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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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에 티만이 아니였다
2013년 08월 26일 19시 29분  조회:8947  추천:4  작성자: 최균선
                        옥에 티만이 아니였다.
 
                                     최 균 선
 
    20년전, 길림성제1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서예학박사, 문학박사로 성장한 서예가 서영근이 주최하에 “2013년 한,중,일 “별의 시인 윤동주 시와 서예의 만남” 이라는 주제로 열린 서예전시회의 참석차로 유명한 시인 윤동주의 생가와 그가 다니던 모교 인 명동학교를 다시보게 되였다. 이번 서예전은“하늘우러러 한점 부끄럼없기”를 읊었던 윤동주의 모교로도 유명한 명동학교 옛터에 복원된 새학교에서 열리였다.

    서예전이 끝나자 그젯날의 원학교의 사진을 둘러보면서 저도모르게 착잡한 생각이 얽히고 서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아득히 흘러간 세월의 저언덕너머에 우렷히 떠오르는 비장한 정경들이 내사색을 사로잡고있었다. 중국조선족교육의 효시이자 수많은 항일운동가를 배출했던 명동학교는1908년4월 규암 김약연 등 민족지사들이 설립한 근대적민족교육기관이였다.

    1910년에 세워져서부터1925년 일제의 탄압으로 폐교될때까지 10여년간 명동학교는 신문화보급과 민족의식의 고취에 크게 기여하면서1,2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는데 이들중에는 항일운동가와 교육자로 민족사에 방명(芳名)을 남긴이들이 적지않다. 이를테면 시인 윤동주와 청년문사 송몽규, 한국의 유명 감독 라운규 등 우수한 인재들을 배출하며 신문화보급과 민족의식 고취에 크게 이바지했으며 또한 민족지사들의 요람역할을 빛나게 수행했다.

    당시 명동학교가 북간도민족운동의 근거지로 자리잡자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 참패한 일본군은 명동학교를 불태우고 교장 김약연을 체포하는 등 로골적인 탄압을 가했다. 1923년에 출옥한 김약연이 폐허에 림시건물을 지어 다시 문을 열었지만 그 이듬해 특대흉년으로 명동학교는 경영난에 봉착했다. 중학부가 문을 닫게되였고 여러선생들도 떠나갔고 적지않은 학생들도 룡정의 각 중학교로 전학해갔다. 소학교는 명동교회가 운영하며 1930년대초까지 근근득실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후 80여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학교는 흔적도없이 사라지고 담배밭으로 변했으며“명동학교 옛터'라고 쓰인 표지석만이 과거 민족운동의 요람이였음을 알려주었을뿐이다.  건국후 다시 세워진 명동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경력이 있다는 정창복이라 는 79세나는 로인의 회상에 의하면 문화혁명시기까지 학교가 존재하다가 개인에게 팔리여 허물리였다고 하였다.

    주지하디싶이 력사문물은 한개민족, 혹은 국가의 력사발전과정에서의 생존, 투쟁, 문화발전의 연혁사 등을 반영하기에 력사문물의 보존은 곧 문화,예술과 과학적가치 보존이며 전민족의 진귀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성스러운 사업이다.  윤동주시인의 생가, 수많은 열혈지사들을 배출한 명동학교는 진귀한 력사문화문물로서 세월은 많은것을 씻어가버렸지만 명동학교는 월강민족으로서 우리 겨레의 수난시대의 견증자이다. 그만큼 거대한 감화력과 의취력을 내재하고있으며 민족발전행정에서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수 없는 력사적뉴대로서의 작용을 체현하고있다.

    윤동주의 생가와 더불어 그가 다녔던 명동학교를 력사문물로 잘보존함으로써 민족전통교육을 진행하는 생동한 교재로 된다. 력사문물은 그 민족의 근로하고 용감하고 경정불이한 창조정신과 간고분투한 빛나는 력사의 상징이다. 그로써 민족의 우 량한 전통을 계승발양하여 민족의 자신심과 자호감을 증강시킬수 있기에 후대교육에서 중요한 현실적의의를 가지고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정체적으로 말하면 무릇 력사,문화적문물은 력사연구와 문화의 창신과 발전의 의거이다. 력사문물은 력사문화의 캐리어(载体)로서 력사연구에서의 우선적인 사료이며 과학발명과 문예창작발전에서의 중요한 귀감이고 원천이 되기도 하다. 만약 문물자료, 력사발전계단에 대한 문자기록 등이 없다면 시발점과 연혁과정에 대하여 알길이 없게되여 력사문화연구란 말그대로 공리공담이 되고만다.

