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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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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부녀절
2024년 03월 06일 05시 00분  조회:892  추천:0  작성자: 방순애
   아침에 일어나 카텐을 제치고 창문을 여니 바깥의 신선한 공기는 피부에 머물던 미지근한 공기를 내 쫓고 새롭게 자리잡는다. 신선한 공기를 힘껏 들이마시면서 오늘이 3.8절이구나 하고 생각을 한다. 3.8국제로동부녀절은 1908년 세계 녀성의 지위향상을 위해 지정한 날이다.
   나는 한해의 시작을 1월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늘 3.8절로부터 한해를 시작하군 하였다. 3.8절까지 지난해 총결을 짓고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다. 3월이 되기전부터 녀성들은 3.8절기념을 고대기다린다. 연변사람들이 3.8국제부녀절에 대한 기념활동은 전국적으로도 유명하고 거이 몇십년으로 이어져왔다.
   지금부터 반세기 지난 1975년 열여덟살 나이에 나는 지식청년으로 두메산꼴 용화공사 고령촌으로 하향을 하였다. 나어린 농촌생활이 얼마나 고달픈지 모르지만 그런날들 중 19살때의 3.8절이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부녀대장직을 맡은지 얼마 안되여 첫 3.8절을 맞이하였다. 부녀절 전날, 나는 생산대에서 준 약간의 경비를 가지고 우수녀성, 우수어머니, 우수시어머니, 우수며느리들에게 드릴 상품과 저녁오락회 기념품을 구매하러 차를 타고 현성에 갔었다. 백화상점에서 세수수건, 비누곽, 치솔, 치약, 작은 그릇, 등 상품을 차곡차곡 사서 준비하였다.
   어쩌다 집에 돌아온 나는 모녀간이 만나 그동안에 쌓였던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새벽에 쪽잠이 든것이 그만 아침 여섯시 반 차시간이 다 되여서야 일어나게 되였다. 아침밥도 챙기지 못한채 상품보따리를 들고 허둥지둥 줄달음쳐 뻐스역으로 갔다. 그런데 뻐스는 날 놀리기라도 하듯이 날봐라 하고 앞으로 사라져버렸다. 하루에 한번 밖에 없는 뻐스마저 놓쳤으니 오늘 3.8절을 어떻게 한담? 아침 뻐스를 타면 생산대 마을까지 오전 여덟시면 도착하겠는데. 점심부터 활동하기로 했는데 부녀대장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건가?  조금만 더 일찍 서둘렀어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걸 하며 나는 선자리에서 발만 동동 굴러댔다. 부녀대장이 되여 처음으로 조직하는 3.8절인데 이런 랑패가 어디 있을가?
   현성에서 생산대마을까지 60리길이나 되는데 어떻게 간단 말인가? 아니 어떤 방법을 대서라도 나는 가야 한다. 생산대 녀성들이 애타게 기다리겠는데. 60리길, 한시간에 십리길을 걸으면 점심 12반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용기가 없이 무슨 일을 해냐랴. 그래 걸어가자.
   나는 상품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배짱있게 걷기 시작하였다. 내가 하향한 생산대 마을은 험한 산꼴에 있는지라 두개의 큰 산령을 넘어야 한다. 험한 산간지 령을 타기 시작했다. 얼마나 가파로운지 숨이차 헉헉거리면서도 고생끝에 맛볼 그 기쁨에 포근히 취하는 마음이였다. 산과 들에는 아직 흰눈이 덮여있었다. 가끔 쌀쌀한 바람이 불면 눈물이 주루륵 흘러내렸다. 아직은 겨울 한기가 지나지 않은 때라 온몸이 우스스 떨려났다.
   갑자기 길에 웬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순간 가슴이 후둑후둑 뛰기 시작했다. 사람이 없을 때엔 지난 생각도 해보고 코노래도 흘얼거리면서 걸음을 재촉할 수 있었는데 웬 낯선 사람이 뒤를 따르니 식은땀이 쭉 등골을 타고 내리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가는 사람일가? 좋은 사람일가? 나쁜 사람일가? 보따리를 팽개쳐버리고 줄달음을 칠가? 온갖 생각들이 감돌면서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한참을 지나 나는 드디여 랭정해졌다. 이럴수록 마음을 가다듬어야지.
