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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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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군장정에 조선혁명가들⑦
2007년 05월 27일 17시 58분  조회:3317  추천:94  작성자: 김성룡

홍군장정에 조선혁명가들⑦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우는 청장고원으로부터 흘러내려오는 금사강은 만리장강의 상류이다. 만년설로 뒤덮인 탕굴라산맥 북쪽기슭으로부터 한줄기 물길이 흘러내려오다가 강폭이 점차 넓어지면서 천리 금사강이 되였다. 금사강은 경치가 수려한 운남의 려강에서 큰 굽이를 돌아 동으로 흐르고흐른다. 강물은 해발 3340메터에서 2296메터로 흘러 그 락차가 천여메터에 달한다.

운남경내에서 흐르는 금사강은 강폭이 비교적 넓고 물살이 급했다. 게다가 강량안은 높은산으로 이어져 그 지세가 무척 험했다.

 

북상항일의 전략적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 중앙홍군은 오강을 건너고 귀양으로 양동하다가 1935 4월말에 운남성 서북쪽에 이르게 되였다. 중앙홍군은 운남성 소재지인 곤명을 공격하는 양동작전을 펼쳐 금사강부근의 적들을 모두 곤명부근으로 모이게 한다음 금사강을 건너 북상할 전략을 세웠다. 이를 위해 모택동과 주은래는 직접 도강계획을 작성하고 1935 4 29일 중앙혁명군사위원회의 이름으로 작전명령을 하달하였다. 작전명령에 따라 홍군 제1군단은 원모현에서 북상하여 금사강의 룡가나루터를 점령하고 제3군단은 순전현에서 북상하여 홍문나루터를 점령하며 중앙종대는 간부퇀을 선봉으로 직접 금사강의 교평나루터를 점령하게 되였다.

명령이 떨어지자 홍군 세갈래 부대는 주야를 불문하고 강행군을 하였다. 그들은 명령에 따라 길에서 현성을 공략하지도 않고5 3일전으로 여러 나루터를 점령하고 나룻배를 확보하여 도강을 실현해야했다.

 

중앙종대 홍군간부퇀이 점령해야할 금사강 교평나루는 급류가 사품치고 량안이 깎아지른 벼랑으로 된 험요한 요새였다. 이번 작전에서 가장 관건적인 문제는 적 보다 한발 앞써 각 나루터에 도착하는것이였다. 만약 적들이 홍군의 의도를 먼저 파악하고 강 량안의 배들을 죄다 불태워버린다면 홍군은 큰 곤경에 빠지게 된다. 교평나루터의 중요성을 파악한 중앙에서는 류백승을 홍군간부퇀 선봉부대 지휘자로 임명하였다. 당의 총책임을 맡은 장문천도 간부퇀에 찾아가 5 1일전으로 나루터를 점령하는 영광스러운 임무를 완수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간부퇀 장병들은 운남성 서북쪽에 위치한 등록현의 한 산간마을에 주둔하고있었다. 4 29일 저녁 주은래는 류백승과 함께 이곳에 찾아왔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작은 방에서 주은래와 류백승은 교평나루를 탈취할 작전계획을 자상히 연구하였다. 주은래는, 교평나루 탈취는 당과 홍군의 생사에 관계되는 중요한 임무라고 강조하면서 꼭 신속히 행동하여 적을 불의에 습격함으로써 임무를 완수해야한다고 했다. 간부퇀의 참모장을 맡은 양림은 주은래와 너무 익숙한 사이였다. 일찍 국민혁명군 두차례 동정시기부터 함께 작전을 연구했었고 서금에서도 함께 일을 보았던 사이였다. 그는 자기의 견해를 적극 내놓고 간부퇀 각 부대의 상황을 자상히 설명하였다. 끝으로 그들은 류백승과 정위 송임궁이 간부퇀의 선두부대인 3영을 거느리고 출발한 다음 퇀장 진갱이 나머지 부대를 거느리고 따라 나서기로 하였다. 주은래는 가장 어려운 상황까지 고려하였다. 그들은 만약 간부퇀이 강나루를 확보하고 강을 건넜지만 배가 없어 주력부대가 강을 건느지 못할 경우 단독으로 북상하면서 유격전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작전을 쉽게 하달하기 위해 류백승과 양림은 모두 선두부대에 나섰다. 간부퇀 선두부대 전사들은 하루 180리의 속도로 급행군하여 교평나루터로 달려갔다. 간부퇀의 8련이 선두영의 앞장에 서서 내처 달렸다. 그들은 로획한 국민당군복을 바꿔입고 길잡이를 따라 산길을 달렸고 장밤 지속된 급행군 도중 십분밖에 쉬지 않았다. 늘 산길을 달리던 길잡이 마저 이처럼 고된 급행군을 당해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길잡이를 자주 바꾸지 않을수 없었다.

