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jinge 블로그홈 | 로그인
김혁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나의카테고리 : 프로필(나는 누구인가)

불의 제전 (1)
2007년 06월 29일 05시 54분  조회:2855  추천:73  작성자: 김혁


2006 연변문학 '윤동주문학상' 소설본상작품

 

의 제전

김 혁



……
모든 악장(樂章)은 끝났는데
그치지 않고 울리는 선률이여
착지(着地)할수 없는 다리여
멈출수 없는 팔이여

몸체에서 떨어져나간채
떠돌아다니는 팔
조약하는 자세로 뻗쳐있는 다리여…

모든 악장은 끝났는데
착지할 땅이 없어
허공에서 수직으로 거듭 꽂히기만하는
다리 없는 토슈즈(발레배우들이 신는 무용신)여

―정한모의 《춤의 판타지아》에서 
 
 


진, 불을 느끼다

 
 

진(眞)이 가장 무서워하는것이 하나 있었다.
엄동이면 홀쭉한 배로 눈빛이 매워져 부락까지 내려오는 늑대가 아니였다.
숲을 지나다 무심히 건드려도 사정없이 이마빼기를 쏘는 말벌이 아니였다.
부락사람들을 떼죽음으로 들것에 들려나가게 하던 온몸에 창이 생기는 병도 아니였다.

진이 가장 무서워하는것은… 바로…
불이였다!
초동머리적, 화덕앞에서 장난질치다가 그만 이글거리는 화덕에 엎어졌다. 어머니가 재빨리 일으켜세웠지만 얼굴 반편이 불에 데이고말았다. 지금은 왼편 이마전에 동전잎만한 흉터로 남았지만 불이 주던 강렬한 인상의 아픔은 마음속 깊은 곳에 력력히 찍혀있다.
불을 무서워하던 진이 불을 좋아하기 시작한것은 어느 봄, 부락에서 화신제(火神祭)가 있은 날부터였다.

마을의 남쪽에 우뚝 치솟은 산, 적봉(赤峰)기슭에서 화신제 잔치가 펼쳐졌다.
매양 봄이 오면 부락에서는 불을 다시 지핀다. 족장과 부락의 년장자들이 적봉의 동혈(同穴)에 모신 불로부터 집집의 아궁이의 불까지 모두 꺼버리고 새로 불을 지핀다. 불도 일년내내 같은 불을 계속해서 쓴다면 기운이 쇠진한다는 뜻에서 부락사람들은 새불을 일으켜 새봄을 맞이하곤 했다. 이날이면 부락사람들 모두가 떨쳐나 해가 떨어지도록 화당(火塘)에서 타오르는 불을 둘러싸고 광열의 춤을 추곤 했다.
그렇게 진이네 부락, 남하(南河) 사람들은 불을 숭배하는 족속이였다.

그날 명절기분에 아침부터 붕― 떠있는 사람들을 묻어서 진은 화신제가 열리는 적봉기슭으로 나왔다. 화당은 여느때보다 더 넓게 꾸며져있었고 그속에는 불땀이 좋은 잘게 팬 장작들이 가득 무져있었다.
정오가 되였다. 화신제가 열리는 시간이다. 장대한 키꼴을 가진 족장 굉(宏)이 마을 년장자들의 옹위하에 나타났다. 름름한 얼굴로 사람들을 둘러보고나서 굉이 하늘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족장을 따라 수천명의 부락사람들이 무너지듯 무릎을 꺾었다. 족장의 입에서 격앙된 소리가 터져나왔다.
―이 땅을 굽어살피시는 천지신명이시여! 추위와 기아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불을 주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춥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배를 곯지 않게 해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이 불처럼 따뜻하게 하소서…

부락사람들이 따라서 족장의 말을 복창하였다.

―우리에게 불을 주소서!
우리에게 불을 주소서!!

하늘 우러러 비원(悲願)을 마치고나서 족장이 무언가 머리우에 받쳐올렸다.
거울, 금박칠을 올리고 테두리에 문양을 새긴, 양경(陽鏡)이라는 이름의 불을 지피는데 사용되는 거울이였다.
족장이 양경을 들어올릴 때 그 번쩍이는 빛이 눈에 쏘여와 진은 눈시울을 좁혔다. 족장이 양경을 들어 화당의 장작개비에 대고 비추었다. 정오의 태양은 찬란했고 양경에서는 태양의 빛이 반사되여 쏟아져나오고있었다. 모두들은 숨을 죽이고 양경을 지켜보았다. 수천쌍의 눈이 오목거울이 실어낸 빛줄기가 몰부어져있는 곳에 초점을 맞추고있었다.

