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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연변의 춤과 노래는 "문화통일의 첨병" 댓글:  조회:1288  추천:0  2012-03-14
오랜 기간 연변은 대륙에서 "춤과 노래의 고향"으로 불리었다. 그러나 최근 개혁개방과 코리아드림의 열풍을 타고 점차 남북 사이의 잦은 왕래와 스스로의 문화를 섭취하면서 연변은 코리아 "문화통일"의 첨병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1860년대 좌우, 두만강 압록강을 넘은 우리 코리아 선조들, 초기 만주이민의 역사를 뒤로 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의 설립과 함께 연변은 "조선족자치주"로 명명되여 대륙의 변두리에  새 조선족이란 "보금자리"를 굳혔다. 그후 연변은 전국 200만 조선족인들의 중심으로 부상되면서 민족바탕의 문학 예술이  활약했다. 그 가운데 가장 활약적으로 문화 발전항로를 주름잡고 전국에 영향을 미친 것은 한민족의 춤과 노래가 아닐까 한다. 하여튼 조선족 대표팀이 전국공연대회에 참가했다하면 "우수집체"상과 "우수종목"상들을 한아름씩 안아 왔다. 실로 민족문화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면서 시대의 절주와 발전에 맞춘 민족장단과 노래, 우아한 민족무용이 조선족을 대표하는 대륙의 인기었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족 사회가 세계적 개방 물결과 코리아드림의 막을 수 없는 선풍을 맞으면서 민속 문화도 도전과 새로운 개혁을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될 시대에 들어섰다.  문예계 인재유출이 많아지고 각 현급 시급 민족가무단들이 축소되거나 문을 닫았으며  사회발전의 변두리에서 고전하는 신세였다. 그러나 약소한 연변 민족춤과 노래는 새로운 희망을 태동하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지정학적인 중요한 위치와 환경을 바탕으로하는 정치, 경,제 문화화적 특징에 따라 새로운 길을 모색하며 출구로 돌진하고 있다. 아직 남북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 시점에서 꽉 막혀 단절된 한국과 조선 보다도 남북과 동시에 자유롭게 교류하면서 서로의 문화를 받아 들이고 있었다. 한민족 전통과 현대화한 남북의 우수한 문화를 고루 섭취하면서 자신의 새로운 춤과 노래를 만들어 내는 "제3의 길"을 걷는다고나 할까? 아무튼, 연변의 공연을 보노라면 남북이 통일 된 모종의 의미지가 풍겨오는 향수를 느끼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10    지구촌 큰 어른들의 집 “유엔본부”빌딩 댓글:  조회:916  추천:0  2009-11-22
  2009년 한해도 막 지기 시작한 끝자락에 저희는 회의 모임차 뉴욕으로 가게 되었어요. 저로서는 여러 차례 다녀왔지만 처음 부인과 동반하였기에 시간을 내여 뉴욕의 문물을 둘러보는 기회를 가졌답니다. 뉴욕은 세계적인 으뜸 도시라 이름난 지역과 건물, 기념물들도 많은 곳이지요. 그중 하나가 현재 우리 코리아인 반기문 사무총장이 주인"호주"로 있는 유엔본부 빌딩이랍니다.   세계평화와 인류애의 상징을 위해 조직된 유엔의 본부, 당연 중화인민공화국의 출현과 함께 대만을 밀어내고 막강한 힘을 과시하는 5대 상임이사국 자리에 5성 붉은기를 꽂은 곳이지요. 그런데 이 상임이사국이 국제 상 큰일을 가결할 때는 다수 소수로 가결하는 것이 아니라 한 상임이사국도 반대하면 가결되지 못하는 “이상한 법”실행이 상임이사국 법이라네요.   역사를 살펴보면 유엔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51개국의 회원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192개의 나라가 회원국으로 불어났대요. 건물 둘레에 바자처럼 꽃혀 펄럮이는 자국의 기발을 찾자 해도 한창은 헤메야 될 판이랍니다. 저의 부인이 “사진 찍을 바엔 중국기발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중국민으로서의 기대를 나타냈지만 어디 제한된 시간내에 기발이 보여야지요. 할 수 없이 남의 손을 빌려 빨리 건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자리를 떴지요.   이 유엔본부건물은 1947년부터 짓기 시작하여 1953년에 전부 완공했다 네요. 본부건물은 39층에 높이가 154m나되었어요. 이 역사적 건축을 위하여 미국에 예수 믿는 부자 - 존 D 록펠러가 공헌했다는 군요. 록펠러가 이스트 리버 부근의 대지 구입비로 8천 5백만 달러를 기증하였대요. 지금의 달러 가치로는 엄청난 큰 돈이지요.   그리고 이곳은 유엔UN복합단지로 구성되었답니다. 복합단지에는 컨퍼런스 빌딩(Conference Building), 유엔총회빌딩(General Assembly Building), 사무국빌딩(Secretariat Building), UN공원(U.N. Gardens) 등으로 유엔 세계각국의 정부대표단이 들어서 있는 어마어마한 “큰 어른들”의 집이랍니다.   참 그런데 유엔은 미국의 뉴욕에 위치해 있기는 하지만 이 땅은 미국의 영토가 아니라고 하네요. 국제적인 지역으로 치부되고, 건물의 내부는 회원국들이 기증한 많은 예술 작품들로 꾸며져 있대요. 어찌 보면 “세계의 정치 경제 힘을 파는 장마당“이라나 할까요? 하여턴 평백성들은 상상도 못할 일들을 협상 처리하는 지구촌 최대 "양반 집"이 틀림없는 것 같애요.    
