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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말려본 인생철학
2017년 01월 29일 20시 20분  조회:3468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그늘에 말려본 인생철학
 
                                                       최 균 선
 
    겨울에는 불이 사랑,여름에는 그늘이 사랑, 그늘이 없으면 차일을 쳐서 서느러 움을 잡아두고 양산을 펼쳐 움직이는 그늘도 만든다. 그늘! 나무그늘, 담장그늘, 건물그늘…전선대 그늘마저 찾고싶을 때가 있다. 그늘은 따가움을 가려주지만 어둡지  않고 실바람이라도 불러들일듯싶어 좋다.
    찜통더위에 그늘 찾아 앉으면 시간도 잠시 잊혀지고 제 이름도 잊혀지고 할일도 잊혀지고 가야 할 곳도 잊혀진다. 그늘아래 생활의 짐과 불안과 잡다한 번민을 잠간 부리워놓고 잊었거나 잃어버린것을 떠올리며 가벼운 한숨을 쉴수 있어서 좋다. 그래서 누군가 휴식할 휴(休)자는나무와 같이 있는 것(人+木, )이 쉬는것라고 풀이했다.
    그늘아래 쉴때 여름도 달아나지 않고 휴식한만큼 아픈 마음도 아물어진다면 만시름을 그늘에 널어놓고 매미의 울음소리로 졸음을 불러다 꿈한자락 보듬었으면 좋겠다. 깨여나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여 지층깊은 곳에 물맛도 보고 짙푸르게 록음이 우거지게 하여 더위먹은 사람들을 불러들였으며 좋겠다.
    나무가지 흔드는 바람따라 시간은 그네뛰고 나는 오늘도 그늘을 찾아 피로와 권태와 담배연기에 지쳐버렸는데 돌이키니 인생길 열심히 걸었다는것이 요만큼밖에는 못오고 주저앉으니 이제 더 바랄것 없을같다. 스스로를 편하게 다 풀어놓고 빈술병을 풀숲에 세워둔채 그늘아래에서 하품하니 상념마저 휘청거린다. 생명의 얼레도 거의다 풀어져 석양처럼 불타지도 못할바에는 그늘을 찾아 잡념에 부채질이나 할가? 
    그늘은 볕이나 불빛이 가려진 곳에만 있는것이 아니라 삶의 마당에도 있다. 시름겨우면 얼굴에도 그늘지고 수심에 잠기면 마음에도 그늘이 진다. 마음이 어두워져서 얼굴에 그늘이 비끼는지 얼굴에 그늘이 지여서 마음이 어두워지는지? 그러나 그것은 별 대수가 아니다. 어찌하여 그런 그늘이 짙어가는가가 문제이다.
    부정축재자들의 얼굴에 그늘이 가실새가 없는것은 언젠가 들통이 날가봐서이고 민초들은 생계문제로 마음에, 얼굴에 그늘이 지고 복받은자도 무언가 안심되지 않아 그늘이 드리우고…잠시 비낀 구름그늘이라면 좀 좋으련만 민초들에겐 고생이 장고 생이듯이 마음속에 늘 그늘이 짙기마련인데 가질것 다가지고 누릴것 다누리는 복된 사람들의 마음의 하늘에는 행복의 꽃구름만 시름없이 둥실 떠있을가.
    반복무상의 경계선에 선 인생은 이래저래 시름겨운 그늘속에서 영위될수밖에 없다. 작은 웅덩이라도 기어이 채워놓고서야 다시 앞으로 흘러가는 물처럼 우리네 인생마당에도 그늘은 처처에 드리워있다. 그늘을 모르고는 못살 우리네 인생이런가? 부모의 슬하를 어버이의 그늘이라고 하고 보이지 않는 어떤 강력한 뒤심도 그늘이라 이름한다. 하지만 마음에 그늘지고 안지는것은 마음을 지어먹는대로 되지 않는다.
    무릇 뒤심은 운명를 걸기도 하는 가장 수요되는 그늘이다. 취직도 승진도 누군가의 그늘이 드리워진다면 일취월장한다. 금강산 그늘이 관동 8백리라 권세가 크면 클수록 덕을 볼 그늘도 크다, 그래서 큰일이 생기면《어쨋든 사람을 찾야하지!》하는것이 삼십륙계에서 상책이자 만전지책으로 되여있다.
