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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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민족은 왜 노인이 사망하면 돌아갔다고 하는가? 댓글:  조회:4942  추천:81  2007-10-02
김정룡의 역사문화이야기3. 우리민족은 왜 노인이 사망하면 돌아갔다고 하는가?    김정룡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 법이다. 이는 인간이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섭리이다. 헌데 인간은 미래라는 의식이 생겨나서부터 자신의 죽음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두려워한다. 종교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종교가 생겨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인간이 어떻게 죽음을 해결할 것인가는 문제가 모든 종교가 탄생하게 된 가장 근본적이고 공통적인 요소’라고 한다.  유교문화에 ‘관혼상제(冠:성인식, 婚:결혼, 喪:상사, 祭:제사)’라는 4대 의례가 있는데, ‘관’과 ‘혼’은 인간이 살아 있을 때의 의례이고 ‘상’과 ‘제’는 인간이 죽은 후의 의례인바, 이는 유교문화가 인간의 죽음의 의미를 삶의 의미와 같은 비중으로 보았다는 증거이다. 유교문화를 주축으로 하는 한중일 3국에서는 인간의 죽음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두려워하고 중시했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여러 모로 우회적이고 완곡한 어휘로 표현한다. 그중에 죽음을 돌아갔다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보편적이며 특히 우리민족이 이 표현을 가장 많이 쓰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민족은 사람이 죽으면 돌아갔다는 말을 가장 즐겨 사용할까? 이에 대한 해답은 아래와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먼 옛날 우리선조들은 인간의 생명, 영혼, 생각 등 정신적인 것은 하늘의 기를 타고 났고, 인간의 육체는 땅기를 타고났다고 여겨왔다(쉽게 말하자면 인간의 육체는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성경 창세기편에도 하나님이 최초의 인간인 아담을 흙으로 빚어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인간은 땅에서 왔기 때문에 죽으면 땅에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이 죽으면 자연에 회귀해야 한다는 것이 동양문화의 자연관이다.  왜 인간이 죽으면 반드시 땅에로 돌아가야 하는가?  둘째 생명의 순환 원리.  대지는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생명(만물)을 창조하고 탄생시킨다. 그런데 새로운 생명은 낡은 것들이 죽어 땅에서의 썩음에 의해 탄생된다. 나무 잎이 뿌리에로 돌아간다(낙엽귀근:落葉歸根)는 말의 뜻은 바로 나뭇잎이 죽어 뿌리에 돌아가 썩어야만 새로운 나뭇잎이 끊임없이 생겨난다는 것이다(인류는 이 원리에 의해 비료를 발견했음). 옛날 우리 선조들은 대지의 생산원리와 인간의 탄생원리를 같은 이치로 여겨왔다. 이 원리에 의하면 인간이 죽으면 땅에 묻혀 썩어야만 새로운 인간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이 곧바로 인간의 생명순환의 원리이다. 셋째 돌아간 곳은 대지의 자궁이다.  인간은 엄마의 자궁에서 잉태되고 태어난다. 엄마의 엄마 ······는 대지의 자궁에서 나왔다. 인간이 죽으면 엄마의 자궁에로, 대지의 자궁에로 돌아가야만이 후대가 번성해진다. 이러한 생명의 순환원리에 의해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으면 돌아갔다는 표현은 땅에로 회귀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죽은 사람을 아무 땅에나 함부로 묻으면 잘 썩지 않아 생명의 순환이 잘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후대번식이 잘되지 않는다. 후대번식이 잘되지 않으면 그 가문이 망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죽은 사람을 묻을 곳, 즉 묘자리를 잘 골라야 한다.  풍수지리학에 의하면 묘자리는 바람을 잠재우고(장풍:藏風) 습기가 적당히 있어야한다(득수:得水). 이러한 묘자리를 명당이라 부른다. 명당이라 할수 있는 묘자리는 산꼭대기거나 허허벌판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산속의 여성의 성기를 닮은듯한 아늑한 곳이 곧 일등 묘자리로 꼽힌다.  우리민족이 아직도 주변국에 비해 화장(火葬)보다 토장(土葬)을 더 선호하고 고집하는 이유가 바로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땅에로 돌아가야 한다는 종교적 의식이 뿌리 깊기 때문이다. 
