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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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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주55돌특집] 소설 조선족이민사 (2)
2007년 06월 29일 05시 54분  조회:3614  추천:73  작성자: 김혁
. 한 부의 소설로 읽는 중국조선족 이민사 . 
 

조모의 傳說 (2)

 

김 혁

 
 

우물가는 애들의 둘도 없는 놀이터였다.

<<머리칼 떨구지 마라. 침 흘려넣지 마라. 부정탈라.>>

어른네들이 백당부했지만
우물가에는

야청옷을 입고
쥐꼬리만한 머리태를 기른
쌍가매네 또래들이 모여 놀군 했다.

그때 집집마다에 서는 바퀴성화가 극성이였다.
어른들은 롱조로 바퀴장례를 치러주면 바퀴가 없어진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바퀴장례를 치렀다.
파지로 고깔상모를 만들었고 나무가지로 걸채?만들었다.
걸채의 앞과 뒤를 포수네 아들과 훈장네 아들이 들고 사당패집 아들은 앞에서 어른들의 본을 내여 아이고데고 호곡소리를 내였다.
그뒤를 쌍가매가 졸졸 묻어 다녔다.
피는 속일수 없는 법, 사당패의 혼줄을 타고 태여났던지 녀석은 어른들의 목돌림을 심통히 받아서 곡조를 제법 잘 넘겼다.

북망산천 어디메뇨
저기 저산 북망일세
내 집이 어디메뇨
무덤이 내집이로구나

그래도 바퀴는 없어지지 않았다.
밤이 되면 집 뒤의 수풀속에서는 귀신불이 날아 다녔다.

<귀신불이 아이다. 가둑낭기(나무)나 도토리낭기 썩으면서 그 썩박이 뿌리가 밤이 되면 파란 빛을 뿜는게다.>

얼굴바닥이 계집애들처럼 하얀 훈장네 아들애가 열심히 해석해 주었지만 그 귀신불이 못내 무섭기만 한 쌍가매는 밤중이면 오줌누려도 못나갈 지경이였다.
사당패집 애가 돌배 세 개를 들고나와 누가 귀신불 떠올수 있겠냐고 내기를 걸었다. 얼굴이 구운 밤돌처럼 반질반질한 박포수네 애가 나섰다. 썩박나무가지를 들고와 애들앞에 놓았다. 썩박나무에서 푸른 불들이 눈부시게 끓어 번졌다. 쌍가매는 우악 혼절할듯한 소릴 지르며 집으로 뛰여들어가 버렸다.

겨울이 오면 연놀이를 했다.
사당패집 아들이 한족마을에 가서 백지를 사 가지고 온다.
훈장네 아들이 연을 만든다. 수수대목을 갈라 다듬고 종이를 접어 자르고 어머니의 반짇고리에서 몰래 가져온 무명실로 단단히 걸어 매여 연을 만든다.
포수네 아들은 사금파리 조각들을 주어와서는 김치독 누르는 단단한 몽돌로 사금파리들을 산산이 부순다. 사금파리들은 몽돌에 맞아 사방으로 흩어지며 눈부신 빛을 발한다.
연체에 종이를 바르고 양 옆과 가운데에 꼬리를 단다. 연줄이 견디도록 사금파리 가루를 풀에 섞어 발라서 날을 세운다.
드디여
장방형에 십자살을 붙힌 왕연이 형체를 드러낸다.
가슴이 철렁하도록 맑은 얼음장같은 하늘.
문풍지 소리를 내며 얼레에서 풀리는 은빛 연줄을 타고 연이 오른다.
연은 자유롭게 간도벌의 대공(大空)을 누볐다. 

 



머슴애들은 연싸움에 해가는줄을 몰랐다. 쌍가매가 곁에서 지켜보면 애들은 더구나 신나 한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넌들넌들한 코물을 흡흡 들이마시며 머슴애들은 얼레를 한껏 풀고 활개를 크게 벌려 힘차게 잡아 당긴다.
쌍가매는 해빛에 눈이 부셔 찡긋거리면서도 오래도록 젖힌 목고개가 아파 목을 쩔레 쩔레 흔들면서도 계속 하늘을 쳐다본다. 맞바람을 탄 연은 쌍가매의 머리위 높은곳으로부터 위용을 떨치면서 서서히 다가온다. 머리우를 아슬아슬하게 스쳐지나기도 한다. 얼레가 감겼다 풀렸다하는 소리속에 연은 곧장 하늘로 날아 올랐다가는 대지를 향하여 독수리처럼 나래를 꺼수수 펴고 내려오다가 땅에 닿기전에 연줄을 풀어주면 다시 연머리는 하늘로 향한다.
연줄과 연줄이 부딪히는 소리가 우물가에 가득하다.
사금파리를 잔뜩 먹인 연줄의 얽힘속에 누군가의 줄 끊긴 연이 팔랑거리다 몸체를 흔들며 떨어져 나간다.
박포수아들의 연이다.
훈장의 아들의 연은 하늘로 우뚝 솟구쳤다가는 백학처럼 멀리 사라져 간다.
사당패집아들의 연은 날고 날아 우물가에 심은 버드나무에 가 걸렸다.
애들이 버드나무를 향해 우르르 몰려 갔다. 연이 갖고 싶은 쌍가매는 맨 앞에서 뛰여 갔다. 박포수네 애가 잽싸게 나무에 올라 연을 내리워 주었다. 가까이 까지 달려온 쌍가매에게 연을 넘겨주다 포수의 아들이 불현듯 쌍가매의 머리결을 함부로 만졌다.

