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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하는 령혼
2007년 06월 29일 05시 54분  조회:2780  추천:73  작성자: 김혁

 

. 수 필 .

은둔(隱遁)하는 령혼 
 


김 혁   


 

  첫 장편 《마마꽃, 응달에 피다》를 집필하면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았던 작품은 J D 샐린저의 《호밀 밭의 파수꾼》이였다. 아이들의 시각으로 문화대혁명이라는 전대미문의 년대를 조명하려 시도했던 나에게서 역시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미국사회상을 다룬 샐린저의 작품이 좋은 보기로 되었기 때문 이였다.

 

  50년대 초에 발표된 후 전세계 젊은이들의 필독서로 떠오르며 사랑 받는 고전자리를 지켜온 《호밀 밭의 파수꾼》의 저자  샐린저는 언론에 로출되길 꺼리면서 일체 인터뷰를 거부하는 은둔자적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수십 년째 미국의 한 시골에 칩거하고 있다. 책을 낼 때마다 샐린저는 작품에 해설 문을 붙이지 않고 작가 사진도 싣지 않는다. 이는 그가 모든 출판사에 요구하는 정해진 조건이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존 맥스웰 쿳시, 10여 년간 해마다 노벨 문학상후보로 지명돼 온 쿳시는 한 작가에게 두 번 상을 주지 않는다는 전례를 깨고 영국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부커상도 두 차례 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문학성을 일찌감치 인정받아 온 작가다.

  그 역시 철저한 은둔자로 유명하다. 두 차례에 걸친 부커상 시상식에 불참했으며, 노벨 문학상 발표 뒤에도 작가와 직접 련락이 닿지 않아 스웨덴 한림원은 수상 소식을 직접 알리지 도 못했다.

 

   올해에도 일본문단에서 또 한 명의 은둔작가가 나타났다.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후보 중 한 명이 일체의 신상정보를 거부하고 가명으로 작품을 썼다고 한다. 《작품이 순수하게 읽혀지길 원하기 때문이다.》라고 평의원들에게 전해 온 작가의 짤막한 메시지에서 수상이라는 명예 대신 작품만이 기억되길 바라는 작가의 은둔자적인 자세를 느낄 수 있었다.

 

  허명(虛名)에 창작력을 랑비하는 이들이 보이는 요즘의 문단풍토이다. 고작 몇 편의 작품을 내고는 좀 뜬다 싶으면 유명한 작가요 시인임을 자처한다. 수식이 요란한 명함을 찍고 화려한 필명부터 지으며 자비로 출판한 책에도 자기의 조야한 얼굴들을 문지광(門)처럼 크게 싣는다. 해외에 나가서도 서로 남을 폄하(貶下)하면서 자기만이 《조선족문단의 기수》니 뭐니 망언한다. 나르시시즘(自愛)의 거울을 마련해 놓고 해 종일 들여다보면서 스스로 붙인 화려한 수식에 자아만족의 미주를 기울인다. 나가는 글은 멋지고 고상해 보여도 한풀 벗기고 들여다보면 자기만 봐달라고 앙탈하는 애들 같다.

 

  굳이 자기를 내세워야 직성이 풀리는 그 배후엔 명리(名利)라는 흑심이 뱀처럼 커다란 똬리를 틀고있다. 명리의 론리는 겸손을 뒤 전으로 한다. 명리는 일단 화려한 외양과 자극적인 목소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발 없이 몸을 뒤채고 경박하게 떠들어댄다. 문학도 시절, 홀로의 공간에서 부지런히 창작궤적을 남기던 행태에서 벗어나 휘황찬란한 조명을 받는 무대우의 주인공이 되려고 뒤질세라 요란하게 치장하고 남보다 한 목청 높은 소리를 내느라 분주살스럽다. 그 모든 가증스럽고 천박한 행동거지, 자기 현시욕과 극도의 리기주의, 독선, 그리고 꼴같잖은 오만으로 점철된 저렬한 의식구조에 문단이 병들어 있으며 따라서 문인상경(文人相輕)의 아수라장의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경박한 충동에 자신을 위탁해버렸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명리를 앞세우고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 이 욕심이 란무하는 시대에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그리고 흔들림 없는 자세로 살아가는 작가들은 분명 어딘 가에는 있을 것인데...

  사실 거슬러 보면 문학과 예술의 뿌리는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닿아 있다. 개인으로서의 작가. 예술가는 근대의 산물이다. 중국의 옛 선비들은  세속의 영달을 버리고 초야에 묻혀 살아나가는 은둔자를 현인으로 여겼고, 깊이 은거할수록 명성의 높이는 그에 비례하는 경향마저 있었다. 각 조대를 살펴보면 학문과 자기 수련에 혼신을 던지면서 세속적인 영달에는 초연한 선비들이 수없이  은거하고 있다.