어느 한 산마루를 톺아오를때였다. 40여세인 길잡이가 좀처럼 발을 떼지 못했다. 그는 이곳 산길에는 익숙했지만 아편쟁이여서 체력이 많이 떨어져있었다. 할수없이 홍군전사들은 번갈아가면서 그를 담가에 들고 달려야했다. 이처럼 간고한 강행군을 거친 간부퇀전사들은 밤 장막속에서 강가에 도착하여 은은히 들려오는 물소리를 듣게 되였다.

    이곳 금사강은 사천과 서장 사이를 흘러내려오다가 운남성 석고부근에서 180도의 큰 굽이를 돌아 북쪽으로 흘러간다. 강줄기는 고산준령을 가로질러 3천여메터 깊이의 대협곡을 형성해 놓았고 바위나 벼랑에 부딛치는 급한 물소리는 협곡을 진동하였다.

    중앙홍군이 머리를 돌려 북상길에 오를 무렵 장개석은 급급히 곤명에 있는 군벌 룡운에게 전보는 보냈다. 그는 금사강의 모든 배들을 불살라버리고 강을 철저히 봉쇄할것을 명령하였다.

    교평나루터는 금가강기슭의 중요한 나루터로서 사천과 운남 두성을 이어주는 길목이였다. 예로부터 소금, 량식, 가죽, 약재를 비롯한 물건들이 이곳을 통해 교역되였다. 교평진으로부터 나루터까지 산비탈길이였는데 량켠은 모두 천애절벽이여서 자칫하면 천길 낭떨어지로 떨어질 위험이 있었다.

    간부퇀 선두부대가 강기슭에 도착하였을때 교평나루터는 이미 봉쇄상태에 처해있었다. 하지만 경각성을 늦춘 적 군관이 사사로운 일 때문에 숨겨둔 배 두척이 있었다. 국민당 복장을 한 홍군은 쉽게 이 두 배를 빼앗았고 또 다른곳에 숨겨둔 배 3척을 찾아냈다.

    양림은 선두부대에 도강명령을 내렸다. 전사들은 신속히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갔다. 그때까지만 하여도 강대안의 적들은 마작놀음에 정신없었다. 홍군전사들은 신속히 적들을 생포하고 나루터를 통제하였다.

    홍군이 순조롭게 교평나루터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접한 류백승은 즉각 새로운 명령을 내렸다. 명령에 따라 간부퇀 후속부대는 계속 강을 건너고 선두부대는 신속히 강북 여러진지를 통제해야했다. 홍군전사들은 요기를 할 사이도 없었다. 그들은 길가의 주인없는 한가게에서 상우에 돈을 남겨두고는 만두며 구운떡을 가져왔다. 전사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만두를 나누어 먹고 대충 허기를 달랬다. 강북 수비를 맡았던 운남군벌 왕보경은 홍군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급히 도주하였다. 한참 도주하다 생각하니 나루터를 빼앗긴 책임 역시 총살감이였다. 그는 할수없이 병졸들을 수습해 다시 나루터로 공격해왔다. 이미 유리한 지세를 점한 홍군전사들은 공격해오는 적들을 효과적으로 저격하였고 적 두목인 왕보경은 홍군에게 사로잡히고말았다.

   

    나루터에 도착한 류백승은 놀람을 금치못했다. 지세나 험하고 물살이 급해 도저히 다리를 가설할수없었다. 게다가 중앙군사위원회에서 급전이 왔다. 홍군 1군단과 3군단이 모두 도강작전에서 실패했던것이다. 1군단은 곤명으로의 양동을 멈추고 급급히 금사강가의 룡가나루터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비행기정찰로 홍군 1군단의 행동을 파악한 적들은 이미 룡가나루터를 철저히 봉쇄하고있었다.  3군단도 명령에 따라 홍군나루터를 점령했지만 배 한척밖에 구하지 못했다. 룡가나 홍문 나루터 역시 교평나루터와 마찬가지로 다리를 가설할수없었다. 그리하여 중앙군사위원회에서는 원 작전계획을 포기하고 모두 교평나루로 이동하여 그곳으로 강을 건널것을 1군단과 3군단에 명령하였다.

