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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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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달마도 그리기
2007년 06월 29일 05시 54분  조회:3148  추천:73  작성자: 김혁



. 수필 .


달마도 그리기

 
                   김 혁



어릴적 나의 꿈은 화가였다. 베레모를 쓰고 색조판을 들고 현란한 색감을 붓에 듬뿍 묻혀서는 진한 붓 터치로 캔버스우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화가들이 그렇게 우러러보일수가 없었다.

네거리의 선전화나 영화포스터가 새로 바뀌면 정신없이 달려나가보군 했다. 그림을 좋아했기에 련환화(連環畵)에 넋을 홀딱 바쳤다. 련환화보기는 내 동년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내용의 그림책에도 판본이 다르면 사들여 그 그림기법에 대해 비교해보았다. 그렇게 련환화를 저그만치 2천 여권을 사들였다. 그때 나는 룡정에서 책이 제일 많은 아이로 통했다. 그 그림책들이 지금껏 내 서재의 깊숙한 곳에 색바랜채 꽂혀져 있다.

중학교적에는 세계명화에 심취되여 잡지의 뒤면에 곧잘 실리곤 하는 명화들을 오려내여 스스로 마련한 앨범에 붙이곤 했다. 신문사에 입사한 뒤 기거했던 숙소 벽은 내가 그린 50여폭의 그림이 붙어있었다. 액자도 없이 회화련습본에 그렸던 그림들을 찢어내여 붙인 그림은 비록 엉성할망정 짜장 한차례의 화전을 방불케하였다. 80년대 초창기의 “길림신문”에는 내가 그린 몇 폭의 만화와 삽화도 실려있다. 나의 시 창작노트는 아예 그림 습작본이라는 쪽이 더 적합할것 같다. 시 먼저 그림이 떠올라 그림여백에 시를 써넣군 했던 것이다. 몇해전에 출판되였던 나의 에세이집과 중편소설집의 겉봉도 나의 창의에 쫓아 내가 선택한 그림으로 디자이너들이 완수한 것이다. 언젠가 나의 창작집에 나절로 삽화를 그려넣어 펴내는 것이 나의 제일 큰 소망이다.

다빈치요, 피카소요, 반 고흐요, 레노아요, 포비즘이요, 다다니즘이요 하고 미술가들의 이름과 미술류파들을 지금도 곧잘 외워 낼수 있지만 허나 나는 끝내 화가의 길을 걷지 못하고 말았다. 그저 2천여권의 련환화와 스스로 마련한 수 백장의 명화와 응접실에 걸려있는 세계명화모조품이 이루지 못한 나의 화가의 꿈을 달래주고 있다.

그렇게 화가의 눈으로 세상을 보려 해서였던지 올곧게 직시하는 와중에도 비뚤어져나가는 세상사에 대해 곤혹을 느낄때가 많다. 공백지우에 그저 점과 선을 잘 조합시키면 될수 있겠다고 믿었던 세상사가 때론 인상파처럼 선명하게 안겨오다가도 때론 추상파처럼 몽롱하게 안겨 왔도 때론 다다니즘처럼 변형되여 때론 포비즘처럼 흉측스레 안겨 오기도하였다. 그 변화다단한 세상사를 아마추어화가로는 그 양상을 다 그려내는수가 없었다. 또 캔버스우에 기본을 무시하고 틀리게 그어지는 금과 란폭하게 칠갑되는 어두운 색채에 당혹해하기도 했다. 그런 엉성한 그림들이 도금칠한 액자에 들어 버젓이 걸리는 것을 경악하며 보기도 했다.또 금전의 권력에 힘입어 조야한 자기그림으로 명리를 얻는 모습도 보았다. 그에 당혹하고 그에 고뇌하고 그에 분개하기도 했지만 내 아마추어의 작은 붓 자루로는 그러한 것들을 시정해주기에는 너무 힘에 부쳤다. 따라서 나의 붓은 그러한 화풍속에 더불어 더러워지고 모지라지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붓 자루를 구석에 처박고 말았다.

그러다 아마추어일망정 다시 그림에 생각이 미친것은 어느 날 헌책가게에서 “달마흠상백도(達摩欣賞百圖)”라는 서법입문서를 골라 쥔 뒤로부터였다.

달마에 대해서는 면벽구년(面壁九年)의 법력이 뛰여난 진인(眞人)으로 알쏭달쏭 알고있었다. 허나 천태만상의 달마도가 담겨져 있는 책자를 들고 나는 그만 그 어떤 보이지 않는 법력의 힘에 빠져들었던가?
입가에 웃음을 문 달마, 졸린 듯 반쯤 눈을 감은 달마, 화가 난 듯 눈을 딱 부릅뜬 달마, 천태만상의 달마의 모습은 나의 고단하고 얄팍한 심성을 꿰뚫어 보는 듯했고 나는 순간에 그 그림 장들이 주는 신묘한 힘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헌책가게의 책치고는 엄청 비싼 책을 나는 주저없이 사들었다.그 리고 그날로 집구석에 처박았던 붓과 먹통을 찾아 내였다.