9    아름다운 양줘용춰호 가의 여인 댓글:  조회:894  추천:0  2009-11-12
아름다운 양줘용춰호 가의 여인   “단돈 5원이예요, 한번 찍어보세요.” 티베트 옷을 곱게 차려입은 한 여인이 따라오며 조른다. 그의 손에는 사슬밧줄이 쥐여졌는데 그 줄 끝에는 송아지만큼 큰 검정개가 매여 순순히 끌려오고 있었다. 이 여인이 나를 “목표물”로 잡은 것 같았다. 그것도 그럴 것이 티베트의 2번째 도시 일가저로 가는 길목에는 티베트 서북부에서 가장 큰 호수인 양줘용춰호가 있어 이곳 또한 인기 관광코스의 하나라 한다. 버스가 호수가 언덕 산마루에 멈춰 서자 버스에서 쏟아져 나온 여행객들이 다른 버스의 승객과 무리로 합쳐 아름다운 양춰용춰호가 굽어보이는 큰 돌비석 관망대로 몰렸다. 잔잔한 호수 물에는 짙푸른 하늘과 솜구름이 그대로 내려 앉아 진풍경이다. 사람들은 호수가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들을 찍으려고 서로가 좋은 자리를 찾아 달렸다.      아름다운 양줘용춰호는 티베트의 "신이내린 3대 호수" 중의 하나다. 이 젊은 여인은 호수가 마을에 사는 광광업 봉사 여인이다. 자연풍경 보다도 대륙서부 이방인들의 삶에 관심이 많은 나는 그들과 떨어져 현지인들이 몰켜 있는, 기념사진 안내, 골동품장수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 여인은 나를 스스로 찾아 걸려든 “포획물”로 삼고 낚시를 던지는 듯했다. “아저씨, 저 아름다운 호수 배경에 이 개를 데리고 사진 찍어 봐요. 천생 그림속의 기념이 될 거예요” 그녀는 다섯 손가락을 펴들고 5원을 내라고 조른다. 머리를 치켜 든 커다란 검둥이 목에는 화환대신 태양 빛발처럼 펴져나간 “붉은 솔다발”로 치장하여 한결 의젓한 신사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이 티베트여인은 한술 더 떠서 개를 한 메타나 되는 좁은 돌 바위 위에 올려 세우고 잡기를 하듯 나를 그 옆에서 포즈를 취하란다. “티베트사람들이 개를 좋아 합니까?” 나는 자꾸 말을 걸었다. 그녀는 시끄러워하면서도 “물론이죠. 티베트 인들은 개를 무척 귀여워한답니다. 한 가족처럼 친근하게 지내지요. 허지만 고양이는 미워요. 쥐를 잡아먹기 때문이죠. 귀한 생명을 마구 물어 뜯어 죽이고…….” 그녀는 말 대신 낮을 찡그려 가면서 스스럼없이 나를 개 옆으로 잡아끄는 것이었다. 나는 사진 찍기엔 흥취가 없었다. 대신 그 여인보고 이것저것 되물었다. “금년에 몇 살 나는가요?” “네, 20살이에요”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진다.“어느 마을에 사는데?” 그녀는 대답대신 머리를 돌려 손가락으로 산 아래 호수가 우편 언덕받지의 작은 부락을 가리켰다. 그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이 “관광업”에 뛰어 들었다 한다. 돈을 벌 일념에 빠진 그녀는 더는 나와의 대회엔 더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부득이 단돈 5원을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리고는 오히려 그 여인을 개와 함께 사진을 찍게 한 후 시름 놓고 물어 댔다. “이런 일로 하루 얼마를 버는가요?”하는 물음에 그는 선선히 대답했다. “적게 벌 땐 하루 60원이고요, 많이 벌면 100원은 벌어요.” 괜찮은 벌이었다. 한 달에 2,000원은 수입한다는 이야기다. “우리친구 또래들이 식당에서들 많이 일하고 있는데 겨우 800원을 벌어요. 그것도 일요일 쉬는 날이 없고요.” 그여는 자기의 “관광 봉사업”에 긍지를 가지는 듯 했다. 티베트 관광코스 길옆마다 크고 작은 음식점들이 늘어섰다. 나도 티베트에 들어서자 음식점마다에 바삐 돌아치는 티베트 처녀애들을  많아 보아 온 터다. 그녀는 이곳에서 음식점 애들보다도 곱절 벌고도 남는다. 대신 수월치는 않아 보였다. 해발 4,480메타 이 호수 언덕 고봉에서 찬바람을 맞아가며 ……. 어린 여인으로 낮엔 마스크를 꼈지만 얼굴은 햇볕에 검붉게 타고 양볼에는 티베트인에게만 볼 수 있는 검불은 반점들을 짙은 화장으로 지우려 했지만 어딘가 자연스럽지만은 않았다. 아직도 가난하고 말끔한 티베트, 그러나 여기에 관광업이 설한풍을 떠이고 일어선 히말라야 산처럼 기둥산업으로 솟아 오른다. 하늘 문이 열리고 청장철도가 뚫려 하루에도 5천 여명이 드나드는 티베트, 세월의 흐름을 타고 대륙 전국은 물론 세계지구촌 인구들이 찾아와 언젠가는 세계의 지붕을 돌아보고 갈 것이다. 섬약한 이 여인은 그 수천만의 “잘 살아보자!”는 몸부림속의 트베티인 중의 한 작은 선구자일 것이리라. 마침,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버스가 경적을 울린다. 나는 떠나면서 “짜이 잰!(안녕히)” 손을 들고 인사하니 그는 “좋은 하루 되세요”라며 숙련된 중국어로 답해주었다. 버스는 부릉부릉 힘찬 소리를 내면서 티베트의 제2의 도시 시가체로 달려갔다.    
