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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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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군장정에 조선혁명가들⑥
2007년 05월 27일 17시 56분  조회:3024  추천:53  작성자: 김성룡

홍군장정에 조선혁명가들⑥

   1935 2월 중국의 전통적인 명절인 음력설이였지만 침침한 중국대지는 특수한 사건이 별로 없었다. 너무나도 평범한 한해 첫시작인듯 하였다. 당시 <신보>월간지의 보도에 의하면 북평이나 천진, 상해, 남경등지의 사람들은 예나 다름없이 평범한 나날들을 보내고있었다. 그래도 신문이라도 읽는 사람이라면 장개석 위원장의 포상금이 최신상황을 조금 알수있었다. 장개석은 주덕, 모택동, 서향전을 생포하는자에게는 10만원을 장려하고 수급을 바치는 자에게는 8만원을 장려한다고했다.

     당시 중국을 통치하던 장개석은 음력설을 려산에서 보냈다. 장개석과 송미령은 장학량부부와 함께 려산의 서양식 별장에서 즐거운 음력설을 쇠였다. 장개석은 최근 한동안 이른바 토비숙청문제를 자주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공산당과 홍군은 이미 패망해버렸으며 더 신경쓸 나위도 없다고 판단했기때문이다. 이때 그의 주요관심사는 일본문제였다. 그는 모임에서 연설할때마다 이른바 중일친선을 강조하면서 일본인을 자극하는 집회를 가지지 말고 일본제품 배격행동을 하지 말며 충동적인 반일행위를 자제할것을 요구하였다. 동북 3성 기름진 땅을 잃어버리고서도 총칼을 들고 다가선 일제 앞에서 그는 계속 타협하기에만 열중했던것이다.

    하지만 중국공산당과 중앙홍군은 쉽게 실패하지 않았다. 그들은 북상항일의 뜻을 굽히지 않고 계속 투쟁을 준비하고있었다. 중국공산당은 1934 7 15일에 중국로농홍군 북상항일선언을 발표하고 모두 단합하여 항일할것을 전국인민과 항일무장에게 호소하였다. 7 22일 중앙쏘베트공화국 중앙집행위원의 한사람인 조선혁명가 양림은 당의 호소를 받들고 홍군의 북상항일선언을 옹호한다는 글을 홍색중화신문에 발표하였다. 그는, “망국의 참화가 눈앞에 닥쳐왔다. 망국의 치욕이 모든 중국사람의 머리에 떨어질것이다!”라고 쓰면서 오직 쏘베트와 홍군만이 중국 군민들을 이끌고 싸울수있는 통수이며 항일의 유일정확한 대표라고했다. 양림은 모든 중국인민이 중국로농홍군의 북상항일 호소를 받들고 만악의 일본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에 나서기를 희망하고있었다.

 

    중국 서남부의 겨울추위는 왕년보다 더 했다. 혹한이 몰려드는 운남성 동북부의 작으마한 도시 짜시진은 적막하기 그지없었다.

    3백여세대 인가밖에 없는 작은 산간도시 짜시진에 이르러 중앙홍군은 서부로 진격하던 걸음을 멈추었다. 이곳에서 간부와 전사들은 음력설을 맞이했으며 그동안 전투와 행군길의 피곤을 풀고있었다. 한편 중국공산당 중앙의 지도자들은 짜시진의 작은 판자집에 모여 정치국 회의를 소집하였다. 뜨거운 불길이 타오르는 화로를 둘러 앉은 지도간부들은 감자며 고무마를 불에 구워먹으면서 중국공산당과 홍군의 운명을 두고 열렬한 토론을 진행하였다. 짜시회의는 준의회의의 계속이였고 준의회의의 결의를 한층더 확정하였으며 장문천을 당중앙의 총책임자로 선정하였다. 그리고 잠시 북상계획을 포기하고 귀주에서 근거지를 개척할 계획을 세웠다.

    가렬처절했던 토성전투는 홍군의 실패로 끝났다. 적의 병력에 대한 정보가 잘못되였기 때문에 홍군은 어려운 격전을 치러야했고 나중에는 공산당의 정예 군사간부로 무어진 간부퇀까지 동원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토성전투가 있은후 장강을 넘어 북상하려던 홍군의 계획은 무산되였고 중앙홍군은 운남성 동북부의 적수하 기슭 토성부근에서 적들의 첩첩한 포위에 들었다.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전략전술을 써야했다. 이시기 홍군의 지휘를 맡은 모택동은 과감한 행동계획을 세우고 기동령활한 전술로 적의 포위를 타개할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중앙홍군은 다시 원길로 되돌아서 적수하를 건너 귀주성 경내로 진입하였다. 홍군이 서진하거나 북상할것이라고 오판하고 병력을 토성부근에 집결시켰던 국민당군은 헛물을 켜고말았다. 홍군은 경건한 걸음으로 곧추 귀주로 공격하였다.

