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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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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만필]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다
2007년 06월 29일 05시 54분  조회:3050  추천:73  작성자: 김혁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다


어느 중국드라마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녀자가 열심히 읽고있는 책표지를 보고 남자친구가 비아냥거린다.

<<이제야 무라카미냐? 책 좀 읽고 살어!>>

무라카미 하루키, 현시대를 살면서 문화적감각이 있다는 사람들이 그의 소설을 읽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된다는 정도로 대단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작가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600만 부 이상 팔릴 정도로 기록적인 베스트셀러 행진을 하며 오래전부터 중국, 한국, 독일 그리고 북유럽에서 많은 애독자를 낳아왔다. 중국에서도80년대 중기로부터 진행돼온 그의 베스트셀러 행진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하루키가 책을 내면 내용을 따질 필요도 없이 사는 사람이 많다. 그 만큼 고정독자, 하루키 중독자들이 많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대열 속에는 당연히 무라카미 하루키가 끼어있다. 그래서 나는 하루키의 작품이라면 거의 닥치는대로 다 읽었다. 그의 처녀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댄스 댄스 댄스>>, 단편집과 근작인 <<해변의 카프카>>까지...
하루키의 작품은 대표작으로 되는 <<노르웨이의 숲>>(후에 제목을 <<상실의 시대>로 개칭)을 중문판본으로 맨 먼저 접했다가 후에 친지가 한국에서 부쳐온 삼진기획 88년 판본으로 다시 읽었다.

오래동안 <<좌>>의 철쇄에 매여 살아온 우리의 정서와 너무도 앞서 간 그들의 성문화때문에 약간의 거부감을 가졌었고 그래서 오히려 기어코 읽었었다. 당시 하루키의 책을 처음 읽고 나는 생각을 많이 할 수 없었다. 솔직하고 감성적인 소설속의 주인공들은 현실속에서 우리가 드러내지 못하는 숨겨진 모습이 아닐가?하는 상당히 혼란스런 느낌을 받아 안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하루키의 팬이 되어버렸노라고 고백한다. 실상 하루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책, <<노르웨이의 숲>>이 가장 하루키적이지 않은 책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나에게서 이 소설은 재미는 없었지만 길게 느껴지지않은것은 정말 신기했다.

우리 독자층, 정확히 말하면 우리 조선족독자층에서 아직도 하루키는 낯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뒤늦게나마 그의 작품을 환기시키면서 그중 한편을 뽑아본다.오늘 함께 읽고저 하는 작품은 누구나 아는 <<상실의 시대>>가 아니라 그 이전에 창작한 <<양을 쫓는 모험>>이다. 80년대에 출간된 작품을 2001년 상해역문출판사의 중국판본으로 뒤늦게 읽었다.

제목 그대로 양을 찾는 이야기다.