    새로운 명령을 받은 류백승은 걱정이 태산같았다. 한번에 수십명밖에 실지 못하는 배 5척으로 1군단과 3군단을 포함한 모든 홍군부대를 도강시킨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게다가 강북의 적정이 걱정스러웠다.

    이때 홍군전사들이 배 2척을 더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홍군은 배 7척으로 도강하게 되였다. 강기슭에 사령부를 설치한 류백승은 중앙군위에 전보를 보냈다.

   교평나루터는 이미 통제되였고 배 7척을 찾았음. 7척으로 주야에 만명을 도강할수있으니 중앙혁명군사위원회 종대는 5일에 도강을 끝낼것으로 판단함

    전문을 보낸 류백승은 극도로되는 피로로 쓰러질것만 같았지만 임무를 승리적으로 완수해낸 간부퇀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간부퇀 동지들은 하루에 근 200리에 달하는 산길을 달렸소. 그것도 밤에 적들을 피해가면서 험한 살길을 달려 나루터를 점령하였소. 한 사람이 어찌 하루에 이처럼 먼길을 달릴수있겠소? 그러나 그들은 해냈소. 뿐만 아니라 전투에서 승리를 했소. 그들은 무엇에 의지했겠소? 바로 드높은 각성과 당성에 의지했던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그 누구도 이 임무를 완수못해냈을것이요.”

   

    하지만 위험을 가셔지지 않고있었다. 모든 홍군이 교평나루 하나로만 도강하려면 최소한 5 5일까지 시간이 걸려야했다. 그럼 이 사이 부근의 적정이 가장 중요했다. 비록 홍군의 교묘한 전술로 뒤에 처진 국민당군 주력은 한주일 남짓한 거리에 두고있지만 앞의 적정을 알수없었다. 홍군의 도강을 담보하려면 최소한 5일까지는 적 주력이 공격해오지 말아야했다.

    누구도 숨을 돌릴 사이가 없었고 누구도 지친 몸을 돌볼 사이가 없었다. 류백승은 다시 눈길을 간부퇀 지휘원들에게 돌렸다. 그는 홍군주력이 강을 건느려면 시간이 필요하기때문에 강북 적의 요새인 통안주를 신속히 점령하라고 간부퇀에 명령했다.

    간부퇀은 의논을 거친후 작전명령을 내렸다. 참모장 양림이 선견대를 거느리고 앞장에 서고 그 뒤에 정위 송임궁과 퇀장 진갱이 간부퇀 주력을 거느리고 따르기로하였다.

    통안주는 교평나루터에서 20킬로메터 떨어진 작은 산간도시였다. 산비탈을 따라 형성된 이 도시는 인구는 많지 않았지만 교평나루터를 통하는 길목을 지키고있기때문에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했다. 게다가 부근은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지세가 아주 험했다.

    모든 희생을 아끼지 말고 반드시 통안주를 점령하여 홍군의 도강안전을 보호하라!”

    류백승 참모장의 명령에 따라 양림은 간부퇀 선견대를 거느리고 통안주로 돌진했다.

    통안주로 통하는 길은 가파르고 좁은 산길 하나뿐이였다. 이 산길에는 길은 산허리와 벼랑을 에돌아 굽이굽이 뻗어있었고 대부분 길목은 겨우 한사람만이 통과할수있었다. 그중 화염산으로 불리우는 길목이 가장 험했다. 이곳 산길 한쪽은 천길 벼랑이였고 한쪽은 천길 낭떨어지였다. 적들은 화염산 길목을 차지하고 유리한 지세를 리용해 공격해오는 홍군에게 기관총 사격을 가했고 또 큰돌을 굴러내려보내면서 완강히 저항했다.

    양림은 간부퇀의 참모장이였지만 본대나 후위에서 부대를 지휘하거나 작전을 감독하지 않았다. 그는 몸소 정찰패를 거느리고 앞장서 달렸다.