   나는 엎드리며 길옆에서 각이 삐죽이 나온 돌멩이 하나 주어들었다. 만약 저 사람이 나한테 덥쳐든다면 이것으로 머리를 냅다칠 것이다 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어찌나 빨리 달렸는지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뒤 돌아보니 그 사람은 다른 길로 가고 없었다. 괜히 제 방귀에 놀라 뛰였구나 하며 픽 웃었다. 다음은 신덕령이다. 나의 속옷은 어느새 땀에 푹 젖었고 묵직한 보따리는 막 쥐여뿌리고 싶도록 밉살스러웠다. 발바닥 여러곳에는 물집이 생겨 신경을 콕콕 찔러 대는데 어찌나 아픈지 오호호 하며 소리내며 걸었다. 배에서도 밥 달라고 꼬르륵 소리를 질렀다. 령이 어찌나 높고 긴지 아무리 걸어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쯤, 생산대 부녀들은 아침차에 올 부녀대장이 오지 못하니 꼭 무슨 일 생겼다고 생각하면서 난리가 났다. 집체호 생활호장님이신 정아주머니께서는 "우리 부녀대장은 무슨 방법을 대서라고 꼭 올것이니 우리는 원 계획대로 명절준비를 잘 해놓고 기다리자"고 부녀들을 호소하였다. 모두들 싸래기 입쌀을 떡가루 내고 가마에 찌면서 정성들여 송편을 빚기 시작했다. 뽀얀 쪼각달 송편은 부녀대장송편, 큼직한 송편은 권할머니송편, 별난 모양의 송편은 처녀애들 송편하면서 즐거움에 젖어 송편을 빚었다. 그런 와중에도 몇몇 부녀들은 부녀대장이 오지 않을가 몇번씩 밖으로 들락날락했다.
   신덕령을 넘자 나는 기진맥진해 한걸음도 딛기 어려웠다. 하지만 생산대녀성들이 애타게 기다릴 것을 생각하니 쉴 사이가 없었다. 나는 다시 신들메를 단단히 조이고 나머지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음질 쳤다. 땀 절반, 눈물 절반이 흘러 얼굴을 젖시였다. 열한시반을 넘기자 웃음소리로 들끓던 그녀들의 소리는 차츰 가라앉고 모두들 마음을 졸이기 시작하였다. 부녀대장이 안오면 어쩝니까?
   열두시 반, 나는 물집투성이인 발을 질질 끌며 마침내 마을에 도착하였다. 마을 어구에서 진작 목을 쭉 빼들고 동구밖을 바라보고 있던 처녀애들이 “부녀대장이 왔어요!”하며 소리를 치면서 달려오자 집안에 있던 모든 녀성들이 달려나와 나를 에워싸고 “힘들어 어떻게 왔냐?”  “부녀대장이 이렇게 올줄 알았다.”  “ 이렇게 어린나이에 그 험한 산길을 혼자 다녀오다니..쯧쯧” 하며 너도 나도 나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였고 가슴아파하며 기뻐하였다. 순간 나의 가슴은 뭉클하였다. 얼마나 아름다운 그녀들인가. 이렇게 나를 믿고 따르는 그녀들, 그리고 항상 농사 일선에서 힘이 되여주시였던 그녀들에 대한 감동은 이루다 말할 수 없었다. 그날 3.8절 기념활동은 그 어느때보다 즐겁고 의미깊에 보냈다.
   땡땡 내리쬐는 폭양에도 수건 한장 달랑 머리에 쓰고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연신 손등으로 훔치며 기음을 매던 그녀들, 아무리 힘들어도 코노래를 흥얼거리며 우스개를 피우면서 밭머리에서 배를 끌어안고 웃던 그녀들, 힘들때 서로 다독이며 베풀고 힘이 되여주고 흙과 땀의 결실에 웃음 지으며 돈독한 인정을 쌓아가면서 사는 그녀들이 좋았다. 그녀들은 비록 얼굴이 가무잡잡하고 손이 거칠고 손마디마다 단단한 옹이 박혀있었지만 그녀들의 몸에서는 녀성들의 강직하고 근로한 정신이 빛발쳤다. 나는 그런  녀성들과 고락을 같이 하면서 그녀들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녀성들로 간주하여 왔다.
   서로 부대끼며 살던 세월, 그 간고하고 고난한 시기에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믿으면서 살던 시대, 바로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무한한 동력이 되여 나를 앞으로 힘껏 밀어주었다. 생산대 할머니로부터 처녀애들에 이르기까지 찾아볼 수 없는 신뢰와 인정을 밑바탕으로 농사를 지으며 집체호에서 열심히 살아갔던 세월이다. 아마 그것이 내가 그토록 힘들어도 모든 것을 이겨내며 성장할 수 있는 좋은 밑걸음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비록 반세기를 다 지난 오늘에도 녀성들이 3.8부녀절을 고대 기다리는 마음은 모두 모여앉아 지난날의 추억을 끌어내여 즐거움에 젖어 행복을 맛보는 것이라 하겠다. 아니 힘들었던 일들을 미련없이 다 지우고 보다 낳은 미래에 대한 갈망일 것인 것 같다. 또한 다가오는 봄빛에 희망이 묻어나는 단꿈을 꾸는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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