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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채플린과 다시 만나다
2007년 06월 29일 05시 54분  조회:3068  추천:73  작성자: 김혁


채플린과 다시 만나다

 

김 혁


주말, 버릇처럼 음향점 DVD매장에서 나만의 취미의 시간에 빠져 있는데 매장 구석 쪽에 "채플린 영화 전집"이 보였다.

오래 전에 비디오로 갖추긴 했지만 빌려간 친구들이 내내 돌려주지 않아 몇 부가 이 빠져있었다, 또 한번 전집을 몽땅 사 들었다.

 

 

채플린의 영화를 접한 것은 초중1학년 때, 그 무렵, 나는 병환으로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서 내내 헤여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영화라면 사죽을 못쓰던 내가 한달 되도록 영화관 문전에 가지도 않았다. 그러다 동네 친구들의 강권에 끌려 어머니 몰래 영화관에 발길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보게 된 것이 채플린의 "모던시대"였다.

처음 접하는 채플린이라는 캐릭터와 그 발에 발을 잇는 코미디의 드라마, 어둠 속에서 나는 오랜만에 웃음을 찾았다. 내가 좀 크게 웃었나 보다. 어둠 속에서 친구들의 눈길이 나에게 몰부어 졌다. 나는 덴겁해 웃음을 삼켰다. 영화가 끝나 나올 때엔 애들의 눈이 새삼 의식되여 다시 슬픈 표정을 지었다.

채플린은 투명한 감수성의 소년이였던 나에게 이렇게 특유의 농도와 줄기로 다가왔다.

 

 

홀리우드 대작영화들, 신작 개봉 영화들에 밀려 먼지를 들쓰고 있는 채플린의 영화를 사들고 돌아와 그 중 몇 부를 다시 보면서 그가 얼마나 천재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는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작은 중절모, 무릎이 나온 헐렁헐렁한 바지에 꽉 끼는 모닝코트, 크고 낡아빠진 구두, 짧은 콧수염에 특유의 마당발 걸음, 그리고 옆구리엔 지팡이...

"미키 마우스(米老鼠)와 함께 20세기에 가장 위대했던 미국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채플린.

눈물과 웃음, 유머의 대명사- 찰리 채플린이다.  

 

째질 듯 한 가난 속에 다섯 살 때 어머니 대역으로 무대에 오르면서 예술생애를 시작한 그, <<모던시대>>, <<도금기(淘金記)>>, <<도시의 빛>>, <<곡마단(馬戱團)>>, <<대 독재자>> 같은 영화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세계영화사의 걸작들이다.

요즘 잊혀져간. 또한 뒤뚱거리는 찰리 채플린의 걸음걸이를 떠올리면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기분이 유쾌해진다.

그의 모든 것은 늘..코믹하게만 표현되여 채플린..하면 가볍게 여기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탁월한 아이디어로 넘치는 그의 영화에는 사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많이 깔려있다.

그의 영화 속에 깊이 숨겨진 얘기들은 어쩌면 우리 모두들의 얘기, 하고싶은 얘기들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너나가 무가내한 삶을 살지만 눈 망울속에 절망은 없다. 그들은 저마다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가졌다.

그들은 저마다 평화와 진실을 사랑한다. 배반하지 않고 뒤 돌아서지 않으며 마음이 찡할 정도의 순수와 맑음을 지녔다.

이것은 또한 채플린이 살아온 삶이기도 했다.

 

 

"내가 맛보았던 불행, 불운이 무엇이었든 원래가 인간의 행운, 불운은 저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같아서 결국은 바람 따라 달라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는 불행에도 그다지 심한 충격을 받지 않았으며 행운에는 오히려 순수하게 놀라는 게 보통이었다.

나에게는 인생의 설계도 없으며 철학도 없다. 현명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인간이란 모두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찰리 채플린의 자서전 중에서 뽑아본 말이다.

그가 영상에 던진 언질은 “인간은 모두 괴로워하며 살아가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괴로움을 겪는 사람에게는 괴로움을 경험한 사람만이 위로가 될 수 있다.

불행을 맛보았던 채플린이, 기쁨을 향유하는 사람보다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자세로 영화를 만들어 냈으니 어찌 감동이 없을까.

 

 

 

웃기자고 작정하고 드는 영화보다 삶의 신산함이 곁들인 이런 류의 코미디에 더 웃음이 난다. 웃고 나면 가슴 한구석 애잔함이 남는다. 채플린이 주는 웃음이 바로 이 종류의 것이다.

사람들이 몸짓으로 단순하게 웃기는 코미디만 좋아할 때 그는 코미디를 통해 인간의 심리를 깊이 포착하기 위해 애썼다. 인간의 삶에 대한 위대한 성찰과 따뜻한 연민이 그의 작품에 담겨 있다.

 

 

채플린은 웃음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발언하는 일관된 주제의식을 가진 무척 진지한 감독이였다. 그는 자기만의 독특한 영상 스타일이나 개성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발언해 왔다.

득달같이 들이닥친 산업화와 기계화, 대공황의 사회적 혼란 속에서 그는 빈곤과 굶주림, 방황을 이야기하는 휴머니스트였으며 항상 웃음과 눈물을 함께 보여 주었다. 이런 채플린 특유의 유머와 련민의 결합은 그의 작품이 현재까지도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는 리유인 것이다. 바로 그 진지함이 가볍고 즐거운 웃음을 공중에 흩어버리지 않고 관객의 가슴속에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이야기로 지탱해왔던 힘이였다.

그가 20세기에서 첫 손꼽히는 대중적 슈퍼스타로 인정받는 것은 각본, 음악, 제작 등 거의 모든 중요한 부분을 소화해 내는 다재다능함과 지역과 시대를 초월하는 그의 천부적인 연기력에도 있겠지만, 코미디의 의미에서 그치지 않는 인간의 보편적 삶에 대한 진지한 휴머니즘적 접근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물질 만능 주의이고, 우수한 유전자만이 살아남는 오늘의 이 세상에서, 진정 따듯한 마음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내가 소장한 채플린의 영화들

 

우리는 누군가를 얼마나 리해하면서 살아갈까.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는 있을까? "기술, 지식, 두뇌보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착한 마음, 다정한 마음이다.

"인간성을 잃어버린 인간생활은 살벌하기만 할 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는 채플린이 어느 시상식장에서 한 수상소감의 한 구 절이다.

채플린처럼 비록 불행하고, 고독한 삶을 살아왔지만 모든 이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려고 한 노력은 정말이지 우리 자신을 부끄럽게 한다. 여기서 채플린의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이란 코미디를 보고 그저 웃는 것이 아니라, 그 웃음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고 있다는 점이다.

 

 

 

여러분들께서 만약 채플린 영화를 아직 집에 소장하지 않고 있다면 나는 그중 몇 부라도 갖추어 두라고 권장하고 싶다.

이른바 명작의 서렬에 든 좋은 소설이나 위대한 음악을 집에 챙겨두고 다시 보고 들으면서 삶을 풍요롭게 만들듯이 채플린의 영화도 바로 그러하게 여러분들의 서가를 빛낼 수 있는 목록이 되기에 손색없다고 생각한다.

웃음 한 마당 속에 흑백의 영상을 가슴에 담는 것만으로도 큰 거 하나를 건진 것 같은 뿌듯함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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