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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업의 회식과 노래방문화
김범송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한국의 기업문화는 상하급 위계질서가 엄격하며 잔업•야근이 많고 팀원들간의 친목과 단합을 위한 직장회식이 빈번하다는 것이다. 재중한국기업도 마찬가지로 주재원들 중심의 단체회식과 회식 후 노래방 직행 등 ‘2차문화’가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다. 또한 재중한국기업 회식 역시 한국인 특유의 폭탄주와 한국식 ‘소맥’ 등 술이 주를 이루는 전통적 회식문화•술파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폭탄주와 노래방’ 일색의 회식은 ‘여럿이 모여 함께 먹고 마시는 모임’만이 아닌, 기업문화로서의 긍정적•부정적인 일면을 갖고 있다. 또 한국기업 특징인 회식문화의 순기능•역기능의 역할을 지니고 있다.
대개 한국기업은 정기적인 사내 회식모임을 통해 직원들간의 친목을 다지고 팀워크를 강화하며 회사의 구성원들에게 가족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회식의 취지이다. 회사의 경직된 분위기를 떠나 자유로운 회식자리에서 평소의 상호견제 및 경쟁적 관계에서 벗어나 각자의 어려운 상황과 진솔한 심경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고 서로 간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긍정적 순기능을 갖고 있다. 또 회식자리의 부드러운 분위기를 통해 정식 업무시간에 발생했던 문제점과 견해의 차이에 대해 서로의 솔직한 심정을 이야기하면서 갈등과 오해를 해소할 수 있다. 즉 회사의 정도경영에 필요한 공동체의식 강화와 인화(人和) 및 직원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회식의 적극적인 역할이다.
한편 현재까지도 한국기업의 회식자리에서 한국인 특유의 폭탄주와 ‘소맥’을 강권하는 술 문화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어 많은 중국인직원들이 직장회식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폭탄주 강권 등 음주문화의 부작용에 큰 부담을 느낀 일부 한족 여직원들이 여러가지 구실과 이유를 핑계로 직장회식을 회피하는 일도 다반사다. 즉 한국 기업문화의 특징인 직장회식이 팀워크와 동료애를 강화하는 긍정적인 역할과 순기능이 있는 반면 음주 강요와 과음에 따른 각종 부작용을 유발하는 역기능도 갖고 있다는 뜻이다.
대개 한국회사의 잘못된 회식•음주문화의 부작용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쉽게 취하는’ 폭탄주의 강권과 ‘마시기 쉬운’ 소맥 과음, ‘2차 음주’로 건강을 해치고 다음날 정상출근과 업무에 큰 자장을 받는다. 둘째, 상사(주재원)의 분위기에 맞춰 신체에 부담되는 폭탄주를 폭음하는 강압적 분위기와 장시간의 회식이 직원들에게 심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셋째, ‘한국주재원 중심’으로 진행되는 회식은 대부분 ‘업무의 연장’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상사에게 가식적인 멘트를 날리며 표정관리를 잘하고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등 부담감으로, 스트레스가 더 쌓인다. 넷째, 흔히 직장회식은 한국인 상사의 ‘즉흥적 제안’으로 진행되기에 직원들의 개인적 사정은 자주 도외시된다. 이는 아이를 키우고 부모를 모시는 중국직원들에게는 크게 부담된다. 다섯째, 폭탄주 과음과 ‘2차 노래방’로 이어지는 지루한 회식으로, 직원 간 불필요한 언쟁이 발생해 친목과 단합에 방해가 된다.
한국기업의 회식장소는 현지에 있는 한국요리점이나 조선족이 경영하는 한식점에서 진행된다. 간혹 중국음식점에도 가지만 ‘기름기’ 많은 중국요리가 한국인(주재원)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잘 가지 않는다. 평소 대다수 한국주재원들은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한국인들끼리 한식을 먹고 저녁 회식자리에서는 독한 배갈(고량주)보다는 한국식 ‘소맥’과 폭탄주를 주로 마신다. 회식시 요리주문도 한국인들이 직접 챙기며 중국직원들이 즐겨먹는 ‘기름기’ 많은 중국요리는 거의 청하지 않고 한국인(주재원)의 입맛에 맞춘다. 또한 한국인 특유의 회식 건배사 ‘위하여’는 모든 중국직원들이 기억하는 한국어이며 건배할 때 반드시 외치는 통과의례이다. 가끔 사장이 직접 폭탄주를 만들어 중국직원(남녀를 불문하고)에게 돌아가면서 권하는 경우도 있다. 폭탄주의 강권은 술에 약한 중국인직원들이 단체회식을 거부하고 불참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된다.