    돌격대의 나팔소리가 울리자 양림은 전사들을 거느리고 화염산 길목으로 돌진했다. 앞에서 달리던 전사들이 적의 총에 맞아 쓰러졌고 또 일부는 산정에서 굴러내리는 돌에 맞아 상처를 입었다. 수많은 전투를 겪어온 양림은 조금도 두려움 없이 돌진하던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예리한 관찰로 신속히 적의 총알이 미치지 못하는 구석을 발견하였다. 양림은 민첩한 동작으로 벼랑가에 몸을 부치고 한걸음씩 전진했다. 총알은 그의 주변에서 땅이나 돌에 맞쳐 불티를 튕겼지만 그의 몸에는 미치지 못했다. 기타 전사들도 즉각 양림의 뒤를 따라 몸을 벼랑가에 붙이고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그들은 앞장선 참모장의 전술동작을 따라 모두 무사히 화염산을 지났다.

    느닷없이 몸가까이까지 쳐들어온 양림과 홍군전사들을 발견한 적들은 황급히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였고 일부는 머리를 돌려 통안주로 줄행랑을 놓았다.

    양림이 선견대 한개영을 거느리고 통안주에 막 도달했을때 통안주 부근의 서창과 회리로부터 달려온 국민당군과 조우하게 되였다. 적의 원병은 사천군벌 류원당의 두개 퇀과 한개 박격포련이였다. 양림은 소속부대를 신속히 포치하고 선제타격을 가했다. 유리한 지세를 차지한 홍군전사들에게 선제타격을 당한 적 원병은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탓으로 그대로 진영이 무너졌다. 적들은 다투어 진지를 버리고 통안주로 철수하였고 통안주의 지세를 리용해 계속 수비하려 들었다.

    철수하는 적을 몰아 그대로 통안주를 점령할수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양림이 거느린 선두영의 병력은 태부족이였다. 지칠대로 지친 선견대 한개영의 병력으로는 수배에 달하는 적의 수비를 뚫을수 없었던것이다. 양림은 잠시 공격을 멈추고 후속부대를 기다렸다.

    양림은 전사들을 거느리고 통안주의 적들과 대치하면서 황혼녘까지 계속 격전을 벌리고있었다. 이때 홍군 간부퇀 정위 송임궁이 후속부대 전사들을 거느리고 당도하였다.

    1935 5 1일 오후, 홍군간부퇀은 두길로 나누어 적진을 향해 공격했다. 송임군이 일부 전사들을 거느리고 정면으로 거짓 공격을 하였고 양림은 두개영의 전사들을 거느리고 우측으로 우회하여 적 측면을 공격하였다. 양림 참모장의 지휘에 따라 홍군전사들은 용감하고 지혜롭게 적과 싸웠고 적의 진지를 하나하나 점령함으로써 드디어 적들의 항복을 받아냈다. 전투는 아주 치렬하게 진행되였지만 간부퇀 참모장 양림이 잘 지휘하였기때문에 홍군은 아주 적은 희생으로 통안주를 점령하였다. 전반 전투에서 홍군은 전사 4명이 희생되고 8명이 부상하는 대가로 화염산 천험을 돌파하고 통안주를 점령했으며 천여명 적들을 격살하거나 생포했던것이다.

    통안주에서의 중대한 승리는 금사강의 교평나루터를 효과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전반 중앙홍군의 승리적 도강을 유력하게 담보해주었다. 5 5일까지 작은 교평나루터에 수만 홍군주력부대는 7척의 배를 리용해 도강하였다. 사람은 많고 배는 적었지만 전사들은 질서있게 움직였고 여유롭게 강을 건넜다. 뱃사공도 힘든줄 모르고 노를 저었다. 홍군은 일주야에 5원이라는 푼푼한 삯전을 뱃사공에게 주었고 때마다 전사들도 흔히 먹지 못하는 돼지고기 료리로 뱃가공을 대접했다. 30명밖에 타지 못하는 작은 나무배 7척으로 수만홍군이 금사강을 건넜다. 참으로 기적이 아닐수 없었다.

    강을 건넌 홍군은 7척의 배를 모조리 불살라버렸다. 뱃사공에게는 한사람당 동전30잎의 삯전을 추가로 주었고 배한척은 뱃사공 개인의것이였기때문에 동전 80잎을 지불하였다.

    중앙혁명군사위원회에서는 간부퇀에 표창령을 내렸고 간부퇀의 전공은 적들의 간담을 써늘하게 하였다.

    중앙홍군의 금사강 도강은 동서고금 군사상의 기적이 아닐수 없다. 중앙홍군이 금사강을 건넌후 추격하는 적과 홍군은 한주간의 거리를 두게 되였고 사기 드높은 홍군전사들은 씩씩한 걸음으로 노래부르며 계속 북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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