<<나>>는 친구와 함께 작은 광고회사를 운영하는 리혼남이다.
안해가 집을 나간 뒤<<나>>는 새로운 녀자 친구와 사귀게 된다. 그녀는 예쁜 귀를 갖고 있었기에 전문적인 귀 모델을 하고 있다. 또한 그녀는 미지의 앞날을 미리 점 칠 수 있는 기이한 예지 능력을 갖고 있는데 그녀는 <<나>> 에게 앞으로 양을 쫓는 모험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신비로운 그녀가 예언한 대로 <<나>>의 삶에 양이 걸어들어 온다.
어느 날, <<내>>가 친구와 함께 경영하고 있는 광고 회사가 어느 우익 조직의 비서가 찾아온다. 용건인즉 <<내>>가 어느 잡지의 화보에 사용한 한 장의 사진의 출처를 밝히라는 것이었다. 그 사진은 양떼와 혹가이도의 자작나무 숲이 찍혀져 있는 평범한 사진이었다.
<<나>>를 찾아온 그 우익조직의 비서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에는 신비한 양 한 마리가 있다. 그 양이 우익조직의 거물과 관계가 있다. 우익조직의 두목으로 승격한 해에 거물은 자주 양의 환상을 보았다고 한다. 아마도 거물의 머리 속으로 양이 들어간 것 같다. 그리고 그 양이 거물의 탁월한 힘의 원천이 된 것 같다.
이미 병상에 누워 있는 거물은 의식을 잃고 있으며 죽음이 림박해 있는데 그가 죽기 전에 그와 양 사이의 비밀을 해명하지 않으면 그가 친히 만들어 낸 조직은 와해되어 힘을 잃을 것이다.
양은 새하얀 털에, 등에 별 모양의 갈색 털 이 나 있다, 그 사진에 찍혀 있는 양을 발견해야 하는데 기한은 1개월 이내이다,
<<나>>는 그 양을 찾아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협박에 가까운 압력에 <<나>>는 예쁜귀를 가진 녀자친구와 함께 멀리 혹가이도로 향한다.
사실 <<내>>가 사진의 출처를 밝히기를 거부한 데는 리유가 있었다. 고향을 떠나 행방불명이 된 <<쥐>>로부터 <<나>>에게 편지가 왔기 때문이다. 그 편지에 문제의 양의 사진이 동봉되여 있었고, <<쥐>>는 그 사진이 자신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한 달이란 짧은 시간 내에 양을 찾아야 하지만 어디서도 몸체에 별을 가진 양은 찾아 볼수 없다. <<나>>와 녀자 친구는 호텔'에 묵으며 일주일 동안은 실마리를 잡지 못 한 채 시간을 허비한다. 그런데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정작 실마리는 <<내>>가 머 물러 있는 호텔 안에 있다.
호텔의 지배인의 아버지인 양박사에게서 양에 대한 풍문을 알게 된다. 양 박사는 30년대에 몸 속에 양이 들어 갔는데 이어 그의 몰락이 시작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양은 얼마 후에 양 박사의 몸에서 나가 버렸는데, 양은 리용 가치가 없어지면, 그 인간 속에서 나가 버리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박사의 몸에서 나간 양이, 지금은 거물이 된 당시의 우익 청년 속으로 들어갔고 이어 또 그의 몸에서 나와 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양 박사의 이야기에 따라, 그 사진에 찍혀진 장소를 찾아간다.
목장의 한 쪽 구석에 미국식의 시골집 2층 건물이 있었는데 한쪽 방에 뜻밖에도 <<쥐>>의 소지품과 의복이 있었다. 하지만 <<쥐>>는 눈에 띄지 않았다.
나는 <<쥐>>를 기다린다. 그리고 녀자 친구는 두통을 앓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예지 능력이 이 목장에 들어온 뒤로부터는 작용하지 않았다. 녀자 친구는 목장을 떠나가 버리고, 차츰차츰 겨울이 다가온다. 눈이 내리는 날 밤에 <<나>>는 드디어 기다리던 <<쥐>>를 만난다.
사실상 <<쥐>>는 <<내>>가 이곳에 도착하기 일주일 전에 이미 스스로 목을 매달아 죽었었다. 그 죽은 <<쥐>>의 유령이 <<나>>를 찾아 온것이다. <<나>>와 <<쥐>>의 유령은 맥주를 마 시면서 지금까지 쌓였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쥐>>는 그 문제의 양이 자 신의 몸속에 들어왔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자신은 양이 지시하는 대로 행동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양을 죽이 려고 결심했으며, 그러기 위해서 <<쥐>>는 자살을 택했던 것이다.
목장에서 돌아와 나는 거물의 비서를 만난다. 그는 <<쥐>>를 만나기 위해 혼자서 목장으로 찾아 간다. 그러나 <<쥐>>가 장치해 둔 폭발약이 터지는 바람에 죽어 버린다…

어찌보면 황당하고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이야기, 하지만 책의 마지막 장까지 덮고 나니 폭풍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듯한 느낌이다. 재미있고 스릴있는 모험, 그리고 양사내라는 초현실적 인물이 가미되여 완성된 읽을거리가 풍성한 소설이였다.

하루키의 다른 책과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으면서 흥미를 갖게되는 점은 어쩔 수 없는 운명에 휩싸인 주인공이 시련을 이겨나가는 과정이다. 하루키의 작중 인물들은 저마다 살아가면서 갑자기 어쩔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에 당착한다. 자칫 그대로 좌초되어 버릴 것만 같지만 끝내는 고해의 수면 밖으로 떠오르는 데 성공한다. 그들에게는 끈질긴 생명력이 있다. 그리고 삶에 대한 애착과 나름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 그것이 모든 일이 해결되고 모든 사람이 행복해졌다는 중국식의 모식인 대단원(大團圓) 결말 같은 걸 기대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니지만, 마지막 장까지 호흡을 달구는 그 불투명함이 하루키 식의 모식이라면 모식일것이다.

이 작품에서 인간의 몸 속으로 들어가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별 모양의 무늬가 있는 특별한 양, 이 <<양>>은 작가에 의해 용의 주도하게 준비된 상징물임은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내가 벌린 양을 찾는 모험은 일상에 봉인되였던 과거를 찾아내는, 말하자면 자아를 찾는 려행이었다고 풀이해 본다.

하루키의 작품은 그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를 읽고서가 아니라 바로 이 <<양을 쫓는 모험>>을 읽고서 비로서 재미를 붙히기 시작했다.