    력사문물은 우리 나라, 우리 민족과 세계각국, 여러민족간의 문화교류와 우호관계발전도 촉진할수 있다. 모두어 말하면 윤동주생가와 그의 모교의 유적지는 우리가 민족문화를 널리 홍보하고 민족정신을 진흥시키며 민족부흥을 고도로 실현할수 있는 물질기초인바 선조들이 남겨준 진귀한 력사문화문물을 완정하게 잘보존하여 자손만대에 물려주는것은 우리 세대들이 벗어버릴수 없는 력사적사명이다.

    하여 룡정시유관부문에서는 중국조선족의 우수한 문화를 계승,발전시키고 룡정을  중국조선족 민족문화도시로 건설하려는 취지의 일환으로 2009년 9월부터130만원을 투입하여 원 명동학교 자리에다 새 명동학교를 복원하기 시작하였는데 근 일년간의 분투를 거쳐 이듬해 2010년10월말에 준공되였다.

    옛터에 복원된 학교는 당시 평면도에 따라4채의 단층벽돌건물이던 1920년대초의 명동학교의 원모습을 그대로 재현하였는데 건축면적은265평방메터로서 4개 교실에 2개의 사무실로 구성되였다. 력사의 뒤안길에 사라졌던 명동학교가 사연도 많았던 옛터에 다시 일떠섬으로써 당년의 위용을 자랑하며 룡정시민족전통교육의 교양기지로, 룡정시의 또 하나의 관광명소로 국내외의 각광을 받고있다. 이런 장거는 찾아오는 지성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있다.

    그러면서도 보이는대로 보여지는 또하나의 정경에 마음에 그늘이졌다. 지은지 3 년세월이 다되는데 주위의 곡식밭과 어울리지않게 잡초무성한 주위환경은 심하게 말하면 살풍경을 이루고있기때문이다. 나는 흑룡강신문사 연변주재기자인 윤윤걸선생과 함께 학교주위를 돌며 구석구석에 눈길을 박았다. 나의 눈에 안겨드는 정경은 결코 미중부족이라든가 옥에 티라는 말로 스쳐지날 그런 정도가 아니였다.

    아무리 복원된 학교라도 학교의 이마이기도 한 운동장이 없는것은 둘째치고 사위에 건축할때 남겨놓은 웅덩이들에 잡풀이 무성해서 눈길을 찌프리게 한다. 기자의 혜안으로 이 모든 정경을 포착한 윤기자가 여기저기 렌즈를 돌리고있을 때 격에 맞지는 않은줄 알면서도 흘러간 옛노래가락을 떠올려보지 않을수 없었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못이뤄
                                                            구슬픈 벌레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성은 허물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
                                                            세상이 허무한것을 말하여 주노나
                                                            아 가엽다 이내몸은 그 무엇찾으려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메여 있노라.

    물론 노래가사와는 달리 황페하던 옛터에 아담한 교사가 세워져있지만 경물이란 무릇 그에 어울리는 배경에 조화되여야만 원모습이 흐리지않고 도드라지게 보이는법이 아니던가? 새건물은 지었으되 왜 그에 수반되여야 할 뒤수습은 흐지부지한채 세월을 거듭 기록하고있을가?

     물론 내가 모르는 여러가지 여건들이 있을테지만 이런 정경이 지금까지 관광객들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원인은 해당부분에 책임일군들의 관념속에 윤동주의 모교의 복원의 의미와 복원된 학교청사가 가지는 현실적이미지와 더불어 얼핏 계산할수 없는 실용적가치함량의 실현정신이 부재하지 않을가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물론 주관적 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시작작한 일을 깐지게 마무리하지 못할망정 학교이미지 창출에서의 기본은 갖춰져보이게 하는것이 초미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대상도없이 혼자 속으로 질의하며 눈길이 다시한번 잡초더미속에 박히였다.


                                       2013년 8월 18일         8월 26일 흑룡강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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