 

    장정에서 양림이 참모장을 맡은 간부퇀은 줄곧 중요한 과업을 짊어지고있었다. 간부퇀은 홍군의 특수한 부대였다. 홍군대학, 홍군 제1보병학교, 홍군 제2보병학교, 홍군특과학교의 학원들로 편성한 이 부대는 천여명의 홍군 기층 군사간부들로 구성되였다.

    간부퇀은 중앙과 중앙혁명군사위원회와 함께 행동했으며 군위종대 사령원인 엽검영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았다. 그들은 당중앙과 중앙혁명군사위원회 기관을 호위하고 중앙지도자들의 안전을 보위하며 군사간부들을 보류하고 강습시키며 또 전투부대에 간부를 파견하였을뿐만 아니라 직접 싸워야했다.

    장정초기 적의 4개 봉쇄선을 돌파하고 상강을 지나는 등 간고한 행군과 치렬한 전투에서 그들은 극도로되는 피로와 기아를 극복하면서 적들과 싸웠고 중앙지도자들을 호위하고 경위하는 임무를 훌륭히 완수해냈다.

    준의회의가 있은후 간부퇀은 토성전투를 시작으로 일선전투에 직접 참가하게 되였다.

 

     귀주성 북부에 위치한 루산관은 해발 천 4백여메터에 달한다. 북쪽으로 동자현과 15킬로메터 상거해있고 남쪽으로 준의현과 접해있다. 사천과 귀주를 이어주는 천금도로가 산을 가로질러있다. 길 량켠은 천애절벽과 천길 낭떨어지로 되여있어 루산관 길목은 말 그대로 천험이였다.

    1935 2월 하순 루산관에는 구질구질 잔비가 끊지 않았다. 적수하를 다시 건너 귀주성내로 진입한 홍군은 곧바로 준의를 향해 진격하였다. 뒤늦게야 홍군의 행동방향을 파악한 장개석은 급급히 귀주성내의 국민당군을 그러모아 준의로 진격했고 또 준의의 부분적인 부대를 루산관에 포치해 홍군을 저격할것을 명령하였다.

    홍군간부퇀은 루산관 지원부대로 전투에 참가하게 되였다. 홍군과 국민당군은 루산관에서 치렬한 전투를 벌였다. 전투에서 수많은 우수한 홍군장병들이 쓰러졌고 적들은 천험을 리용해 끝까지 저항했다. 적아쌍방이 모두 수많은 희생을 냈지만 전투국면은 타개되지 않았다. 이때 명령은 받은 간부퇀은 신속히 루산관으로 진격했다.

양림은 전사들을 거느리고 하루 60킬로메터를 달려왔다.  26일 오후 팽덕회 군단장의 명령에 따라 총공격이 시작되였다. 홍군 제3군단의 13퇀과 12, 간부퇀은 정면으로부터 골짜기의 적들을 공격하였다. 이때 적의 배후로 우회한 제3군단의 10퇀과 11퇀도 공격을 개시하였다. 홍군부대의 우렁찬 나팔소리는 루산관에 울려퍼졌고 홍군전사들은 두려움 없이 적진으로 돌진했다. 양림은 전사들과 함께 적의 화력을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전투의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날 저녁 모택동과 중앙종대가 루산관에 이르렀다. 물안개 자욱한 루산관에서 모택동은 더 과감한 작전방안을 구상하였다. 그는 일선의 홍군전사들에게 계속 적들을 추격하여 국민당군 오기위 부대를 격파할것을 명령하였다.

 양림은 홍군전사들과 함께 극도로 되는 피로를 극복하면서 계속 적들을 추격하였다. 28일 새벽 홍화강부근에서 홍군부대는 오기위부대와 부딛쳤다. 홍군 제3군단은 준의의 남대문으로 불리우는 홍화강 진지를 사수하였고 제1군단은 우회하여 적의 배후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홍화강에서의 접전도 치렬하게 진행되였다. 전투에서 홍군 10퇀 퇀장 장종손이 쓰러졌고 참모장 종위검이 장렬히 희생되였다. 홍화강진지의 중요성을 잘 알고있는 팽덕회와 주덕까지도 진지에 와서 직접 전투를 지휘하였다. 이곳이 적에게 돌파되면 적의 배후로 우회한 홍군 1군단의 작전은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고 준의와 루산관도 적의 손에 다시 넘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홍군은 오갈데 없이 적의 포위속에서 전멸하고말것이다.

이 위기일발의 시각 중앙혁명군사위원회에서는 재차 간부퇀을 내세웠다. 홍군간부퇀은 남쪽으로 정면공격을 개시하고 11퇀은 좌측으로 협공하였다. 홍군의 모든 기관총이 일제히 불을 토했다. 장병들은 생사를 불구하고 앞으로 돌진하였다. 치렬한 접전이 계속되고있을때 적의 배후로 우회한 홍군 1군단이 나타났다. 두 주력홍군이 앞뒤로 공격해오자 질겁한 적들은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적지휘관 왕가렬과 오기위가 선후로 도주하자 국민당군은 그대로 무너져서 서로 다투어 도주하기에 급급했다.