<<쌍가매는 스나(남자)가 둘이래>>

내숭기 많은 훈장네 아들이나 행위가 애매한 사당패집 아들에 비해 박포수의 아들은 그 성미가 숭글숭글했다.
쌍가매는 부끄러운 나머지 연을 받아들고 정신없이 집으로 뛰여들어 갔다. 그 서슬에 문 짬에 끼여 연이 찢어져 있었다. 쌍가매는 그저 그 연이 아까울 뿐이였다. 동네 녀자애들중에서 발군(拔群)의 미모를 가진 처녀애로 자라고 있는 그였지만 자신의 농익어가는 몸의 싱그러움과 그 몸이 바라는 꿈과 갈구를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쌍가매였다.


현성에 사숙이 섰다.
공부할수 없는 동포들을 계몽시키기위하여 사숙의 교원들은 마을을 돌며 야학을 열었다.
야학에서는 신문화를 적극 전수했고 어려운 살림들에 도움을 주고저 양잠, 양봉업도 곁들어 배워 주었다.
구학공부 5년에 <<대학>>, <<론어>>를 읽었다는 리훈장이 이곳의 교원직을 맡게 되였다. 물푸레 회초리를 들고 리훈장은 엄하게 아이들을 대했다. 그런 훈장에게 마을사람들은 아이를 시름놓고 맡겼고 가을이면 <<교원쌀>>을 내주군 했다.
작으나마 공터가 있는 우물가가 교실이였다.
리훈장의 열성적인 동원에 마을사람들은 한사람 두사람 야학에 모여 들었다.
옹색한 김서방도 자기집에서 애지중지하던 남포등을 가져와 우물가의 버드나무에 내걸었다.
나중에는 우직한 박포수마저 야학에 나왔고 그 청동방울 흔들어대는것 같은 소리로 훈장에게서 식자본을 따라읽었다.


가을볕과 쓰르라미의 울음소리속에 들판의 곡물들이 빛나게 익어갔고 마을사람들은 사당패집에서 울려나오는 흥겨운 노래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어얼싸 좋구나 농사한철 해보세
어얼싸 좋은데 무슨 농사 해볼가
어얼싸 좋으니 조농사나 해보세
옥토금토 량전에 어떤것을 뿌릴가

만알박이 왕옥조 느실느실 방치조
천리타향 강남콩 오동총백 비단콩
황금보화 황참외 개똥전에 떡참외
어서빨리 박으세 어서빨리 놓으세...


이렇게 아슴한 현기증같은 풍수의 희열에 젖었는 그들앞에 느닷없이 누군가가 나타났다.
중국사람 하나가 살쾡이 처럼 나타났다.
진화가 덜된 원숭이 같은 상판을 가진 그 사람은 발목을 덮는 남색 호복을 입고 있었다.
그 사람의 곁에 화승총을 거꾸로 멘 사람들이 묻어 서있었고 발치에서 갓난 송아지만큼 트대 큰 개가 혀를 빼물고 있었다.
황둥개는 황모꼬리를 흔들며 흰옷 입은 마을사람들을 보고 사납게 짖어 댔다.
어흠 어흠 헛목을 다듬고 나서 그 호복차림의 사람은 마을사람들이 도무지 알아 못들을 말마디들을 사금파리 긋는듯한 거북살스런 소리에 담아 질렀다.
그 귀신 씨나락 까먹는듯한 사금파리 긋는 소리를 훈장이 간신히 알아듣고 해석한 결과 동네사람들이 부쳐 먹고있는 땅은 이 왕씨성을 가진 사람의 땅이라는 것이였다.
마을사람들은 금세 덫을 맞은 듯 벙벙해졌다. 

 

 

* 당시 청나라 사람들의 모습

 
<<바위돌은 뉘기 들구 가재는 뉘기 먹는담둥?>>
<<곁방살이 큰방 차지 할려문 주인집양반 옴치고 있겠수? 남의 땅 함부로 뚜져놨으니 별쉬 없지비. 후유- >>

바람이 들이닥친 도적떼처럼 마을을 한바퀴 저었다,
한결 결이 세진 가을바람에 마을 사람들은 몸을 으스스 떨었다.

만만치 않은 서슬로 왕씨가 돌아간뒤 몇 해간 마을사람들이 손톱눈 다슳게 사득판을 번져 만든 옥답은 일조일석에 왕씨네 땅으로 되고 말았다.
마을들은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왕씨와 같은 중국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 그들은 산마루나 골짜기와 시냇물을 경계로 토지점유세를 납주하면서 이민들을 받아들였다. 동네사람들은 이런 땅주인들을 <<지팡이(地方)>>이라고 했고 중국사람들은 월강해 온 사람들을 개간민 이라하여 <<컨민(墾民)>>이라고 불렀다.

그날 감때사납게 마을사람들에게 으름장을 놓고 나서 왕씨는 목이 갈하다며 우물물을 맛보았다. <<호우(好)!>>하고 엄지를 뽑아들며 감탄을 련발했다.

<<기럼 이 우물꺼정두 지팡이네 우물이 된담둥?>>

물을 긷던 쌍가매 어머니의 얼굴에 수심이 비껴들었다.

강 건너 웃마을, 자두나무가 빽빽히 섰는 산더기 앞에 고래등같은 왕지팡네 기와집이 있었다. 왕지팡네 땅은 어찌나 넓은지 그가 하루동안 말을 타고 돌아다녀도 남의 땅은 밟지 않는다고 했다. 린근에서 내놓고 건가래를 뗄 넉넉한 재물과 세도가 있었던 왕지팡은 집에 사병(私兵)까지 네댓명 기르고 있었다.
그 위세에 눌려 <<컨민>>들은 가을에 가서 벼수확의 6할을 왕지팡네 집에 바쳐야 했다. 수확을 초곡채로 밭에서 왕지팡네 집 마당에 실어다 부리고 타작하여 알곡을 뒤주에 까지 넣어주었다. 그러고 나면 한해 식량이 태부족 이였다. 벼농사를 짓고도 입쌀밥을 먹지 못하고 왕지팡네 집에서 조며 옥수수며를 빌어먹었다.

