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사업에 종사하면서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기 힘들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어찌보면 이는 단순하게 학생을 피교육자의 위치에 세워놓고 부정적인 판단에 기초하여 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육자의 위치에서 교사는 학생 비해 진정 박식하고 지능적이고 자격있다고 할수 있을까? 시대의 발전과 함께 학생들이 많이 진화되여 있고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자신의 위치를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수선, 학생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학”은 명사로 해석하면 학업,학문,학식을 가리키며 동사로 해석하면 학습과 터득을 가리킨다.”생은”생소하고 서먹하며 익숙하지 않다는 뜻외에 생명,생존,생활,생산과 창조등을 의미한다. 때문에 학생은 수선 학업,학문, 학식이 생소한 사람을 가리키는것으로서 배우는것은 학생의 천직이다. 아울러 학생은 생활과 생존을 배우고 생명의 소중함을 깨닳아야 하고 생산을 배우고 창조를 배워야 한다.
이는 학생의 글자뜻에 따른 해석이다. 이런 해석은 합리성과 비합리성이 동반되여 있다. 여기에는 학생은 유치하고 무지하고 비성숙된 사람이며 선생은 학생 비해 고명하고 학생에 대한 평가자이며 령혼의 공정사라는 전제의식이 깔려 있는것으로서 이러한 잠재의식은 사생관계와 학생에 대한 평가에 큰 영향을 준다.그러나 학생들에게는 과거와 다른 큰 변화가 있다. 그들은 인젠 간단한 가능성을 가지고 성장하는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존재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그들의 사상관념, 생활방식, 행위방식은 전반사회현실의 일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상응한 사회적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단순하게 사회에서 배우면서 미래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다.
다음, 학생들은 변하고 있다.과거에는 사회변화가 더디고 상대적으로 안정되여 성인들의 경험과 문화가 확실히 청소년에 비해 우세가 컸다. 그러나 오늘의 사회는 급변의 시대로서 지식갱신속도가 빨라 성인들도 부단히 지식갱신하고 사회화에 참여해야 한다. 이는 성년들도 학생과 마찬가지로 대등한 사회적지위에 있으며 성인이 가지고 있는 우세가 과거와 달리 권위성이 떨어지고 선지정도도 떨어진다는 의미이다.
청소년들은 사상해방이 빠르고 정력이 넘치고 기억력이 좋고 새로운 사물을 쉽게 받아들이며 정보화 시대에서 성인 비해 더 우월한 지위에 있으며 그들이 정보를 얻는 능력과 장악하는 능력은 성인들을 크게 앞지른다. “다원화”방향으로 나아가고 “선택성”을 늘이는것은 돌이킬수 없는 사회적추세로서 인젠 문화의 동일한 표준을 타파해야 할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청소년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형성하고 있고 개성넘치는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다원화와 선택의 특성은 학생들에 대한 성인들의 문화표준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변화와 발전은 청소년들이 경험이 부족하다 해도 단순하게 그들을 가능한 존재로만 본다든가 가공대상부품으로 본다든가 철없는 변두리의 사람으로 본다든가 지어는 학습과정에서 스스로의 체험을 부인하고 그들의 가치관념의 의의와 현실성을 부인하면서 상대하고 평가하고 요구한다는것은 이미 시대에 떨어진 교육행위로서 그들의 반발과 저촉만을 초래하게 된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학생관에 대하여 오늘의 학생들은 관념이 새롭고 정보에 능란하고 개성이 발랄하다. 이는 전례없는것으로서 교육자에게 주는 의미가 아주 크다. 우리는 이러한 변화와 발전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교육의 근본적인 출발점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학생관이 가져다주는 문제점은 많다. 학생에 대한 존중이 없는 안하무인으로서 학생의 주체지위가 박탈당하고 교육의 대상으로, 교수의 부속물로, 지식을 담는 용기로, 가공을 기다리는 원자재로, 성인들의 관리욕을 만족시키는 도구로만 리용되였을 따름이다.
합격된 선생이 되려면 인젠 학생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절실하다. 자주는 가장 높은 경지에서의 존중이며 자학은 가장 높은 경지에서의 교수이며 자률은 가장 높은 경지에서의 덕육이며 자치는 가장 높은 경지에서의 관리이다. 자주는 학생이 자신의 주인이 되게 하고 학급의 주인, 학교의 주인이 되라는것이며 학생을 학습의 주인이 되고 과당의 주인이 되고 활동의 주인이 되라는것이다. 리상적인 과당은 학생을 위주로 하고 학생을 위해 봉사하고 학생에서 출발한후 학생들을 거쳐 학생에로 이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출발점은 바로 학생을 신임하는것이다. 우리의 학생들은 이러한 과당에서만 즐겁게 지식을 배울수 있고 능력을 제고할수 있으며 지식을 얻는 동시에 승화와 발전이 있게 되고 존중을 얻는 동시에 존엄을 세울수 있게 된다. 학습의 주체는 영원히 학생자신이고 학습은 영원히 학생자신의 일이며 학생은 영원히 스스로 배워야 학습의 주인으로 될수 있으며 학습은 반드시 자신을 거쳐야 완성될수 있다. 배우는 전제는 배울줄 아는것이다. 배울줄 알려면 기계적이고 소극적이며 피동적인 기억에서 인지와 터득에로 전변하여야 한다. 그 열쇠를 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새로운 학생관으로 무장된 선생님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때 학교사이경쟁 교사사이의 경쟁은 교사의 변화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사의 변화를 시도하고 학생의 진화와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학교가 성공할수 있고 사회적 인정을 받는 학교로 장기간 그 맥을 이어갈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