2    환갑 및 사주팔자란 말의 유래(김정룡) 댓글:  조회:6546  추천:200  2007-09-26
김정룡의 역사문화이야기2. 환갑 및 사주팔자란 말의 유래  김정룡 (재한조선족칼럼니스트)   한 중 일 삼국에서는 사람의 나이가 60주세가 되면 환갑(회갑)년이라고 하는데,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백성들마저 이와 같은 풍속에 익숙해 있으나 정작 환갑이란 말이 도대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은 아마 매우 드물 것이다. 환갑이라 하든 회갑이라 하든 ‘환(還)’과 ‘회(回)’는 모두 돌아온다는 뜻이다. 즉 환갑(회갑)이란 말은 ‘갑(甲)’이 돌아온다는 뜻이다. ‘갑(甲)’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갑(甲)’은 ‘갑자(甲子)’의 약칭이다. ‘갑자(甲子)’란 또 뭐냐?   전설에 의하면 5천전에 삼황오제 중 한 사람이였던 황제(黃帝)가 ‘갑자(甲子)’를 지어냈다고 한다. ‘갑자(甲子)’란 천간지지(天干地支:12가지라고도 함) 의 총칭이다. 그렇다면 왜 천간지지(12간지)를 ‘갑자(甲子)’라고 할까? 여기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먼저 천간지지(12간지)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를 천간이라 하고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畜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를 지지라 한다. 위 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를 하나 하나 씩 순서대로 짝을 지어놓으면, 즉 ‘갑자’로부터 시작하여 ‘계해’로 끝나면 모두 60개가 되는데 이를 총칭하여 ‘갑자’라 한다.  갑자  을축  병인  정묘  무진  기사  경오  신미  임신  계유 갑술  을해  병자  정축  무인  기묘  경진  신사  임오  계미 갑신  을유  병술  정해  무자  기축  경인  신묘  임진  계사 갑오  을미  병신  정유  무술  기해  경자  신축  임인  계묘 갑진  을사  병오  정미  무신  기유  경술  신해  임자  계축 갑인  을묘  병진  정사  무오  기미  경신  신유  임술  계해 (참고: 1984년이 갑자년이므로 독자들은 각자가 자신이 어느 해에 태어났는지를 앞뒤를 쫏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가령 필자가 1958년 무술년에 태어났다면 60년이 지나 2018년이 되어서야 다시 무술년을 맞이하게 되며 2018년이 곧 나의 환갑년이 된다. 이와 같이 사람마다 각자가 태어나고 맞이하는 환갑년의 명칭이 꼭 갑자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환무’ ‘환신’ 등 이런 식으로 부른다면 혼란이 야기되기 때문에 전부 통털어 ‘환갑’이라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를 순서대로 짝지어 놓은 것을 총칭하여 ‘갑자’라 부르는 데서 60주세가 되어 자신이 태어난 해의 ‘명칭’이 사람에 따라 다르더라도 통털어 환갑이라 말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를 부연해서 설명한다면, 첫째 12개 지지가 12가지 띠(자:쥐, 축:소, 인:범, 묘:토끼, 진:룡, 사:뱀, 오:말, 미:양, 신:원숭이, 유:닭, 술:개, 해:돼지)의 의미가 있고, 둘째 옛날에는 하루가 24시가 아닌 12시(자시: 밤 11~1, 축시: 1~3, 인시: 3~5, 묘시: 5~7, 진시: 7~9, 사시: 9~11, 오시: 11~1, 미시: 오후 1~3시, 신시: 3~5시, 유시: 5~7시, 술시: 7~9시, 해시: 9~11시)였는데, 이것도 12가지 지지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그다음 천간지지와 관련해서 사주팔자란 말의 유래에 관해 간단히 얘기해보자. 사주를 한자로 ‘四柱’라 적는데, 그 뜻인즉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를 의미하며, 팔자를 한자로 ‘八字’라 쓰는데, 팔자는 말 그대로 여덟 글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여덟 글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위에서 말한 60개의 ‘갑자’는 해(年)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월일시와도 연관되어 있다. 즉 가령 필자가 1958년 9월 17일 묘시(아침 5~7시 사이)에 태어났다면 해는 ‘무술’이고 월은 ‘경신’이고 일은 ‘신해’이고 시는 ‘을묘’라고 가정한다면, 이와 같이 태어난 연월일시(사주)에 각각 ‘갑자’가 두 글자 씩 붙어 4×2=8 여덟 글자가 되므로 ‘팔자(八字)’라 한다. 팔자가 좋다.’ ‘팔자가 사납다.’