자기 땅을 소작 지으려면 이곳에 입적을 해야 했다. 청나라에 입적한 <<귀화인>>들은 토지소유권을 가질수 있었다. 허나 그러자면 반드시 상투를 자르고 만인(滿人)들이 입는 호복을 입어야 했다.
<<치발역복(雉髮易服)>>을 해야 했다. 

 

 

* 청나라에 입적한 <<귀화인>>들은
상투를 자르고  그들이 입는 호복을 입어야  했다.
즉  <<치발역복(雉髮易服)>>을 해야 했다



<<무시게? 상튀를 베라구? 아이 된다! 모가지를 베두 상튀는 못 베!>>

그것이 싫어져 박포수가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질렀다. 성미가 불같은 포수였다. 금강산 산발을 타며 나는 짐승을 쏘아 잡고 뛰는 짐승을 때려 잡았다는 그다. <<뛰는 범의 꽁댕이를 잡았다>>고는 하지만 이곳에 온 뒤로 그가 짐승을 쏘는 것을 누구도 보지 못했다. 그의 집 바람벽에 걸려 있는 여직껏 한번도 쏘아못본 화승총이 박포수의 무용담을 어렴풋이 나마 증언해주는 듯 했다.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지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을에서 입적하는 귀화인들이 슬그머니 불어갔다.
동네에서는 사당패집에서 맨 먼저 머리채를 잘랐다.
어려서 사당패 꽹가리수가 되여 조선팔도를 메주밟듯하면서 산전수전 겪었다는 김씨는 매사에서 남보다 빠른 순발력을 보이고 있었다.
은전 4잎을 바치고 사당패집에서는 뜻대로 귀화증을 타 가질수 있었다. 그리고 한복 우에 앞가슴 한쪽 옆으로 옷깃을 여미는 남색 호복을 걸쳤다. 그후로 박포수는 사당패 김씨를 보는척도 않았다. 그때는 사내애들도 머리채를 길렀는데 머리를 깍은 뒤 사당패집 아이는 동네 아이들 보기 부끄러워 밖에 나오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은 왕지팡네 마소짚을 썰어 주고 륜번으로 우물물을 길어다 주어야 했다. 하필이면 꼭 멀리의 우물물을 길어먹으면서 생색을 내는 왕지팡이였다. 어른들은 해질녁까지 밭에 매여 있기에 그 물을 집의 아이들이 길어다주군 했다. 왕지팡네 아구리가 유난히도 넓은 중국식 독에 물을 길어 채우자면 대여섯 축에 반날 푼은 걸려야 했다.

쌍가매네는 라병환자인 오빠를 두었는지라 물을 쌍가매가 길어 야 했다. 쌍가매는 물을 긷기가 싫어났다. 솜털이 곤두서도록 지겨웠다. 웬지 흰옷 입은 사람만 보면 감때사납게 짖는 그 집 개가 무서웠다. 작식법이 판 다른 야릇한 음식냄새도 싫었다. 지어 길상을 빌어 문전에 단 붉은 등롱에도 어떤 괴기가 서려있는 듯 음산하게 보였다. 웃마을로 가려면 피나무를 결어 강을 가로지른 외나무다리를 건너야 했다. 물초롱을 이고 살얼음우를 걷듯 다리를 넘나들려니 정수리가 빠개지는 듯 했고 몇 초롱 긷고 나면 다시 두레박을 던져 넣을 힘도 없이 사맥이 나른하였다. 그보다도 높은 중국식온돌에 앉아 볶은 땅콩에 쏘주를 마시며 물긷는 자기에게 은근한 눈촉을 꽂는 왕지팡네 아들이 보기 싫었다. 눈섭가운데 먹사마귀가 있어 눈이 세 개로 보이는 녀석이였다.
어느날인가 피나무다리를 위태롭게 건느다 물초롱을 강물에 처박고 말았고 그 자리에 퍼질러 앉아 섧게 우는 쌍가매의 모습이 박포수의 아들의 눈에 띄였다. 그날부터 박포수의 아들이 쌍가매대신 물을 길어주었다. 포수의 아들은 왕지팡네 집으로 길어가는 물에 침을 뱉고 손가락으로 휘휘젓어 놓군 했다.

<<똥춤이나 먹어라. 지팡이 되눔새끼들>>

그 유아같은 발상의 롱기에 쌍가매는 나직이 웃었다. 물초롱을 량손에 들고 지축자축 활개치며 걸어가는 포수아들의 씨름선수같이 덩치 큰 뒤모습을 감격의 눈매로 쫓군 했다.
훈장네 아들 사당패집 아들 포수네 아들 셋은 해종일 함께 뒹구는 둘도 없는 불알친구들이 였다. 그러던 셋이 어느날인가는 어쩌구려 살멱을 휘여잡고 싸움이 벌어졌다.

<<누기 쌍가매 신랑재 할래? 재껴서 이기는 사람이 쌍가매 신랑이다.>>

쌍가매에게로 몰부어지는 동네 총각들의 은근한 눈길과 마음들을 기수채고 성미가 우직한 포수의 아들이 내기를 걸었던것이다.
훈장의 아들은 <<이런 도깨비짓 안한다. 다른 내기 하자. 산수 풀든 연 날리든>>하면서 반대표를 들었고 사당패집 아들이 주춤이다 나섰다.
하여 우물가 공터에서 씨름내기가 벌어졌는데 누가 쌍가매의 <<신랑>>하나 승부를 가르기전에 음습한 웃음소리가 그들의 발목에 딴죽을 걸어 왔다.

<<놀고 있네. 꼬리방즈(高麗邦子) 새끼들>>

량미간에 먹사마귀가 난 왕지팡의 아들이였다. 역시 체대좋은 <<먹사마귀>>는 그들의 내기를 무질러 버리고 자기가 박포수의 아들과 씨름내기를 걸었다.

