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재발견 (2)
다종 언어 사용자
박광성
지난 글에서는 조선족의 힘으로 공동체문화를 제시하였다. 거대자본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조선족같은 소수자집단은 개미군단과 같이 힘을 합쳐야 생존할 수 있는 울타리를 확보할 수 있다. 고군분투로는 바위에 계란치기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의 우세인 공동체문화를 잘 활용하여 똘똘 뭉치자는 취지이다. 이번 글에서는 조선족의 또다른 힘의 원천인 언어능력에 대하여 논의해보려 한다.
사람들은 늘쌍 자기 떡보다 남의 떡이 더 커보이는 인지적 한계를 가지고 있어, 정작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른다.조선족의 경우만 봐도 언어적 우세가 자신들의 생활에 얼마나 중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자각못할 때가 많다. 가령, 중화인민공화국이 창건된 후, 국가의 민족정책에 힘입어 조선족사회는 자치지역과 더불어 문화, 교육, 신문출판 등의 완변한 민족사회체계를 구축하여 왔다. 그 전성기로 볼 수 있는 1980년대 중반의 경우, 동북3성에 조선족소학교가 1,132개소, 중학교가 191개소, 신문이 10여종, 간행물이 20여종, 출판사가 6개소, 방송국 11개소,전문예술단체가 10여개 달했다. 국가에 의하여 설립된 이런 직장들은 우리의 언어문자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때문에 기본적으로 조선족들에게만 국한된 생업무대였다. 한번 우리말과 글을 업무 수단으로 하여, 국가의 봉록을 받을 수 있는 자리가 얼마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민족적 영역이 없다면 이 같은 성취가 가능할가?
1990년대에 들어선 후부터는 언어적 우세가 우리를 더욱 큰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또 한번 힘껏 떠밀어 주었다. 조선족이 가지고 있는 2중, 3중, 심지어 4중언어 능력은 우리를 일시에 세계를 누비는 초국적 집단으로 만들었다. 조선족은 그 언어능력으로 국내 대도시는 물론, 한국으로, 일본으로, 미국 심지어는 유럽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현재 조선족의 최고 엘리트들은 기본적으로 3중 4중 언어력을 가지고 있으며, 한창 성장하고 있는 차세대의 경우도 부모들만 열려 있다면 기본적으로 3중 언어력을 확보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리말과 글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국내와 한국은 물론 미국, 유럽에 진출한 조선족들도 기본적으로 해당 국가의 한인사회가 큰 힘이 되어주었다. 동화된 구소련지역 고려인들에 비하면, 조선족은 얼마나 행운스러운지 모른다.
다중적 언어능력은 먹고사는데에만 큰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그와 못지 않게 다양한 사유능력을 길러줌으로써 우리의 사유능력을 크게 증폭시킨다. 언어는 사유체계의 반영으로서, 부동한 언어는 서로 다른 사유체계를 가지고 있다. 가령, 조선어는 “밥을 먹었어요?”로 “밥”이라는 주어를 앞에 놓는다. 그러나 한어는 “吃饭了吗?”로 주어보다 행동을 의미하는 “吃”를 앞세운다. 이는 조선족은 “뭔가?”하는 명분을 우선시하는 반면, 한족은 “일단 하고 보는” 행위를 우선시 함을 설명한다. 명분을 중시하는 조선족의 사유체계와 실리를 중시하는 한족들의 사유체계를 한번에 볼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들면, 조선어는 의성의태어가 발달되어 있다. 가령, “아침에 일어나서 냉수를 벌컥벌컥 마신 후, 엄마가 끓여준 뜨끈뜨끈한 밥과 국을 땀을 뚝뚝 흘리면서 먹었다.”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종달새가 지종지종 노래부른다.” 이와 같이 의성의태어의 발달로 조선어의 표현은 강도가 세고, 생동하다. 여기서 우리는 조선민족의 풍부한 감성을 엿볼 수 있다. 감성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흥과 신명이 많아 춤,노래와 같은 예술영역에서 우세가 뚜렷하다. 한류가 세상을 판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와 달리, 한어는 논리를 함축해서 큰 의미를 표달해내는 사자성어가 발달되어 있다. 가령, “知行合一” 、“大智若愚”와 같이 네 글자 밖에 안되지만 평생을 두고 깨쳐야 할 큰 도리를 품고 있다. 중국문화의 논리력과 응축력을 반영하는 것이다. 반면, 중국문화는 감성이 발달하지못하여 신명이 부족하다.
따라서 조선어와 중국어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조선족의 사유체계에는 우리 문화에 내재한 명분중시와 중국문화가 중시하는 실리적 사유, 우리 문화가 내재한 풍부한 감성과 중국문화에 내재한 엄밀한 논리력이 복합적으로 얽혀져 있다. 단일 어종의 주류집단이 부러워할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도시 소수자집단연구에서 큰 업적을 쌓은 미국 사회학 시카코 학파의 대표적 학자인 로버트 파크는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경계인”이 가장 훌륭한 사유능력과 시야를 갖추고 있다고 격찬한 바 있다. 물론 더 많은 종류의 언어능력을 갖춘다면 그 사유의 폭은 더 복합적이고 커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조선족이 후세들을 다종 언어의 사용자로 꾸준히 키워나간다면, 앞으로 조선족 내에서 세계적인 기업가, 학자와 같은 리더들이 나타날 것으로 필자는 확신한다. 요즘의 세계적 리더들치고 다종 언어 사용자가 아닌 사람이 아무도 없다. 다종언어 사용자가 점점 늘어나고있는 오늘날이야 말로 조선족의 밝은 미래가 닻을 올리는 셈이다.
다종언어 사용은 또한 조선족을 개방적인 공동체로 만든다. 앞선 글에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결국 폐쇄적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조선족 중에 다종 언어의 사용자가 점점 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폐쇄적으로 될 수도 없다. 조선족 공동체는 앞으로 다종 언어 사용자들에 의하여, 다양한 문화와의 소통의 창구가 열려있게 되면서, 각종 선진사상과 문화가 밀려드는 다문화의 복합공간으로 거듭날 것이고, 이 공동체의 그릇만 유지된다면 우리는 그 속에서 풍성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삶의 공간이 확장되면서 공동체 유지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성장하고 있는 후대들에게 정체성의 대들보가 되는 우리의 문화를 전수할 수 있는 여건이 어려워 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선족공동체는 아직까지 건재해 있으며, 부모세대들이 세상을 보는 눈이 커짐에 따라 극복할 수 있는 능력도 점점 커지고 있다. 자신들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면, 한점의 흔들림없이 올곶차게 밀고 나가야 한다. 유대인들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작은 집단”이 “큰 파워”를 가지지 말란 법이 없다. 그 길은 오직 자신의 선택과 의지,집념에 달려 있다. 우리에게도 이런 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