8    4.서장인들의 성지순례 최종 목적지 대소사(大昭寺) 댓글:  조회:938  추천:0  2009-10-21
서장인들의 성지순례에서 최종 목적지 대소사(大昭寺) 인간세상의 어디로 가나 여성의 힘이 대단한 것 같다. 서장의 제일 중심사원이 바로 여성의 힘과 관련된다. 이 대조사는 당나라의 문성공주(文成公主)와 네팔의 브리쿠티공주(尺尊公主)가 송첸감포(松贊干布)왕에게 시집올 때 함께 가져온 불상을 앉히기 위해 지은 사원이라 한다. 때가 바로  7세기 중엽인데 이들 여인들이 가져온 불상을 모시기 위해 역사적 유물로 남을 대소사와 소소사(大·小昭寺)를 지었던 것이다. 대조사란 라싸언어로 석가모니 불사란 뜻인데 서장의 크고 작은 1천7백여개의 사원 중에 물론 대소사가 으뜸이라 한다. 이 대소사는 티베트에 현존하는 가장 이른 목석구조의 건축물로 기원 647년에 착공했는데, 당나라 문성공주가 설계, 건조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소사는 라싸시 중심구내에 있어 교통이 편리하고 관람시간 정하기가 쉬운 곳이라 나는 먼 곳 단체팀 여행을 마치며 돈 팔며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기념품 상점으로 가지 않고 빠져서 곧장 이곳을 찾아왔다. 큰 종교 행사들이 진행된다는 보통 축구장의 2배 크기의 대소사 서쪽 마당인 큰 광장을 지나 대소사 주변에 이르니 짖은 향내가 벌써 코를 찌른다. 주변에는 기도하는 남녀로소 불교 신자들로 북적됐다.           라사의 중심 사원인  대소사 건물위로는 항상 관광객들이 붐빈다. 지금도 서장인이 98%가 불교를 믿는데 가장 성스러움의 극치를 누리는 사원이 바로 대소사(大昭寺. 조캉사원)이다. 대소사는 라싸시의 중심 팔각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서장인들의  시대를 넘어 끊임없이 이어지는 성지순례의 최종 목적지로도 대조사가 각광을 받고 있다.   매년 티벳 각지의 선남선녀가 6개월 길게는 1-2년에 걸쳐서 불원천리(不遠千里) 산을 넘고 강을 건너, 한 걸음 가고 한 번 절하고 또 3 걸음 가고 절하기 (오체투지:五體投地)를 반복해서 어렵게 라싸(拉薩)에 도착한다. 그리하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이 이 대조사(大昭寺) 즉 조캉 사원이다.  그래서 이곳은 1년 내내 향 불과 향 연기가 사라질 새 없다. 총면적이 2만5천여 평방메터에 달하는 조캉사원(大昭寺)은 4층건물로 되었는데 당대(唐代)의 건축양식에 네팔과 인도의 건축 특색이 라싸의 지방 특색과 어울려 과 관이다. 건물 지붕에 오르면 크고 작은 활금 종들로 온통 황금빛이다. 문성공주(文成公主)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기에, 조캉사원(大昭寺)의 문을 서방불교성지(인도)쪽을 향하게 서쪽으로 만들어, 일반 사찰의 문 방향이 남쪽인 것과 구별하였다고 한다. 사원 내에 들어서면 가장 안쪽의 성전에 문성공주가 장안(지금의 서안-시안에서 가져온 석가모니상이 안치되어있다. 사원 바깥의 작은 광장에는 기원 823년에 새긴 당ㆍ번(唐ㆍ蕃)회맹비와 문성공주가 손수 심은 버드나무가 있다. 소개사가 이를 1000여년에 걸쳐 맺어진 한족과 장족간의 단결과 우호의 역사적 증거물이라고 소개한다.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입구 쪽의 지붕에는 휴식을 위한 간의 의자와 탁자가 마련되어 있고, 기념품을 사며 간단한 음료수도 사서 마실 수 있게 되어있다. 그곳에서 내려다보면 라싸 시내의 정경과 함께 조캉을 향해 오체투지로 절을 하는 신자들의 모습도 볼수있다. 저녁 무렵에는 멋진 일몰을 볼 수 있고, 서쪾 켠으로 포탈라궁을 배경으로 한 멋진 추억거리도 남길 수 있어 그 곳에 올라간 관광객들이 사진기 사타를 끊임없이 눌러대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1천5백여년 전 중국의 나어린 문성공주가 이런 볼모의 땅에 시집가 후세 사람들에게 이와 같이 굉장한 볼거리를 남겨준 것이 오늘 바라보는 이들에게 깊은 사색거리를 남기며 경건을 넘어 이채로움 마져 던져주는 것이 아닌가?      