걸때좋은 포수의 아들은 씨름에 능했다. 배지기 자반뒤집기 왼가랭이 들어 엎기... 명수였다.
<<으잇샤!>>하는 포수아들의 먹임소리에 지팡이네 도련님이 엉덩방아를 찧으며 나가 떨어졌다. 입에 흙을 가득 문 <<먹사마귀>>가 꿈질이며 일어섰다. 실떡거리며 다시 한번 달려 들었다. 이번에는 웬지 박포수의 아들이 모재비로 나가 넘어졌다. 사타구니를 손으로 움켜 잡고 신음을 흘리며 뒹굴었다. 지팡이네 도련님이 박포수 아들의 불알망태기를 어 넘겨 뜨렸던것이다.

<<부정이다! 엉터리다! 다시 해라! 다시 >>

상대가 자기네들의 명줄을 잡아쥐고 있는 지팡이네 집 도련님이라는것도 잊은채 그들은 격노에 몸을 떨며 다시 씨름을 붙혔다. 허나 곁에서 황둥개가 날쳐대고 무지막지한 사병들도 합세를 한지라 포수의 아들은 짐짓 져주어야 했고 몸피 무거운 지팡의 아들에게 깔려 끝내는 쇄골 하나를 분질러 먹고 말았다.

쌍가매는 골절된데 좋다는 약초인 당골을 찾으러 산발을 헤맸다. 야생초의 독향이 서린 몸으로 날이 어둑해서야 돌아 왔다.
당골을 들고 찾아 온 그 나무뿌리에 갈퀸 손을 포수의 아들이 와락 부여잡았다. 명주고름끈같이 말끈거리는 손이 쥐여지자 포수의 아들은 목덜미를 벌겋게 붉히며 외려 자기가 손을 놓았다.
포수의 아들에게서 쌍가매는 늘 화덕처럼 뜨거운 열기를 느낄수 있었다. 싫지않은 그손을 뿌리치고 나오며 쌍가매는 할랑이는 가슴을 억누르지 못해 했다.
태동하는 심기를 감추련듯 물초롱을 찾아들고 우물가에 나섰다.
우물가 주위에 민들레꽃이 놀란듯 활짝 피여 있었다.
우물에 비낀 쌍가매의 얼굴이 홍시처럼 익어있었다.



그런데 봄물 오른 풀잎사귀처럼 피여 오르는 마음을 안추리기도 전에 쌍가매의 아버지가 엉뚱한 쪽으로 고부라졌다.
쌍가매를 왕지팡네 아들에게 주려 작심한것이였다.

<<삼굽집 나그네 눈에 콩까풀 씌웠담둥? 딸자슥 겨우 자래워 놓고 하필이문 왕지팡네 집이요?? >>

동네에서는 그가 실성한거라고 의논이 자자 했다. 사실은 쌍가매네 집 장손이였던 오빠의 라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쌍가매의 아버지가 왕지팡에게서 리자돈을 꾸었던것이다. 쌍가매네 집에서 부득이 고향을 버린것도 모두 라병환자인 오빠를 위해서 였다. 안가겠다고 함지울음을 터뜨리는 쌍가매를 보고 안색이 엎어지며 아버지가 물바가지를 쥐여 뿌렸다.

<<쿨룩 쿨룩... 쥑일 종간나새끼! 울긴 어째 울고 그래냐? 다같이 죽을순 없재이냐? 쿨룩... 니 같은 종간나
들 두어봤대야 문디(문둥이) 아들만 하겠냐. 쿨룩 쿨룩>>

해소기침을 토하면서 아버지는 자르듯 말했고 아버지의 고집을 누구도 말려 내지 못했다.

왕지팡네 집에서 혼수감으로 쌀도 보내왔고 면포도 보내왔다. 그날 저녁 쌍가매는 잠들지 못하고 만감으로 속을 끓였다. 잠들지 못하고있는 아버지의 강그라지는것 같은 기침소리가 주는 신산스러운 분위기를 못이겨 쌍가매는 울면서 집을 나섰다. 그치지못한 울음의 여운이 목구멍으로 딸국질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쌍가매는 곧추 우물가로 다가갔다.
청렬한 물내움이 풍겨 올라왔다.
우물물에는 송편같은 열엿새 만월이 비껴 야울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 쌍가매의 얼굴이 부옇게 비껴있었다. 주체할길없는 눈물이 뚤렁뚤렁 우물에 떨어져 내렸다. 우물속의 달그림자가 순간에 망가져 버렸다.
우물가에서 우물속의 달을 들여다 보며 쌍가매는 날이 새도록 울었다.
검정 통치마처럼 질긴 밤은 걷히기 시작했고 달은 우물속에서 찰랑이다가 첫닭이 배고픈 울음을 울때 품속에 갈무리해버린 거울처럼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쌍가매는 치마폭을 뒤집어 쓰고 우물에 뛰여들었다.

쌍가매를 구해준 사람은 훈장네 집 아들이였다.
평소에 계집애처럼 양순하기만 하던 그가 서슴않고 우물에 뛰여들어 쌍가매를 구해 냈다고 했다.

<<어째 날 살려놨소. 지팡이눔께 시집가는 꼴 기에 보자구 그랬소>>

개복한 쌍가매는 억장이 무너지게 울었다. 그곁에서 화근내나는 한숨을 짓는 훈장아들의 안경알 넘어로 이슬같은것이 반짝이고 있었다.
쌍가매의 아버지는 아무말도 못했고 터진 그녀의 이마빡에 장을 떼여 붙여 주며 쌍가매 어머니의 목소리가 걷잡을수 없이 높아졌다.

