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리동-검찰사업에 혼신 다하는 녀검찰관
조글로미디어(ZOGLO) 2011년6월23일 14시42분    조회:842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연변일보 2011-06-23 조창호 기자]

화룡시인민검찰원 기소과 과장 리동(31세)은 검찰사업을 열애하고 헌신적으로 사업하여 조직의 믿음과 대중의 존경을 받고있다.

검찰분야에서 기소과는 자못 중요한 부서이다. 화룡시인민검찰원당조에서는 지난해초에 이 중요한 부서에 30세의 나어린 녀청년검찰관 리동을 기소과 과장으로, 검찰위원회 위원으로 임명하였다. 하여 리동은 화룡시인민검찰원의 력사에 가장 나어린 기소과 과장과 검찰위원회 위원으로 되였다.

2001년, 장춘세무학원을 졸업한 리동은 공무원시험에 합격되여 화룡시인민검찰원의 사업일군으로  배치되여 판공실의 문서로 사업하였다.  그는  2001년부터 길림대학법률학부에 입학하여 통신생으로 2005년까지 학업을 원만히 완수하고 당해로 사법고시에 통과되여 조리검찰관으로 되였으며 이듬해부터는 기소과에 전근되여 사업하였다.

스스로 법률지식과 사업경험이 약하다고 인정한 그는 자신의 자질을 높이기 위하여 피타는 노력을 경주, 밤과 낮이 따로 없이 학습과 사업에 골몰하였다.  "사업광"으로 불리우는 그는 사업에만 골몰하다보니 아직도 독신인데 지금도 거의 모든 과외시간을 학습과 사업연구에 돌리고있다. 지금도 그는 하루에 적어도 1시간 이상의 법률지식학습을  견지하고있다. 

그는 년평균 40건 이상의 사건을 처리하였는데 여기에는 큰 사건,요해사건, 사회열점문제의 사건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는  드높은 책임감을 안고  실무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모두 공정하게 처리하였다.  과장을 담임한 첫해인 지난해에 그가 이끈 기소과에서는 160건의 사건을 처리하였는데 사건결안률이 100%에 달하고 휴유증도 없었다.

그는 법률의 존엄과 공정성을 드팀없이 수호하였다. 몇해전에 있은 일이다. 원 화룡시우정국 국장 태모와 부기원 류모가 결탁하여 80만원을 탐오한 사건이 발생하였었다. 그러나 법원에서는 부기원 류모에게 유기형 3년에 집행유예 4년의 판결밖에 내리지 않았었는데 판결에 미흡한 점이 많아 사회영향이 좋지 못했다. 이에 리동은 검찰원지도부의 지지하에 류모의 판결과 관련하여 주중급인민법원에  항소를 제기하였다. 주중급인민법원에서는 이 항소에 근거하여  화룡시인민법원에서 이 사건을 다시 판결하도록 지시하였다. 나중에 피고 류모는 유기형 4년에 다시 언도되였다. 이는 아주 좋은 사회적효과를 일으켰다. 이 같이 법률의 존엄을 지키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 감동적인 사실들이 많고 많다.

리동의 가슴속에는 항상 뜨거운 인간애가 차넘쳤다. 그는 특히 미성년범죄자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돌리고있다. 2007년에 발생했던 일이다. 17세의 미성년피고 장모는 피해자와 원래는 이웃간으로서 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는데 우연하게 시비가 생겨 서로 손찌검을 하던중 실수로 피해자를 숨지게 하였다. 사건이 발생한후 피고는 주동적으로 자수하고 피고의 가정에서도 가산을 탕진하면서 최대의 노력으로 피해자가정에 보상을 해주었다. 그리고 피고는 원래 품질이 좋은 사람이였다.  규정에 의하면 이런 사건은 집행유예형을 내릴수 없는 사건이였다. 하지만 리동은 피고의  품질과 그의 장래를 고려하여 법원과 상급검찰원에 그를 관대하게 처리하여줄것을 제기하여 지지를 얻었다. 하여 법원에서는 그에게 집행유예 5년 형만을 내리였다.