이때, 북소리가 울렸다.
둥둥! 나지막한 북소리가 울렸다.
나지막하지만 사람들의 눈귀를 순간에 앗아가는 북소리가 울렸다.
십여명의 동자들이 저마다 손북을 두드리며 동굴부터 나오고있었다. 동자들은 저마다 머리에 빨간 천을 두르고있었고 빨간 버선을 신고있었다.
무용단의 춤추는 아이들이였다. 화신제때면 춤을 추는 아이들을 부락에서는 화동(火童)이라고 불렀다. 부락에는 화신무용단(火神舞踊團)이라는 단체가 있었다. 화신무용단 성원들은 족장 굉 다음으로 부락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였다.

화동들의 북소리가 점점 잦아졌다. 잦아지는 북소리와 더불어 동굴에서 짐승 한마리가 뛰쳐나왔다.
화견(火犬)이였다.
불을 먹고 사는 불개였다.
일신이 붉은 털로 덮여있는 개는 무용단에서 기르는 령물이였다.

개가 하늘을 바라고 컹컹 짖었다. 이어 동굴로부터 또 한사람이 나왔다. 백발동안의 로인이였다. 유난히도 긴 눈섭을 가진 로인은 붉은 수건으로 이마를 질끈 동이고있었다. 웃동은 벗고있었는데 해볕에 그을린 몸체는 검붉었다. 허리에는 붉은 띠를 두르고있었고 신은 동자들처럼 역시 빨간 버선이였다.
그 사람이 다름아닌 명(明)이였다.
명은 무자(舞者)였다.
화신무용단을 거느리는 최고의 무용수였다. 무자는 부락에서 뛰여난 무용수에게 주는 급별이였고 한부락에 무자는 단 한명뿐이였다. 무자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 그 칭호는 부여된다.
부락사람들의 응시속에 무자는 두팔을 량쪽으로 뻗었다. 머리를 뒤로젖혔다. 북소리의 박자에 맞추어 무동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소리와 함께 홀연, 새가 하늘로 솟아오르듯이 몸을 훌쩍 솟구며 무자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훨훨! 훨! 훠어얼!
불이여 타올라라
타올라라 불이여…

북소리가 높아져갔다.
양경에서 쏟아져나오는 빛줄기가 굵어져갔다.
자작나무에서 실연기가 피여오르기 시작했다.
컹컹! 불개가 짖어댔다.
무자의 춤사위가 거세여져갔다.

훨훨! 훨! 훠어얼!
내가 불이여라
네가 불이여라

북소리가 높아져갔다.
양경에서 쏟아져나오는 빛줄기가 점점 굵어져갔다.
자작나무에서 파란 실연기가 피여오르기 시작했다.
컹컹! 불개가 사납게 짖어댔다.

무자의 춤사위는 절정에 치달아있었다. 풋풋한 땀냄새를 떨어뜨리며 춤에 몸을 내던지고있는 무자는 꼭마치 신들린 사람 같았다. 그는 부락사람 모두를 흥분하게 만드는 괴력을 지니고있었다.
드디여 자작나무에 불이 확! 댕겨졌다.

―불이다아!

사람들이 환희에 넘쳐 괴음들을 질렀다. 우르르 화당을 둘러쌌다. 따스한 불의 기운에 눈을 느스름히 감으며 만족의 신음을 토했다. 족장이 양경을 거두며 껄껄 방성대소를 하였다.
그러나 무자의 춤은 멈추지 않고있었다. 무자의 왕소금이 돋은 등어리가 화염처럼 꿈틀거렸다. 불을 둘러싸고 무자는 맴을 돌고있었다. 불을 탐하는 한마리 짐승처럼 불을 먹으려, 불을 먹으려.
북채에 달린 붉은 술이 춤사위에 맞추어 나붓기고있었다. 북소리도 끊기지 않고있었다. 노래소리도 끊기지 않고있었다. 북소리속에서 노래소리속에서 무자는 완연 타오르는 한줄기 불이 되여있었다.

훨훨! 훨! 훠어얼!
내가 불이여라
네가 불이여라
우리는 불이여라

진이 철이 들어 처음 보는 화신무(火神舞)였다. 잔뜩 키워진 동공으로 해빛과 불줄기와 사람들이 어우러져 열기로 출렁이는 춤마당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진의 기억속에서 잠자고있던 그런 풍경인것 같았다.