<<이 숭악한 종간나야. 오래비 살린다고 크게 생각해 봐라. 문디라도 울집 장손이 아이등가.>>

쌍가매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어머니의 짐짐하게 짓무른 눈꼬리로 눈물이 배여 나오고 있었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어머니는 물초롱을 들고 집을 나섰다. 우물물을 길어서는 삼구덩이를 덮은 불에 달구어진 돌에 물을 뿌렸다.
돌에서는 허연김이 씨익- 뿜겨 올랐다.
한초롱
두초롱
세초롱,
어머니의 마음처럼 돌우에서는 허연 단김이 뿜겨져 오르고 있었다.
삼이 익자 어머니는 다시 우물가로 나갔다. 삽짝문을 여미고 돌아선 순간 부터 어머니는 두손을 가슴앞에 여며 쥐였다.
우물물을 길어 대접에 붓고
대접을 우물가장자리에 얹어 놓았다.
누구에게 빌어야 하는지 어떻게 빌어야 하는지 생각나지 않았지만 누군가 그랬던 기억만으로 마른 손 서벅이며 비손질을 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삼신님 비나이다...
딸애가 진땅을 디디지 않고 마른 땅만 디디기를 빌고 빌었다. 기원을 마치고 물을 길어 딸의 몸을 깨끗이 씻겨주었다.
등을 밀다말고 어머니가 드디여 참지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판소리같은 소리로 락루를 하셨다.

<<하이고...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짓고 났길래 이럭케 제 자슥에게 못할짓을 하능가>>

그날의 그 아픔이 나의 할머니의 쌍가매가 틀고앉은 이마 아래에 지울수없는 흉터로 남아 있다.

풀죽은 잠자리가 날개 무거워 힘없이 날으던 어느 가을날, 쌍가매는 종내는 왕지팡네 집으로 시집가고 말았다.
쌍가매는 처음으로 이마의 잔털을 밀고 화장을 하고 새옷을 입었다. 단장을 시켜주는 어미에게 몸을 맡기고 있는 그의 얼굴은 무표정하였다. 체온없는 가면구같아 보였다.
붉은색비단옷을 입고 붉은 비단신을 신고 머리에는 붉은 비단보를 뒤집어 썼다.


신부를 맞으러 사인교에 악대까지 동원되였다. 쇄납이라는 중국악기가 귀청을 따갑게 울렸다.
무서리가 깔린 가슴을 안고 쌍가매는 사인교에 올랐다. 사인교가 휘청거렸다. 사인교의 량켠에 작은 뙤창문이 뚫려 있었다. 머리에 쓴 비단보를 들추고 뙤창의 문발귀를 들추고 떠나면서 쌍가매는 동네를 다시금 돌아보았다. 우물가에 막막하고 허술한 표정으로 섰는 동네사람들이 보였다. 부질없이 안경테를 자꾸만 추어올리는 훈장네 아들이 보였고 호복의 팔소매에 두손을 집어넣고 피짚먹은 망아지처럼 눈만 끔벅이고 있는 염쟁이네 아들이 보였다.

<<누이야, 누이야아!->>

집쪽에서 허파를 긁는듯한 갈린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물러빠진 손가락으로 창턱을 부여잡고 봉창으로 얼굴을 내민채 오빠가 거위처럼 한스런 소리를 꺽꺽 내고 있었다.
쇄납의 귀청을 빼는듯한 소리속에 밀물에 밀리는 나루배처럼 사인교는 표표히 우물이 있는 마을을 떠났다.
쌍가매는 체념한듯 그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외나무다리가 걸터있는 내가에 이르렀을때 홀연 쇄납소리가 뚝 멎었고 사인교가 멈춰섰다. 다급한 발자욱 소리에 이어 가마가 그네뛰듯 세차게 흔들거렸고 혼잡한 소요속에 누군가 가마에 난 뙤창으로 머리를 불쑥 들이 밀었다. 쌍가매의 머리에 씌여진 붉은 보자기를 잡아채 내렸다. 포수의 아들이였다. 잔뜩 힘이 들어간 손으로 포수의 아들은 가마채를 부여 잡고 있었다. 독을 마시기라도 한듯 마냥 둥글고 순하던 눈속에는 붉은 피물이 번지고 있었다.

<<엑! 나쁜 문디 종간나야 허구한 동리 남자들 다 제쳐놓코 하필이문 지팡이 되눔과 붙어 뿌렸냐?>>

쌍가매는 얼음채찍에라도 맞은듯 전신을 떨었다. 동네사람들은 혹간 자기집과 다투는 일이 있어도 그 아픔을 헤아려 문둥이라는 말만은 삼가했다. 허나 이 순간 포수의 아들의 입에서 그말이 거침없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질박하기만 하던 포수의 아들은 가장 험악한 말로 그녀를 저주하고 있는것이였다. 지팡이네 사람들이 우루루 달려들어 포수의 아들을 가마전에서 떼냈고 땅에 태를 치고 짓밟았다.
이윽고 빼악거리며 쇄납소리가 다시 울렸고 흔들거리며 가마가 다시 떠갔다. 내가에서 포수의 아들이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주먹으로 벌창해지는 눈확을 삑 문지르고서 외나무다리에 올라선 사인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필사의 힘을 다해 목청 깨져라 소리를 질렀다.

<<문디 종간나야!_ >>
<<문디 종간나야!_ >>...