    땀을 들일 그늘이야 있으면 좋지만 인맥으로 얽힌 세상이라 날아가는 새도 떨굴 권세가를 등에 업으면 검은고양이가 흰고양이로 될수도 있으니 누군들 그런 그늘을 마다하랴, 그러나 그런 그늘밑은 아무나 기여들수 있는게 아니다. 집그늘은 언제나 뒤뜨락에 있듯이 무릇 모든 뒤심은 뒤문을 열어야 업을수 있다. 뒤문을 여는 일이란 제집 뒤문을 여는 일은 아니지만 뒤심은 무소불능(无所不能)이다.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탐탁하고 바람직한 그늘은 권력의 그늘이라는 설명이 되겠다.
    그늘은 음덕(阴德)이 아니다.《잡보장경》제8권 (인터넷판)에 이런 구절이 있다.《…왕은 해와 같이 온 세상을 두루 비춰주어야 하고 달과 같이 모든것에 맑고 시원한것을 주어야 하며 부모와 같이 백성들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겨야 하고 또 하늘과 같이 일체를 덮어주어야 하며 땅과 같이 만물을 싣고 길러야 하고 또 불과 같이 만민을 위해 나쁘고 근심되는것을 태워야 하며 물과 같이 사방을 윤택하게 해야 하고 또 과거의 전륜성왕처럼 열가지 선한 도로 중생을 교화해야 한다.》고,
    동서고금에 해빛같고 해볕같은 마음으로 치세안민한 군주가 있었다면 참으로 불세출의 성군인데 나는 무식해서 누구누구인지 모르고《성은이 망극하사》 달빛같고 별빛같은 마음으로 정사를 살핀 관리가 있었다면 참으로 현인군자라 할것이로되 몇몇이나 되던지 기억나지 않고 다만 권세의 그늘은 어둡다는것만 알고있을뿐이다.
    권력 한자락 잡고나서 오를수록 더 오르고 싶어하는것은 과연 백성들의 마음에 어두운 그늘이 질세라 더 충족한 양광을 하사하기 위해서일가? 백성들의 머리우에 군림하여 그늘을 넓히며 일세영달을 도모하지 않으면 다행일것이다. 그늘을 던져주고 그늘아래 기여드는것이 가는 떡이 커야 오는 떡도 크다는 교환법칙이 아닌지?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분복에 없는 그늘은 경이원지하고 차별도 없고 린색하지도 않고 무상으로 내주는 나무그늘이건만 찾아들 경황도 없이 치수공사장에서 구슬땀 흘리는 일군들을 바라보며 저도모르게 부채질을 멈춘다. 그늘이 대지의 뉴앙스라면 인생현장에 그늘은 해석할길 없다.
    그늘은 찾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것인가? 피가 아흔아홉동이나 괴였을 나이에 해바라기 해를 따라 돌듯이 그늘따라 돌며 장훈을 부르고“붉은문건학습”에 여념없는 사람들의 내속은 어떤지 몰라도 여유롭고 멋스러워 보인다. 저들중에는 일하는 손은 언제나《더러운 손》이라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것이다. 하지만 생활은 목욕탕에 밥을 말아놓은 격이면서도 저렇게 호기를 부리는지 누가 알랴,
    여름에 그늘이 좋지만 락엽지는 쌀쌀한 가을에도 그늘이 좋을리 없다. 천도는 밝음으로 음양을 나누고 춘하추동으로 사시를 정하고 남극과 북극으로 천축을 정했는데 인간사회의 음양은 누가 정한것인가? 따스함이 가장 수요되는 사람들에게 겨울해는 린색하고 그늘이 가장 수요되는 사람들이 그늘에 앉지 못하고 허둥거리는 인생현장이니 말이다. 그래서 인생마당은 얼룩덜룩이다.
    해는 지구를 골고루 비춘다. 하지만 엎어놓은 장독안은 비추지 못한다. 그것은 결코 해의 잘못이 아니다. 해도 걸리적거리는 구름이 미울것이고 아낌없이 쏟아주는 자기의 빛이 가는 길에 모든 장애물들을 가증스러워 할지도 모른다. 해는 공정하다. 그러나 《바라건대는 겨울에 헐벗은 사람들에게는 따사로움을 더 해주고 수달피옷을 입은 귀부인들에게는 추위의 매서움을 느끼게 하소서.》하고 기원할뿐이다.
 
                                2007년 7월 15 일          ㅡ         2014년 <동북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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