한국 기업문화로서 회식자리의 또 다른 특징은 술종류는 매우 다양하며 또 많이 마셔야 하지만 안주(요리)는 적게 주문한다는 것이다. 낭비를 수치로 여기며 절약정신이 몸에 배인 한국주재원들이 한국식으로 딱 ‘먹을 만큼’의 요리만 적당히 주문해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어치우는 것을 원칙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는 ‘먹는 것’을 최상의 낙으로, 최고의 취미로 여기는 중국인직원들의 불만을 크게 야기시키는 주요인이다. 따라서 먹을 것이 ‘별로 없는’ 한식요리 위주에 ‘입에 맞지 않는’ 술만 자꾸 마시라고 강요하니 회식자리가 갈수록 싫증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특유의 한국술 ‘소맥’이 한국인들의 입맛에는 제격일지 모르지만 술을 짬뽕해 마시는 습관이 없는 중국인 직원들에게는 이튿날 머리가 무지하게 아픈 ‘소맥’을 마시는 것이 고역이나 다름없다. 즉 그들에게는 직장회식이 더 이상 ‘매력적인 모임’이 아닌 심적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직원이 많은 재정•인사팀에서는 정기적인 직원회식이 현지주재원들에 의해 자주 취소된다. 주된 이유는 ‘술 문화’가 없는 회식이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대다수 한국기업은 회사라는 집단의 이익을 최우선시하고 팀원간의 협업과 공동체의식을 매우 중요시한다. 따라서 회사의 조직문화로서의 중요한 행사인 회식에 자주 빠지게 되면 한국인 상사의 눈밖에 나고 알게 모르게 각종 불이익을 받게 된다. 중국법인 P사에서 실제 발생한 사례이다. 회사에 갓 입사한 경력직원 Y씨는 아름다운 외모와 활달한 성격 등으로 평소 동료 사이에서 ‘인기짱’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사내 회식자리에서 사장이 직접 제조한 폭탄주를 과음하고 술을 이기지 못해 밤새 토하면서 몸을 크게 상했다. 결국 그녀는 이튿날 회사에 출근하지 못했고 그 일로 남편과 크게 다투었다. 그후부터 Y씨는 폭탄주와 ‘소맥’ 등 술 일색인 직장회식에 더 이상 참석하지 않았다. 드디어 그녀는 회사에 충성하지 않는 ‘낙오자’로 낙인이 찍혔고 종국에는 그것이 빌미가 되어 회사를 떠나고 말았다. 현재 한국회사에 근무한 적이 있는 많은 중국인 직원들이 한국기업의 잘못된 기업문화로, 회사의 강압적 분위기와 술이 ‘주를 이루는’ 직장회식을 우선적으로 지적한다.
한국회사에서 또 다른 회식의 ‘피해자’가 바로 같은 한민족인 조선족 직원들이다. 그들은 회식내내 ‘분위기메이커’가 되어 한국 주재원들의 비위를 맞춰야 하고 ‘흥을 돋구는’ 의무를 철저히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주재원들이 ‘신임’하는 조선족 관리자들은 회식이 끝난 후 2차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지리한 술자리에 마지막까지 참석하여 술취한 한국인 상사를 숙소까지 잘 모셔가야 하는 ‘의무적인 임무’를 차질없이 완수해야 한다. 그러다가도 폭탄주 과음으로 이튿날 출근이 늦어지면 한바탕 야단을 맞는 것은 애꿎은 조선족 직원들이다.