7    라싸대학으로 가는 한족 대학생 댓글:  조회:865  추천:0  2009-10-16
라싸대학으로 가는 한족 대학생 북경에서 라싸까지 장장 48시간의 기차 여행은 지루하고도 고된 여행이었다. 청장열차는 장장 24시간 쯤 달려 청해성 청장고원의 해발 6000메타 되는 곤륜산맥을 가로지르게 된다. 여기서부터 해발고가 높아진다. 인간이 자연에 대한 박투, 고산병의 첫 도전과 시험이 눈앞에 다가왔다. 열차는 앞서 청해성 서부의 주요도시 거얼무에서 잠시 멈췄다. 얼마 후 나의 자리 맞은편 좌석에는 얼굴이 해볓에 가맞게 탄 한 아줌마와 딸 같은 20살 안팎의 여학생 한명이 올랐다. 같은 동행자들이라 그들을 도와 여행 짐도  얹어 주며 서로 수인사를 했다. “손님들은 소수 민족입니까?” 내가 농후한 동북 억양의 한족말로 물었다. “아닙니다. 한족입니다.” 조선족 아줌마와 같이 얼굴이 동그란 40대 후반의 여인이 상냥히 대답했다. 차에 오른 짐을 거들어 주어선지 우린 인차 친숙해졌다. “라싸로 가십니까?” “네. 우리 딸이 라싸대학에 붙어 개학이여서 바래다주는 길이랍니다” 그여는 자기의 딸이 기득한지 가볍게 딸의 머리를 쓸어주며 자랑스레 말했다. 이들 모녀는 아버지와 함께 거얼무시에서 살고 있었다. 딸의 이름은 왕소매(가명) 올해 19살이란다. 딸에게 “대학 어느 학과에 붙었는가?” 물으니 딸은 “관광업 학과예요.”라고 단마디로 수즙은 듯 간단히 대답했다. 라싸대학은 라싸의 유일한 종합대학으로 재학생 7000여명의 비교적 큰 대학이다. 민족별 비율은 티베트족 70%, 한족 30%라고 한다. 한족 학생 비율이 티베트 인구 중 민족별 분포보다 훨씬 높은 것은  “티베트족들의 문화 기초가 박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한족 비율은 점점 증가될 추세라 한다.         청장열차에서 만난,  라싸대학에 붙어 학교로 가는 대학생과 그 어머니 이 모녀의 집안은 시대의 흐름에 민감한 집안 같았다. 중국의 서부 대개발과 더불어 라싸는 한창 관광붕이 불고 있다. 전 중국대륙은 물론 세계도처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데 고봉기 여름철에는 하루에 평균 5천여 명이나 관광객이 몰린다한다. 사람이 몰리는 곳에는 돈도 몰린다. 이 학생의 취업걱정은 문제 업을 듯, 내가 보건대도 업종을 잘 선택한 것 같았다. 지금은 청하대학, 북경대학 등 중국 일류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끙끙댄다는데..... 나는 흥취가 가서 모녀가 사는 곳, 가정 상황 등을 스스럼없이 물었다. “나는 거얼무시 모 교통사업단위에 출근한답니다. 애아버지가 하는 장사일이 최근 잘 되지 않아 저의 수입이 주된 내원이지요, 한 달 노임이 2000원 자우 되는데 거기에 교통개발 중점지역이라 여러 가지 장례금, 보조금 등에 괜찮은 편이지요.”그녀는 자기의 사업에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 애의 1년 학비와 생활비만도 1만원이랍니다. 그래도 무남독녀 외딸이라, 우리가 좀 아껴 쓰더라도 애를 대학공부는 시켜야 될 것 아닌가요.”그는 마치 대학생이 적은 대륙 서부지역에는 집안에 대학생이 난 것만도 큰 자랑거리라는 듯 했다. 말하는 사이 열차는 6000메타 곤륜산맥을 톱아 오른다. 숨이 차고 머리가 어지러워났다. 라싸행에 경험이 있는 모녀가 우리를 안심시켰다. 우리는 열차 바곤 침대마다에 안장된 산소공급기의  큰 덕을 입었다. 거리상으로는 북경에서 라싸까지 약 3분제 2쯤은 달려왔지만 앞을 막아선 곤륜산맥을 넘어야했고 또 청해성과 서장자치구의 경계인 탕구라 산맥을 넘어야 했다. 시간상으로는 총로정 시간의 절반을 더 달려야 한다.   라싸에는 급속도로 현대화가 진행 중이다. 거기에는 한족들의 대거 진출이 드러난다. 라싸시내의 동서 양편으로 나누어 장족과 한족 타원이 형성되고 있는데 한족수가 이미 라싸시 총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한다. 시내 상점의 간판은 중국어 한자 표기가 크게 되어있고, 티베트 글자는 그 위에 작게 병행되어 있다. 마치 미국 서부대개발에 시기 동부 미국인들이 몰려들듯 오늘 대륙의 한족들은 ‘기회의 땅’을 찾아 라싸로 향하고 있다. 이 모녀 가정도 그 개발 대군의 일원에 불과할 것이리라.  
