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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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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의 구름을 타고
2024년 05월 21일 05시 57분  조회:680  추천:4  작성자: 방순애
   1993년 7월18일, 장백산 천지를 구경하러 간다니 가슴이 얼마나 들먹였는지 모른다. 천년림에 차고 넘치는 신선한 여름의 숨결에 사로 잡힌 마음은 굽이굽이 휘돌아 오르는 산길에서 더욱 부풀어 올랐다.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에 앞서 마음부터 달리던 동경의 성지 장백산기슭에 도착했다. 고산의 찬기류와 만나 하얀 증기가 피여 오르는 온천은 금황색, 진남색, 은홍색, 비취색으로 물들인 암석과 자갈에서 무수한 기포들이 톡톡 터졌다. 백두신령이 령을 내려 메돼지들과 싸워 상처를 입은 사슴들에게 치료해 주었다는 끓으며 솟아 오르는 온천에서 닭알을 하나씩 먹고 달문을 열고 내려오는 은하수 폭포를 보았다.
   폭포가 휘뿌리는 물보라에 칠색무지개가 어리는 것은 변강을 지킨 룡암과 백화의 장렬한 기백과 고매한 넋이 피어 오르기 때문이라 한다. 백룡이 가나래치는 락수소리, 세상에 태여나는 천지의 목소리, 바위에서 떨어져 부셔지는 아픔을 달래며 수십리를 울려 퍼진다. 그 락수의 충격에 폭포 밑 석관이 20여미터 길이나 패여 들어갔다는 못에서 다시 튕겨 오르는 몰보라가 주변의 바위들을 씻어 내린다.
    폭포소리는 우렁차다. 온몸을 폭포 물보라에 몸을 적시며 산정의 천지를 바라고 허위단심 비탈길을 톺았다. 그때만 하여도 사람들이 폭포 옆 돌밭으로 올라간 다음 둬 키로미터로 걸어가면 천지물 옆으로 가볼 수 있었다. 나는 폭포수가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올라갔다. 심장이 멈춰서는 것 같고 숨이 차 중간에서 반시간 가량 숨들 돌렸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사람들은 다 올라가 보이지도 않았다.
   나와 심장병환자 류씨만 헐떡 거리며 앉아 있었다. 다시 신들메를 조이고 일어나 걷기 시작하였다. 두 시간도 넘게 오르며 걸었다. 심장이 터질세라 헐떡 거리던 거친 숨결도 지친 마음도 어느덧 간데없이 사라지고 “아~ 천지여!”하는 감탄이 절로 터져 나왔다. 짙푸른 천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천지의 물에 손을 넣었다가 너무 손이 차거워 냉큼 꺼냈다. 사변에는 커다란 하얀 벼랑들이 주위를 둘러쌌다. 아득히 멀어져 보이는 천지는 출렁거리는 바다와 같았다. 너무나 웅장하고 품위있는 아름다운 공중호수였다.
   옛날, 석달 열흘 동안 옥장천의 샘물을 마신 백장수가 백두산 산마루에 올라가서 삽으로 땅을 파헤치는데 삽이 얼마나 컸던지 한삽을 파내서 던지면 하나의 산봉우리가 우뚝우뚝 일어섰다. 그가 열여섯 삽을 떠서 동서남북으로 던졌더니 열여섯개 기봉이 생겨났고 움푹하게 패운 밑바닥에서는 맑은 지하수가 강물처럼 솟구쳐 올라와 웅뎅이를 꽉 채워 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의 천지로 되였다 한다.
   하늘의 옥경이라는 호수에 오륙백 높이를 이르는 절벽으로 된 하얀 화구벽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다. 수정궁속에 들어온 기분이다. 아니 하늘 거울에 나의 얼굴을 비쳐본다. 천지의 물을 두손으로 담아 마셔본다. 어찌나 차거운지 잇몸까지 짜릿하다. 손에 천지물을 담아 뿌려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던져 넣었는지 천지 물속에 동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천지물을 물병에 정히 담아 려행가방에 넣었다.
    천지의 어귀 물속에서 볼록한 봉우리가 솟아나 있었다. 나는 우리 민족복장을 바꾸어 입고 그 봉우리 위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일분 후에 나온 사진을 보니 치마폭을 쪽 펴고 앉은 사진속의 나는 마치 그 넓고 웅장한 천지물 위에 동동 떠있는 것만 같았다. 내가 오래전부터 동경해 마지 않았던 이 땅의 성산 장백산에 올라 찍은 사진은 꿈속에 랑만의 풍경이였다.