우직한 성미의 박포수의 아들이 끝내는 재국을 치고 말았다.
왕지팡네 황둥개가 잔치집에 음식버럭을 맡아 해주러 찾아간 동네 사람을 물었다. 개는 일전에도 사숙에 공부하러가는 애를 문적이 있었다. 토끼털 귀싸개로 귀를 싸고 문앞에서 할일없이 이죽거리던 <<먹사마귀>>가 개를 추겨붙혔던것이다. 사숙을 가려면 왕지팡네 자두나무 빽빽한 집을 지나쳐야 했고 그렇잖아도 그 개가 무서워 멀리 에돌아 가는 애들을 개가 따라가며 감때사납게 짖어대군 했었다. 왕지팡네 채소밭을 솎아주던 마을 아낙도 개에게 물린적 있었다.
개에게 물리면 그 개의 허벅지쪽 털을 잘라 태워 가루를 참기름에 개여 먹이면 상처자리가 낫는다고 했다. 개의 털을 달라고 찾아간 그 학도의 엄마를 <<길한 날 두수없이 논다며>> 왕지팡네 아들이 개를 추겨 쫓았고 그의 역성을 들어 찾아간 박포수를 개가 또 한번 물었다.
이에 박포수 아들이 비맞은 장닭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다. 더는 참지못하고 벽에 여태 걸어두었던 화승총을 벗겨들고 왕지팡네 집으로 달려갔다. 지랄 용천하며 덮쳐드는 개를 향해 불 탄을 쏘았다. 개는 한자높이 치솟다가 떨어졌고 낑낑거리다 시뻘건 주련을 써 붙힌 지팡이네 대문앞에서 널부러 지고 말았다.
이는 중국사람들의 속담과 같이 <<언감 룡의 수염을 건드린>> 대역무도한 일이였다. 총을 꼬나든 사병들이 득달같이 달려 나왔다. 도망가는 박포수의 아들을 향해 란사(亂射)를 해 댔다.피나무다리를 건너다 포수의 아들이 몸에 총탄을 맞았다. 피를 흘리며 마을 까지 달려오다 더는 지탱하지 못하고 우물가에서 쓰러졌다. 우물가에서 아낙들이 물초롱을 떨어뜨리며 깨지는 소리를 질렀다. 피를 많이 흘렸던 박포수의 아들은 목이 마르다고 했다. 물 좀 떠 달라고 했다. 물 한 드레박을 다 마시고 포수의 아들은 우물곁에서 죽고 말았다.

쌍가매는 지팡이네 집 뒤켠의 우물이 있는 자기네 마을이 동두렷이 내려다보이는 자두나무숲속에서 쪼그리고 앉아 속울음을 울었다.

<<이제 오빤 죽어 구신(귀신)이 되여서두 날 용서하지 않을거다. 용서하지 않을거다>>

마음의 응어리를 굴리며 울고 울었다. 이 순간 지팡이네와 한 지붕을 이고 있는 자신의 처신이 부끄러웠고 억울하게 죽은 포수의 아들이 불쌍했다. 소박하고 단순하고 선량한, 어찌보면 무지렁이 친오빠보다 더 의뢰가 갔던 포수의 아들이였다.
쌍가매는 지팡이네 집에 다시 들어가기가 싫었다. 도깨비들이 란무하는 곳처럼 괴기가 서린듯한 그 기와집이 쌍가매에게는 옥사(獄舍)처럼 생각되였다. 갇힌 짐승처럼 권태롭고 애절한 그의 눈동자속에 보이는 사방의 모든것들이 다 춥고 암담했다.
어디선가 과부의 청승맞은 노래가락과도 같은 부엉이울음이 음울하게 울려오고 있었다.

생떼같던 아들의 죽음을 두고 박포수는 경찰서를 찾았다. 허나 사사로이 총을 휴대했고 민가를 저격했다고 죄는 오히려 박포수네 쪽으로 들씌워 졌다. 일본놈들이나 지팡이들이 한 바지를 입고 춤추던 시국, 부딪쳐봐야 자기 머리만 깨질일이였다. 풀어진 알상투도 좇지 못한채 경황없이 경찰서를 찾아다니며 원한을 호소하던 박포수는 끓어오르는 울화를 삭이지 못해 뇌익혈로 경찰서문전에서 죽고 말았다.
드레박을 부등켜 안은채 죽고 경찰서문전에서 죽은 박포수네 부자간의 모습은 마을사람들에게 화인처럼 남아 두고두고 잊지못해 했다.

포수네 부자간의 생떼같은 죽음에 마을을 뒤숭숭하게 하는 불안속에도 사당패집 김씨의 신경은 다른곳에 잔뜩 쏠려져 있었다. 김씨는 강이 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이 얼면
소금밀수를 할수 있었다.


 

* 당시 생활고에 못이겨 소금과 아편밀수에 나선 사람들이 많았다.
중국아편관에서 대마를 피우고있는 청나라 사람들



간도땅에는 소금이 귀했다. 당지 소금은 중국내지에서 오는 <<암염(岩鹽>>이였는데 교통이 불편하여 공급이 따라가지 못했고 값도 곱절 비쌌다. 조선에서 소금 한소두(7.5키로)에 50전이 못되였으나 <<암염>>은 1원도 더 갔다.
이에 사당패 집에서는 담대하게도 소금밀수를 시작했다. 조선 삼봉에서 소금을 가져와서는 한소두에 중국소금보다 조금 값을 낮추어 팔아도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조선소금의 수입을 통제하기 위해 두만강북안지역에 <<사염집사대(私鹽輯士隊)>>까지 나왔다. 검은 정장을 하고 붉은 세모방망이를 휘두르며 집사대는 여간만 감때사납게 굴지 않았다. 발각되면 소금을 몰수당하고 벌금 수십원을 해야 했다. 엄중한자는 영창에 집어 넣고 지어 사형에 처하기까지 했다.
허나 생활고를 못이겨 밀수군으로 전락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밀수군들은 끊임없이 집사대의 눈을 피해 소금마대를 지고 산발을 탔다.