진은 단쇠가 걀?닿았을 때처럼 아찔한 충격을 느꼈다.
진의 작은 가슴은 금세 뜨거운 불씨 한톨을 머금은듯했다. 그 불씨는 혈관을 타고 진의 사지로 뻗어나갔으며 나중엔 명치끝에 모여 타올랐다. 그 불길은 진의 작은 육신을 태워버릴것만 같았다. 정체불명의 충동이 륵막쯤에서 솟구쳤다. 불의 장력(張力)에 끌리듯 진은 저도 모르게 량팔을 펴들고 팔죽지를 길게 뻗쳤다. 무자의 춤사위를 모방하여 머리를 뒤로 젖혀버렸다. 정오의 대공에서 태양은 빛나고있었고 진은 눈확 가득 넘쳐오르는 눈물을 주체할길 없어했다.







해가 떨어지고 달이 떠올라도 화신제의 열기는 식을줄 몰랐다. 화신제는 홰불놀이로 이어졌다. 달이 뜨면 아이들이 각자 홰불을 들고 벌판에 모여든다. 밭가운데 지경을 그어놓고 홰불싸움을 벌린다. 어른들이 불싸움이 위험하다고 아이들을 못나가게 하는 법은 없다. 오히려 홰불을 더 크게 만들어주면서 나가서 용감히 싸우라고 등을 떠민다. 예로부터 홰불싸움에 나가지 못하면 성인대접을 못받는다고 여기기때문이다. 곧 홰불싸움은 일종의 성인식(成人式)이였다.

들은 불천지였다. 함성이 일었고 서로 부딪치는 홰불에서 불찌가 꽃살처럼 튀였다. 불이 무서웠던 진이 홰불을 들고 맨앞에서 달린다. 어제날 불이 무서웠던 진이 아니였다. 목청 깨져라 소리소리지르며 홰불을 휘두르는 진은 어느결에 훌쩍 웃자라있었다.
온몸이 검댕이투성이가 되여 들어서는 진을 보고 어머니가 놀란 눈매를 지었다.

―홰불놀이에 갔어요.

얼굴이 거멓게 그을린 진이 이발을 하얗게 빛내며 말했다. 어머니가 다가가 진을 껴안아주었다. 그을음냄새가 나는 진의 머리를 꼭 껴안아주었다.

―우리 진이 다 컸구나.

어머니는 화신제날이면 집집마다 먹는, 빨간 실고추를 넣어 해처럼 둥글게 부친 전(煎)으로 저녁상을 마련해놓았다. 떡을 뜯다 말고 진이 입을 열었다. 나지막하나 힘이 실린 소리로 말했다.

―오마니 나 춤 배우고싶어.



진, 불을 찾아가다
 


적봉(赤峰)은 잠든 화산(休火山)이였다.
그리고 불을 숭배하는 남하(南河)족에게서 적봉은 성산(聖山)이였다.
역시 불을 숭배하는 건너부락 산북(山北)족에게도 적봉은 성산이였다.

남하족과 산북족은 본디 뿌리가 같은 족속이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였던지 왜서였던지 서로 창을 들이대고 화살을 쏘아대면서 반목했고 지금은 두 부락으로 나뉘여져 살고있는것이다.
두 부락사이에 지경으로 표시하는 돌각담이 쌓여져있다.
적봉의 화산돌을 주어 쌓은 담이였다.
담은, 어찌나 길었던지 그 길이를 재일수 없었다.
모두들 남하부락을 끼고 흐르는 강만큼 길거라고 했다.
담은, 어찌나 높았던지 그 높이를 재기 어려웠다. 모두들 적봉의 반높이는 될거라고 했다.
그 담을 사람들은 《곡성(哭城)》이라 부른다. 두 부락에서 상잔의 변을 일으키면서 무수히 죽어간 령혼들이 그 담부근에 묻혀 밤이면 음울한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화신무용단은 적봉기슭에 화산석으로 지은 돌집에 있었다. 불춤을 배워주는 그곳을 가리켜 부락에서는《화택(火宅)》이라 하였다.