   천지의 주변에 련산련봉들은 만년설을 머리에 떠이고 있었지만 가슴에는 난쟁이 파랭이, 불로초, 각시투구꽃, 두메냉이, 왕백산화를 키우고 있다. 새뿔곰취의 샛노란 자세, 비로용담의 보라빛의 고귀한 용모,야생화들의  보일듯 말듯한 아름다운 미소는 보는 이에게 잊을 수 없는 정을 전해준다. 차고 더움(寒暖)의 차가 현저하고 저압의 전후 변동이 심해도 인내심을 키우는 곤층들은 강한 자외선을 피해 작은 돌사이거나 풀뿌리 사이에 집을 짓고 살아간다. 그들이야 말로 일변화, 시변화 되는 바람과 기온을 달갑게 받으며 환경에 적응하여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유연하게 생명을 뽐내는 자연의 섭리, 그 위대함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십여센치도 안되는 야생화와 파란 풀들이 한데 어울려져 있는 풍경들은 천지의 팔굽사이에 푹신한 피부를 만들고 있다. 나는 천지의 언덕 넓다란 잔디밭에 누워본다. 나의 피부와 천지 산등성 피부가 밀착되는 순간 천지의 산정기가 온몸에 스며드는 듯 그 희열감을 오래도록 감수한다.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을 덮고 무한한 기쁨속에서 무게있는 시간을 보냈다. "와—포근하다." 잔디풀과 꽃들의 위에 누워 있는 그 행복감은 이루다 형언할 수 없었다. 천지의 기를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내가 누운 천지 피부 뒤면은 눈으로 싸고 있었다. 완전히 다른 량면, 한면은 십여센치미터 되는 풀과 꽃으로 덮인 여름의 풍경이고 뒤면은 겨울을 방불케 하는 엄동설한이였다. 자연의 풍경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절묘했다.
   이튿날, 천지의 일출을 보려고 새벽에 일어나 기상대가 있는 천문봉에 올랐다. 마침내 동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거대한 아침해가 뜬다. 림해의 해돋이는 말그대로 절경이다. 수집은 듯 얼굴을 붉히던 햇님이 반 공중에 떠오르며 금빛 햇살로 나의 몸을 감싼다. 하늘은 어디에 갔는지 없고 엄청나게 큰 진붉은 둥근 해만 나한테 다가왔다. 마치 몇 메터 앞에서 마주 오는 것 같았다. 차츰 나는 햇님 속에 서 있었다. 나는 어린애들처럼 두팔을 높이 쳐들고 환성을 올렸다. “오, 우주의 위대한 왕자여!” ”와--- “ 나는 천문봉 곡대기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함성을 질렀다.
   햇님은 진붉은 색으로부터 주황색으로, 또 주황색으로부터 노란색으로 변했다. 햇빛을 맞이하는 천지도 변화무쌍하다. 천지만이 가진 절대경의 아름다움, 천지만이 가질 수 있는 자랑, 천지만이 향수할 수 있는 우주공간의 진풍경이였다. 나의 몸은 마치 햇님가슴에 폭 안기는 느낌이였다.  대지를 덮는 듯한 태양의 신성하고 장엄한 모습은 영원히 나의 머리속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차츰 멀어져 가는 해님은 천지의 푸른 물결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그런데 성산신령의 조화인가? 갑자기 흑룡이 날아 올랐는지 바람이 휙하고 몰아치더니만 하늘도 급시에 어두어진다. 거센 바람에 당장이라도 바람개비처럼 날려 벼랑에 떨어질 것 같아 몸을 비틀거렸다. “안되겠다, 납짝 엎드려야지.”하고 중얼거리며 차디찬 땅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엎드려 박힌 돌이라도 잡자니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몸을 한 바퀴 뒹굴어 돌이 있는 곳에 와서 돌을 꼭 잡고 바람과 기싸움을 했다. 바람은 이상하게 서쪽에서 불면 동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룡이 꼬리질 하는 듯이 꼬부랑 거리며 날아 다니며 바다 바람을 몰아다 심술굳게 천지를 괴롭힌다. 하루에도 몇 십번씩 변화된다는 변덕 많은 백두산 날씨를 실감하였다.
   이윽고 해맑은 하늘에서 구름떼가 달려온다. 한뜸 몇 미터 앞의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무서운 마음은 구름속으로 둥둥 떠다닌다. 천지물속에 떨어질가 두렵다.  두려움에 몸이 덜덜 떨린다. 구름은 “쉬~ 쉬~”하며 소리를 낸다. 과욕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라는 듯, 무아에서 다시 자아를 찾으라고 계시를 주는 듯하다
   구름속에서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렸다. 내가 만약 이대로 떠나간다면 어떨까? 살면서 무엇을 하였고 무엇을 남겼는가? 머리속에 아무것도 떠오르는 게 없다. 한참 지나 언제 그랬느냐는 듯 어느새 천지는 해맑은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지반봉, 백운봉, 옥주봉, 마천우, 제운봉, 백두봉들이 끄떡없이 위엄을 떨치고 있었다. 백 바위들은 하얀 달 같고 하얀 닭과도 같고 사자와 맹호 같기도 하였다.
   병풍처럼 빙 둘러싼 바위의 품은 어머니의 포근한 품과도 같았다. 기상대에서 내려 오면서 바다처럼 펼처진 림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저 림해속에서 수도 없이 많은 다종다양한 식물들, 야생동물들이 한데 어울리며 살겠지. 더불어 살아 가면서도 서로 갈등을 빚고 찡내는 우리네 인생현장을 검토해 보게 된다.
