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유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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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순수성의 미학
2006년 03월 17일 00시 00분  조회:5367  추천:51  작성자: 황유복
깨달음의 미학, 학자 수필의 매력
-- 남계 수필집 《사랑의 사회학》읽기

오상순 (문학평론가, 교수)



조선족 사회는 물론 한국을 망라한 세계 조선민족 사회에서 황유복 교수 하면 으레《국제적인 학자》,《사회활동가》,《민족사학가》란 이미지를 떠올린다. 돌이켜보면 그의 삶은 학문을 위한 끊임없는 탐구의 일생이였고 조선족 사회를 위해 고민하고 헌신해온 일생이였고 없는 자, 불행한 자. 약한 자를 동정하고 사랑하는 인도주의적인 삶이였다.

놀라운것은《세계적 석학》으로 불리우는 황유복 교수가 이순의 나이에 수필가로 변신하여 문단의 이목을 끌고있다는 사실이다.
남계 수필집에 실린 글 43편중《군 감자와 이바구》, 《옥년이와 봇나무》,《가슴속에 새겨진 할머님의 초상》,《가난이 선물하는 삶의 지혜》, 《첫사랑 이야기》 등 15편은 자신의 인생체험을 바탕으로 쓴 수감(隨感), 수상(隨想)류 수필이고 “사랑의 언어학”, “사랑의 민족학”, “사랑의 신화학”, “중국사람과 숫자”, “군자의 교제는 물처럼 담담하고”, 《선택》, 《고슴도치도 0거리 접촉을 한다》, 《노랑, 빨강과 중국인》 등 28편은 사색적인 명상에 속하는 글이다.

유복자로 태여나 할머니 손에서 자라난 동년시절, 민족사학가, 사회활동가의 특이한 인생경력때문인지 그의 수필은 시작부터 남다른 개성으로 돋보인다. 남계 수필의 특징을 서영빈은《리성의 혼, 자유의 옷》, 장춘식은 《정체성과 삶의 참의미》, 김훈은 《인간의 향기와 철학이 있는 글》, 최순희는 《흑백사진과 컬러사진》, 남복실은 《인생달관자의 여유》로 이름했다.
남계의 수필을 읽으면서 필자는 《문여기인(文如其人)》이란 말에 다시 한번 깊이 공감하게 되였다.


1. 순수성의 미학

남계 수필의 가장 큰 매력은 순수함이다. 우리는 그의 수필을 읽으면서 동년의 꿈, 자연의 아름다움, 할머니의 사랑, 아리숭한 첫사랑 등 순수성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기도 하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작자가 꾸준히 추구해온 순수한 인생, 순수한 사랑, 순수한 행복, 순수한 아름다움에 공감하며 감동하기도 한다.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순수함》이란 말의 진미를 남계의 수필을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고 할수 있다.

흔히 저녁노을은 인생의 만년으로 상징되는데 반해 수필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면》에서 저녁노을은 인생의 꿈과 희망으로 상징된다. 유복자로 태여나 두살에 어머니까지 여의고, 들일을 나간 할머니의 귀가를 학수고대하던 어린 소년은 언젠가부터 저녁노을의 황홀경에 빠져 배고픔도, 초조함도 깡그리 잊어버리게 되였단다. 그때로부터 《노을을 찾아 저 하늘 끝까지》 가려는 소년시절의 꿈은 가난과 고독에 쪼들리던 어린 가슴에 행복을 가득 채워주었고, 열심히 공부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나갈수 있는 능력과 의지력을 키워주었단다.

여기서 저녁노을을 꿈과 희망의 상징으로 상상한것도 개성적인데 그것을 참삶의 가치로 승화시키고 있어 수필의 무게를 더욱 실어주고 있다. 즉 세상 사람들에게 다음날의 맑은 날씨를 기약하여 혼신을 불태우는 저녁노을과 같이 사회와 민족, 나라에 봉사하면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이란 인생체험이다. 그래서 《저 하늘 끝까지》 찾아가기 위한 능력과 의지력의 양성도 중요하지만 봉사하면서 살아가는 인생속에서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찾는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득하고 있다.

날로 리기적고 개인중심적으로 변해가는 오늘의 사회에 청순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전해진다.

그의 수필의 순수성은 《군 감자와 이바구》에서도 잘 나타난다. 화롯불에 둘러앉아 군 감자와 같이 구수한 할머님들의 《이바구》를 듣던 어린 시절의 추억은 독자들에게 지난날 고향의 오붓한 마을, 이웃간의 훈훈한 인정, 따스한 우정, 달콤한 사랑, 소박한 꿈을 되살려줄뿐 아니라 금전만능주의 풍조에 물젖은 오늘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너무나 청신한 공기를 가져다준다.

