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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문] 미적 감각의 형상화에서 본 장홍을의 예술적 추구
2009년 11월 16일 21시 59분  조회:4900  추천:55  작성자: 채영춘

-《장홍을 화집》의 산수화를 중심으로
 


    생을 마감하기 1년전 장홍을화백은 불치의 병에 시달리면서 170여쪽의 대형화집을 펼쳐내는데 성공하였다. 이 금싸락 같은 작품집에 의해서 우리는 저명한 조선족화가의 진지한 창작대오와 탁월한 미적 감수성, 그리고 그 미적감각을 형상화함에 있어서의 독창적인 표현수법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할수 있게 되였다.
    화백의 그림을 보면서 우리는 《평생 중국화를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사람들이 접수할수 있도록 하려고》(장홍을:《장홍을 화집》)애써 온 화백의 예술적 추구를 피부로 느낄수 있다.
    미술은 시각적 조형언어이다. 미술작품이란 화가가 속한 시대나 사회를 살아가면서 느끼고 생각한것들을 표현하는 화가의 발언이라는 시각에서 우리는 화가 자신만의 조형어법을 통해 형상화하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파악해야 할것이라 생각한다.
《중국화를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접수할수 있도록》한 장홍을화백의 시각적 조형언어의 특징은 무엇일가? 필자는 《장홍을 화집》에 수록된 산수화 작품을 중심으로 화백의 예술적 추구에 대해 귀납해보고저 한다.

    자연의 기(気)와 정신의 기(気)의 혼연일치----그의 작품에서는 호흡하는 자연의 기운이 느껴진다.
   