화신제를 치른 이튿날, 진은 화산석으로 계단을 깐 산길을 치달아 《화택》으로 찾아갔다.
멀리서부터 북소리가 들려왔다. 《화택》의 볕바른 마당복판에 석등(石燈)이 세워져있었고 그 등을 둘러싸고서 화동들이 맴을 돌며 춤기량을 익히고있다.

절박한 마음으로 다가서는 진의 앞을 개 한마리가 뛰쳐나와 막았다. 불청객인 진을 바라고 컹컹 짖어댔다. 개의 입에서 불똥이 튀였다. 화신제날 보았던 불개였다. 온몸통에 붉은 색 털이 뒤덮인것이 인상적이다.
가락맞게 울리던 북소리가 뚝 멎었다. 집앞 평상(平床)에 앉아있던 무자 명이 몸을 일으켰다.

―불독아!

명의 부름을 들은 개가 그의 발치에 가 공손하게 쪼그리고앉았다.
긴 눈섭을 날리며 명은 진을 지켜보았다.

―뭐냐 너?
진이 명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

―진이라고 하옵니다. 화동이 되고픔다. 거두어주십쇼.

명의 긴 눈섭이 움찔했다. 조금은 놀란듯한 얼굴로 진을 보았다.

―너 누구의 문하(門下)였더냐?
―아직 스승이 없슴다.
―그럼 학당패(學堂牌)를 내보여라.

《학당패》는 부락에서 학당을 나온 사람들에게 발급하는 징표였다.

―패가 없슴다. 공부도 못한 놈임다.

큭큭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화동들의 눈길이 일제히 진을 향해 쏠려있다. 별 한심한 놈 다 보겠다는 눈길들이였다. 명이 이마살을 모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가라! 여긴 거지를 수용하는 곳도 활량이나 키우는 곳도 아니어늘.

명이 짧게 뱉고나서《화택》으로 들어가버렸다. 화동들이 북채를 잡았고 북소리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진이 성큼성큼 춤의 대오를 향해 다가갔다. 어느 화동의 손에서 북과 채를 앗아냈다. 애들이 진에게서 북을 되빼앗아내려고 우르르 몰려들었다. 뜰에서 작지 않은 소요가 일었다. 덮쳐드는 애들에게서 잽싸게 빠져나와 진이 성큼 평상우에 뛰여올랐다.

―아니 저 새끼가?!

스승만이 앉을수 있는 평상우에 흙발로 뛰여오르는 진을 보고 격노했으나 다음 순간 애들은 그 자리에 주춤 서버리고말았다.
북소리 울리며 진이 춤을 추기 시작했던것이다. 평상을 무대로 삼아 진이 춤을 추었다. 그리고 화동들이 일제히 눈확을 키웠다. 그네들이 일년 사계절 배워도 익히지 못한 춤사위가 진에게서 그럴듯하게 지어지고있었다.
《화택》의 문이 삐걱 열렸다. 명이 다시 나왔다. 내심 놀라워하며 물었다.

―어데서 배운 춤이냐?

숨을 고르며 진이 대답했다.

―어제 무자님이 추는 모습을 보았더랬슴다.

명의 긴 눈섭이 다시한번 움찔했다.

족장을 위시하여 마을의 장로 10명이 적봉의 동굴속 석상(石卓)을 둘러싸고 모여앉았다.
동굴에는 화신상(火神像)이 모셔져있었고 그앞의 화당에는 불이 이글거리고있다.
중대한 일을 결정할 때마다 장로들은 불씨가 모셔져있는 동굴속에 모이곤 했고 부락의 대소사는 모두 이들에 의해 결정되곤 했다. 부락의 운명을 손에 쥐고있는 터주대감들의 발치에 무자 명이 두손을 모으고 서있다. 족장의 미심쩍은 눈길이 명의 얼굴에 가 머물렀다. 명이 다시한번 간청했다.

―크게 일 불은 불씨에서 알아볼수 있습니다. 나 무자의 눈썰미를 믿어주십시오.

족장이 크악! 큰소리로 가래침을 뱉고나서 입을 열었다.

―자. 투석(投石)을 시작하게나.

장로들이 부스럭거리며 저마다 옷소매속에 무언가 꺼냈다. 돌멩이였다. 적봉에서 주어온 붉은 돌멩이와 강에서 주어온 흰돌멩이였다. 붉은 돌멩이는 긍정을 표하고 흰돌멩이는 부정을 표하는 뜻이였다. 달라당! 달라당! 석상우에 돌멩이를 놓는 소리가 동굴속에서 공명이 되여 울렸다. 족장이 석상우에 놓여진 돌멩이를 헤아리고나서 목소리를 가다듬고 선포했다.