 

  그들은 문학과 예술을 너무 사랑하지만 아무도 그것으로 이름을 얻기를 욕망하지 않았다. 또 그러한 은둔을 통해 《타자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별개의 독자적 세계인》이 되고 《오직 스스로 결정하기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얽매여 있지 않는 자유를 찾아나 설 용기》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어떤 자아 적인 기록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심으로 정신세계를 심화, 확장해 가려는 순수 문학정신의 표출이다. 그들에게는 그 욕심을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이 있었고, 속기(俗氣)를 버림으로써 명징(明澄)을 얻는 지혜를 터득했음이 남들과 달랐다. 그리고 그 고고함을 고독으로 안고 사는 삶의 경지가 실은 얼마나 충만한 삶인가를 일찍이 깨달았던 명철함이 있었다. 그런 고독의 세계에서도 작품에 자기의 모든 것을 거는 재능과 용기를 가진 그들에게는 진정 《위대함 》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세월도 거스르는 명작의 감동과 그 진가의 리유는 과연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자신의 명성에 자족하지도 않고 편승하지도 않으며 명리를 따지지 않는 작가의 자세와 그에서 우러나온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들의 작품이 만고류방(萬古留芳)으로 매우 지적이지만 그것이 현학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자신의 외표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는 글쓰기의 전략에 있지 않을까 짐작해볼 수도 있겠다. 

 

  《범인(凡人)작가는 로동자이고, 뛰어난 작가는 감독 (監督)이며, 대작가는 건축가이다. 소설의 보통독자는 신자이고 참다운 의미의 정독자(精讀者)는 승려이면, 그 중에서도 위대한 정독자는 스스로 승좌(僧座)에 앉아서 근행(勤行)하는 수도승이다.》

 

  어느 평론가가 남긴 말이다. 결국 이 말은 작품의 창작에 림하는 작가의 자세와 정신적 풍모 그리고 그 작품을 수용하는 독자들의 요구를 보여준다. 하나의 작품은 작가의 정신에 의해 문학의 사상성을 형상화하여 예술성으로 결정(結晶)된다. 때문에 여기에는 작품에 몰두하는 창작의 자세가 중요하다. 세속적인 욕망의 거품이 걷혀 지지 않은 채 글쓰는 사람 모두를 작가라고 부르는 것은 혼돈이다. 시간의 응축된 에너지가 없이는 누구나 이 명예를 가질 수 없다. 속된  현시 욕으로 단지 공리에 매여 글을 짓는 것은 문학적 흐름을 간과한 어리석은 짓이며 그러한 작품 그러한 작가가 오래 가지 못함은 자명한 일이다.

 

  스위스나 독일에는 지금도 수공으로 칼과 가위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으며, 명장(名匠)이 만들었던 오래 된 칼과 가위는 엄청 높은 값에 팔리고 있다고 한다. 현대산업사회에서는 기계로 표준화된 상품을 대량 생산하기 때문에 옛날과 같은 장인과 제도도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장인들이 가지고 있는 철저한 직업정신은 오늘날에도 소중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이 하는 일과 그 일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긍지를 가지며 자신의 명예를 걸고  정성을 다하는 사람, 자신이 하는 일을 예술과 도의 경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 정신을 가지고 직업에 림()하는 사람, 이러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경제적, 사회 문화적으로도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장인들이 후세에 경모를 받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조용히 세월의 행간을 메워 나가며  인간존재를 해명하고 삶의 지표를 제시하는 모습이 그 무엇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진정한 작가라면, 진정한 가(家)라면 그렇게 남의 이목에 띄지 않는 곳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욕심을 저버리고 고절(高絶)하게 자신을 지켜나가는 사람이지 않을까! 우리가 명작과 대가에 근접할 수 없음은 은둔한 장인들처럼 자기가 하는 일을 예술과 도의 경지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고독을 고고함으로 승화시키지 못하는, 급급한 현시 욕 적인 속물 근성의 잠재의식 때문이 아닐가? 

 

  지금 우리의 문단에서 필요한 덕목이 바로 이러한 은둔자들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예술적 완성도를 위해 공백을 두려워하지 않는 여유와 끈기, 오랜 시간 동안의 잊혀짐을 감수하면서도 단 한편의 작품을 위해 생의 모든 것을 거는 장인정신이 요청된다. 최근에는 작품들이 너무나 쉽게 량산되고 글 짓는 이들에게 너무나 쉽게 명예가 부여되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의 작가와 작품들이 좀 더 오랜 세월을 견뎌내는, 그리하여 종국에는 시대와 력사에 한 획을 긋는 그런 작품으로 그런 예술적 주인공으로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기 위해 지금 시점에서 취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 작가들이 부박(浮薄)한 문단풍토에서 벗어나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서재에 묻히는 자세가  아닐가!

  
 

김혁 문학블로그: http://blog.naver.com/khk6699 

 


 

명상음악 "영혼의 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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