적들은 오강을 건너 도주하였다. 오기위는 급급한 나머지 부하들이 다 강을 건느지도 않았는데 다리를 끊어버리라고 명령하였다. 수많은 국민당 병사들이 다리와 함께 오강물속에 떨어졌고 강을 건느지 못한 천 8백명 적들은 모두 총을 놓고 투항하였다.

귀주성에서 홍군은 재정비를 거친다음 타곡신장과 로반장 전투를 진행하였다. 두 전투는 걸음걸음 대형을 갖추고 온당하게 공격해오는 적들과 치른 한차례 공방전이였다. 모택동은 이러한 공방전은 희생이 너무 많다고 반대했지만 그의 의견은 납득되지 않았다. 두 전투에서 홍군은 막대한 희생을 냈으며 적들은 계속 공격해와 홍군은 다시 포위에 들 위험이 있었다.

1935 3 16일 홍군은 다시 전략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였다. 모택동과 주덕은 세번째로 적수하를 건너 적을 유인하기로 하였다. 양림은 간부퇀과 함께 귀주성 모태에 당도하여 도강 경계임무와 호위임무를 맡았다. 간부퇀의 공병련은 신속히 강에 다리를 만들어놓았고 한개영의 부대를 강건너에 보내 적을 경계하게 하였다. 이어 홍군주력부대와 중앙지도자들이 선후로 강을 건넜다. 모택동은, 공병련의 공로를 치하하고나서 홍군은 운남의 국민당군을 끌어내기만 하면 승리라고 했다. 류백승과 주덕고 홍군간부퇀의 작전지휘와 공병련의 공로를 극구 치하하였다.

세번째로 적수하를 건넌 홍군은 더 이동하지 않고 강기슭에 잠복했다. 홍군이 적수하를 다시 건넜다는 소식을 접한 적들은 모든 주력부대에게 추격명령을 하달하였고 운남에 있는 부대마저도 북상하여 홍군을 추격하게 하였다.

한동안 잠복했던 홍군은 다시 네번째로 적수하를 건너 귀주성내로 진격하였다. 양림과 간부퇀은 이때 줄곧 중앙혁명군사위원회 종대와 함께 행동하였다.

밤 장막이 깃든 귀주성 북부에서 홍군부대는 마주달려오는 적의 추격부대 틈사이로 신속히 빠져나왔다. 적들은 어깨를 스쳐 지나가는 홍군주력부대도 발견하지 못한채 머리를 숙이고 앞으로만 달렸다.

적의 포위를 뚫고 나온 홍군은 계속 적을 속이는 작전을 펼쳤다. 홍군 제9군단은 홍군주력으로 위장하고 계속 북상하는 듯이 보였고 홍군주력은 신속히 남하하여 곧바로 귀주성 소재지인 귀양으로 전진했다. 귀주성내 국민당군 주력은 이때 모두 홍군을 추격하여 북상했기때문에 홍군은 그야말로 무인지경이나 다름없었다.

홍군의 진정한 의도는 신속히 남하하여 오강을 건너 운남성 경내로 들어가는것이였다. 홍군 주력부대는 오강을 강행도하하고나서 일부 부대를 귀양부근으로 파견했다. 홍군 1군단 4퇀은 귀양성을 공략할 태세로 돌진하였다.

귀양에서 작전지도를 보고있던 장개석은 등골에 식은땀을 흘렸다. 그가 지휘할수있는 부대는 대부분 귀주성 북부에 있어 귀양까지 오려면 며칠 시간이 걸려야했다. 하지만 홍군은 눈앞에 닥쳐왔고 귀양에는 4백명 경찰까지 합쳐도 천명되지 않는 병력뿐이였다. 급해난 장개석은 가장 가까운 운남성에 급전을 보내 급히 주력부대를 귀양으로 진출시킬것을 명령했다.

드디어 홍군의 소원대로 운남성의 국민당 주력부대가 귀주경내로 들어갔다.

 

폭우속에서 승리적으로 오강을 건넌 홍군주력부대는 신속히 운남성 경내로 진격하였다. 적의 겹겹한 포위속에서 위기를 맞았던 홍군은 모택동의 교묘한 전략적인 전술과 희생적인 전투정신으로 드디어 적의 포위를 뚫고나왔던것이다. 적수를 네번 건느고 오강을 슬기롭게 탈취한 홍군주력부대는 이제 수십만 적의 대군을 뒤에 두고 무인지경인 운남성으로 들어갔다. 양림과 간부퇀은 중앙혁명군사위원회 종대를 따라 기름진 운남성 중부지역으로 진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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