    자연에 대한 화가의 감수성과 태도 여하에 따라 화가의 그림은 자연과 동떨어진 아름다움만 간직한 평면의 작품으로 될수 있고 또는 살아숨쉬며 충격적인 시각적 이미지를 내뿜는 조형세계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미술작품의 형식은 그 자체로 정당화되는것이 아니라 화가의 정신적인 면을 바탕으로 하여야 하며 이같은 정신적인 것은 작품을 리해하고자하는 관객에게 공감을 줄수 있어야 한다.
    독일의 철학가 셸링은, 자연은 그저 모방의 대상일 뿐이라는 당대의 예술론을 비판하면서 예술의 고유성은 모방이 아닌 창조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예술작품은 형태를 넘어서있고 그것은 본질이요 보편자이며 내재하는 자연정신을 보는것이자 그 표현인것이다》
    장홍을화백이 우리들 앞에 펼쳐보인 선천의 모습은 우리가 일찍 가까이에서 접하여 익숙했으면서도 등한히 지나쳤던 정경들이다. 이같은 모습을 담은 작품들에는 자연에 대한 그 어떤 과장적인 수식이나 아름다움에만 집착한 다채로운 구도의 설정, 현란한 색상의 사용이 절제되여 있다.
    백두산 고원의 미연한 언덕들, 잔설(残雪)로 메워진 백두계곡들, 관목이 우거진 사이로 뻗어나간 외로운 산길,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두만강 어느 구간의 풍경, 심산벽곡의 시내물우에 조용히 놓여있는 외나무다리. 
    장홍을화백의 작품들은 우리 앞에 정지된 절승경개의 아름다움의 모방이 아니라 우리들이 걷고 숨을 쉬고 어울리는 생명의 공간으로 펼쳐져 있는것이다. 그가 묘사한 자연의 모습들은 혹은 박력있게 혹은 차분히 우리에게 다가온다. 작품의 구도에 집착하지 않고 자연의 어느 일각을 잡히는대로 클로즈업해낸것같은 그의 산수화들은 우리의 시선을 압도하며 숨막히게 다가오는가하면 길게 뻗은 유연하고 리듬있는 터치로 하여 가슴 후련하게 숨이 터쳐나오기도 한다.
    대자연에 순응하고 복종하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에 따라 가지 않고 자연으로부터 느껴지는 감정이나 기운에 충실하고저하는 화백의 지적 노력은 장엄하고 다채롭고 아름다운 산천을 그린다기보다 산행을 통해 호흡하는 자연의 기운을, 또 여기에서 느껴지는 생명력이나 힘을 담고저 애쓴 흔적을 그의 매폭의 작품에서 쉽게 찾아볼수 있다.
    두만강 해동(解凍)을 원천으로 탈바꿈시킨《해빙(解冰)》작품을 보면 봄기운을 먹은 성에장이 맥없이 꺼져내려앉는 소리가 귀맛 좋게 들리는것 같고 겨울을 밀어내며 풍기는 비릿한 강물냄새에 코가 벌름거려지는것 같다.
    백두산 남쪽비탈에서 스케치하여 작품화시킨 늦가을의 정취가 다분한 《입산(入山)》작품을 보노라니 그 아름드리락락장송에 잠시 기대여 앉아 풀벌레 우는 소리를 들으며 다리쉼을 하고 싶다. 그리고 소 몰고 입산하는 그 농부와 한담을 나누며 저 산언덕너머로 뻗어나간 오솔길을 따라 산속으로 함께 들어가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장홍을화백의 산수화는 《대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회화적인 그 자신의 리상에 따라 재해석되고 있다.》(신항섭:《장홍을화집》서언) 그는 그 자신만의 독자적인 조형어법으로 자연을 묘사하고 있다. 그가 구사하는 조형수법은 동양의 전통적인 산수화기법과 서양의 사실주의 기법을 혼합한 형태 즉, 그 자신의 비유한대로 《햄버거》와 《된장찌개》의 맛이 두루 섞여진 복합물로서 전통적인 수묵산수화의 몰골기법(没骨技法)및 우륵기법(釣勤技法)과는 어느 정도의 구별을 보이고있다. 작품전반에서는 오히려 서구회화표현방식이 더 두드러진 느낌이다. 《하지만 수묵담채라는 전래의 재료가 가지고있는 특성은 고유의 회화양식으로서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준다. 서구의 자연주의 양식처럼 자연을  아주 구체적으로 미화하는 가운데 그세부가 여실히 들여다보이는듯한 투명성을 실현하고 있다.》
    장홍을화백은 동양화는 기(気)를 론하되 빛을 론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하면서 매 한폭의 산수화 작품을 자연의광기(光気), 습기(湿気), 공기(空気), 색기(色気)와 정신의 신기(神気), 력기(力気)와의 혼연일치속에서 완성하려는 시도를 게을르지 않았다.
    우리가 늘 접촉하면서도 생소하게 느껴졌던 자연의 힘과 기운을 장홍을의 작품으로 새롭게 접할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형(形)과 신(神)의 겸비함----그는 자연의 내적인 힘을 형상화하기 위한 조형언어표출의 돌파구를 찾고저 고심하였다.