<<양을 쫓는 모험>>에서처럼 무라카미 하루키의 많은 작품들은 실험의 씨앗이 철저하게 뿌려져 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 현실과 의식의 구분이 모호해 지곤 한다. 즉 판타지적 요소를 보이는 작품들이 많은 것이다. 어느 소설에서는 <<일각수>>라는 현실에는 없는 외뿔동물도 나온다. 하루키는 소설을 쓸 때 곳곳에 환상적인 부분을 설정함으로서 현실이 아닌 소설의 특성을 살려 다시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양을 쫓는 모험>>에서 양 사나이나 귀가 특수한 여인, 자살한 쥐 등등은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미묘한 부분을 상징하는 주요한 설정이며 아울러 독자에게 그의 소설을 읽는 재미를 배가시켜주는 중요한 설정이기도 하다. 비현실적이지만 이런 요소 때문에 하루키의 소설에 끌리는지도 모른다. 내가 늘 꿈꾸면서도 감히 행하지 못하는 꿈의 여유를 하루키의 소설에서 느낀다.

그러나 책을 내려놓고 보면 하루키의 소설은 전혀 비현실적이지가 않다. 실재하기 어려운 모험적 상황을 전제로 하고있지만 그렇게 설정된 상황은 또 현실주의를 뺨칠 정도로 리얼리티를 띄고 있다. 현실과 직접적 회로를 갖고있는 것이다.신기한 인물들과 신기한 세계를 합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로 만들어낸다. 그에 하루키만의 색이 더해져 알수없는 소외, 허무 등 도시인의 일상을 보여주고 있다.즉 현실을 되돌아보고 낯설게 하는 신비성이 그의 소설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다. 사실은 내가 살고 있는 세계도 하루키의 소설에서처럼 여러 가지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내가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느끼게 할 정도로 현실성을 가지고 있다. 삶이 힘들더라도 우연을 기대하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용기를 심어주는 것 같다.

실제로 일본의 권위있는 문예비평가들 가운데는 하루키의 소설은 일본문학이라고 부를수 없다는 정도로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의 문체 그리고 미국문화에서나 볼 수 있는, 서양문학의 영향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하루키의 소설은 대학에서 강의 텍스트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비평가들은 늘 셔츠에 청바지 차림인 이 작가에게 일본 전통적인 문학의 풍요함이 결여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사실 하루키는 전세계를 경악시키고 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작가로서 주목받고 있다.

<<뉴욕 타임즈>>는 <<독창성과 매력, 완벽한 기법으로 사로잡는 기쁨과 자극의 천재>>라고 그를 격찬하고 있다.
<<일본 소설에는 모종의 전형적인 문체 같은 것이 있는데 나는 그런 것들과는 전혀 다른 데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때문에 내 소설을 받아 들이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래서 비판도 많이 받는다> >
하루키의 답변이다.

현실과 환상의 공간을 즐겨 넘나드는 하루키는 개개인의 심리묘사와 의식세계를 그만의 문체로 묘사해준다. 또한 놀라운 관조력으로 모든 작품을 통틀어 그는 현대사회 소외된 군상들의 고독을 나라는 일인칭 시점으로 집요하게 파헤쳐왔다.
그의 작품을 가리켜 <<무국적성>>이라든가 <<가벼움의 미학>>이라고도 얘기하지만, 하루키 문학의 외면적인 가벼움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개인들에게 필연적으로 부과되는 존재의 무거움을 견뎌내려는 몸부림에 대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 무국적 성이나 가벼움 때문에 변강의 오지인 이곳 사람들에게 마저도 이렇게 친근하게 읽혀지고 있는 것이 아닐가?

순문학을 한답시는 개인적으로는 거개가 대중적이면서도 튀는 소설을 쓰는 하루키가 특별히 좋은 글을 쓴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하루키의 장점이라면 그의 글을 읽으면 위로 받는 느낌을 받곤 하는 것이다. 그런 그가 좋아서 그의 대부분의 책을 읽었다. 이상하게도 무라카미의 소설은 내 마음을 강하게 잡아끄는 데가 있다. 이는 다른 외국작가들의 작품들을 읽었을 땐 느끼지 못했던 다른 느낌이다. 인물의 내면들이 놀랍도록 나와 비슷하잖은가, 오래전에 쓴 것이고 외국사람이 쓴 것인데도, 하루키란 사람이 생각하는 방법이 우리와 완전히 같은 데가 있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 그들의 고독감을 그려내는 우화적 에피소드들이 꼭 서로 닮아있는것이다.

그것이 하루키의 작품에 심취되는 가장 큰 원인의 하나라고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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