―학당패가 없는 진을 무용단에 받아들이는 문제 최종결재요. 백석(白石)이 4개, 홍석(紅石)이 6개, 채택되였소!

명의 얼굴에 미소가 피여올랐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진이 명을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명이 진에게 북 하나와 북채 하나를 넘겨주었다. 화동 하나가 다가와 북채끝에 붉은 술을 달아주었다. 명이 북채를 들어보였다.

―이곳에서 북채를 가리켜 뭐라 하는지 아느냐? 몽척(夢尺)이라 한다. 이제 이걸 잡고 네 꿈을 펼쳐보아라.
진은 북과 북채를 가슴에 꼭 품었다. 유난히 빛나는 눈으로 스승을 쳐다보았고 스승의 머리우로 솟아있는 적봉을 쳐다보았다.
적봉은 소소리 높았다.
적봉이 품고있는 들을 굽어보았다.
들은 무연하게 넓었다.

들에는 화경(火耕)이 시작이였다. 화전농들이 놓은 불이 들을 메우며 번져나가고있었다. 불길은 봄을 맞아 놀란듯 피여난 들꽃처럼 온 벌판을 수놓고있었다. 조무래기들이 떼를 지어 불을 쫓으며 연기를 쫓으며 소리지르고있었다.

―불아. 쥐를 그을러라. 불아, 쥐를 그을러라.

진은 마음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있던 짐승 한마리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키는것을 느꼈다. 한껏 충일된 가슴으로 그 아이들처럼 진도 목청 깨져라 소리 질렀다.

―내가 화동이 되였어요!
―내가 화동이 되였어요!


진, 불앞에 맹세하다



―내 몸을 움직여서 내 몸을 도구로써 연주할수 있는 춤, 그것처럼 직접적이고 감동적인 예술이 어데 있겠느냐? 우리의 육체에 더하여 우리의 몸속에 령혼도 담고있으니 몸과 혼이 하나가 될 때까지 춤을 추어라.

스승의 급훈을 받으며 진은 장대한 래일에로 열린 길의 첫 자국을 떼였다.
진의 어머니가 화신제날에만 먹는, 마른 실고추를 넣은 전(煎)을 가득 부쳐가지고 《화택》으로 찾아왔다. 무자 명이 나와 어머니에게서 떡을 담은 그릇을 받았다.

―애가 만나지 않겠답니다.

어머니가 머리를 후딱 쳐들었다. 놀란 눈매를 지어졌다.

―3년후, 진짜 춤군으로 이름을 닦은뒤 떳떳하게 어머님을 만나겠대요. 참, 옹골찬 애를 두셨군요.

어머니가 옷소매로 뜨거워나는 눈시울을 찍어눌렀다.

―알겠습니다. 애를 잘 부탁합니다. 어떡하나 애를 선생님 같은 큰 춤군으로 만들어주십쇼.
어머니는 《화택》을 향해 눈길 한번 주고나서 돌계단을 따라 산을 내렸다.

《화택》의 창문틈으로 진은 어머니의 사라지는 뒤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머니의 따뜻한 온기가 묻어있는 떡그릇을 든채 배여나온 물멀기를 지우려 눈을 슴벅이였다.

―기다려주십쇼 오마니.

누군가 그런 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낮에 진의 북채에 붉은 술을 달아주던 화동이였다. 화동이 진을 향해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나 교(狡)라고 해.

진도 얼른 가슴에 손을 얹었다.

―나 진.
 

며칠후, 진은 새로 사귄 친구 교를 따라 적봉의 동굴을 찾았다. 산중턱에 있는 동굴로 오르는 계단은 무척 좁고 가파로왔다. 그 계단을 두사람은 헐씨금거리며 올랐다. 그들의 뒤를 녀자애 하나가 바싹 쫓아왔다. 그뒤를 불독이도 따랐다.

―야 교! 교오, 어델 가는거냐? 새로 온 아이를 끌고?

무용단에서 함께 춤하는 녀자애 염(艶)이였다. 부모한테 버림받고 길에서 걸식하는걸 무자 명이 불쌍해 데려다 밥먹여주며 춤군으로 키운 애였다. 염의 부름을 듣는척도 않고 교는 진을 끌고 곧추 동굴속으로 들어갔다.
화당에서는 언제나와 같이 불이 타오르고있었다. 이글거리는 불이 둘이의 얼굴을 발갛게 비추었다. 불을 만난 불독이 화당을 헤집으며 한입 베여 물었다. 따가워 흥흥거리며 불덩이를 삼켰다. 진과 교는 화신상앞에 무릎을 꿇었다. 교가 입을 열었다.