    모든 미(美)의 외적 측면 또는 토대는 형태의 (美)이다. 그러나 본질 없는 형태란 존재할수 없으므로 설령 형태만 있다하더라도, 볼수 있거나 지각할수 있는 경우에만 특성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화가가 묘사한 그 어떤 사물의 외적 형태미는 기실 화가 자신의 지적인 리해의 결과라고 할수 있다. 화가의 미적 감수성과 지적 리해력에 의해 대자연이 가지고 있는 깊고 깊은 정서가 감지감득되고 리성적인 조형언어의 표출이 가능한것이다.
    장홍을의 경우 물론 그는 사실주의 미학에 충실하면서 대자연속에서 스케치해낸 소재를 기본바탕으로 형태미에 대해 묘사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눈에 보이는 표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남다른 미적 감수성은 자연속에서 생활체험을 하며 창작소재를 장악할때 이미 남이 포착하지 못한 대자연의 장엄한 내적 이미지, 형태미의 내면에 잠적해있는 깊은 뿌리를 한꺼번에 취사선택할수 있게 하였다.
    그의 그림은 거대하다. 대부분 작품들은 평면공간에 빈틈이 없을 정도로 화가의 필묵이 골고루 침투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도 솟아날길 없는 거대한 산 속에 갇힌것 같은 환각을 주기도 한다.《백두고원》, 《산길》, 《무언지대》등 백두산 제재의 산수화작품들은 아예 우리들로 하여금 자연앞에서 완전히 압도되는듯한 느낌으로 하여 시야를 어디에다 맞출지 갈팡질팡하게 한다. 살펴보면 결코 단순히 작품구도면에서의 시도에서 이루어진것만은 아님을 느낄수 있다. 그것은 화백이 자기 창작에서 자연의 내적인 신(神)을 찾아내 구체화하는 조형언어표출의 돌파구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40)
    무릇 모든 그림은 일반인들이 스쳐버리고 지나쳐버리는 것들에 대해 새로운 주목을 낳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흔히 접하는 자연이나 일상사 속의 하나로 지나쳐버리는 것들이 화가의 눈과 붓 아래서 새로운 생명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백두산, 금강산, 한나산, 설악산 등 명산들을 화폭으로 옮긴 것을 적잖게 보아왔다. 이런 명산실경의 형태미에 대해 우리는 익숙할수 있다. 그런데도 장홍을이 제시한 명산들의 이미지는 우리의 일상적인 시각으로는 도저히 함축적으로 요약, 취사, 선택, 정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엇때문인가? 《실제로 그의 작업에서 사실적인 묘사력은 인체의 신경세포처럼 아주 섬세한 감각을 지닌다. 오히려 사진보다도 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이다. 이미지의 선명성이라는 면에서 보더라도 사진보다 앞선다. 남북의 명산을 답사하면서 카메라의 시각이 아닌, 그 자신의 신체적인 감각 및 미적 감수성을 총동원하여 대자연이 가지고있는 그 정서를 감지감득한 결과이다.》(신항섭:《장홍을화짐.서문》)
    때문에 장홍을의 산수화에서는 평소 자연의 명산실경보다는 자연에 대한 느낌과 자연에서 올라오는 기(気)를 형상화하기 위한 순발력 있는 붓의 터치들이 눈에 띄이고 있다. 자연과의 즉각적인 교감과 순간적인 스케치에 의존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명산의 구석구석에서 배어 나는 내적기운과 사색적 느낌들을 형태미로 담아내고 있다. 자연을 형(形)과 신(神)이 결집된 하나의 사색의 공간으로 생각하고 자연이 우리의 눈을 위해서만 존재하기보다는 우리의 말과 생각의 실토인 듯이 나타내고 있는것이다.
    장홍을화백은 매 한폭의 산수화에서 형(形)의 근사함에 신(神)의 근사함을 내포시키고 형과 신의 겸비함을 재현시키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자연의 신비로운 메아리를 받아들이고 있다.
   
    대자연에 대한 미적 감수성과 인간 삶의 리얼리티에 대한 철학적사고의 결합----그의 조형언어에는 자연과 인간관계의 순수성과 숭고함이 내재되여 있다.