는 말은 사람이 태어날 때 사주에 각각 붙는 ‘갑자’가 음양오행학(陰陽五行學)에 근거하여 자연의 ‘기(氣)’를 면바로 받고 나면 팔자가 좋고, 거꾸로 자연의 기를 잘못 받고 나면 팔자가 사납다. 점쟁이들은 대부분 이러한 사주팔자의 논리에 근거하여 운세점을 본다. 현시대 사람들은 사주팔자를 미신으로 보는 경향이 짙은데 반해, 우리 선조들은 수천년 동안 사주팔자를 미신으로 취급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학적인 학문으로 여겨왔다. 세상에서 우리 민족만큼 아직도 사주팔자에 집착하는 민족은 드물 것이다. 그래서 사주팔자란 말의 유래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1    우리 민족은 왜 김씨 성이 많을까? (김정룡) 댓글:  조회:5431  추천:97  2007-09-18
김정룡의 역사문화이야기1. 우리 민족은 왜 김 씨 성이 많을까?    김정룡  <서울남대문시장에서 ‘김사장’라고 부르면 10명 중 다섯 명이 머리를 돌린다.>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 돌을 던지면 맞는 사람이 김 씨다.> <김 씨가 너무 흔해 빠져서 머저리 김 씨라는 말도 있다.> 이러한 얘기들은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유행어다.  실제로 한국정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278가지 성이 있는데, 그중 김, 이, 최, 박 씨 성이 대략 전체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김 씨가 전체 인구의 21.9%를 점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과 해외동포사회도 역시 이와 비슷한 상황이다. 필자가 연변1중 교사로 있을 때 각 학급의 학생등기부를 살펴보니 김가 학생이 대략 4/1~3/1 정도였다.  그럼 우리 민족은 왜 김 씨 성을 가진 사람이 엄청 많을까?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은 역사유래에서 살펴볼 수 있다.  우리 민족의 김 씨 조상은 김알지(金閼智)인데, 그는 신라 제4대 석탈해 왕대에 금궤에서 탄생하였던 고로 성을 김이라 하였으며 그의 7손인 미추(味鄒)가 제13대왕으로 등극하여 제52대 효공왕(제53,54,55대왕은 박씨이고 제56대 왕은 김씨)에 이르기까지 줄곧 김 씨가 신라를 통치하게 되었다. 이는 신라가 모두 56대왕에 이르는 역사에서 무려 41대를 김 씨가 통치하였으므로 김 씨 가문의 영향력이 대단히 컸다. 그 후 고려시대에 들어 왕 씨가 통치하였으나 문화적으로는 신라문화가 주축이였다. 그 당시 조정과 재야에 유명인물중 김 씨가 많았다. 예하면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삼국유사>>의 저자 김일연 등 경주 김 씨들이 유명했다. 조선시대에 들어 이 씨가 500여년을 통치하였으나 조정을 비롯해 안동 김씨, 경주 김 씨, 선산 김 씨 등 김 씨네 일가가 정치적으로 세도를 부렸고 양반신분을 가진 분들도 굉장히 많았다. 그리하여 조선후기(16~17세기)에 들어 족보바람이 일자 돈 많은 가문에서 김 씨 가문의 양반족보를 사서 허위로 족보를 만들었다. 더욱이 본래 성(姓)이 없었던 절대다수를 차지하던 백성들이 조선시대 말기에 성을 갖는 바람이 불었는데, 그때 김 씨 성을 갖기를 원하는 자가 굉장히 많았다. 그 일례로서 김좌진 장군댁의 100여 명이나 되는 노비들이 전부 안동 김 씨 성을 가짐으로 하여 양반가문으로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본래 조선시대에 양반이 10%로밖에 안되였었는데 일제시대와 광복 후 양반가문출신이라고 자처하는 수자가 90%를 넘었다. 물론 그 중에는 김 씨가 차지하는 비례가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성이 있고 또 본(本籍)이라는 것이 있는데, 본이란 조상이 태어난 구체적인 곳의 이름을 뜻한다. 예를 들어 ‘밀양 박 씨’ ‘경주 최 씨’라고 할 때 ‘밀양’과 ‘경주’는 그 가문의 조상이 태어난 곳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의 본을 살펴보면 그 절대다수가 남한이다. 이것은 통일신라문화의 영향 때문에 빚어진 결과라 볼 수 있다. 쉽게 말해서 통일신라의 영토는 대동강 이남이였고 고려와 조선시대는 역시 통일신라문화가 주축이였고, 물론 성 씨 문화도 신라의 영향이 컸다.  이리하여 조선시대 말기에 90%나 되는 백성들이 갑자기 성을 갖게 되자 기존에 있었던 양반(경상도가 위주이고 전라도 경기도 강원도 등지가 본적이였음)가문의 성과 본적을 따르게 되어 우리 민족의 대다수의 본적이 남한으로 되어 있다. 더구나 김 씨 성 중에 ‘김해’ ‘경주’ ‘전주’ ‘안동’ ‘선산’을 비롯한 본적이 거의 다 남한이며 그 가운데서도 경상도가 차지하는 비례가 가장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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