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1일은 1916년 베르됭 전투가 발생했던 날이다. 뫼즈강의 요새 도시 베르됭을 두고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베르됭 전투는 1차대전 사상 최대 희생자를 낸 전투였다. 단일 면적당 희생자가 제일 많았던 전투이기도 하다. 서부 전선에 배치한 사단의 3분의 2가 이 좁은 땅에 투입되었고, 독일과 프랑스군 합쳐서 3500만 발이 넘는 포탄이 발사되었다. 그중에는 포스겐 가스탄도 있었다. 양측 합쳐서 사상자는 60만 명에서 100만 명에 달한다.
1962년에 앨리스터 혼이 쓴 ‘베르됭 전투’는 이 전투에 관한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혼은 이 전투를 주도한 지휘관들에 대해서도 상세하고 비판적인 고찰을 남기고 있다. 작가가 이런 분류를 하진 않았지만, 등장인물들은 이런 분류가 가능하다. 전투가 전략적 목표를 잃고 오직 지옥 같은 소모전이 되고 있음에도 잘못을 알지 못하고 무조건 공격과 승리에 집착하는 장군, 전투가 잘못된 줄 알면서도 우유부단하고 책임만 전가하는 장군, 잘못된 전투임을 알고 병사들을 희생시키지 않기 위해 창의적인 전술과 방법을 모색하는 장군이다.
기묘한 사실은 베르됭 전투가 처음의 전술적 기교를 잃고, 맹목적인 학살극으로 바뀌어 가자 경악하고 진절머리를 내는 장군들이 많았음에도 전투는 중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처음 공격을 시작한 독일군은 제5군으로 사령관은 국왕 빌헬름 2세의 황태자 빌헬름 폰 프로이센이었다. 황태자도 처음에는 의기양양했지만, 나중에는 이 전투에 진절머리를 냈고, “공격하자,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장군들을 경멸했다. 그러나 황태자 자신도 이 전투를 중단시키지 못했다.
대중들은 현명했을까? 전시의 보도 통제나 선전에 휘둘렸던 것일 수도 있지만, 대중들은 승리의 소식을 가져다주는 ‘피의 도살자’형 장군들에게 환호를 보냈다. 신중하고 고뇌하는 지휘관들은 비난을 받았다.
인간은 절대 현명하지 않다. 집단지성은 더욱 그렇다. 공포와 욕망에 사로잡힐 때, 이성은 눈을 감는다. 베르됭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