    자연은 화가들 앞에 놓여진 영원한 숙제라고 할수 있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빌헬름 보링거는, 인간은 자연을 인간과 대립된것으로 생각할수도 있고 인간자신이 자연의 일부인것으로 생각할수도 있다고 강조하면서 전자의 경우에는 자연을 극복과 정복의 대상으로 삼아 변화하는 자연을 고정된 모습으로 나타내고자 하고 인간나름의 방식으로 소유하고자 하며 후자의 경우에는 자연과의 친화감(親和感)과 공감을 바탕으로 그것에 순응하고 그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저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장홍을의 작품들은 자연에 대한 화가 나름의 해석보다는 자연과의 공감에 충실하고자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산수화에서는 인간의 력사 따위는 별다른 의미가 없어보인다.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기확인을 거듭할 따름이다. 그의 산수화에서는 인간이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대자연의 위대성이 느껴진다.》 (신항섭:《장홍을화집》서문)
    장홍을 산수화작품의 일부에서는 인간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대자연의 위대성과 장중함을 안받침해주는 존재로 부각된다.
    화백은 위에서 아래를 굽어살펴보는 부감법(俯瞰法)으로 자연전체를 넓게 조망하고 광대하고 장엄한 자연의 모습을 담고 있다. 화폭에 담겨지지 않을듯 거대한 산중턱에 보일락 말락하게 난 산길을 따라 소를 끌고가는 농부의 미세한 움직임, 해동하는 두만강의 거창한 물결을 타고 저멀리 강언덕길을 따라 아득하게 보이는 소달구지와 농부, 강가에 가로놓인 나무다리를 건너 깊은 산속으로 막 사라지는 모녀의 희미한 뒤모습들…
    이런 인간등장의 작품들은 우리로 하여금 평온함과 조화롬이라는 자연으로부터의 교훈을 느끼게 하고 있다. 화백은 이것을 자연의 거대한 포용력 또는 자연 앞에서 왜소해 질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 바로 이같은 자연과 인간관계에 대한 상징적 의미의 함축으로 해석하려 한다.
    장홍을 화백은 자기의 그림에서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허물수 없는 대자연의 숭고함을 내재시키고있으며 《자연에 순응하는 순연한 삶의 양태가 얼마나 아름다운것인지 일꺠워줄 정도이다.》(신항섭:《장홍을화집》서문)
    장홍을은 화가이기에 앞서 민족을 사랑하고 고향을 사랑하는 지성이다. 본인이 자술한것처럼 《졸업후 고향에 대한 애착이 하도 깊어 큰 도시에서 취직할수 있는 기회를 전부 사절하고》 고향행을 결심하게 되였으며 조선족 그리고 조선족을 위한 그림그리기에 열중해왔다.
    중국조선족의 삶은 어떻게 보면 대자연에 순응하고 복종하며 자연과의 조화와 융합을 이루는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우리 자신을 승화시킨삶이라고도 볼수 있다.
    장홍을의 작품에는 우리 조선족의 삶의 리얼리티가 담겨있다. 그의 작품은 우리가 지나쳐 버린 익숙한 것들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보여줌으로써 우리 삶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중국조선족의 백년이주사는 피와 땀으로 얼룩진 개척의 력사라고도 할수 있다. 장홍을의 작품에서는 길을 그린 그림들이 《목젖을 메우는 듯한 슬픔같은 어떤 감동을》불러일으키며 특이하게 안겨온다. 그가 그린 길들은 모두가 첩첩심산속의 외로운 오솔길아니면 황야에 어렴풋이 난 달구지길이며 폭설속에 어렴풋이 보이는 령길이다. 그 길들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조선족의 력사상의 그 험난함과 어려움을 상징하는 듯하다. 곧게 뻗은 길이기보다는 구불구불하고 굴곡이 지어져 많은 사연이 담긴 길처럼 묘사되어 있고 그 길의 주인공들이 소박한 형색의 농부가 아니면 소달구지 등이란 것이 더욱더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장홍을 화백의 거폭의 산수화에 왜소하게 자주 등장한 조선족농부와 황소, 그리고 물동이를 이고 가는 녀인, 산향길을 따라 굴러가는 소달구지, 두만강 격류속에 알릴듯말듯보이는 떼목… 이러한 장면은 꿋꿋하게 자기의 전통적 생활양식과 문화를 영위해나가는 중국조선족의 강인한 생명력을 장중한 대자연의 위용과 일체화시킴으로서 자연과 인간관계의 순수성과 숭고성을 유연하게 전개시키고 있는것이다.
    요약하여 말하면 장홍을화백은 자연에 대한 뛰어난 미적 감수성의 형상화 실천을 통해 《중국화를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사람들이 접수할수 있게 노력》하는것을 평생의 예술적 추구로 삼고 정열적으로 창작하여 우리 조선족화단은 물론 중국미술사에 중요한 한획을 그었다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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