<<짭짤이(소금) 장사가 돈닢이 되긴 합구만은 이러다 언제 큰 코 다치재일지 모르겠습꾸마. 아이구, 벌둥지
에 코빼기 들이밀 짓을랑 인젠 그만 하깁소>>

하면서도 사당패집 녀편네는 떠나는 남편을 위해 속에 소금을 집어 넣은 주먹밥을 뭉쳤다.
밤이면 우물로 나가 험지를 떠나는 남편을 위해 우물물을 길어 대접에 부어 놓고 남편이 졸사없이 돌아오기를 두손을 부비며 빌었다. 그렇게 마을사람들은 우물가에서 마른 손 서벅이는 소리를 자주 들을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한번 소금밀수를 갔다오던 사당패집이 풍설을 만났다. 몸이 꽁꽁 얼어들어 산더기를 넘지 못하고 눈길에 쓰러졌다. 이튿날에야 발견하고 마을사람들이 얼어든 그의 몸을 발가벗겨 소구유에 눕히고 우물물을 부어 찬기를 뽑으며 역사를 했으나 종시 살려내지 못하고 말았다.

김씨가 죽은 뒤 사당패집 아들은 마을을 떠났다.
자기는 아버지처럼 평생 광대나 <<짭잘이 장사>>로 살수 없다고 했다. 집의 5쌍지기 수전문서를 장사 밑천을 융통하는 담보로 금융부에 처분하고 장사에 나섰다. 더 큰 장사를 해서 떼돈 벌어 오겠다며 떠났다.
그후로 오래동안 염쟁이 아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누군가 본데 의하면 그가 대구어를 콩과 바꾸며 장사를 하고 있더라고 했다. 회령에 다니며 면포밀수를 하고 있더라고 했다. 또 누군가는 그가 따옌(大煙) 장사를 한다고도 했다.

쌍가매가 지팡이네 집에 시집가는 대가를 내면서도 살리려했던 장손 오빠는 그해 겨울에 죽었고 그 말도 안통하고 지지리 싫은 왕지팡네 집에서 쌍가매는 한해 겨울을 채 못지냈다. 왕지팡의 아들 <<먹사마귀>>가 토비들을 끌어들여 현성의 <<동래순(東來順)은행>>을 턴 일이 사출되였던 것이다. 왕지팡의 아들은 경찰서에 잡혔고 그해 겨울 사형으로 구형받았다.
왕지팡네는 아들의 후사를 굉장히 치렀다. 발인날, 집으로부터 묘지까지 가는길에 장례식에 불태울 목마와 조기(弔旗)를 든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었고 지전(紙錢)이 온 하늘에 날리였다. 장례식 행렬에 끼여 헛울음을 울면서 쌍가매는 슬픔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이 악몽같은 례식이 어서빨리 끝나기만 바랬다.

이 무렵 사당패집 아들이 돌아왔다. 행세깨나 하는 지방유지처럼 인력거타고 마을에 나타났다. 황새걸음으로 돌아온 사당패집 아들은 기름독에서 빠져나온 신사처럼 태깔을 훤히 벗은 모습이였다. 떼돈을 벌었다고 했다. 머리는 뽀마도를 발라 올백으로 넘기고 양행의 직원들처럼 세비로를 받쳐 입었는데 발에는 돈피가죽신이 눈이 시게 빛나고 있었다. 양담배를 입귀에 물고 일본제품인 <<사슴표>>성냥을 드윽 그어 불을 붙혀 물고는 종일 우물가에서 돌아치군 했다.
그러는 사당패집 아들을 두고 어떤이는 아비를 닮아 난 사람이라고 했고 어떤이들은 돈많은 티를 내며 흥감질이라고 뒤에서 삿대질을 했다.

그렇게 뒤소리 많은 사당패집 아들이 괴춤을 크게 털어 쌍가매를 지팡이네 집에서 빼내왔다. 삼굼집에서 진 빚에 리자까지 해서 150원의 거액을 대신 갚고 빼여 내 왔다. 장례식이 끝난후 왕지팡네는 재산을 팔아가지고 고향인 싼둥(山東)으로 돌아가버렸고 쌍가매는 사당패집 아들의 덕으로 우물이 있는 집 마을로 돌아오게 되었다. 털어버릴것도 더 할것도 없는 몸으로 입속이 칼칼해지는 황토바람을 맞으며 쌍가매는 집으로 돌아왔다.
언덕길에는 서슬이 멀건 억새풀들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지끈! 앞내서 얼음이 꺼지는 소리가 들렸다. 허비해진 몸을 가누며 눅눅한 바람이 부는 내가에서 쌍가매는 지팡이네 집에서 패물로 받았던 반지를 뽑았다. 헐겁게 돌아가던 반지는 부기에 퉁퉁 부어 오른 손마디때문에 잘 빠지지 않았다. 한동안 싱갱이질 해서야 반지가 손가락을 빠져 나왔다. 반지를 아무런 미련도 없이 앞내에 던져 버렸다. 반지를 끼고 있던 손이 얼얼해났고 그 자리에 허옇게 반지의 흔적이 남았다. 쌍가매의 마음도 그렇게 허옇게 바래져 있었다.

마을어구 우물가에 사람들이 모여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들의 틈바구니속에 훈장네 아들이 보였다.
훈장네 아들은 종이장을 쳐들고 읽고 있었다. 감개에 넘쳐 격문을 읽고 있엇다.

<<...오인(吾人)은 천민속의 한사람이요 약자속의 한사람이라 오늘 천명에 순종하고 인심에 응하여 천만민중이 한결같이 자유찬가를 부르며 쌍수를 부르쥐고 평등의 태도로 전진하는 바이로다. 저 동양문명의 수뇌, 동양평화의 보루라 자처하는 일제의 침략으로 하여 현정세에 변천을 가져왔도다... 민중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단합하야 침략자들이 간도땅을 밟지못하게 할지어다. 모든 사람은 다 신성한 책임이 있거늘 우리간도의 80만 조선족민중은 황천의 명소에 갈지언정 인류의 평등을 위하여 있는 힘을 다 바칠바이어라... >>


            * 그날은 조선의 <3.1>운동의 충격파를 물고  반일열조의 불씨가 간도에서 타 번진 날이였다. 