   우리를 실은 찌프차는 똬리를 편 뱀처럼 구불구불한 길을 내리였다. 흑룡이 빠져나갔다는 흑풍구에 도착했다. 흑풍구라고 쓴 계단을 따라 얼마간 올라가니  아닌게 아니라 얼굴을 찢을 듯 바람이 매서웠다. 화벽구로 몰려온 바람이 흑풍구에 집중되여 고속력으로 빠져나온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고 옷자락이 펄럭인다. 몸이 통채로 날리가 봐 두려웠다. 무서워서 철사슬을 거머쥐고 서지도 못하고 앉아서 사진 한장 겨우 남기고 굴러 떨어지 듯 서둘러 내려왔다.
    멀지 않은 산아래 숲속에 하늘나라 칠선녀가 목욕하고 갔다는 소천지가 보였다. 머리 위에 낮게 떠있던 해님은 점점 멀어지고 쪼각 구름이 가끔씩 내려다 보고 웃고 있었다. 흰 벗나무 숲속으로 걷는 심정은 현언할 길 없이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 순수한 대자연과 같이 숨을 쉬고 있다는 그 자체가 행복의 극치였다. 진주 같은 이슬을 털며 파란 풀 위에 나의 발자국을 천천히 찍어갔다. 내 인생에 지워지지 않을 추억의 거리를 새기는 듯,
   천지는 들어오는 물줄기 없어도 나가는 물길이 있고 소천지는 들어오는 물줄기 있어도 나가는 물길이 없다고 했다. 전설에 의하면 백두산 속 한 초가집에서 유복자로 태여난 복수라는 젊은이가 흉악하기 그지없어 해를 끼치는 룡을 처치하기 위하여 어릴적부터 힘을 키우고 무예를 닦았다. 용맹무쌍한 힘장사로 된 복수는 룡과 생사판가리 싸움을 벌렸다. 마침내 룡이 기진맥진해 늘어지자 머리 우에 높이 쳐들었다가 천길절벽 밑으로 힘껏 내리 던지였는데 룡이 부딪치면서 벼랑이 두쪼각이 났다. 복수는 바위를 쑥 뽑아내여 룡의 대가리를 지지놀러 놓았는데 그 바위가 바로 지금의 소천지 서쪽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라고 한다. 복수가 바위를 뽑아낸 자리에 물이 가득 고였는데 오늘의 소천지로 되였다고 한다. 소천지에는 들어오는 물줄기만 있고 나가는 물길이 없지만 바위 밑에 깔려있는 룡이 물을 마시기 때문에 물은 시종 붇지도 줄지도 않는다고 한다. 전설은 전설이로 되 참 재미있다.
   계곡의 물은 급류를 이루며 즐겁게 노래부르고 오랜 세월을 헌신해온 조상나무의 그루터기에서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지면에서 푹 꺼져들어간 절벽 아래 지하삼림은 정말 신기하였다. 또 다른 세상에서 있는 우리가 그 속의 신비함에 궁금해진다. 낮은 계곡에서도 무성하기만한 수목들의 자태가 가슴을 뭉클하 게 한다. 나락에 떨어져도 변함없이 자기의 삶을 착실히 살아 나가는 지하림해가 다시 보였다. 쳐다보면 하늘, 낮은데 굽어보니 골짜기들이 더욱 깊어 보인다.
   백두림해를 따라다가 내려오니 내두산이 보였다. 한쌍의 봉우리가 백두녀신의 젖무덤이라고 내두산이라 이름을 지었고 내두산 기슭을 흐르는 물은 백두녀신의 젖이라고 하여 내두하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내두산 주위에 있는 7개의 산봉우리는 괴물들과 싸워이겨 백두산야를 만고 밀림으로 변화시킨 백두 녀신의 일곱 아들의 묘소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일명 칠성봉이라고 한다.
   엄마의 봉긋한 가슴 위에 내두와 같은 산속으로 깊숙히 들어갔다. 들어갈수록 아름드리 종황색 미인송이 쭉쭉 뻗어져 있다. 미인송은 백두의 토질에 천지의 젖을 먹고 자란 백두의 전기를 뿜는 수목의 거두이다. 수림속의 음이온이 코속으로 스며들며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미인송 수림 속으로 걷노라니 문득 영화 “림해설원”에 나오는 양장영의 영상이 떠올랐다. 동년 시절에 본 림해설원의 영웅적 전사들이 토비들을 족치며 넘나들던 이 길을 걷게된 나 자신이 저절로 멋져 보였다.
   림간에 지어 놓은 고풍스러운 귀틀 집에서 토닭에 굵직한 황계를 넣어 끓인 닭고기국 냄새가 위를 흥분시켰다. 귀틀 집 남쪽 수림 속에서 장백산 실오리 젖줄기에서 흘러나오는 작은 내물에 머리를 감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건너 달맞이꽃이 마주보고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이렇게 천지의 물줄기가 낳은 만물은 서로 인연이 되여 살아가면서 천만년을 자기들만의 세상을 해석하며 번성하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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