수필 《옥년이와 봇나무》에서 작가에게 봇나무가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안겨오는것은 흰색의 줄기와 무수한 잎과 가지들로 수관(樹冠)을 이룬 미인형 《체형》때문이라기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아름다움때문이란다. 가공된 아름다움보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더 아름답단다. 그래서 쉰살이 넘으면서 흰머리가 많아지자 주변에서 《머리염색만 하면 십년은 젊어지겠다.》고 권고하나 단 한번도 염색해본적이 없단다. 젊어지는것이 싫어서가 아니라 억지로 젊어지고 싶지 않았기때문이란다.

작가는 계속해서 지금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때문에 미쳐버린 세상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지적하면서 칼로 째고, 깎아내고 붙이고 해서 현대인들의 외모가 더 예뻐졌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돈때문에 싸우고 리혼하고 자식을 내다버리고 ⋯술로 자신을 마비시키고⋯ 그래서 우리들 생활속의 아름다움은 분명히 점점 멀어져가고 있다고 모를 박는다.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살아가고싶다는 인생관, 내실이 있는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역시 순수하기만 하다.

자신의 인생체험을 통해 체득한 참사랑에 대한 추구 역시 순수하고 청초하기만 하다. 첫사랑 이야기속에 담은 《계산되지 않은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란 진솔한 고백, 여타 민족과의 비교속에서 《사랑을 받기 위한 사랑보다는 사랑을 주기 위한 사랑이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충일하고 지순》(사랑의 민족학)하며 《순수한 사랑의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난 사랑의 표현은 진한 향기로 되여 상대에게 전해질수 있다.》(사랑의 언어학)는 참사랑에 대한 사색, 로맨틱한 사랑보다는 두사람의 합일로 이루어지는 성숙된 사랑이 참사랑(사랑의 신화학)이란 주장, 《사랑의 날》만큼은 돈과 관계없는 순수한 《사랑의 축제》(상혼의 절여진 사랑의 축제)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은 돈에 외곡되고 타락에 찌든 오늘의 사랑관과 대조되여 동년의 꿈과 같이 아름답기만 하다.

남계 수필의 순수성은 소재선택에서도 나타난다. 수필에 등장하는 할머니, 옥년이, 군감자, 《이바구》, 봇나무, 눈사람, 들국화 등은 그대로 《한장의 흑백사진》과 같이 순수함의 아름다음을 나타내며 노을을 찾아 저 하늘 끝까지 가려던 동년의 이야기, 화로불을 마주하고 할머니들의 구수한 옛말을 듣던 어린시절의 아련한 추억, 누렇게 말라버린 잡초와 락엽 사이에 청초하게 피여있는 들국화 이야기, 가슴속을 스쳐지나간 아리숭한 첫사랑 이야기도 아련한 추억속에 소박하고 청순한 향기를 풍긴다.

남계 수필의 순수성은 또한 꾸밈없이 진솔한 고백에서도 나타난다. 진솔성은 수필의 생명이며 수필이 갖는 첫째 특성이라 할수 있는데 우리는 그의 수필에서 구김살 없이 진솔한 고백을 대하게 된다. 첫사랑의 느낌과 사랑의 실패에 대한 솔직한 고백, 유복자로 태여나 할머니 손에서 어렵게 자란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 할머니의 눈물겨운 사랑, 자기만의 이름도 없이 이 세상을 살아온 인생체험, 두번이나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면서 깨달은 생명의 소중함, 참인생, 참사랑에 대한 사색, 이순의 인생에 대한 사색, 민족에 대한 사색⋯ 그의 이야기는 그렇게 진솔하고 소박할수가 없으며 그의 사색은 그렇게 진지할수가 없다. 진실을 바탕으로 한 작가의 진솔한 고백속에 일깨움이 있기에 독자들은 잔잔한 감동속에서 참삶의 가치란 어떤것인지를 되새겨보게 된다. 진실성, 순수성때문에 그의 수필은 더욱 인격적 품위가 돋보이고 감동이 크다

순수성은 남계수필의 기본바탕이다. 때문에 그의 수필은 항상 청초하고 싱그러운 향기를 풍긴다. 순수한 삶, 순수한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추구해온 남계만이 쓸수 있은 순수하고 아름다운 수필이다. 그속에는 독자의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잔잔한 감동이 있고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다. 우리는 그의 수필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눈이 얼마나 맑고 투명한지를 그대로 느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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