간의 독서를 즐긴다. 그리고 책상다리 부러지도록 쌓여있는, 그의 손길을 기다리는 자료들이 행복한 부담으로 지워지지만 늘 그래왔듯이 오늘도 한치 흐트러짐 없이 노을 비낀 언덕에서 독서운동가로서의 사명을 다하고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인터넷료녕신문 2011-10-14김룡호기자 ]ㅡ“심양시조선족민속절” 발기자의 한사람 이윤기소장을 만나  일전에 있은 제12회 심양시조선족민속문화절 개막식에서 주석대 한가운데 팔십로옹 한분이 앉아계시였다. 관중들은 물론 일부 령도들도 그가 료녕지역 조선족민속절의 발기자의 한사...
  • 2011-10-17
  • [흑룡강신문사 2011-10-13 길림성특파원 윤운걸]   -중국연변조선족전통음식협회 회장 김순옥을 찾아서 김순옥(金顺玉)프로필       1980년 7월-1984년 9월 연변대학 법률학부 법학사 1984년 7월-1986년 9월 상해 화동정법대학원 헌법학 전공 1984년 7월-2003년 2월 연변조선족자치주 법...
  • 2011-10-14
  • 동아시아 3국 출판계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르고있는 조선족출판상 [인터넷료녕신문 2011-09-27  리덕권 기자]  일본 문명출판사 법인, 중국 출판그룹 일한도서사업부 총경리 김명학씨   심양시 대흥조선족향출신인 김명학(1966년생)씨는 1989년 료녕대학 중문학부를 졸업한후 문학에 대한 열망으로 법원에 배...
  • 2011-10-13
  • [인터넷료녕신문 2011-10-12 최수향 기자]  중국의과대학 료양시중심병원 주임의사 리종민 료양시정협위원이며 중국의과대학 료양시중심병원 대외과(大外科) 주임 겸 보통외의과 주임인 리종민(1963년생)은 료양의료업계 명전문의로 불리우고있다. 작년에 “료양시위생계통과학기술행의 우수전문가”로 선정...
  • 2011-10-13
  • 농촌경제문화발전에 공헌을 하는 조선족향장 10월초,  필자는 중국 최북단의 흑룡강성 학강시 동쪽 러시아 접경지대에 위치한  라북현 동명향의 가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있는 조선족향장 허동범(1964년생) 씨를 만났다.             &n...
  • 2011-10-12
  • 중국 선양(瀋陽)에서 통번역과 무역업을 하는 조선족 김성진(42)씨는 한글 서체 수백 가지를 직접 개발해 쓰는 '한글 마니아'다.    2009년부터 2년 동안 김씨가 컴퓨터를 이용해 만든 글씨체는 벌써 240가지가 넘는다.    폰트들은 1만1천172개의 한글 음절을 모두 지원하고 이름도 글자 모양...
  • 2011-10-12
  • -글로벌한민족녀성경제인련합회 김순자리사장을 만나 [길림신문 2011-10-11 장춘영 기자]글로벌한민족녀성경제인련합회 김순자리사장 한민족녀성경제인들의 위상을 세계적차원으로 부상시키기 위해 자신의 힘과 에너지를 아낌없이 쏟고있는 조선족녀성기업인이 있다. 그가 바로 글로벌한민족녀성경제인련합회의 김순자리사...
  • 2011-10-11
  • 백산시민위 리길송부주임 [길림신문 2011-10-10 최창남 기자]민족단결진보사업의 조선족 모범간부 -백산시민위 리길송부주임의 사업실적을 더듬어 길림성 백산시민족사무위원회의 리길송부주임(시민족종교국 부국장)은 민족사업에 참가한 26년간 시종 당의 민족정책을 참답게 관철락실하고 국가흥변부민행동실시로 새농촌건...
  • 2011-10-10
  • [길림신문 2011-10-09 전춘봉 기자]○ 연길진달래민족음식유한책임회사 최기옥리사장을 만나 연변의 수부 연길시 도심에 자리잡은 연길진달래민족음식유한책임회사(이하 진달래회사로 략칭)는 20여년의 력사를 자랑하는 음식업계의 굴지 기업으로 국내외에 명성이 자자하다.특히 이 회사의 브랜드 음식인 《진달래 랭면》은...
  • 2011-10-10
  • [인터넷료녕신문 2011-09-27 리덕권 기자]  흑룡강성 오상시 시골출신인 최영복(1953년 생)씨는 자신의 총명과 지혜, 그리고 특수인연으로 자기의 운명을 바꾼 인물이다.   1970년 초중도 마치지 못하고 귀향한채 호미자루를 잡았던 그는 열심히 노력하여 생산대의 출납, 기공원, 회계에서 공청단 서기직을...
  • 2011-10-08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