6    3.포탈라궁에 오르다 댓글:  조회:937  추천:0  2009-10-08
          세계지붕인 라싸의 상징이라는 포탈라궁에 오르는 필자.   사람들은 “세계의 지붕하면 대뜸 라싸(티벧)를 떠 올리고 또 라싸하면 대뜸 포탈라궁을 떠올린다. 이만큼 포탈라궁은 라싸의 상징이요, 그 역사적인 신적 매력과 건축물의 독특함이 세계인의 안목을 끌어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포탈라궁에 오르는 날이였다. 아직 사방이 캄캄하다. 그것도 아침 7가 다되었는데도 ?!  동북연변지역은 7-8월이면 3시반이면 태양이 솟아오른다. 그러나 라싸는 7시반을 넘겨서야 겨우 해가 솟는다. 대륙의 동서가 하도 길어 동쪽 연변에서 서쪽 라싸까지 이정도 해 솟는 시간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미국에서는 에네지 절약으로 동서를 4등분하여 각기 다른 시간대를 사용한다. 넓은 중국 대륙이 한 시간대로 움직이니 좀 별란점은 있었으나 간편하다고 생각하니 좋은 듯했다. 미국에서처럼 지역을 넘어서도 시계바늘을 맞추는 번거로움은 없으니깐.     밖에 나온 나는 두툼한 옷깃을 여몄다. 이처럼 추웠다. 여름이라 하지만 라싸는 낮과 밤의 일기차가 크게 심하다. 해가 끓는 한낮이면 사람들이 더워 쩔쩔맨다. 게다가 일광이 세여 잠시 사이 낮과 살결이 거멋케 탄다. 보통 때 모자를 쓰지 않던 내가 라싸에 가자마자 채양 넓은 모자를 쓴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태양만 지면 주마랑마봉의 얼음산이 그대로 내려앉은 것처럼 차갑다. 장족인들이 흔이 어깨를 내놓은 털 외투를 입고 다니는 것도 수시로 변하는 차고 더움을 대처하기 위한 처방일 것이라고 내 나름으로 진단하면서 말이다. 전날에 여행사를 통하여 100원주고 입장권을 미리 예약했으므로 포탈라궁에 오르는데 별 어려움이 없이 여행객 행열의 긴 줄을 따라 입구에 들어섰다. 포탈라궁은 1300여년 전인 기원 7세기에 지은 고 건물이지만 여기서도 현대 과학의 냄새가 풍겼다. 궁 안 첫 입구에 들어서니 비행기나 타는듯 X-RAY 검사 및 복장검사로 막혔다. 안전 관문은 통과해야했다. 관문옆 책장에 보니 다종다양한 작은 눈물약병들이 수천개나 쌓여 있었다. 금지물이란다. 나는 편벽한 라싸에 와서 나처럼 눈물약을 쓰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은데 놀랐다. 디지텔시대, 컴프터 사용이 많아지면서 눈물약이 곽광 받고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외 포탈라궁 입장에는 의약품, 액체, 칼, 라이타는 물론 반바지, 슬리퍼, 나시티 등은 입장이 불가능 하다.   돌 계단으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서 궁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나왔다. 나는 오르면서 절로 호흡이 빨라지는 감을 느꼈지만 아랑곳 없이 여행객들 속을 빠져가며 여넘 없이 사터를 눌렀다. 점차 오르면서 라싸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보기 좋았다. 이름 모를 새들이 안개를 휘젖으며 궁 주변을 날아 예는데, 저 멀리 라싸를 감싸고 있는 산들에 구름이 걸려있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포탈라궁 내부는 사진을 찍지 못한다. 포탈라궁은 라싸시내에 우뚝 솟은 산을 이용해 산세에 따라 건설한 기세가 웅장한 고 건축물이다. 중국의 당나라가 흥기하던 때인 기원619년부터 포탈라궁 건축이 시작되어 지금에 이른다. 건축은 주로 장족의 전통적인 건축 양식을 구현했지만 거기에 중국 한족식의 전당건축특징, 인도 네팔의 종교특징이 가미하면서 세계의 지붕에 “예술의 보고”란 궁전을 일떠 세운 것이 과관이다.   산위로 솟은 궁전은 모두 13층으로서 건물 높이만도 115메터, 동서의 길이가 약 360메터, 남북의 너비가 약 300메터에 이른다. 거기에는 도합 1만5천여 개의 칸(방)이 있는데 대부분 불당, 경당, 영탐전, 습경실 등으로 쓰인다. 도합 13만 평방메터의 궁내에 수많은 금, 은 보물장식품을 내 놓고도 수천년의 라싸 역사를 말해주는 문화제- 채색벽화가 도처에 있어 고고학 관심자, 혹은 미술애호가들의 발걸음을 잡기에 충분했다.   겉모양과 같이 포탈라궁은 백궁(하얀건물), 홍궁(붉은건물)로 나누어져 있다. 백궁에서는 불교를, 홍궁에서는 정치를 관여하던 곳이라고 한다. 하여턴 포탈라궁이 주는 의미와 가치, 그  매력이 이를 세계의 문물기록에 당당히 오르게 하였는 모양이다.   (다음에 이음)  
5    세계 10대건물 푸달라궁의 광경 댓글:  조회:1137  추천:0  2009-09-17
        고원의 진주 세계의 지붕에 우뚝솟은 세계10대건물 푸달라궁의 광경 하늘길 청장철도가 라싸로 통한다. 라싸로 가는 기차는 북경역이 아닌 북경서역에서 밤 9시 30분에 출발을 한다. 약 48시간을 달려 라싸에 도착하게 되는데 창박으로 눈 쌓인 설역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눈 쌓인 설역을 보니 정말 티벳에 도착한 느낌이 들군한다. 처음에는 라싸행 기차표를 거뭐지고어떻게 48시간을 버티나 암담했는데 청장고원을 들어서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보노라니 근심이 봄눈 녹듯 녹아버린다. 그래도 제일 멋진것은 세계의 지붕에 우뚝솟은 세계10대건물 푸달라궁의 광경. 여러분께 라싸로 여행을 떠나보길 권해본다.  