―화신이시여 증명해주옵시사. 나 교와.
교가 팔꿈치로 진을 건드렸다. 진이 바삐 말을 받았다.

―나 진은…

―춤에 생을 바치기로 일심을 먹었사옵니다. 신께서 우리의 행보를 지켜주시고 축복해주시옵소서.
말을 마치고나서 교가 화당가에 흩어진 재를 모아담고 굴 천정의 종유석(鐘乳石)을 타고 흘러내리는 락수를 받았다.

―야, 니들 대체 뭐 하고있는거냐?

뒤미처 따라온 염이 그들의 짓거리를 지켜보며 물었다. 교가 재를 삭힌 물을 단숨에 들이마셨다. 진도 그의 본을 내여 재를 락수물에 삭혀 단숨에 들이마셨다. 가슴에 손을 얹고 이구동성으로 서약했다.

―신께서 우리의 행보를 지켜주시옵소서!

그제야 영문을 알아낸 염의 얼굴에 감동의 빛이 머물렀다. 염도 그들 곁에 무릎을 꿇었다. 손을 가슴언저리에 얹고 따라서 서약했다.

―신께서 우리의 행보를 지켜주시옵소서!
 
 

  <계속>

ㅓㅎ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86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86 [자치주55돌특집] 소설 조선족이민사 (3) 2007-09-02 50 3306
85 [자치주55돌특집] 소설 조선족이민사 (2) 2007-09-02 46 4112
84 [자치주55돐특집] 소설 조선족이민사 (1) 2007-09-02 66 3411
83 불의 제전 (3) 2007-06-29 52 3339
82 불의 제전 (2) 2007-06-29 73 2835
81 불의 제전 (1) 2007-06-29 73 3713
80 김혁 문학블로그 2007-06-29 73 3042
79 천재죽이기 (1) 2007-06-29 73 4772
78 마마꽃,응달에 피다 2007-06-29 73 5056
77 천재죽이기 (2) 2007-06-29 73 4344
76 닭과 함께 춤을 2007-06-29 73 3117
75 해장탕의 지혜 2007-06-29 73 2960
74 봄날의 마라손 2007-06-29 73 3045
73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2007-06-29 73 2991
72 이발과 혀 2007-06-29 73 2981
71 닭 울음소리 한가닥 들을작시면 2007-06-29 73 3571
70 [수필]달마도 그리기 2007-06-29 73 3150
69 상생의 빛 2007-06-29 73 3406
68 엘리베이터 타기 2007-06-29 73 2945
67 [수필]아빠의 하늘 2007-06-29 73 3526
66 [칼럼]잠수함과 토끼 2007-06-29 73 2807
65 [잡문]호랑이 호랑이 빨간 수수깡 2007-06-29 73 3639
64 [수필]채플린과 다시 만나다 2007-06-29 73 3072
63 [독서만필]무라카미 하루키를 읽다 2007-06-29 73 3053
62 리얼하게 그리고 치렬하게 2007-06-29 73 3604
61 천년의 향기 2007-06-29 73 3355
60 월드컵단상(2) 인저리 타임 2007-06-29 73 2774
59 월드컵단상(3) 축구를 모르는 리더 2007-06-29 73 2849
58 월드컵단상(4) 훌리건과 붉은 악마 2007-06-29 73 2850
57 월드컵단상(5) 미스터 호나우드 2007-06-29 73 3346
56 월드컵단상(6) 잔치는 끝났다 2007-06-29 73 2960
55 미니홈을 열며 2007-06-29 73 2834
54 독도를 가다 2007-06-29 73 3398
53 귀거래사(歸去來辭) 2007-06-29 73 3119
52 독서하는 민족 2007-06-29 73 2942
51 어떤 기우(杞憂) 2007-06-29 73 3269
50 불의 제전 (1) 2007-06-29 73 2855
49 불의 제전 (3) 2007-06-29 73 3252
48 불의 제전 (2) 2007-06-29 73 3254
47 2005년 연변문학 윤동주 문학상 심사평 2007-06-29 73 2892
‹처음  이전 1 2 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