한국회사의 회식은 흔히 1차에서 끝나는 경우가 적고 2차로 노래방으로 직행하는 것이 보편화된 현상이다. 과음 후 부작용이 뒤따르는 폭탄주보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는 노래방이 여직원들에게는 당연하게 인기가 높은 곳이다. 한중 노래방문화는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다. 현재 한국에는 노래방이 많고 가격도 저렴하며 시간제로 주로 ‘노래만 부르는 곳’이다.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노래방에서는 술은 거의 마시지 않고 노래실력을 뽐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반면 KTV라고 불리는 중국 노래방은 ‘호화로운 장소’로서 월급쟁이 중국 직원들에게는 문턱이 높은 곳이다. 또한 고급양주를 마시고 미모의 아가씨들이 배석하는 중국의 노래방은 한국의 ‘순수한 노래방’에 비해 이미지가 별로 안 좋은 편이다.
흔히 회식이 끝난 후 한국인 상사와 중국 직원들이 단체로 노래방으로 가는 경우에는 나이 지긋한 중국인 관리자들과 남성 직원들은 ‘과음’을 빙자하여 먼저 퇴출하고 노래에 일가견이 있는 젊은 여직원들이 주로 동행한다. 가끔 한국상사들은 노래방 분위기에 기분이 업되고 흥이 도도해지면 노래실력이 뛰어난 여성직원을 즉석에서 ‘선발’해 장려(쇼핑카드 등)한다. 이 또한 중국여직원들이 독한 폭탄주보다 노래방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2차 노래방에서 발생되는 모든 비용은 주재원들의 사비가 아닌, 주재원들 특유의 권한인 회사 공금을 유용한다. 명목과 사유는 그들이 만들기에 달린 것이다.
대개 한국기업과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살고 있는 ‘한인촌’에는 한국음식점과 조선족이 경영하는 한국노래방이 있기 마련이다. 노래방 단골손님은 중국에 파견된 한국주재원들과 본사에서 출장온 한국기업인들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현지 노래방주인들은 한국주재원들의 기분과 비위를 잘 맞춰주는 조선족마담을 특별 고용해 ‘돈을 물쓰듯’ 하는 한국주재원들의 밤생활 접대에 올인한다. 또한 한국인들의 취향에 맞게 양주와 폭탄주 제조, 럭셔리한 룸 비치 등 쾌적한 환경을 만들고 ‘팁을 받는’ 미녀들을 대기시켜 놓고 있다.
특히 주말에는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한국노래방은 늘 만원이다. 주말 골프나 등산을 마치고 소주 한잔 거친 후 기분이 좋아진 한국인들이 노래방에 들리는 것은 거의 정해진 순서나 다름없다. 고독한 해외생활에서 오는 외로음과 스트레스도 풀고 중국미녀들과 마음껏 교류하면서 ‘중국어실력’도 키울 수 있어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또 일부 지각머리가 없는 한국주재원들은 단골을 핑계삼아 노래방에서 외상으로 마시고 놀며 월말에 월급이 나오면 한꺼번에 외상값을 계산한다. 금융위기 이후 부도나는 한국기업이 늘어났고 외상값을 물지 않고 갑자기 잠적하는 한국인들이 많아졌다. 이에 노래방사장들은 외상으로 먹고 마시는 ‘특권’을 믿음직한 소수 주재원에 한정하는 등 특단적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즉 주재원 특권인 ‘노래방 외상’이 더 이상 약발이 먹히지 않는다는 뜻이다.
최근 신세대들의 의식 변화와 여성이 직장의 주요 구성원으로 등장함에 따라 한국에서는 ‘폭탄주에 노래방’ 일색의 전통적인 회식문화가 변화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의 한국기업도 회식이 주재원들의 특권을 남용하는 ‘모임장소’로 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또한 주재원과 중국직원 간에 수직관계가 아닌, 보다 평등한 관계와 ‘수평적 대화문화’로서의 회식자리로 거듭나야 한다. 이는 재중한국기업의 성공전략인 현지화 경영 추진에 크게 일조할 것이며 중국직원들의 이직률을 낮추는데 기여할 것이다. 한마디 부언하면, 중국직원들이 선호하는 중국요리점의 원탁에서 화기애애한 회식을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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