4    운둔의 땅에 자리 잡아가고있는 라싸 아리랑 식당 댓글:  조회:911  추천:0  2009-09-17
  운둔의 땅에 자리 잡아가고있는 라싸 아리랑 식당. 세계어느곳에나 우리 한민족 동포들이 벋어 나가고있다. 여기 세계의 지붕이라 불러지는 운둔의 땅에도 예외는 아니다. 서장의 중심인 라싸에 자리 잡아가고 있는 라싸 아리랑 식당이다. 조선족인 이씨에 의해 운영되어 가는 이 한식 레스토랑은 음식의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각종 불고기구이, 등심구이, 삼겹살 구이, 등 고기 구이는 물론 찌게, 볶음, 비빔밥, 같은 요리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한국인, 일본인 등 관광 외국인이 곢 찾는 레스토랑으로 자리 매김해가고있다. 여러분들도 라싸방문기회가 있다면 한번 다녀 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3    세계의 지붕에 풍기는 토장국 냄새 댓글:  조회:942  추천:0  2009-09-17
사진 : 세계의 지붕 라싸에 자리잡은 조선동포 1호 아리랑 식당 주인 이동화 사장     “토장국이 있습니까?” 보통 식당 음식을 찾는 이 평범한 물음이 여기 세계의 지붕 장족지역에서 엉뚱한 물음으로 듣긴다. 그러나 여기 라싸에는 시원한 대답을 주는 이가 있다. “있다 뿐이겠습니까. 무엇이나 청하십시오. 된장찌개, 김치찌개, 삼겹살구이.......” 물 흐르듯 주어 대는 구수한 민족 음식메뉴, 유창한 코리안 언어가 벌써 손님들의 귀를 자극 하며 입안에 군침이 돌게 한다. 이 식당이 바로 라싸시내 한복판, 즉 서장의 중심 사원으로 일컫는 대조사 북쪽 번화한 동북경거리에 1-2층 건물에 자리를 튼 “아리랑 식당”이다. 주인이 2004년 8월에 달 8천 원씩 건물을 임대하여 아리랑 식당을 차렸다. 조, 중, 장족어로 된 커다란 간판에서 아리랑 3글자가 황금빛으로 유난이 빛난다. 이 주인이 바로 우리 동포 중 첫 사람으로 세계의 지붕에 자리를 튼 “아리랑 식당”의 주인 이 동화 사장이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걀큼한 얼굴, 싱글싱글 눈웃음으로 손님은 맞는 흡인력, 그러면서도 식당 내 여기저기 살펴 장족 여복무원들에게 연속 지시하면서 손수 일손을 잡는 날렵한 몸가짐에는 어느 듯 세련됨이 묻어난다. 그는 누구인가? 동북 길림성 매하구에 고향을 둔 올해 46세나는 조선족 사나이이다. 그는 어떤 사연이 있어 중국대륙의 제일 동북쪽 끝머리에서 여기 대륙의 최 서남단까지 횡단하여 왔을까? 내지 사람들이 숨쉬기조차 어려운 이 최고의 해발고 동토의 땅에 그 어떤 사연, 사명이 아니면야 어찌 이 열악한 지방...... 어느새 상대의 궁금증을 알아챈 듯 그는 스스로 입을 연다. “오해 하지 마세요. 저는 처음 그 어떤 비전이나 사명으로 이 땅을 밟은 건 아니랍니다. 기실 저의 병 치료를 왔다가 어느덧 이 자리에 영 자리 잡게 됐네요. 허, 허”소탈한 그는 스스럼없이 라싸에 온 사연을 아래와 같이 소개해 나갔다. “저는 원래 불치의 병이나 다름없다는 ‘운동신경 마비병’에 걸렸었습니다. 2년 동안 부인의 등에 업혀 병원을 제집 나들듯 다녔지요.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신의 땅이라는 라싸에 좋은 약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일루의 희망으로 무작정 떠났지요. 때가 바로 지금부터 9년 전인 2000년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고산 지역에서 나는 두루 좋다는 약들을 모두 먹어댔지요. 참, 기적이라 할까요. 몸이 회복되기 시작 했어요” 그는 잠시 말 을 맞추더니 증명이나 하듯 제 다리를 두드려 보였다. “금년 봄에도 병원에가 종합 검진을 하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답니다. 허, 허, 참 이곳으로 인도한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지요.” 그는 예수를 믿는 크리스천이었다. 펀펀한 몸에 탈이 생겨 고민, 고통 속에 모대기 던 그가 어렴 품이나마 주님의 치유를 믿으며 교회에 나갔다 한다, 그러던 그가 가정에서 제일 먼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심양 서탑교회에 열심히 출석했으며 전 가족을 전도하기에 이른다. 그로 하여 지금은 부인은 물론 부모님과 온 가정과 예수를 믿는다고 했다. 이곳에서 믿음 생활은 어떻게 하는가 하는 물음엔 “이곳 전체가 극심한 불교 세력권 하에서 터 넣고는 기독교 활동을 못합니다. 또 이곳 주민들을 대상으로 식당도 운영해야하므로 마찰을 피하며 조심하고 있지요 그러나 집에서는 부인과 함께 경상적으로 가정 예배를 드린답니다.”라고 했다. 땅 설고 물 설은 이 외진 곳에 와서 고생하시는데 언제 제일 즐거운가 하는 물음에 그는 “우리 미족 동포들이 찾아 왔을 때지요. 이 외진 곳에서 저의 된장찌개를 잡수신 동포들이 ‘고산증과 피로가 말끔히 씻겨간다‘며 즐겨할 때 저희로서도 이곳에 와서 일하는 보람을 느낀답니다.”라며 흡족한 웃음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 동포식당에 좋은 일만이 있는 건 아니다. 