리동은 그를 시희망복리원에다 배치시킨후 장래 사회에 진출하여 자립할수 있도록 굴착기조작기술을 배우도록 하였다. 리동은 지금도 정기적으로 그를 찾아 교육과 방조를 해주고있다.
피고인 복원군인 채모가 남의 돈을 절도하였을 때에도 리동은 그의 장래를 고려하여 조정의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공안부문에 건의하여 이 사건을 철소하도록 하였다.지금 채모는 해외로무송출에 나가 잘 지내고있다.1500원을 절도한 17세의 미성년피고 김모에 대해서도 리동은 조정의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법률의 존엄과 공정성을 드팀없이 수호하고 헌신적으로 사업하는 이 녀검찰관은 오늘도 자기가 택한 인생길을 힘차게 걸어가고있다.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3624
  • 1958년, 봄, 김 철은 귀향한다. 그가 맨 배낭에는 전쟁의 초연 속에서 쓴 '전선 시초'1백 여 편이 들어 있었다. 해란 강변엔느 새움이 돋고 있었다. 연변 땅을 밟으며 가슴이 벅찼다. 즉흥시가 떠올랐다. "이른 봄 해란 강에 아지랑이 피는 데/귀환병과 처녀는 고향 길을 거닐었네/담벽 같은 앞가슴에 주렁진 훈장은/결결한...
  • 2005-10-25
  • 북경 킹스카이정보기술휴한회사 김호동사장 중국의 “실리콘벨리”로 불리는 북경의 중관촌, 중국 IT시장을 선도하는 북경시장에서 민족기업가인 김호동사장도 중한 상무교류를 바탕으로 프로그램 개발, 사이트 개설 등으로 선두역할을 하고있다. 길림성 도문시 출신인 김호씨는 1988년 7월 중앙민족대학 물리학부를 졸업하...
  • 2005-10-24
  • 1700여개 한국기업 입주 상주 한국인 8000여명 대련은 중국 동북3성의 대외개방 및 경제개발의 창구로서 가장 큰 해안무역도시이다. “대대련건설”(大大連建設) 가속화와 중한량국간 경제관계의 진일보 발전으로 한국굴지기업들의 대대련투자가 발빠른 행보를 거듭하고있다. 특히 올해 한국 조선업계에서 선두주자로 달리고...
  • 2005-10-24
  • [원제: 일반인도 “항천꿈”실현 가능] 할빈공대 김영덕교수 신주시리즈 우주선 청사진 그려 최근 기자의 취재를 받은 할빈공업대학 항천학원 김영덕교수는 “몇천년후 과학자들은 우주에서 실험을 하고 일반인들도 우주려행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다”고 하면서 향후 중국항천사업발전의 미래를 전망하고 우주선이 우주를 비...
  • 2005-10-24
  • 김상기 일가는 길림시 교외의 가반가에 눌러 앉았다. 길림시에서 서북쪽으로 공장구역-하다만을 지난 송화강 나루터를 지나면 불과 십리도 못 되는 시골이었다. 일명 북길림이라 했다. "길림시에서 동쪽으로 이십 리를 가면 신길림이 있었죠. 일본인 마을이었지요. 만주석유회사도 있고, 잘사는 동네였습니다. 신길림에 사는...
  • 2005-10-24
  • 전남-곡성군 입면 삼오리, 넓지 않은 벌판, 옥답이 많았다. 그의 아버지-김상기는 유년기, 엿 궤짝을 둘러메고 정처 없이 흘렀다. 그러다 거지가 됐다. 울산에서 또래 거지를 만나 친구가 됐다. 부둣가로 놀려 갔다가 일본의 화물선과 인연이 된다. 화부다 됐다. 화물선은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큰 화물선 회사 소속이었다...
  • 2005-10-21
  • [원제: 어려움속에서 성공한 행운아] 2005-10-20 10:21:37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마음씨 고운 뭇사람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학습에 노력하여 중국의 명문대학인 절강대학에 입학한 정춘매학생은 참으로 행운아였다. 집이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에 있는 정춘매학생의 가정은 본래 생활형편이 괜찮았다. 그런데 자녀의 공부뒤바...
  • 2005-10-20
  • 중국은 요즘 101세를 일기로 지난 17일 세상을 떠난 원로 문학가 바진(巴金) 중국작가협회 회장에 대한 추모 열기가 가득하다. 그가 오랫동안 살았고 숨을 거둔 상하이를 비롯해 그가 설립을 주도했던 현대문학관이 있는 베이징, 1904년 그가 태어난 쓰촨성 청두 등에서 추도 행사가 한창이다. 중국 신문들은 엄청난 지면을...
  • 2005-10-20
  • 유년 시절의 대가족 사진. 왼쪽에서 세번째에 외할머니가 파금을 안고 있고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파금의 모친이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17일 세상을 등진 파금(巴金)은 중국 현대문학의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여러 차례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던 인물이다. 그는 1904년 11월24일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서 태어났다. 본...
  • 2005-10-20
  • 항미원조시기 파금은 자기의 몸과 마음을 다 바친 작가였다. 1952년 3월 31일에 평양에 도착하였고 4월이후로는 개성 제1선으로 나갔다. 그는 친히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하여 《영웅들속에서 생활》하였고 10월에야 귀국하였다. 그후 1965년까지 그는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 대해 노래하는 글들을 많이 썼다. 이 시...
  • 2005-10-20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