이렇게 많은 초상 중에서 대체 어느 것이 달마의 진짜배기 얼굴일가? 붓을 잡고 나는 오래도록 망설이였다. 모든 고난을 거치고 이기고 사대개공(四大皆空)의 경지를 이른 달마의 얼굴은 예술의 구체화와 평면의 립체화를 통해 오묘하게 표현되고 또 속인들의 마음속깊이에 있는 성정과 합치여 끝없는 모양을 이루고있었다. 나의 속안에 보이는 달마는 대체로 대머리에 부릅뜬 눈 우뚝한 코, 한 일자로 다물린 입과 통통한 볼 그리고 무성한 수염과 펄럭이는 도포가 전부였다. 달마도에 흥취를 가지면서 달마의 생평을 기록한 불교전서를 다시 찾아 자세히 읽었고 내심 자괴를 금치 못했다. 달마는 40여 년간 반야다라를 스승으로 삼아 일점의 게으름이 없이 수양을 쌓았고 60세에도 로구를 끌고 바다와 산을 넘어 중국에 와서 마침내 천고불멸의 종파를 세웠고 금강불괴(金剛不魁)의 정신을 기록하였다. 그 거룩한 뜻을 나 같은 그림의 아마추어가, 생활의 아마추어가 어찌 그림에 불어 넣을수가 있을가?

전문가들은 그림중에서 종교화를 그리기가 가장 어렵다고 했다. 예수를 그리거나 석가모니를 그리거나 관음보살을 그리거나 응당 그들의 뜻, 사상, 감정 등을 리해하고 그려야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호랑이를 그렸는데 고양이가 되고 백조를 그렸는데 집오리를 그리게 되는 것이다. 달마도입문서는 비록 모범을 알아도 필법을 소홀히 할 수 없는바 진짜 달마를 그리려는 사람은 가부좌하고 앉아 오룍오욕(五六五慾)의 마음을 몰아내고 붓을 잡기 바란다고 글머리에 씌여져있었다. 붓, 먹, 종이, 벼루는 단지 죽은 물체이고 눈과 손은 자신의 노예임으로 이러한 것이 하나로 되었을때에야만 비로소 좋은 달마도를 그려낼수있다고 한다.

입문서의 가르침에 따라 한 장 또 한 장의 달마도를 그리면서 나는 달마의 얼굴의 무궁한 변화를 더듬는 중에 기쁨을 찾고 차분해지는 심성을 느꼈고 그런 마음의 변화에 스스로 놀라기도 했다. 나는 불화 (佛畵)를 그려 구도하는 이들의 성심을 본받아 매일 한 장씩 천장의 달마도를 그리기로 크게 마음먹었다.

습작기이기에 지금껏 나는 달마도를 신문지우에 그린다. 불공스러운 처사인지 모르지만 .화선지우에 그리는 사치를 부릴만한 자격도 없는 나임을 자각하여 그런 불공스러운 시작을 떼였다. 훌륭한 화가는 내가 어떤 것을 그려낼수 있다는 자부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려낼수 없다는 렬등감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렇게 자격지심을 누르며 나는 매일같이 달마도를 열심히 그렸다. 매일 내가 그리는 그림은 하나의 달마이지만 너나가 다르다. 내 그림의 수준의 변화로 인해서가 아니다. 때로 마음이 번거로워, 때로 되게 기분 좋은 일이 있어, 때로 까닭 없이 울적하여, 때로 술에 만취하여... 그때마다 내가 그린 달마도는 나의 속된 심경을 그렇게도 신통히 비쳐준다. 한번은 취중에 붓을 잡고 그린 달마도가 이튿날 숙취에서 께여 보니 그렇게 엉망일수가 없어 자신을 심히 꾸짖은 적이 있다. 이렇게 달마도는 내 일상을 가계부처럼 기록한다. 내 마음의 무늬를 년륜처럼 새긴다.

때론 나는 달마도 그리기를 시작한 것을 볼썽사납고 고단한 자신의 삶 살이를 도피하기 위한 자기 최면이 아닌가 자문도 해보았다. 허나 어지럽고 무모하고 고통스런 세상에서 자기 최면도 괜찮은 극복방법일 것이다. 종이우에 문질러대는 수많은 점과 선, 한없는 공간, 그에 대한 추구, 시도, 실패와 극복,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들의 인생련습을 회화라는 측면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내게는 아직 여느 화가들처럼 그럴듯한 호도 없고 락관(落款)도 없다. 허나 그 어느 날인가 깨끗한 화선지우에 지대지강(至大至剛)의 달마의 참모습이 커다랗게 그려지고 그 곁에 나의 호와 락관이 숙명처럼 새겨질 때를 몽상하는 나다.

하여 나는 오늘도 나의 마음을 다잡는다.

종이를 편다.

먹을 간다.

붓을 잡는다.

달마도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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