금년 들어 장사가 저조해진단다. 외부 적 요인인지, 라싸에 외국인 출입이 점차 적어지고 또 새로운 경쟁자들인 사천등지의 한족업자들이 대량 라싸로 밀려들면서 그들이 값싼 음식과 세련된 상술로 라싸전체를 파고든다는 애기다. 주인은 필자의 음식 값은 절대 안 받겠다고 굳이 사양하지만 어렵게 창업하는 그에게 부담을 줄 순 없었다. 나는 번마다 식사하곤 밀어주듯 밥값을 치르곤 했다. 나는 떠나올 무렵 그를 찾아 손에 손은 잡고 축복 기도를 해주었다. “외로운 동토의 땅에서 더욱 주님을 의지하며 굳세게 뿌리 내려가라고 …….” 힘내라고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문밖까지 따라 나와 손을 흔들어 배웅하여 주던 그의 열정, 다감한 웃는 얼굴이 자꾸 눈에서 어른거린다. 최민 글, 사진
2    2. 하늘길 달리는 청장열차 댓글:  조회:854  추천:0  2009-09-17
  사진: 하늘길을 달리는 청장열차, 북경에서 장장 48시간 달려 세계의 지붕 라싸에 이르게 된다. 지루함과 고산병을 이겨야 하는 훈련의 하늘길 체험의 현장이다. 하늘길 달리는 청장열차 북경서역에서 하늘길- 청장열차에 올랐다. 북경에 있는 나의 친구가 미리 표를 끊어 놓아 별 수고 없이 쾌속 침대열차에 몸을 실었다. 종점역 라싸로 향한 하늘 길, 물론 나의 여행은 “홀로 아리랑”이다. 라싸역에 가면 가이드로 설 한 대학생이 마중하기로 약속되었다. 하늘길 열차는 밤 9시반이 되자 드팀없이  긴 경적소리를 울리더니 서서히 그 묵중한 차바퀴를 굴리며 북경역을 점점 멀리했다. 열차안에서 장장 48시간, 나로서도 처음되는 지루한 열차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밤새 차는 몸을 떨며 하늘 지붕길을 여는지  덜그덕 소리를 마치 타악기 합주를 하듯 절주있게 두드려 대며 밤내  달리고 있었다. 새벽녘에 눈을 뜨니 열차 차창 밖으로 드 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청장열차는 총 길이 1천142킬로미터에 투입되는 예산만도 24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드린 중국의 야심찬 서부대 개발의 중점 공사로서 2007년 개통되었습니다. 이로하여 중국이 거미줄처럼 늘어선 대륙의 내지 열차선과 서부를 성공적으로 연결시켰던 것이다. 이로부터 수많은 시간을 들여 냄새나는 버스에서 시달리며 라싸를 향하던 육로여행은 과거의 추억이 되었다. 이 칭짱열차는 중국의 내지 큰 도시들인 베이징, 상하이, 청두, 란저우, 충칭에서 출발한다. 칭짱열차의 실질적인 출발역인 시닝에서 라싸까지는 26시간. 베이징에서는 48시간을 꼬박 쉬지 않고 달려야한다. 요즘, 하늘길(天路)로 불리는 칭짱철도가 개통된 이후 매일 여덟 편의 기차가 다니게 되면서 하루에 5000명이 넘는 내륙의 중국인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와 라싸는 사람들로 넘쳐날 정도 였었다. 이런  청장열차를 놓고 한때 세상은 시글 벌적했다.   "중국이 서장을 약탈하기 위한 통로" 또는  "서장을 중국화 시키기위한 야심" 등등이다. 해도 너무 한것 같다. 세상의 웬 뒤쳐진 지역에 늦게나마 현대화 발전의 길을 뚫는 것이 못 마땅한가?  모든 것을 이념이란 색안경을 끼고 보며 평해서는 않된다. "자기가하면 발전, 남이하면 야심" 이런식으로 사건을 대해선 않된다.   기실 서장에 가보면 낙후하기로 21세기 현대 문명에서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뒤쳐진 상태, 봉건사회에서도 멀리 떨어진 노회사회의 그 의식 수준 그 냄새다.  사람들마다 민족 종교와 풍속을 존중한다고 하지만 점차 개혁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만은 아니다. 200여년래 아메리카 땅에서 미국이 인디안인을 개조시키려는 노력을 보면 이해 될 것이다. 별 차이가 없으니깐.   이번에도 보았지만(가까이 접근 금지) 이곳에선 지금도 부모 형제가 죽으면 그시체의 살점과 뻬를 토막내여 돗수리한테 먹이곤 천당에 갔다 기뻐하는 수준이다. 아직도 수많은 청소년들을 포함한 많은 지역이 문맹인간 그 자체다.     비평하는 사람들은 라싸를 그 미개한 인간사회 그대로 빗장을 질러 감싸 두고 장기적인 운둔의 볼거리로 관광을 즐기려는지?  혹시 그들의 인간 사랑이 의심된다.     중국은 지금 기하학적인 자금과 물질을 라싸에 부어 넣고있다. 필자는 우선 정치논쟁을 떠나  인도주의 차원에서 장족 형제들이 보다 깨끗해지고 (미국의 인디안인 만큼이라도) 궁핍과 무지에서 벗어 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때면 혹시 관광의 인기는 좀 떨어지겠지만?!)   필자는 미 개발 지역 사회 관광에서 지나친 이념의 색안경을 벗으라 말하고 싶다.     차창밖을 내다보니 멀리 검은점으로 보이는 동물들인 야크떼들이 흘러간다. 이 철도를 달리다 보면 질리도록 많은 양떼와 야크떼와 만나게 된다. 하늘길 기차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사막과 초원, 늪, 설산(雪山), 하늘과 맞닿은 호수와 강 등 각양각색의 풍경들은 칭짱열차를 타고 만날 수 있는 원시의 모습들이다. 칭짱열차는 청장고원에 들어서면서부터  평균 해발고도 4500m, 최고 5068m까지 올라간다. 