 *  1919년 3월13일 용정만세시위 당시 시위군중을 향해 일경의 압력에 못 이긴 중국 관원이 발포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시위현장인 오층대 건물의 옛 모습.


빠르게 말을 쏟아내는 훈장네 아들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안경속의 늘 맑고 담백한 기운이 있어보이던 눈에는 붉은 기운이 몰려 있었다. 엄격하게 양육되여 왔던 훈장집 자식의 이런 분방한 모습을 쌍가매는 처음 보았다. 그동안 다병했던 훈장의 손에 들렸던 물푸레 회초리가 아들에게 넘겨졌다. 어리지만 진중했던 그도 차츰 마을에서 훈장이라는 호칭을 듣기 시작하고 있었다.

우물가에는 훈장네 집에서 공부하던 젊은이들이 가득 모여 있었다.공명심에 들끓고 굴레를 싫어하는 젊음의 나이인 그들의 손에는 너나없이 기발이 들려 있었다. 기에는 <<정의인도>>, <<조선독립만세!>>라고 씌여있었다. 기에 씌여진 내용과 격문의 내용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붉게 상기된 얼굴들에서 그 부르쥔 종주먹들에서 쌍가매는 전에 없던 열류가 몸에서 굽이 침을 느낄수 있었다. 기를 쳐든 학생들은 훈장의 아들을 위시로 하여 구호를 부르고 기를 흔들며 사숙을 떠났다.


그날 현성쪽에서는 천주교회의 종소리가 여느때보다 높이 울렸고 구호소리가 간단없이 울렸다. 이윽고 되알진 총소리도 가슴 섬찟하게 울렸다.
그날은 조선의 <<3.1>>운동의 충격파를 받아물고 반일열조의 불씨가 간도에서 잉걸불로 타번진 날이였다. <<조선독립을 성원>>이라는 오장기를 든 기수의 뒤를 묻어 시위행렬은 호호탕탕하게 일본간도총령사관을 향해 매진하였다. <<독립선언서포고문>>을 랑독하고 <<조선독립만세!>>, <<일제의 침략을 반대한다!>>는 구호를 웨쳤다. 이날 현성은 흰옷 입은 사람들이 운집해 들어 파도의 이랑같은 물결을 이루었다. 허나 얼마못가 시위행렬은 일제의 협박에 나선 중국군경들의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다.
쌍가매는 집에 돌아온 기쁨보다도 훈장네 아들의 소식에 은근히 속을 썩이고 있었다. 우물가에 나가 아낙네들에게서 현성소식을 귀동냥 해 들었다. 이날 시위에서 십여명이 류탄에 맞아 죽고 백여명이 체포되였다는데 훈장의 아들도 옥에 갇혔다고 했다.

  
 
* 용정의 <3.13>반일의사 릉

사당패집 아들은 이제는 쌍가매네 집에 무람없이 놀러 다녔다. 어느날인가는 특별히 쌍가매를 불러내여 무언가 손에 쥐여주었다. 일본제 <<가오우(花王)>>표 세수비누였다. 쌍가매가 난생처음 보는 세수비누였다. 세수비누에서는 환장하게 향기로운 냄새가 났고 그 냄새에 현혹하며 쌍가매는 사당패집 아들의 자기를 향한 마음의 용의를 진하게 맡아낼수 있었다.

밤, 잠들수 없는 쌍가매는 우물가로 나왔다.
우물속에 비낀 자신의 착잡한 표정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이름할수 없는 수심에 잠겨들었다.
그러다 쌍가매는 신열나며 몸져 눕고 말았다.
꿈에 포수아들의 밤돌같은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이 하얗게 변하며 도수안경을 건 훈장아들의 얼굴로 변했고 다시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사당패집 아들의 얼굴로 변했다.

 * 죄악의 소굴 간도일본령사관 옛터

 

마을사람 셋이 보증인으로 나서서 신원보증서를 쓰고서야 겨우 옥에 갇힌 훈장의 아들을 보석하여 내왔다. 간도령사관 감옥에서 릉지가 되도록 뚜드려 맞은 훈장네 아들은 몸이 몹시 상해 있었다. 쑥색물감을 폭 뒤집어 쓴것 처럼 온몸 어데라없이 멍투성이였다. 손가락새에 저가락을 끼우고 틀었고 천장에 거꾸로 매달아 놓고 주리를 트는가 하면 고추가루물을 입에 부어넣고 대꼬챙이로 손톱 틈새를 후비고 벌겋게 달군 인두로 가슴팍을 지지기도 했다 한다. 며칠 내내 그런 험악한 졸경(卒更)을 치르고도 살아남은것이 다행이였다.
그런 훈장의 아들이 걱정되였지만 쌍가매는 남새스러워 훈장네 집에 문안을 가지못했다. 그보다도 사당패집 아들과 훈장아들 사이에서 물살에 좌왕우왕하는 미역처럼 오가지 못하며 마음의 부하를 겪고있는 쌍가매였다.

옥고를 치른 몸이 추어서자 훈장네 아들은 마을을 뜨기로 마음먹었다. 떠나던 날, 마을 젊은이들이 모여 송별주를 마셨다. 훈장의 아들이 술대접을 들어 논에 물꼬를 트듯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가 이렇게 술을 많이 호쾌히 마시는 모습을 모두들은 처음 보았다. 술기운에 불깃해진 얼굴로 훈장아들이 사당패집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불쌍하고 착한 애니깐 잘 해줘라! 쌍가맬.>>

아궁이속처럼 깜깜한 어둠을 관솔불을 추켜들고 사르며 떠난 훈장네 아들은 오래도록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가 다시 간도령사관의 옥에 갇혔다고 했고 누군가는 홍범도 부대에 참가했다고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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