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지붕인 라싸의 상징이라는 포탈라궁에 오르는 필자.
사람들은 “세계의 지붕하면 대뜸 라싸(티벧)를 떠 올리고 또 라싸하면 대뜸 포탈라궁을 떠올린다.
이만큼 포탈라궁은 라싸의 상징이요, 그 역사적인 신적 매력과 건축물의 독특함이 세계인의 안목을 끌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포탈라궁에 오르는 날이였다. 아직 사방이 캄캄하다. 그것도 아침 7가 다되었는데도 ?! 동북연변지역은 7-8월이면 3시반이면 태양이 솟아오른다. 그러나 라싸는 7시반을 넘겨서야 겨우 해가 솟는다. 대륙의 동서가 하도 길어 동쪽 연변에서 서쪽 라싸까지 이정도 해 솟는 시간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에네지 절약으로 동서를 4등분하여 각기 다른 시간대를 사용한다. 넓은 중국 대륙이 한 시간대로 움직이니 좀 별란점은 있었으나 간편하다고 생각하니 좋은 듯했다. 미국에서처럼 지역을 넘어서도 시계바늘을 맞추는 번거로움은 없으니깐.
밖에 나온 나는 두툼한 옷깃을 여몄다. 이처럼 추웠다. 여름이라 하지만 라싸는 낮과 밤의 일기차가 크게 심하다. 해가 끓는 한낮이면 사람들이 더워 쩔쩔맨다. 게다가 일광이 세여 잠시 사이 낮과 살결이 거멋케 탄다. 보통 때 모자를 쓰지 않던 내가 라싸에 가자마자 채양 넓은 모자를 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태양만 지면 주마랑마봉의 얼음산이 그대로 내려앉은 것처럼 차갑다. 장족인들이 흔이 어깨를 내놓은 털 외투를 입고 다니는 것도 수시로 변하는 차고 더움을 대처하기 위한 처방일 것이라고 내 나름으로 진단하면서 말이다.
전날에 여행사를 통하여 100원주고 입장권을 미리 예약했으므로 포탈라궁에 오르는데 별 어려움이 없이 여행객 행열의 긴 줄을 따라 입구에 들어섰다.
포탈라궁은 1300여년 전인 기원 7세기에 지은 고 건물이지만 여기서도 현대 과학의 냄새가 풍겼다. 궁 안 첫 입구에 들어서니 비행기나 타는듯 X-RAY 검사 및 복장검사로 막혔다. 안전 관문은 통과해야했다. 관문옆 책장에 보니 다종다양한 작은 눈물약병들이 수천개나 쌓여 있었다. 금지물이란다. 나는 편벽한 라싸에 와서 나처럼 눈물약을 쓰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은데 놀랐다. 디지텔시대, 컴프터 사용이 많아지면서 눈물약이 곽광 받고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외 포탈라궁 입장에는 의약품, 액체, 칼, 라이타는 물론 반바지, 슬리퍼, 나시티 등은 입장이 불가능 하다.
돌 계단으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서 궁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왔다.
나는 오르면서 절로 호흡이 빨라지는 감을 느꼈지만 아랑곳 없이 여행객들 속을 빠져가며 여넘 없이 사터를 눌렀다. 점차 오르면서 라싸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보기 좋았다. 이름 모를 새들이 안개를 휘젖으며 궁 주변을 날아 예는데, 저 멀리 라싸를 감싸고 있는 산들에 구름이 걸려있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포탈라궁 내부는 사진을 찍지 못한다.
포탈라궁은 라싸시내에 우뚝 솟은 산을 이용해 산세에 따라 건설한 기세가 웅장한 고 건축물이다. 중국의 당나라가 흥기하던 때인 기원619년부터 포탈라궁 건축이 시작되어 지금에 이른다. 건축은 주로 장족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구현했지만 거기에 중국 한족식의 전당건축특징, 인도 네팔의 종교특징이 가미하면서 세계의 지붕에 “예술의 보고”란 궁전을 일떠 세운 것이 과관이다.
산위로 솟은 궁전은 모두 13층으로서 건물 높이만도 115메터, 동서의 길이가 약 360메터, 남북의 너비가 약 300메터에 이른다. 거기에는 도합 1만5천여 개의 칸(방)이 있는데 대부분 불당, 경당, 영탐전, 습경실 등으로 쓰인다. 도합 13만 평방메터의 궁내에 수많은 금, 은 보물장식품을 내 놓고도 수천년의 라싸 역사를 말해주는 문화제- 채색벽화가 도처에 있어 고고학 관심자, 혹은 미술애호가들의 발걸음을 잡기에 충분했다.
겉모양과 같이 포탈라궁은 백궁(하얀건물), 홍궁(붉은건물)로 나누어져 있다. 백궁에서는 불교를, 홍궁에서는 정치를 관여하던 곳이라고 한다.
하여턴 포탈라궁이 주는 의미와 가치, 그 매력이 이를 세계의 문물기록에 당당히 오르게 하였는 모양이다.
(다음에 이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