남초호수를 지나는 길 칭짱열차 길과 나란히 좌측으로 펼쳐진 히말라야 설산인 니엔칭 탕고라산(念靑唐古拉山)모습이 가관이다.   갑자기 숨이 차지면서 머리가 어지러워났다. 아, 고산증이다. 우려했던 그 일이 다가왔다! 열차가 해발 높은 산발을 톱고 있었다. 마침,  “쏴-” 하는 미세한 바람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졌다.  열차 안에는 준비된 산소가 공급되었다. 이런 산소 공급기는 침대마다 있어 승객 자체로도 강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어 편리했다. 드디어 마음에 안정이 왔다.   "두마리의 철대가리" 전동기관차가 앞에서 끌어선지, 긴 꼬리를 단 열차는 지체없이 하늘길을 톱아 오르고 있었다.   (다음에 이음)  
1    1.라싸에도 조선족이 살고 있었다 댓글:  조회:735  추천:0  2009-09-15
    사진: 포탈라궁은 신의 땅 라싸(티벳)의 상징이다. 청장열차의 개통으로 오늘 이 운둔의 궁이 우리 앞에 한걸은 다가 왔다. 필자가 지난 8월30일 포탈라궁에서  방문기의 첫 걸음을 내디디었다..     1. 라싸 방문기 중국에서의 몇 가지 일을 마치고 필자는 전에 가고프던 라싸 방문기회를 얻었다. 하늘 지붕에 오른다는 새 청장열차에 몸을 실은 하늘 길 배낭 여행이었다. 기실 라싸는 중국과 미국등 서구국가들 간의 인권문제로 공방전을 벌리는 국제 골칫거리의 1순위 지역이다. 그래선지 7-8월 잡아 여행 고봉기를 맞으며 하루 평균 4천 여명의 여행객들이 라싸에 모여든다.   오죽했으면 그 웅장한 포탈라궁이 순수 대못 하나 밖지 않은 목조건물로 되었다는 근거로 안전을 위해 하루에 2천3백명의 여행객들에게만 티갭을 판단다. 하지만 그 많은 여행객들 중 푸달라궁을 못 구경하고 돌아 왔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첫 문표 값만 100원씩이니 그 수입 또한 짭짤할 것이고......... 라싸는 평균 해발고가 4,000m 이상이어서 "세계의 지붕"또는 “고원의 진주”라고 불러 왔다. 지구촌에서 보기드문 아름답고 기이한 눈도시의 풍광, 휘황찬란한 고대문화, 신비하고 다채로운 민속풍정은 라싸의 특유한 관광자원으로 인기가 높다.   서장(티벳)자치구 소재지인 라싸는 하나의 눈부신 고원진주로 세기를 휘감는 역사의 풍운을 거치면서도 줄곧 운둔의 땅으로 여겨 왔었다. 전 중국 대륙의 1/8의 땅을 차지하는 라싸는 한국의 12배 크기의 엄청난 땅이다. 하지만 86만 8천 인구만이 사는 가장 해발고가 높은 얼음, 눈의 도시이며 주요 언어는 서장 장족어를 쓰고있다. 신의 땅이라 불리 우는 라싸에는 불교 사원이 많기로 유명하다 장족들의 거의 다인 98%가 라마 불교를 믿는 그야말로 말못하는 불상이 끌어가는 "불교천지"이다. 라싸는 서장(티벳)의 정치ㆍ경제ㆍ교통ㆍ종교활동의 중심으로 시내의 포탈라궁ㆍ대소사 등은 세계에 이름난 관광지들이 있다. 최근 우후죽순마냥 늘어난 여행사와 많은 교통편이 사방과 연계되어 잇어 라싸를 중심으로 하여 티벳 각지의 명소들을 돌아 볼  수 있다. 라싸는 현재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21세기 도시문명이 바람과 구름을 타고 높은 히말라야를 넘어 순수한 땅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 여기저기 새로운 변화와 모습들이 동토의 땅을 뚫는 새싹마냥 꿈틀 거리며 변화를 추구하고있다. 라싸의 현재와 장래 ......... 궁금 한게 한두 가지만은 아니다. 중국 공화국의 성립을 뒤이어 55년간 진행되어 온 하늘길 청장열차가 마침내 중국의 아름찬 서부대개발의 동풍을 타고 대륙의 동서를 꿰뚫었다. 작년 2005년 7월 1일에 기적소리 높이 히말라야 고봉을 울리며 ‘하늘 길(天路)’ 기차를 개통시켰던 것이다. 이로 인해 라싸 (티벳)는 어느덧  선교적으로 우리와 한발  더 가까워 졌으며 복음전파의 새로운 도전지역으로 급 부상하였다. 라싸의 정신과 물질적인 급격한 변화와 기회가 크리스천들의 관심의 초점을 끌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에도 우리 동포들이 살고있다.   라싸에 여행 적기인 5월부터10월까지  도합 30여명의 코리아인들이 라싸를 중심으로 여행봉사업등  각 종 사업을 벌려 간다 한다. 필자는 이번 기회에 그곳에 정착하여 사업을 벌려온 조선족 기독교인을 만나 함께 무릎을 맞대고 많은 이야기로 회포를 풀었다. 갈라질 때는 다시 만남을 기대하며 마음속 격정을 담아 축복 기도해주는 뜻 깊은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라싸진출의 첨병으로 나선 이들 한민족 동포들이 열악한  히말라야의 설한풍을 이겨내며 동토의 땅에서 건전히 뿌리를 내려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였다.   아래에 무재한 필자가 무딘 필묵이나마 라싸 방문기를 “방문여행기”와 “인물 인터뷰” 편으로 나누어 연재하여 여러 독자들과 나누며 신의 땅, 운둔의 땅을 함께 밟아 보려는 소박한 희망으로 이글을 연재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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